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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시민의 탄생

현장에서 미래를  제73호
홍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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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시민의 탄생



홍 태 영/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1. 서론

인류의 역사가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한, 그 구성원을 규정하는 시민권의 문제, 즉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 및 그에 따른 지위를 규정하는 시민권의 문제 역시 자연스럽게 따르는 문제이다. 현 시기 우리가 국민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틀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역시 공시적으로 볼 때, 지구상의 유일한 정치공동체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공격에 초토화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만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이해하지도 또한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 어떠한 형태의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살아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아프리카의 곳곳에서도 서구에 의해 수입된 국민국가의 형태는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키면서 그들 영토 내에서 실현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국가를 기초짓고 운용해온 서구마저도 세계화라는 담론과 현실 속에서 국민국가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지금의 동시성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정치공동체의 형태들은 물론 통시적으로 바라볼 때도 그러하다. 역사가들에 의해 찾아진 것만 보더라도, 그리스에서 도시국가, 로마의 세계제국, 중세의 종교적 공동체 등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정치공동체의 형태들이다. 그것들의 유사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통시적으로 존재한 정치공동체의 형태들이 지금의 공시성 내에서도 찾아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의 존재가 진보 내지는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사라져야 할 어떤 것이 존재하고 질적 우위를 가지면서 실현되어야 할 어떤 것이 존재함은 아닐 것이다.

공시적, 통시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을 규정짓는 문제가 바로 시민권(citoyennete, citizenship)의 문제이며, 그것은 그 정치공동체의 성격과 결부되어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따라서 그 정치공동체가 규정하는 시민권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곧 그 정치공동체의 성격을 이해하는 하나의 척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도시국가(city-State)에서 시민권은 일상적인 정치적 토론에의 참여, 의회, 군역 등의 활동에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규정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엄격한 의미에서 시민은 “관직과 법정의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였다.(아리스토텔레스, 1275a) 따라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사람은 생존을 위한 경제적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인남자에 한정되었고 여자, 노예, 이방인은 제외되었다. 시민의 정의에서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가 기준으로 되는 도시국가는 로마의 공화국,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 이태리의 도시국가에서도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정치공동체로서 제국(empire)이 들어섰을 때 시민권의 개념은 변화한다. 로마 제국에서 시민권은 제국의 영토적 확장과 결부되어 그 범위가 확대된다. 즉 자신이 정복한 정복지역의 인민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시민권에 대한 형식적 정의는 변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실체는 변화를 겪게 된다. 즉 시민권은 정치공동체에 적극적 참여를 전제하기보다는 특정한 권리와 지위를 부여받는 지극히 수동적인 개념으로 그 내포가 바뀌게 된다.(M. Walzer, 1989, 214) 시민은 법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권은 로마의 역사나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 등은 포괄하게 된다.

신의 계시에 따른 공동체를 구상하였던 중세의 사회질서는 “위계들의 다양성에, 다시 말해 한편에서는 명령을 내리고 한편에서는 그것을 수행하거나 전달하는 그런 이원적 관계들의 연쇄”에 근거하고 형성되었다.(G. Duby, 1978, 17) 그것은 국가가 천상세계의 목적에 종속되어야 했고, 현세적인 것은 정신적인 것에 종속되었던 사실에 기인한다. 그리스인들이 “자신의 고유한 관점과 자신의 의견을 다른 시민들과 교환”함으로써 공동체의 원리를 그 자체 내부에서 찾았던 것과 달리(H. Arendt, 1954, 71), 중세에서 공동체의 원리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였다. 따라서 고유한 의미의 정치가 사라진 중세에 시민 역시 실종되게 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추구되었던 시민의 이상은 고대로의 회귀와 새로운 근대적 시민의 탄생 사이에서 동요한다. 무엇보다도 혁명이 중세적 내지는 절대주의 왕정에서의 사회구성원에 대한 상, 즉 종교적, 봉건적 위계질서 속의 행위자에 대한 상과 단절하였지만, 혁명의 진행 속에서 등장한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상은 그 시민권의 내용을 달리하면서 표현되었다. 공공정신을 갖춘 덕목 있는 시민으로서의 고대적 시민의 상을 회복하고자 했던 자코뱅의 시도와 근대적 분업의 시각에서 ‘적극적 시민’과 ‘소극적 시민’을 구분하고자 했던 시예이예스(Sieyes)의 시도 사이의 갈등은 19세기 프랑스 정치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프랑스 혁명이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의 기초 형성은 고대 도시국가나 로마 제국의 형태가 아닌 새로운 모습을 가지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최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는 지배적 담론과 영향력은 국민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틀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유럽연합이라는 실험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에 대응하는 자구적 노력 속에서 가속화되고 있지만, 단순하게 자본의 운동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즉 그것이 국가간의 경제적협력 이상의 다양한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분명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여지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형성할 때만이 현재 초국적 자본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는 유럽연합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국민국가라는 정치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국민적 시민권의 한계를 새로운 정치체의 틀을 통해 극복할 낼 수 있는 계기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2. 근대 국민국가와 시민

