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자본주의의 현주소와 노동자 상태 |
현장에서 미래를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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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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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세 ․ 초 ․ 점
한국자본주의의 현주소와 노동자 상태
장 상 환(연구위원, 경상대 교수, 경제학)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는 직장이 안정되고 적절한 소득이 있어서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큰
고통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가르치며, 필요한 곳에 편리하고
저렴한 값으로 다닐 수 있고, 아플 때 큰 부담 없이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연로했을 때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즉 개인적 소비만이 아니라 사회적 소비가
적절한 수준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자본주의 하에서 다수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자본주의는 해방 후 농지개혁을 통한 전근대적 유제의
청산과 자녀교육 확대로 우수한 노동력이 확보된 데다가
60-70년대 세계자본주의의 유례없는 대호황이라는 조건과
수출지향 공업화정책이 맞아 떨어지면서 단기간에 고도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은 군부독재와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억압의 연속이었고, 고도성장을 지탱한 것은 노동자,
농민을 필두로 한 근로민중의 희생이었다. 그리고 정치적 억압
아래서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갖가지 모순이 심화되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자본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세계 제일가는
부끄러운 자랑거리를 안게 되었고, 이것은 노동자들의 삶을
폐허화시켰다. 재벌기업의 노동자들 처지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런데도 재벌산하 대기업의
노동조합은 아주 투쟁적이고 이른바 실리주의 노선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이는 과욕 때문일까. 아니다. 그들의 삶이
너무나 힘겹고, 부닥치는 모순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들이 세계 제일의 모순이고 이 모순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가.
첫째, 토지․주택문제이다.
1991년 말 현재 한국의 땅값은 1,821조 원으로 국민총생산의
8.5배에 달해 땅값이 높기로 유명한 일본의 3.5배보다 훨씬
높았다. 몇 년 동안 땅값이 안정된 후인 현재에도 지가는 GNP의
6.2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토지문제가 이렇게 심화된
원인은 토지소유자의 힘에 비해 토지주택 이용자의 권리가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요구에 대항하여 적절한
임대료만 계속 지불하면 쫒겨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되어 있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39세이고 56%는 자기 집이 없는데 올 해에는 전세값이
크게 상승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일대 전세값이 크게 올라
소형아파트의 경우는 매매가에 대비한 전세가의 비율이
70%수준까지 육박헀다. 전례로 볼 때 전세값이 상승하면
매매가도 곧 뒤따라 상승하였다.
지가상승은 노동자들에게 주거비용 상승과 물가상승의 부담을
안겨준다. 6공화국 들어와 치솟은 물가상승의 원인도 임금인상이
아니라 임금인상을 불가피하게 한 부동산 가격 앙등, 그에 따른
주택가격과 전세금 상승이다. 도시근로자 소비지출 가운데
주거비 비중은 도시가계년보에 의하면 5% 정도로 낮다. 이것은
월세나 주택수리비만 계산한 것이고, 전세평가액이나
자가평가액을 합하면 대체로 주거비의 23%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노협이나 노총에서 계산한 1991년도 이론생계비는
3인 가족의 주거비를 각각 생계비의 27.6%, 25.7%로 잡고 있다.
외국 가구의 주거비가 대체로 소비지출의 7~13%인 것에 비하면
대단히 무거운 부담이다. 주거비에 광열비를 포함했을 경우에는
32.2%, 30.0%가 된다. 노동자 평균연령이 39세이니까, 두 자녀를
둔 경우, 방 2개 짜리 집에서 3개 짜리로 옮겨가야 하는데
집값이 비싸서 감당하기 어렵다.
둘째,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다.
1995년 4월 현재 30대 재벌의 계열기업수는 623개로 94년의
616개보다 늘어났고, 30대 계열기업의 내부지분율은 43.3%이다.
1994년 30대 재벌의 총매출액은 248조 원인데 그 중에서 10대
재벌의 매출액은 204조 원으로 82%(93년 66%)를 차지했고, 그
가운데서도 2대 재벌인 삼성은 51조 5천억 원, 현대는 47조 원의
매출액을 올려서 30대 재벌 전체 매출액의 40%(93년 38.9%)를
차지했다. 경제력이 더욱 집중되었으며 삼성재벌과 현대재벌이
국민경제를 거의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들은
뇌물을 바치고 국가로부터 막대한 특혜를 받아서 성장했다. 30대
재벌은 노태우 대통령이 재임하던 6공화국 기간인 88년 4월부터
93년 4월 동안 자산액이 64조 6천 7백억원에서 178조
3천6백6십억 원으로 무려 3배나 늘어났다.
재벌은 제조업 뿐만 아니라 은행, 증권회사, 단자회사, 보험회사
등 금융산업까지 장악하고 금융여신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특혜로 성립한 재벌의 이윤획득의 원천도 생산과정에서 저임금,
장시간노동, 위험노동 등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에 의한 것이
우위를 이루고 유통과정과 금융적 특혜 등 경제외적 성격을
띤다. 재벌은 뇌물과 정치자금 제공, 정치인과 재벌가문 사이의
혼인 등을 통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재벌은
언론기관, 연구소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여론과 이데올로기를
지배하고 있다.
이 재벌체제는 다수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절벽이다. 전체
노동자 1,200만 명 가운데 중소기업인 5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체 노동자 수는 약 400만 명, 4인 이하 노동자들의 숫자는
약 6백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고용이 극히
불안정하다. 중소기업의 경영 불안정, 잦은 도산은 납품대금의
6개월 어음 발행, 친인척 회사제품 우선구매 등 재벌의 지배와
횡포 때문이다.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 확대로 재벌은 우수인력을
독점하고 중소기업은 경영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4인 이하 사업체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여 근로자로서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셋째, 저임금, 임금격차, 장시간노동, 산업재해, 노동운동탄압
등 노동문제 역시 세계적으로 열악한 수준이다.
