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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구조개편과 노동조합의 대응경과

현장에서 미래를  제74호
김동성


특/별/기/획

전력산업구조개편과 노동조합의 대응경과


김 동 성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해고노동자





1.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 전기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국전력은 70, 80년대 한국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으로 산업체에는 국제경쟁력을 높여주었고 물가안정에도 소임을 다하였다. 그러나 한전의 이러한 준정부적인 역할도 국내외 경제의 부침에 따라 변하기 시작하였다. 국내외 자본이 과잉경쟁으로 인하여 낮아진 이윤율을 보상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유연화 및 공기업 사유화를 들고 나오면서부터 정부는 공기업에 상업주의적 관리방식을 도입하고 매각가치를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93년 12월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위원회’는 한전을 경영진단 대상기관으로 선정하여 94년 7월~96년 6월 약 2년 간에 걸쳐 한전에 대해 경영진단을 실시하였다. 경영진단결과 한전은 ■전력의 급격한 수요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처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국민경제발전에 기여 ■전기요금이 세계적으로 저렴 ■향후 20년 간 고도성장 가능성 ■경제력집중 및 증권시장 부담되므로 상당기간 공기업체제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97년 12월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정부는 본격적인 전력산업구조개편 계획을 발표하고 한전매각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공기업 민영화 계획이 발표되고 ‘99년 12월 전력관련 특별법’이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회기에 처리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었다. 2000년 6월 22일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가 LG POWER에 매각되었고 2000년 12월 23일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 관한 법률이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로써 2001년 4월 2일 한전의 발전부문이 수․원자력, 남동, 서부, 동서, 남부, 중부발전이라는 6개 발전자회사로 분리․설립되고 이제 매각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01년 12월에 발표된 정부의 민영화 기본계획(안)에 의하면 1단계로 2002년 2개의 발전자회사를 매각하되 상반기에 1개의 발전자회사를 먼저 매각하고, 2단계로 나머지 3개의 발전자회사에 대해서는 늦어도 2005년에는 착수한다는 것이다.