30년 전쟁이후 체결된 베스트팔리아 조약(1648년)은 영토국가들간의 국제체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근대성의 정치는 “공간적 정치”로서 정의되기도 하며, “영토성은 국제정치에서 근대성을 가장 독특하게 정의”하게 된다.(R. B. J. Walker, 1995) 근대적 개인들은 국민국가라는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였고, 19세기 말 완성되고 20세기를 지배한 국민국가들의 체계는 그들을 유일한 주체로 하는 국제관계를 형성시켰다. 독립적인 주체로서 “유럽의 국가건립과정은 국가내의 문화적 변이를 극소화시키고, 국가간의 문화적 변이를 극대화”시킨다.(Ch. Tilly, 1975, 19) 국민문화의 형성은 문맹률을 낮추고 하나의 지방어를 국민국가 전역에서 사용되는 지배적인 의사소통 매체로 일반화시켰으며, 동질적인 문화를 발명해 내고 국민교육 체계와 같은 국민국가의 문화제도들을 성립시켰다.1) 국민의 형성과정은 근대국가라는 영토적 공간 내에서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개인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확립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근대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국민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국민국가의 관계가 필연적인 관계이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국민국가라는 정치체를 통해서만 재생산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맹아적으로 발생할 당시 국민국가적 형태뿐 만 아니라 제국적 형태 또는 도시국가적 형태의 정치체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발리바르는 브로델과 월러스타인에 의거하여 중심부와 주변부로의 위계화된 세계경제라는 관점과 중심부 내의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세라는 시각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국민국가의 결합을 설명한다(E. Balibar, 1993b, 111~113). 중심부 내에서 부르주아지들의 승리와 그것의 국민국가적 형태로의 사회구성체의 전화를 계급투쟁에 의해 설명하는 방식은 틸리가 자본의 움직임과 더불어 전쟁, 즉 강압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개입시킴으로써 국민국가 형성을 설명하는 방식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Ch. Tilly, 1990). 전쟁이라는 변수는 절대주의 왕정의 성립과 연결되며 그것은 곧 절대주의 체제의 정치산술학과 중상주의 시스템의 결합과도 연결된다(P. Anderson, 1974; K. Polanyi, 1957, 88~90). 상업 자본주의 시대에 절대주의적인 중앙집권국가의 형성과 중상주의 정책을 통한 전국적 시장의 확보 그리고 대외적으로 전쟁 수행을 위한 전국적인 자원의 정비 등은 근대국가의 성립으로 이어지게 되는 길을 연 것이다. 따라서 근대에 이르러 다양한 정치체들 가운데서 국민국가라는 정치형태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결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순수한 경제논리만의 설명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형태가 드러나는 고유의 민족사 및 강압의 역사를 통해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결합된 근대국가는 자본주의적 축적과 그 재생산 그리고 일정한 영토 내에서 그 구성원들을 통합해야 할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근대의 국민국가는 일정한 영토 내에서 군사적 및 조세의 독점권을 실현하는 제도적 형성과정과 동시에 그러한 외부적 강제를 내면화시키는 근대적 개인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시키면서 완성되어 간다(N. Elias, 1939). 19세기 동안에 진행되는 시민권의 외연적, 내포적 확장과정은 국민이라는 공동체를 주권자로서 확립시키는 과정이었다. 즉 국민국가의 구성원인 시민들에게 그 집단 내에서 행위의 주체자로서 확립시키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근대의 국민국가는 “행동하지 않는다 해도, 조정된 정책과 계획을 지정학적 차원 위에서 추구하는, 성찰적으로 감시되는 체계”로서 근대성의 특징적인 사회적 형식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A. Giddens, 1991, 59). 푸꼬가 말하는 통치성(gouvernmentalite) 개념 역시 근대에 발생하는 권력의 지배양식으로서 두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M. Foucault, 1978).

