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문화운동의 비판적 고찰
최 도 은/연구원





지난 시기 동안 노동자 문화운동의 활동은 변혁운동의 발전과정을 이끌어 가는 한 주체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여 왔다. 특히 노동운동의 민주적 자주적 발전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최근의 각종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자 문화운동은 노동자 투쟁의 강력한 무기이며 이데올로기 교육, 선전 선동의 강력한 동력으로서 실천하여 왔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들어 노동운동의 주체이며 실천의 무기인 노동자 문화운동이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제자리 상태에 머물러 고전을 하고 있는 현상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라 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한국 노동자 문화운동의 성격을 살펴보고 역사적인 과정들을 짚어 보면서 현재의 지점들을 확인하고 극복 방안에 대한 과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노동자 문화운동의 성격
우리나라 노동자 문화운동의 성격은 80년대 초반 이미 학생운동 내부의 정파조직을 통해 단련된 대학 내 문예서클 출신 활동가들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변혁운동의 핵심을 노동자계급운동의 발전을 통해서 이뤄낸다는 각성 아래 직접 노동현장에 취업하는 형태와 산업중심지 및 주요도시에 ‘전문노동문화단체’를 만들어 직접 노동자 교육 및 강습활동을 통해 선진노동자를 발굴하여 노동운동의 양적 질적 발전을 이뤄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학생운동권 출신 진보적 문예활동가들의 조직적 출발에 의해서 발생․발전한 노동자 문화운동은 노동자대중에게 노동자 계급의식 전달의 창구였으며 작업장 내부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두 가지의 정치적 실천 내용을 갖고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노동자 문화운동의 성격을 결정짓는 커다란 물줄기는 태동기의 정파운동의 정치적 지향점에서 그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운동권 출신 진보적 문예활동가들의 조직적 노동현장 참여와 공장 및 지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일상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발굴된 선진노동자를 매개로 하여 제반의 현장 문제를 전체 노동자계급의 문제로 확장시켜 문화와 변혁운동의 유기적 통합의 의미를 설파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던 초기 활동의 강조점은 지금까지도 그 규정력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노동자 문화운동의 역사적 진행 상황
우리나라 노동자 문화운동의 주체는 두 가지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학생운동권 출신 전문 활동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문노동자문화단체’를 들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그 들에 의해 발굴 훈련되어 현장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현장문화일꾼’들이라 하겠다.

먼저 ‘전문단체’의 활동을 보면 앞서도 말했듯이 전국 곳곳에서 학생운동권 출신 진보적 문예활동가들이 변혁운동의 한 부분이 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진보적 활동과 지향들이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노동자계급 대중과 본격적으로 결합되고 확장되었다고 하겠다. 또한 이 시기가 우리나라 노동자문화운동 역사에서 가장 활발하게 학출 진보적 문예활동가들이 대거 노동현장으로의 이전한 시점이기도하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자리를 잡고 급격할 정도로 양적 확장을 이뤄내 변혁운동의 중심인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발전을 하는데 현장노동자 강습활동을 통해 조직적․인적으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기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제 노동자 문화운동의 발전은 노동운동의 대중적 발전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풍물․노래․미술․영상․연극․문학& #8228;춤 등의 다양한 문예 양식적 활동을 통해 현장노동자의 문화적 요구에 결합할 수 있었다. 이들 ‘전문단체’들은 현장노동자 문예일꾼들을 통한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자문화운동의 발전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키기 위한 활동에 역량을 집중 시켰다. 다양한 장르의 ‘현장문화패’ 결성과 교육사업 등은 현장 문화활동 실천방식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현장 문화강습사업은 민주노조 건설운동의 물적 영역의 한 부분이 되었고 노동자 대중의 경제․정치․사회적 지위 향상을 이뤄내는데 중심적 역할을 해냈다.

당시 전국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주요단체들의 실험들을 살펴보면서 당시 문화단체의 고민과 실천들을 살펴본다.

