[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파업권과 굶을 권리

현장에서 미래를  제7호
김기중

노 ◦ 동 ◦ 판 ◦ 례


파업권과 굶을 권리


김 기 중 (변호사)


1995년 노동계는 정부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철저한 실현과 노동조합 전임자를 축소한다는 방침의 발표로 시작하여 법원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 선언으로 마감하였다. 노동계는 정부가 아무리 무노동무임금을 외쳐도 이 부분에 관하여 이미 대법원의 판단(이른바 무노동부분임금)이 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단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일단 마음을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대법원은 남만진외 14명이 삼척군 의료보험조합을 상대로 임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1년 6개월여의 심리 끝에 1995년 12월 22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선언하면서 사용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무노동 부분임금을 주장하였던 노동부 장관까지 실각시킬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노동계의 현안을 간단히 끝내버린 것이다.
갑작스런 판례의 변경에 노동계는 참담한 심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으나, 한편 노동계는 대법원의 동향을 주시하고 이에 대비하였어야 했다. 왜냐하면 대법원은 이미 다음과 같은 몇 개의 판결을 연달아 내면서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2년동안 “불법쟁의로 인하여 사용자가 입은 손해는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조합원도 배상하여야 한다”라거나, “사용자가 조합원을 정당하게 해고하였다면 단체협약상의 조합과 합의하여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지 아니하여도 적법하다”라거나, “부서 폐지결정은 경영사항이므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는 “노동조합전임자도 출근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를 위반할 경우 무단결근이 되어 사용자는 무단결근을 이유로 노동조합 전임자를 해고할 수 있다”라는 등의 과거 판결을 일정정도 변경해 가면서 사용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판결을 연달아 냈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위와 같은 판결들과 일정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판결들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한 관계에서 노무를 공급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고용 또는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는 시민법적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노동 무임금을 선언한 대법원 판결에 나타난 다수의견의 논리를 살펴보면 이 점은 명확해진다. 다수의견은 ‘명칭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사용자로부터 받는 일체의 금품을 임금이라고 하므로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제공과 임금은 대가관계에 있다’고 하며, 그 근거로 민법과 의료보험법 등을 열거하면서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이므로 임금을 생활보장적 부분과 교환적 부분으로 분할할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쟁의기간 중에 근로를 하지 아니하였으면 당연히 그 대가인 임금도 청구할 수 없다’고 간단히 단언하여 버렸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또한 쟁의기간 중에 근로제공을 하지 않는 문제와 결근으로 인하여 근로제공을 하지 아니하는 문제에 관하여 쟁의기간 중에는 ‘사용자의 노무지휘권’이 미치지 않으므로 ‘사용자의 노무지휘권’이 미치는 결근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으므로 양자를 같이 볼 수 없고, 따라서 결근할 경우에 일부 임금이 지급된다고 하여 쟁의기간에 근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도 당연히 일부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수의견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일반 시민법의 논리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였으니 당연히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앙일간신문도 이 대법원 판결을 보도하면서 이 논리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운운하며 대법원판결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헌법은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조건의 향상을 요구하는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요구가 수용되지 아니하면 집단적으로 근로를 거부할 수 있는 단체행동을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권리를 주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근로계약은 단순히 노동법에 의하여 일정부분 수정과 제한을 받는 유상쌍무 계약이다. 위 다수의견도 인정하였듯이 사용자의 지휘명령권에 복종해야 하는 종속노동의 속성을 갖는 특수한 관계이므로 개개의 계약관계(근로계약)와는 다른 특수한 집단적인 관계를 인정하게 된 것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실제의 임금체계에서도 휴업수당, 가족수당, 물가수당 등 구체적인 노동과 직접 관계가 없는 부분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바, 이러한 부분이 단순히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임금’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한 ‘임금’이므로 근로제공과 대가적인 관계에 있다는 형식적인 이유만으로 그 특수성을 가볍게 부정하기에는 임금이 생성하게 된 역사적, 현실적 배경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위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의견도 이 점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즉 ‘근로계약에 의하여 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은 근로자가 보유하고 있는 육체적 및 정신적 모든 능력의 총집합으로서의 노동력의 사용 또는 처분에 관한 권한을 사용자에게 맡겨 놓고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따라 구체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이른바 종속노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구체적인 노동의 제공에 대한 대가로서의 의미를 갖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근로자가 전인격적인 노동력의 처분 등에 관한 권한을 사용자에게 맡겨 놓은 것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소수의견이 지적한 ‘평균임금이 통상임금보다 다액임을 전제로 하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이나 ‘유급 휴일제도, 연월차 휴가제도, 산전후 휴가제도 등의 근로기준법 규정이 현실로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함에도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을 다수의견은 설명하지 못한다. 