하지만 국가의 건설과정(state-building)과 국민의 건설과정(nation-building)이 단선적이거나 동일한 과정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국가가 건립된 것은 12세기였으나 국민이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반의 영국에서였다(Ch. Pierson, 1996). 또한 프랑스 혁명 시기에 등장한 국민(nation)은 국왕주권을 대신하는 새로운 주체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결합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민이라는 개념은 그 내용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 형식적인 개념에 불과하였다. 구체적으로 19세기 프랑스의 민주주의적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은 민주주의의 근대적 주체로서 시민의 형성, 대의제 정부형태 속에서 인민주권의 실현, 사회적인 것에 대한 정치적 형태의 구성이라는 세가지 과정을 통하여 진행된다(P. Rosanvallon, 1998, 22). 이 과정은 국민(nation)의 형성을 통해 국가(State) 역시 그 권력을 보장받고 확대해 가는 과정임을 말해 준다. 시민권의 측면에서 보면 이 과정은 흔히 근대 국민국가 시민권의 발달과정에서 소유권을 중심으로 하는 민권(civil right), 선거권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 사회복지 혜택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권리(social right)의 형성으로 이해된다. 시민권의 확대과정에서 대한 대표적인 논의는 마샬(T. H. Marshall, 1977)이며, 그의 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비판은 세 가지 권리가 동일한 무게를 지닌 권리들이 아니며, 그것의 발달과정 역시 단선적이거나 국가권력에 의해 주어진 과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역동성을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B. S. Turner, 1986, 1993).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민권의 발달과정에서 전제되어야 할 부분은 국가권력과의 관계이다.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채택되고 그것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들이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권리’의 실종이다. 즉 근대 국민국가에서 인간의 권리는 시민의 권리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그것은 인간이 국민국가라는 정치체(corps politique=cite)에의 진입의 권리를 획득하는 순간 시민으로 인정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시민이라는 개념 자체에 이미 포섭과 배제의 논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시민권은 국민권(nationalite)을 전제로 한 시민권(citoyennete), 즉 국민적 시민권(citoyennete nationale)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해 승인된 권리인 것이다. 국민주의에 기반한 시민권이라는 것은 사회적 차이에 ‘진짜로’ 국민적인 것과 ‘가짜로’ 국민적인 것 사이의 분할의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화해불가능한 적대들의 발현인 사회적 차이를 종족화시키고 있다(E. Balibar, 1993b, 126).

프랑스에서 복지국가의 탄생을 역사적, 철학적으로 검토한 에발트는 19세기 말에 등장한 사회적 권리가 민권이 근거한 기본적 토대를 전복하였음을 강조한다(F. Ewald, 1986). 즉 민권의 기본적 전제가 개인적 책임성이라면, 사회적 권리의 전제는 사회적 책임성이다. 19세기 동안 발생한 궁핍화로 대표되는 ‘사회적인 것’의 해결책으로서 사회적 권리가 발생한다. 민권이 계약과 관련한 정치철학적 문제설정에 기반하였다면, 사회적 권리는 사회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 사회학적 문제설정으로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2) 비록 지나친 단순화일 수도 있지만, 월러스타인이 19세기말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 속에서 국가, 시장, 사회의 영역을 담당하는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 탄생을 지적한 것은 국민국가 확장의 범위와 한계를 이해하는데 대한 타당한 지적이다(I. Wallerstein, 1989). 근대 자본주의 발전을 정치적 틀로서 국민국가라는 틀 내에서 제반의 권리의 확장은 국가권력을 전제로 한 확장이었으며, 그것은 국민적 시민의 권리의 확장이었다. 시민권(citoyennete)과 국민권(nationalite) 사이의 비가역적이고 확정적인 융합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복지국가―발리바르의 표현을 빌자면 사회적 국민국가(E. Balibar, 1993a, 120)―에서인 것이다. 자유주의의 가장 확장된 형태로서 이념적으로 사회적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시민권의 내용에서 사회적 권리까지 포괄하는 형태로 복지국가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복지국가의 개혁과 관련하여 사회적 권리의 변동은 그 권리를 담보하는 국가권력의 움직임과 관련된다.