‘한국문화운동연구소(이후 한문연)’의 문화건설 노선은 자주, 민주, 통일에 민중주체 민족문화론, 공동체론을 문화이념으로 선언하고 신명론을 미학원리로 정하고 있었다. ‘한문연’의 특징은 ‘생활문화운동’이라는 문화 운동관을 80년대 초반에 도입하여 90년대 초반까지 현장에 접목시키려 하였다. ‘한문연’은 노동자 계급의 문화운동을 ‘생활문화운동’으로 규정하고 청바지, 합성세제, 커피, 콜라, 칼라 TV 등 지배체제에 복속시키는 수많은 생활용품들의 사용을 과감하게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문화에까지 침투하여 대중의 건강한 문화의식을 마비시키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해 현장 주위에 민중적인 생활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공동체 이론을 통해 진보적 문예 활동가들은 공동체 문화 속에서 자본주의 문화의 소비적․퇴폐적․비인간적 성격에 대항하는 참된 민중문화의 모습을 신명론에 바탕을 두어 공동체문화를 구성해 일과 놀이의 원초적 결합을 이뤄내 생산대중의 건강한 문화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한문연’의 활동은 90년대 들어 ‘전국노동자문화운동단체협의회’로 확대 전환하고 민중이 주체가 되는 자주, 민주, 통일 문화의 건설을 위해 건강한 노동자 문화의 연구․정리․창조․보급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한문연’의 생활문화론을 비판하면서 노동자 문화운동의 정치적 실천논쟁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이후 노문연)의 논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89년 9월 ‘민중문학운동연합’과 ‘문학예술연구회’가 노동자계급의 진리를 형상화하는 냉철한 현실주의 예술정신을 걸고 ‘노문연’을 창립했다. ‘노문연’은 강령을 통해 노동계급의 당파성에 확고하게 뿌리박은 과학적 문예운동의 발전을 위한 조직적 토대를 마련해 전체 변혁운동의 진전에 기여하려 했다. ‘노문연’의 작업은 과학적 노선 없이 올바른 실천이란 있을 수 없다며 문예운동의 과학화를 내걸고 노동자문예의 이론화와 정책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주되게는 기관지를 통해 노동계급의 당파성에 입각한 현실주의 노동자문화 예술정신을 공개적으로 밝혀 나갔다. 당시 ‘노문연’은 전국적 차원의 사상적 예술적 지도내용의 확보와 그에 따른 형식으로서의 ‘전국문화운동예술연합’ 건설의 길을 주장했다. 과학적 세계관과 당파성을 견지하는 전국문화활동가의 결집체를 통해 현재의 문예운동역량을 과학적으로 배치하여 전국적 계획을 갖고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문연’은 수공업적 경험주의적 작품쇄신과 전문성과 과학적 운동성의 동시적 확보를 절실한 과제로 정립하고 현 시기 변혁운동의 과제로부터 주어지는 문예운동의 임무를 설정하고 미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방법론은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지를 구체화하여 강령 수립을 최우선적 과제로 제출했다.

‘노문연’ ‘한문연’ 등은 노동운동의 발전과 계급투쟁전선의 연대강화를 위해 전국적 네트워크 구축에 착목하여 89년 서울지역에서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이하 서노문협)’를 공동 구성하였다. ‘서노문협’에서는 노동운동의 발전의 중심에서 조직되던 ‘전노협’ 건설에 맞춰 전문문화단체들간의 공동창작 작품 판굿 ‘꽃다지’를 공연에 올렸다. 그러나 각 단체들은 패권적 정치활동과 일상적 정보교류가 단절된 기형적 공동활동을 진행했다. 연대활동 과정에서의 사투는 소모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었고 논의의 활성화는 실종되면서 마침내 ‘노문연’과 ‘한문연’은 ‘서노문협’을 탈퇴하게 된다. 89년 가을 전국적 연대모색 실험의 실패는 87년 대투쟁 이후 수적으로 발전의 길을 걷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의 긍정적 성과들의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마무리하게 된다. 더욱이 90년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학출 진보적 문화예술활동가들에게 이념적 상실과 혼돈 속에서 급격히 현장으로부터 이탈해 가게 했다. 이러한 영향은 몇몇 전문단체 해산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여 지난 활동을 통해 선언했던 주장이 노동문예로 자리잡지 못하고 사라진 지식인들의 문화실험이 되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단체 활동가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서노문협’에 잔존한 서울지역의 노동단체들과 전국 각지의 ‘전문단체’들이다. 이들은 고양되고 있는 노동자투쟁의 현장에 시각을 집중하고 일상적인 파업문선지원과 공연활동 및 강습을 통해 노동자문화운동 강화에 복무하였다. 전국의 산업단지를 거점으로 선진노동자 발굴과 작업장 민주화를 정치적 실천내용으로 노동운동의 발전에 복무하겠다는 ‘전문단체’들에 의해서 ‘노동자문화’운동은 현장에 뿌리내려졌다. 특히 서울지역 전문단체의 협의체인 ‘서노문협’은 3～4년의 현장활동을 통해 각 단체의 활동가 중에서 현장노동자 조직사업에 방점을 두는 강습전문가들을 결집하여 93년에 ‘노동자문예교육협회(이후 노문교협)’로 조직전환을 하여 전노협 문화국 사업에서부터 민주노총의 문화국에 이르기까지 문화패 조직강화 사업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였다. 그러나 서울지역 단체들은 연행과 강습에 대한 노동자계급문예의 통일적 관점을 생산하지 못하고 ‘연행전문’을 강조하는 흐름과 강습에 있어서도 현장조직사업으로서의 관점은 퇴보하고 ‘기량전수’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흐름이 전개된다. ‘서노문협’의 뿌리는 ‘노문교협’ 활동을 넘어 99년 가을 노동문화의 생산과 유통 수용을 원활하게 연결하는 전국적 노동문화 네트워크 형성을 세우기 위해 현장활동가와 전문단체를 아우르는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이후 노문센터)’로 전환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서노문협’ 시절부터 ‘노문센터’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활동은 노동자문화의 양적 확대를 이뤄냈다는 긍정적 평가와는 다르게 이론과 정책생산에는 빈곤한 한계를 들어냈으며 전국적 질서의 노동계급 문화의 형성에도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전국 각지에서 고립분산 되어 활동하는 ‘전문단체’들의 경우도 독자적 이론 정립을 이뤄내지 못하고 개별적․관성적 실천에 빠져있었다. 지난 시기 단체활동을 점검하면서 도출 할 수 있는 지점은 변혁과 맞물리는 노동자문예의 전망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첫째, 전문단체는 내부의 재생산 구조가 막혀있었고 둘째, 역량재고를 위한 교육 및 훈련은 시도되지 않았으며 셋째, 노동자문화운동의 이념정립이 뒤쳐진데 비해 실천만이 앞서서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보적 노동자문예활동가 배출의 창구였던 대학사회의 이념적 혼돈과 진보적 문예서클의 존폐 위기 속에서 지난 몇 년간 젊은 활동가들의 노동문화단체 이전이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되어 소수의 활동가들에게 그 책임이 가중되었다.