산전후 휴가나 연월차 휴가도 결근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노무지휘권이 미친다는 억지주장을 할 것인가. 사용자의 노무지휘권이 미치므로 연월차 휴가 중에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것과 쟁의행위 기간 중에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다수의견의 논리대로라면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에게는 개근하여야 주어지는 월차 휴가나 연차 휴가도 주지 않아야 하고 근속연수에서도 파업기간을 제외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제재수단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시행을 강제해 왔던 노동부조차도 파업기간을 근속연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대법원의 판결은 노동법원칙을 시민법으로 거꾸로 제한함으로써 역사의 시계바늘을 산업혁명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다수의견의 논리적 부당함을 떠나 다수의견의 결론은 우리 노동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 동안 대법원은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경제사정이 어렵다는 현실 등을 들먹이며 법적논리에 닿지 않는 무수히 많은 판결을 선고해 왔다. 그런데 유독 노동관계 사건에서 만큼온 엄격한 법논리를 적용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노동현실은 외국과 다른 특수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와 유사한 법체계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 이미 1950년대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게다가 정부가 강압적으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시행하라는 행정지도(?)를 한 후에야 사용자들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도입하려 했던 데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파업기간 중의 임금이 대부분 지급된 것으로 보고되었고, 노동부가 파업기간 중의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장에 세제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를 놓은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용자는 각종 수당명목으로 파업기간 중의 임금을 보전하여 주었다. 우리의 노동현실은 파업기간 중의 임금을 일부라도 지불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사용자도 인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특수한 현실은 이렇다.
우리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를 산업별 조직형태가 아닌 기업별 조직형태로 규정하고 있고, 조합비도 상한이 정하여져 있어 파업기금을 형성할 수가 없으며, 사업장의 규모가 영세하여 파업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인 생활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우리 노동조합법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제3자 개입금지를 규정하고 있어 파업중인 노조가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없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은 외국에 비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제반 사회보장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는 현실에서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도 위와 같은 조건들을 열거하면서 ‘파업중에 사용자도 경제적 타격을 입기는 하지만 사용자가 가지는 경제적 지위 등을 고려하면 임금을 전액 공제하는 것과 일부 공제하는 것과의 차이는 심각할 정도는 아니므로 일부임금을 부담하는 것이 사용자의 교섭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쟁의중인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임금 외에는 다른 생계수단을 갖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일부라도 임금을 받는가 전혀 받지 못하는가 하는 점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직결되므로 교섭력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며 ‘현재의 우리나라 노동현실에서 쟁의기간 중에 임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면 근로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키는 결과가 된다’고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배포하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선진국가들도 모두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첨부하였다고 한다(한겨레신문 1995. 12. 22.자 2면). 앞의 국가들이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그밖에 제3자 개입을 금지하고 있지도 아니하고, 조합비의 상한선을 임금의 2%로 한정하고 있지도 아니하며, 기업별 노동조합을 강제한 역사를 갖고 있지도 않고, 노사간에 자율적으로 정할 임금인상율을 정부가 나서서 정해주지도 않으며, 사소한 파업절차 상의 위법을 이유로 무수한 경찰을 투입하여 수백명의 파업노동자들을 연행, 구속하지도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하여야 할 일이다. 또한 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복지제도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무노동 무임금을 선언하기 불과 3년전인 1992년 3월 27일 대법원은 파업기간 중의 임금도 일부는 지급하여야 한다고 선고하였다. 또한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불과 몇 개월 전인 1995년 4월 「법원사」에서 ‘노사간 협상이나 사용자의 은혜적 처분에 의하여 쟁의기간 중 임금의 상당부분을 지급하던 것을 근로자의 법적인 권리로 승격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1205쪽)를 하면서 앞의 1992년 3월 27일자 대법원 판결을 중요판결의 하나로 선정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짧은 사이에 시대상황이 변하고 법리가 바뀌었는가.
애초에 파업기금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없고 외부의 도움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는 제도하에서 ‘일을 하지 않았으니 임금도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는 단체행동권이란 단체로 굶을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노/정/연

1996-01-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