시민권의 확대과정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개념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었고, 따라서 그것은 ‘상상의 공동체’였으며, 실제 인간 공동체와 그 네트워크의 부재 또는 분열에 따라는 감정의 공백을 메우는 과정이었다(B. Anderson, 1983; E. Hobsbawm, 1990). 앤더슨은 민족 개념의 형성 속에서 인쇄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동시성 개념을 분석하였다. 인쇄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도서와 대중매체의 보급이 동일하게 상상된 공동체의 구성원들간에 반복된 동일한 대중의식을 형성시킨다는 것이다(B. Anderson, 1983, 41~58). 19세기 동안에 진행되는 시민권의 외연적, 내포적 확장과정은 따라서 동시에 국민이라는 공동체를 주권자로서 확립시키는 과정과 동일한 것이었다(R. Bendix, 1977). 이렇게 형성된 국민국가 틀 속에서 개인들은 국민들을 형성하게 되고, 그 국민은 정치적 실체일 뿐만 아니라 의미―문화적 표상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상징적 공동체이며, 이 점이 바로 정체감과 충성심을 만들어내는 국민의 권력을 설명해준다(S. Hall et al., 1992, 343).

하지만 현재 초국적 자본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시공간의 형성 속에서 국민국가는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한다. 국제적 금융체계의 동학, 초국적 기업 활동의 급격한 성장, 전지구적 통신망과 미디어 네트워크의 가동, 국제기구나 국제공동체의 부각이라는 국민국가를 외압하는 세계화의 논리와 종족적 분리, 민족주의의 부활, 소수민족 의식의 발흥, 환경주의와 같은 새로운 집단적 소속 의식의 부상 등 국민국가 내부의 분열요소 등은 국민국가를 위협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발생 초기 존재했던 다양한 정치체들 가운데서 국민국가가 그것과 결합하였다면, 이제는 그 결합에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3. 유럽 정체성과 유럽 시민

유럽 통합의 가속화 속에서 유럽의 좌파들은 단일시장의 형성이라는 자본의 전략에 유럽통합을 종속시키지 않고 동시에 사회적 유럽이라는 사회 정책의 유럽적 수준에서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진행되는 ‘지구화의 덫’을 벗어날 수 있는 일국적인 출구는 없다는 인식이다. 세계화라는 필연적이고 섭리적(?) 사실 앞에서 그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가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면서 어떻게 세계시민법적인 질서로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재 유럽연합을 ‘사회적 유럽’으로 지켜내려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문제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이라는 규모의 초국민적인 국가조직이 단순히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경제적 협력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개별국가들간의 협력을 위해 민주적으로 통제가능한 사회정책적, 경제정책적 행위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단위로 설정되는 것이다(U. Beck, 1997, 299).3) 유럽연합은 세계화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의 권역 내에 단일시장을 형성하는 자구적 노력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의 경제적 활동에 의해 지배 또는 통제되는 지구적 공간에 대항하여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적인 유럽이라는 전망 속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된 경제체제하에서 고용을 증진시키기 위한 ‘일국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프로그램은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효율성을 상실할 뿐 결코 실효성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자본의 축적 전략이 국민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사회정책을 국민국가 수준에서 지속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기능이 유지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현재로서는 세계화된 경제의 수준에 맞는 정치적 단위에 국민국가의 기능을 이전시킴으로써만이 가능하게 된다(J. Habermas, 2000, 32). 국민국가적 수준에서의 정치적 권력이 국민국가적 경계를 넘는 지평 속에서 활동하는 경제적 행위자들의 전략을 규제하거나 제어할 능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권력의 분할 내지는 주권의 분할의 원칙들이 즉각적인 필요에 의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J. Aguiar, 1992).4) 하버마스는 보다 확대된 수준에서의 정치적 단일체를 형성하는 것은 결코 현재의 자본주의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현재의 세계경제의 초국적 체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임을 강조한다. 경제적 생산의 탈민족화라는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능력의 범위를 넘어섰고 또한 국민국가의 성과물마저도 공격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시장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감독에만 내맡겨둘 수 없는 것”이다(J. Habermas, 1996, 156).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럽은 “두 가지의 결여”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J. Lenoble, 1992). 그 하나는 “정체성의 결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결여”이다. 유럽 통합의 진행이 지속적으로 관료적인 절차를 통해, 또한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추동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유럽이라는 집단성을 통일시켜줄 수 있는 안정적인 정치적 정체성이 부재하며, 다른 한편으로 전유럽적 수준에서 시민들의 통제 밖에 유럽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두가지 결여”가 해소될 때, “공리적 계산에 의해 보수적 혁명”으로서 진행되고 있는 유럽통합이 “민주주의적 유럽”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J. M. Ferry, 1998).