전문노동자문화단체들의 정체성이 지체되어 있는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생산대중의 ‘현장노동자문화패’ 활동은 87에서 90년대까지 급격히 발전하였다. 87년 대투쟁을 거친 전국의 주요 대공장 노조에는 풍물․노래․미술․사진․문학 등의 소모임이 만들어 졌다. 현장으로 투신한 강사들에 의해 문화패들은 기량을 습득하였고, 강습을 통한 이론교육은 제반 사회 현상에 대한 계급의식에 영향을 끼쳤다. 노동대중의 문화패 참여는 교육․현장활동․연대활동 등의 총체적 결과로 문화패 출신 선진활동가 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 중 다수의 활동가가 현재까지 현장 민주주의의 핵심적 주체 역할을 하게된다. 87년 대투쟁을 이끈 또 다른 한 축인 중소규모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자 연대운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중소규모 공장의 문선대는 대부분 파업투쟁의 공간에서 구성하여 출발한다. 파업 공간의 긴박함과 장기적인 농성공간의 존재는 당시 중소공장 노동자의 일상적 연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일상적인 연대활동인 규찰대 형성․농성장 연대공연 등을 통해 동질성을 찾고 ‘지역노동자문화패연합’의 발전을 주도하였다. 서울․인천․부천․안양․부산․마창& #8228;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지역노동자문화패연합’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전국 각지의 투쟁의 영향으로 민주노조를 만들지 못한 사업장의 경우에도 노조민주화추진 세력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조직 강화 사업의 주요한 방법으로 문화패 결성을 중심에 두었다. 현재까지 ‘노동자문화패’들의 지속적인 현장활동과 문예 실천은 노동자문화운동이 노동운동 발전의 한 축이었음을 밝혀 주었다. 현재 ‘현장노동자문화활동가’들은 영상․문학․노래․몸짓․풍물 등에서 실질적인 노동자문화운동의 주체로 서 있다. 지금까지 ‘노동자 문화패운동’은 지역과 단위사업장 두 방향을 축으로 진행되어왔다. 단위사업장 문화패의 경우 10여 년의 활동을 자랑하는 고령 문화패들이 다수이다. 이들은 노동자문화운동의 성과적 측면을 자부심으로 안고있는 반면 현 시기 고민을 안고 있다. 첫째, 구성원들이 자본에 의해 일상적으로 감시 통제의 대상이 되어 일반조합원의 충원이 수월하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정규직 노동자의 고령화 현상에 맞는 문예양식의 개발이 한계를 안고 있다는 점과 셋째, 단위 작업장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업이 여러 가지 난관으로 잘 진행되지 않는 점 등 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현실에 의거해 지난해 활동양상을 돌아보면 단위사업장 문화패의 경우 앞에 나열한 문제 등이 종합되어 주춤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공간에서 형성되는 문화선동대의 역할은 여전히 주요한 현장노동자 문화운동의 중요한 활동으로 살아있음이 확인된다.

노동자 문화운동의 방향,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80년 이후 노동자 문화운동을 점검하면서 현재의 과제들을 도출해 보았다. 전문노동자문화단체는 노동자계급문예조직으로서 변혁적 문예이론을 정립하자. 전국적 관점의 계획적인 실천 지침을 세워 전체사회의 변혁과 맞물리는 문예적 실천을 하자.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을 위해 노동자 문화운동 단체들은 현장문화패 조직사업을 강화하자. 조직된 현장문화패는 노동자 문화운동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단위조직을 강화하자.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현 시기 노동자문화활동이 나가야할 바는 현장문화패를 강화하여 현장으로부터 주체를 형성하여 변화하는 노동운동진영 전체의 과제인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불안정노동에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이주노동자와의 연대 조직화 등에 노동자 문화운동 주체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실천이 노동자 문화운동의 임무이며 대안이라 하겠다. 역사의 진보는 실천과 함께 이론과 정책을 생산하는 주체를 어떻게 조직하고 현실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변화의 질을 갖는다. 자본 문예의 물리적 우세를 뛰어넘어 우리 시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유일한 노동자계급의 문예를 통해 노동전선을 실질적으로 강화시킬 노동자 문화활동을 창출해 가자.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