한전 설립 당시 우리나라에는 아직 규모있는 사적자본이 발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한전은 대기업, 선도기업으로 출발하였다. 따라서 전력노동자들은 사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고용, 임금, 복지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권적인 투쟁에서 일정 비껴나 있었으며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이나 요구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한전에서 보수적이고 어용적인 노동조합의 지속을 용인하였다. 80~90년대를 통하여 사기업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민주화시키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꾸준히 향상시켜 나가자 상대적인 우위에 있었던 전력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사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정체 및 하락을 거듭하기 시작하였다. 90년부터 계속된 정부의 임금억제선 강요, 노조 전임자 축소, 조직개편을 통한 인원축소, 복지영역 축소 등 공기업의 이윤추구와 사유화를 위한 사전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면서 공기업노동자들도 구조조정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에 공기업노동자들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합의 민주화와 조합을 중심으로 한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온실 속에서 지내왔던 전력노조에도 정부의 지침강요와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내부적으로는 노조민주화의 필요성이 공세적으로 제기되었고 외부적으로는 구조조정 반대와 매각저지를 위해 투쟁에 나서도록 했다. 따라서 한전에서의 구조조정과 매각저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집행부의 성격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노조민주화 투쟁도 병행된다. 즉 집행부의 성격에 따라 대응방식과 목표가 상당히 달라지므로 집행부 교체시기별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시기별 회사의 공세와 노동조합의 대응
1) 제1기: 투쟁의 움직임(1990년~2000년 8월)
이 시기는 정부와 회사의 구조조정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면서 노동조합은 형식적으로 대응하거나 외면하였으며 구조조정의 철폐나 매각철회가 아닌 완화 내지는 유보를 목표로 하였다. 내용에 있어서도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하되 일방적으로 하지말고 조합과 협의하자는 것이고 매각도 국부유출 차원에서 해외매각만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것만 받아들인다면 사회 분위기상 정원감축이나 임금, 복지의 축소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90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임금억제선이 한전에서는 매년 노조에 의해 잘 수용되었다. 95년에는 최태일 집행부가 임금협상을 하면서 77명의 전임자를 23명으로 줄이는 데 합의하고 자신들의 정년까지 연장시켰다. 이로 인해 향후 구조조정에 대응할 조합의 인적기반이 현저히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65개 지부 중 단지 12명만이 전임을 하는 상황에서 회사의 협조가 없이는 공식적인 조합의 회의나 활동조차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부장들의 발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노동조합은 회사의 정원 및 인원감축에 대해 별반 대응 없이 당해왔다. 98~2001년 명예퇴직과 한시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떠난 사람만도 6,000여 명에 이른다. 정부의 지침으로 조직개편이라는 미명 하에 발전설비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원까지 계속 줄어왔으나 이에 대하여 노동조합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도 못하였다.
98년 7월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자 조합원들의 누적된 불만과 요구에 의해 노동조합은 해외매각 반대라는 기치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99년 1월 8일 “전력산업 분할 및 해외매각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조합원 대중들의 요구는 99년 3월 지부장 선거에서 발전지부를 중심으로 개혁민주세력을 대거 당선시키면서 전력산업구조개편 저지투쟁의 주요한 현장기반을 만들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전산직군 한전 KDN 강제파견 및 안양․부천복합발전소 매각 저지투쟁에도 본격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하였다. 이중간선제의 한계로 인해 99년 4월 권원표 집행부가 재선으로 당선되었으나 안양․부천복합발전소 매각 저지투쟁은 집행부에 의해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4월 24일 일부 발전지부는 부천에서 독자적인 집회로 투쟁의 포문을 열었고 99년 5월 발전지부의 개혁민주세력은 과거 친목모임 성격의 ‘발전지부협의회’를 해체하고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과 매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발전지부연대회의’로 명칭을 바꾸어 투쟁에 나서 6월 20일 안양에서 연대회의 주관으로 매각저지 집회를 주도하였다. 이와 같이 매각대상 지부와 발전지부연대회의의 본부집행부를 싸움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6월 25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전력산업구조개편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7월 1일 서울역에서 11,000여 명의 조합원이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매각 저지투쟁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이후 희생자 구제기금 조성, 파업찬반 투표 실시, 권역별 동시 집회, 전력관련 6개사 노조 전력공투위 구성, 국정감사 선도투쟁, 전력특별법 제정 반대 105만 국민청원서 국회 접수, 명동성당 천막농성 등 과거 경험하지 못한 투쟁들이 줄기차게 배치되어 마침내 99년 12월 18일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자동폐기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권원표 집행부는 회사의 압력에 굴복하여 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2월 28일 퇴직금 누진제 폐지 조합원 찬반투표를 강행 통과시킴으로서 직군간, 직장 선후배간 반목을 조성하여 어렵게 일으켜 세운 현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로 인해 조합내부는 또다시 노조민주화 투쟁으로 들어가 2000년 1월 7일 본부위원장 및 본부집행위원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이 제출되고, 4월 28일 집행부 퇴진과 직선집행부 구성을 위한 전국대의원대회가 열렸지만 성원미달로 무산되었다. 5월 30일 직선제 규약개정(안)이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쳐졌으나 부결되었다. 그러나 대의원 확보를 통한 본부집행부 불신임 활동은 줄기차기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안양․부천복합발전소 매각저지 투쟁은 방치되었고 결국 7,710억 원에 LG POWER로 매각되었다. 6월 30일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되었다. 불신임 정국에 빠져있던 노동조합은 7월 7일 상층조합간부간 내부합의를 통하여 권원표 위원장이 물러나고 전 집행부 인자들을 포용하여 대의원대회에서 오경호 연합집행부가 들어섰지만 내부마찰과 조합원들의 직선제 실시 요구는 지속되었다. 8월 10일 직선제 규약개정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4.8% 찬성으로 직선제가 통과되었고 8월 17일 대의원대회에서도 직선제와 위원장 잔여임기 수행으로 가결되었다. 8월 29일 본부위원장 선거에서 마침내 단독으로 출마한 오경호 집행부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행부 구성에 있어서는 과거 권원표 집행부 인자들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2) 제2기: 파업의 철회와 갈등(2000년 8월~2001년 7월)
조합원들의 기대를 안고 오경호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매각저지투쟁은 파업으로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9월 2일 15대 위원장 취임식 및 전력산업구조개악 저지투쟁 선포식이 본사에서 개최되고 9월 5일 전 지부에 비상대책체제 전환 및 투쟁지침이 시달되었으며 9월 14일에는 비대위 투쟁 일정이 확정되었다. 10월 8일 공공부문 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는 새 집행부에 대한 기대로 9,000여명의 조합원이 대거 참여하였다.
또한 11월 17일 파업찬반투표에서는 89.2%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되어 조합원들의 파업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러나 11월 23일 제1차 중노위 조정회의에서는 집행부가 파업을 연기하면서 11월 29일까지 중노위의 조정연기를 받아들였고 11월 29일 제2차 중노위 조정회의에서도 파업이 연기되면서 12월 3일까지 조정이 2번째 연기되었다. 2번에 걸친 파업연기로 집행부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으며 마침내 조합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12월 3일 오경호 집행부는 파업투쟁을 철회하고 중노위 최종조정안에 서명함으로써 전력관련 특별법 저지투쟁은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되었다.