하지만 여기에서 ‘유럽적 정체성’의 문제가 외부적으로는 세계화라는 새로운 시공간에 대항하고, 내부적으로는 개별 유럽구성원들에게 유럽인이라는 정체성 부여의 문제와 결부되는 핵심적 문제가 된다. 어떻게 고전적인 국민국가적 정체성을 탈국가적 정체성, 내지는 초국가적 정체성으로 확립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정체성의 확정의 문제는 단순하게 추상적 논의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시민권의 문제와 연결된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국민적 시민권의 문제가 국민적 정체성의 문제와 결합하여 확대되고 또한 그러한 발전의 과정 속에서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확립시켜 나갔던 것과 동일한 문제인 것이다. 유럽적 정체성의 확립의 문제는 유럽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성립이라는 제도적 차원의 문제와 동시에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이전의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넘어선, 최소한으로 그 동일한 수준의 주체적인 행위자로 확립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규정하는 유럽시민은 “유럽연합 국가의 국민”에 한정하고 있으며, 이것은 명확히 국민권을 전제로 한 유럽시민권에 대한 이해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전에 사회적 유럽을 위한 시도로서 1989년 제정된 ‘노동자들의 기본적 사회적 권리 헌장(The Charter of the Fundamental Social Rights of Workers)’이 채택된다. 유럽 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를 인정한 이 헌장은 실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는 채택되지 못한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규정한 유럽시민은 유럽 연합 국가의 국민으로서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권리가 우선적이고 부가적으로 몇 가지 정치적 권리가 인정될 뿐이다. 국민국가적 시각에서 본다면 아주 미약한 형태의 시민의 권리가 인정된 셈이다. 유럽연합의 출발이 경제적 공동체에 있고 최근의 급격한 통합의 시도 역시 세계화에 대응하는 유럽 자본의 자구책이라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국가에서 시민의 권리의 확대가 지속적인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유럽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의 모습과 그 구성원인 유럽시민들의 권리 역시 새로운 역사를 앞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유럽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유럽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에 보다 확장된 민주주의의 모습을 부과하려는 시도이며, 그를 통해 유럽 시민권의 내포적, 외연적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울리히 벡은 국민국가는 “문화적 정체성(‘민족’), 공간, 국가의 통일성에 입각해서 사고되고 조직되었던 모델”임을 명확히 한다(U. Beck, 1997, 24). 하지만 그가 바라는 유럽 역시 국민국가적 의미에서 정치적인 유럽, 혹은 국민국가의 지리적 확대로서 연방적 형태를 지닌 유럽 역시 아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유럽적인 일간지”도, 또한 “일국의 국민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지하 창고에 처박아 넣을 만큼 전 유럽의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전유럽적인 명성을 지닌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국민국가와 동일하게 단일한 문화적 정체성을 기대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근대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두 가지 축 중의 하나는 국민국가 구성원을 통일시키는 문화적 정체성이다. 울리히 벡은 그러한 단일한 문화적 정체성을 갖춘 국민국가적 유럽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정체성이 유럽인들을 하나의 단일체로 묶어낼 수 있을 것인가? 현재의 유럽의 지식인들은 민주주의와 인간의 권리라는 가치에 기반한 ‘도덕적 내지는 정신적 정체성(une identite morale)’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또한 바람직한 정체성이라고 주장한다(V. Camps, 1992). 민주주의적 정체성만이 유일하게 보편적으로 유럽인들에게 의해서 수용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열려진 정체성”이다.

민주주의적 정체성이라는 보편적 가치 속에서 유럽을 구성하는 각 국민국가들의 문화적 차이들은 보존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단일성의 추구 속에서 “민족적 문화의 다양성이 결합할 수 있어야” 하며, “유럽인민이라는 사고는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존재”하는 것이다(J. M. Ferry, 1998). 유럽인민을 말하는 것은 민족적 차이의 제거가 아니라 “하나의 공통의 정신”을 형성하는 것이다. 세계화라는 배경 속에서 현재의 유럽적 시민사회의 출현은 단지 그것이 거대한 시장의 출현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것은 동시에 정치사회, 정치적 공론장의 출현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적 공론장 내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들과 정치적 열정들이 대립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상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결코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전제조건으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민주적으로 구조화된 의견 및 의지형성이 낯선 사람들 간에도 이성적인 규범적 합치를 가능케 하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성에 의해 보장되는 지나간 배후합의는 필요치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J. Habermas, 1996, 169). 유럽연합은 무엇보다도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분쟁의 해결에 있어서 폭력의 포기”를 의미하며, “국제법으로부터 독립된 공동체의 사법권을 실행”시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R. Kastoryano, 1998, 22). 하지만 분명 정치적 과정은 단순하게 공적인 제도들로 환원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의사결정은 의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집단의식’에 의해 통일된 영역 속에서 발생한다(C. Geertz, 1973, ch.11). 따라서 경제적 공간과 결합된 도구적 정치 행정 기구의 틀을 넘어서 유럽의 각 국민들과 시민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집단의식’과 새로운 연대감의 형성을 통한 ‘유럽시민’의 형성, ‘유럽적 정체성’을 요구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각각의 민족적 문화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한에서 말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다수문화는 모든 시민들에 의해 동일하게 공유되는 보편적 정치문화와의 융합을 통해 얻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J. Habermas, 1996, 178). 그리고 그 보편적인 정치문화는 브뤼셀에 존재하는 유럽 기구들의 제도적, 기구적 노력이 아닌, “이익단체, 비정부조직, 시민주도권과 시민운동을 가진 시민사회에 의해 지탱되는 공통된 정치문화”의 형성을 통하여 “정당들이 직접 유럽적 제도조직들과 관계를 맺고 분파적 결속체를 뛰어 넘어 유럽적 정당체계로 발전할 수 있는 영역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전유럽 차원의 정치적 공론장의 의사소통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공론장은 국민국가 시기 국가에게 맡겨졌던 시민형성을 위한 시민교육을 대신하게 된다(J. M. Ferry, 1998, 203). 유럽연합 내에 공유되는 정치적 문화 형성의 동학은 공론장 내에서 상이한 민족 문화들의 접촉의 운동 내에서 전개된다. 유럽의 민주주의적 공론장의 형성은 공동체의 공적 권력의 조직화라는 법적인 통로를 통한 유럽 국가의 형성보다 유럽적 정치의 형성에 보다 본질적이다. 공론장에 의한 유럽적 정치의 형성은 합법성(legalite)의 원칙에 시빌리테(civilite)와 공개성(publicite)을 결합시키면서 유럽의 문명(civilisation)을 형성시키는 것이다(J. M. Ferry, 1998, 209).5) 공론장을 통하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유럽적 정치문화를 내면화하게 되고 유럽시민으로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공론장을 통한 유럽 시민의 형성은, 지금까지의 관료들에 의해 주도되고 경제적 목적을 지향해 온 유럽 통합의 길을 민주주의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적 부재를 제거하게 됨으로써 유럽은 세계화에 대한 ‘민주주의적이고 인간의 권리에 근거한 대안적 공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질서와 경제질서는 능력있는 국제제도나 대륙적 체제간의 조율과정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기동성을 얻게 된 시민사회의 압력 하에서만 관철될 수 있는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J. Habermas, 1996, 157). 현실적으로 국민국가가 상실하고 있는 정치의 내용을 유럽이라는 관료적 정치체가 그대로 흡수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P. Thibauld, 1991). 즉 세계화과정 속에서 정치의 상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롭게 형성되어야 하는 정치적 공론장에 의한 정치의 활성화 내지는 전유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울리히 벡 역시 현재 압박해 오고 있는 세계화라는 문제에 대답으로서 유럽을 추구하고 있다. 그에게 유럽은 “미래 문제, 즉 노동시장, 생태, 사회국가, 국제 이주의 문제, 정치적 자유, 기본권 등 모든 주제에 걸친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인 해결책으로서 정치적으로 기획되어야” 할 세계화에 대한 하나의 대응 방안이다(U. Beck, 1997, 297). 21세기 유럽은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인간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적 기제”를 결합시킨 “사회적 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강원택, 조홍식, 1999, 413). 초국적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라는 단일한 시공간의 형성에 대항하여 민주주의적 유럽의 공간의 형성이 하나의 대항의 섬을 형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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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에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이 시점에서 그것의 결과물인 사회적 권리를 옹호하고 그것을 유럽적 차원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은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의 힘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해 보일 수 있다. 국민국가 틀 내에서 존재해 왔던 민족주의적 담론은 유럽이라는 초국가적 제도 속에서 민족주의의 확대된 형태 즉 인종주의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국가(nation-State) 수준에서 유지되었던 국민(nation)과 국가(State)의 탈구를 통해 유럽 인종(race)과 유럽이라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결합으로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유럽은 결코 국민국가적 틀 속에서 형성된 복지국가의 연장이 결코 아니어야 한다.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하는 민주주의적 유럽이라는 공간은 국민국가적 틀 속에서 국민주의(nationalism)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것의 법적 형태인 국민권(nationalite)의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재생산해 왔던 배제(exclusion) 논리가 인종주의(racism)의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그러한 공간이 아님을 확정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유럽적 차원으로 시민권의 문제가 전이될 때 가능하고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일국적 수준에서도 역시 필요한 민주주의적 운동이며 권리의 정치이다. 즉 현재 국민권의 틀 내에 갇혀 있는 시민권의 문제를 분리시키면서 국민적 시민권이 갖는 배제의 논리를 제거하고자 하는 노력이 요구됨을 말한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시민권의 확장의 역사가 국가권력이라는 전제로 한 자유주의적 권리의 확대였다는 점에서 권리의 정치는 국가권력의 전제를 거부하는 차원에서 진행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적 수준 나아가 세계적 수준에서 요구되어야 할 민주주의적 권리의 정치인 것이다. 그러할 때 시민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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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적인 예로서 19세기를 걸쳐 추진되고 19세기말에 완성되는 프랑스의 초등교육의 무상, 의무교육 및 세속화 작업은 그것이 시민의 형성이라는 작업과 동일한 축을 이루면서 진행된다(F. Furet et M. Ozouf, 1977).