노동조합의 파업철회로 12월 23일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매각의 법적인 발판이 마련되었다. 한편 파업철회에 대한 조합원의 분노는 집행부 사퇴를 요구하였으나 오경호 집행부는 자신들의 자리를 위하여 불신임 서명운동으로 파업철회의 책임을 묻는 조합간부 및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여 12월 26일 자신을 불신임하는 조합간부와 조합원 13명을 부당 전출시켰다. 또한 집행부는 불신임 서명운동과 발전부문 분리에 따른 노동조합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12월 22일 발전지부 단체교섭단을 구성하고 전적에 따른 협상을 하도록 교섭권을 위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2월 13일 전적관련 의향조사를 실시하면서 발전지부 조합원들에 대한 전적을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7차에 걸친 발전지부 단체교섭단의 교섭결과 3월 20일 잠정합의안이 마련되어 3월 26일 조합원 총회에 부쳤으나 58%의 반대로 부결되어 조합원들의 분노와 불신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3월 27일 발전조합원들은 자신을 지켜줄 조합단위가 더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거의 모두가 전적동의서를 회사에 제출하였다.

결국 예정대로 4월 2일 한전의 발전부문은 6개 발전자회사로 분리, 설립되었다. 또한 회사와 집행부는 발전부문 분사를 시점으로 전력노조를 탈퇴하여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특별지부를 강요하면서 노조설립 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조합간부에 대한 해고, 전출 등 의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꾸준한 여론작업과 구체적인 노조설립활동으로 인하여 4월 2일 분사와 더불어 서부발전노조가 설립되었고 곧이어 남동발전노조도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발전지부연대회의 내부에서도 기업별노조와 발전단일노조에 대한 찬반토론이 오가면서 조합원 투표를 실시하여 결정하자는 의견으로 수렴이 되어 마침내 조합원 투표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투표결과 전력노조 탈퇴가 압도적으로 표결되고 발전단일노조와 발전자회사노조로 팽팽하게 대립되자 연대회의에서는 수원자력과 화력발전단일노조 정리되었다. 7월 26일 화력발전단일노조 위원장 선거에서는 그 동안 한전노민추 활동을 해온 이호동 집행부가 당선되어 매각저지투쟁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3) 제3기: 패배를 딛고 또다시 투쟁으로(2001년 7월~ )
이호동 집행부 출범이후 8월 10일 발전노조가 76.1%의 찬성으로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회사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단협 승계, 전임자 및 조합비 공제, 사무실 제공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꾸준한 요구로 10월 8일 노사합의로 단체협약 체결시까지 6명의 산별집행부 실장은 반전임, 위수사를 비롯한 본부장 8명은 전임, 조합비 1% 공제, 사무실 제공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10월 15일 임금협상과 단체협약 요구안을 제출하고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요구안 제출 당시 임금과 단체협약 그리고 매각저지투쟁을 어떻게 연결해 나갈 것인가와 각 사안에 대한 투쟁의 수위를 정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자 임금협상은 단협, 매각저지투쟁과 분리된 채 회사의 협상시한에 쫓겨 정부와 회사안을 그대로 조합원 투표에 부쳐 12월 26일 72.03%의 찬성으로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였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조합원의 총의를 거쳤으나 내용적으로는 과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조합원들이 임금교섭 결과와 경과에 불만 있음에도 단협과 매각저지투쟁을 앞두고 있는 산별집행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임금협상에서 나타난 명확한 기조의 설정와 의사결정의 문제들이 제때에 결정되어 실행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단협 및 매각저지투쟁에서 과오를 되풀이 할 것이다. 조합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단협쟁취는 곧 매각저지투쟁이다. 따라서 단협과 매각저지투쟁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발전노동자들의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1월 27일 무주에서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2월 말 3월 초 파업이 확정되었다. 착실한 파업준비와 연대투쟁으로 발전노동자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생존권도 지켜야 할 것이다.


3. 맺는말
각 발전자회사는 매각을 대비하여 구조조정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남동발전의 정원감축 계획, 동서발전의 경정비 실시 계획, 서부발전의 조직개편 및 팀제 운영계획, 남부발전의 노동조합 무력화를 위한 주니어보드(청년중역회) 등 각 발전자회사별로 구조조정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 1개의 발전자회사를 매각하고 2005년 이후에 나머지 3개 발전자회사를 매각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변함이 없는 상태다. 지난 1월 16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열린 발전자회사 매각을 위한 공청회가 노동조합에 의해 무산되기는 하였으나 계획자체가 철회될 기미는 없다. 앞으로 계속될 구조조정과 매각에 대응하여 민영화 관련법안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철도, 가스 등 사업장과 노동법개악에 반대하고 주5일 근무쟁취를 위하여 싸우고 있는 모든 노동세력과 연대하여 싸우지 않으면 우리의 생존권을 박탈 할 구조조정과 매각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요구한 단협의 내용도 이러한 부분을 담고있는 이상 단협쟁취를 통하여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고 향후 회사의 구조조정에 대응할 노동조합을 튼튼히 세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국내자본과 해외자본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의 생존권과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어떠한 형태의 매각과 구조조정도 저지해야 한다. (2002.1.30.) 한/노/정/연

2002-02-1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2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