2) 19세기말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각각에서 이러한 문제설정들의 변화는 동일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른바 ‘사회적 자유주의’ 내지는 ‘집산적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들이다. 영국의 홉하우스, 프랑스의 뒤르카임, 독일의 베버, 이태리의 파레토 등이 그러한 예이다. R. Bellamy, 1992 참조.


3)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라는 사고는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에게 한편으로 정치를 경제에 종속시키면서 역사철학이 된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또 다른 한편에서 경제의 완전한 자율성을 상정하면서 정치를 소멸시키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R. Aron, 1965; C. Lefort, 1986).


4) 주권의 분할이라는 시각에서 이들이 종국적으로 국민국가의 소멸을 상정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다른 성격의 기준 속에서 행위하게 되는데 그것은 “주권적 매개”로서 아직까지는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이고 환상적인 국제적 수준의 사회적 규제를 중립화시킬 필요성을 갖는 것이다(B. Badie, 2000). 특히 ‘제3의 길’로 상징되는 영국과 독일의 개혁의 방향이 생산적 복지를 내세우며 국가부문의 후퇴와 사회 부문에 의한 복지의 강화를 주장한다면,(A. Giddens, 1998) 전통적으로 강한 국가주의적 경향을 지닌 프랑스의 개혁의 방향은 오히려 과거의 ‘소극적 복지국가(Etat passif-providence)’에서 ‘적극적 복지국가(Etat actif-providence)’로의 개혁을 주장한다. ‘사회적 연대’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축이 결합될 수 있는 적극적 역할이 국가자체에 요구되는 것이다(P. Rosanvallon, 1995; J. -P. Fitoussi et P. Rosanvallon, 1996).


5) 페리는 여기에서 엘리아스에 의존하여 문명화 과정이라는 개념을 정교화하고 있다. 즉 기사-궁정적 세계의 쿠르투아지(courtouise), 궁정 절대주의의 시빌리테(civilite), 그리고 국민국가 단계에서 문명(civilisation)이라는 단계를 거치는 문명화 과정은 국가의 사회발생사와 연결되어 근대적 개인들의 행위양태가 외부강제에서 내부적 자기강제로 변환되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다(N. Elias, 1939). 따라서 페리는 새로운 유럽적 시민의 형성이 공론장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그러한 문명화 과정을 거쳐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2002-01-1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2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