한국의 임금이 가까운 나라 대만등과 비교해도 너무 올라서
기업하기가 어렵고 한국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비난이
횡행하고 있지만 1970년과 비교하여 1990년에 실질임금은 4배
정도 상승했는데, 노동생산성 지수는 7배나 올랐다. 80년대
후반의 높은 임금상승은 80년대 전반기 전두환정권 아래서
노동자들이 기초적인 권리도 박탈당한 채 실질임금이 저하된
상태에 있다가 87년 6월 이후의 노동운동을 통해 이를 단기간
내에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의 조사에 의하면 95년
현재 노동자 임금은 3.2인 가구 표준생계비의 6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직종별, 학력별, 성별 임금격차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크다. 통계에 의하면 최근 학력별 임금격차가 축소되어서 고졸
노동자에 비교한 대졸자의 보수는 1980년에는 2배가 넘었으나
1994년에는 1.6배로 줄어들었다. 직종별로도 마찬가지 추세이다.
그러나 보수, 승진의 유리함으로 인해 대졸관리직의 생애임금이
고졸자들의 2~3배에 달하는 것 외에도 생산직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위험이 높고, 정년이 짧으며, 사회적 위신이 낮다.
더구나 대졸 관리직은 부정 부패에 의한 음성적 수입을 얻을
기회가 많다.
노동시간을 보면 1994년 현재 생산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51.1시간으로 사무직의 45.7시간보다 무려 6시간이나 길다.
산업재해를 보면 1994년에 8만 5,948명의 재해자가 발생하여
2,678명이 사망하고 3만여명이 장애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5인 미만의
영세규모 사업장의 노동자가 당하는 산업재해는 이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자본측이 무재해운동을 벌이면서 사망 등
중대재해는 은폐하기 어렵지만 그 외 재해의 경우는 회사에서
공상처리 등을 통하여 은폐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업재해율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물론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의 3~4배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노동자 1,000명 당
노동손실일수는 4,371일이고, 일본은 459일, 대만은 184일에
불과하다. 대만의 산업재해는 1990년에 6,600명의 신체장애자,
사망자 141명이 발생했을 뿐이었다. 전체 노동자 수를 감안했을
때, 이것은 신체장애자 기준으로 한국의 약 1/3 수준, 사망자
기준으로는 1/10에 불과하다.
이러한 임금격차와 산업재해가 존재하는데 누가 생산직에
근무하려고 할 것인가? 생산직 취업 기피로 중소기업 생산직
노동자 부족율은 20% 이상에 달하고 제조업체 인력난 심화로
입는 경제적 손실은 엄청나다. 경영자총협회의 추계에 따르면
1993년에 노동력 부족으로 생긴 생산차질액은 모두 16~17조
원으로 전산업부문 국내총생산(GDP)의 7%에 해당한다. 이는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 4조4천억 원의 4배, 노사분규로
인한 손실액 2조5천억 원의 6배에 이르는 규모이다. 이것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싸워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없으니까 소극적 저항방법인 탈출로 대항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최근 자본측의 노동지배가 더욱 심화되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해 5월 “한국통신 노동자들이 국가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부정했다. 김대중씨까지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노동쟁의로
혼란할 경우 국민들이 보수화돼 여당에게 표를 줄 수 있다”는
논리로 노동자투쟁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났는데 불법파업이란 명목으로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노동법을 부정하고
민법으로 돌아가는 반역사적 행태이다. 또 근로자 파견법을
제정하여 노동자의 교섭능력을 약화시키려는 기도가 거세지고
있으며, 지난 해 10월 관련부처 차관회의에서는
생리휴가․산전휴가를 무급화하려는 근로기준법 개악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특히 최근 대법원은 무노동 무임금 판결을
하기까지 했다.
또한 최근 외국인 노동자문제가 표면화되었다. 지난해 1월에
네팔인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인권유린에 항의하여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했고, 8월에는 경남 김해 소재 신발
제조업체인 태광실업에서 베트남인 산업연수생 38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집단적으로 작업을 거부하였다. 9월에는
마닐라 주재 한국대사관 앞에서 한국에서 일하다 장애인이 된
필리핀인들이 한국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현재 합법, 불법을 포함하여 10만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가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일련의 사건을 통해
한국기업주들의 비인간적인 처사가 전세계에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세계 제일가는 관료들의 부정부패이다.
지난 해 10월 민주당 박계동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노태우
전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은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재임기간 5년동안 약 5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3천여억 원을 사용하고 1천8백여억 원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자금 조성방법으로는 정치헌금 이외에
수서지구 특혜, 전투기 도입기종 선정, 이동통신사업자 선정,
골프장 허가 등에서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 대재벌은 200~300억 원, 중규모 재벌은 100억 원대,
소규모 재벌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쳤다. 30개
재벌로부터 조성한 뇌물의 총액은 2천3백59억 원에 달한다.
공사대금이나 발주대금의 3~5%를 뇌물로 받쳤다고 하며,
국제적으로 무기도입에는 도입가격의 3~5%에 이르는 공식적
커미션을 포함해 10~20%가 로비자금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9천5백억 원을 부정축재하여
1천6백억 원을 남겼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권력과 재벌간의 유착에 의한
총체적 부정부패의 일환으로 드러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의
부정부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부정부패는 지하경제의 한
부분을 이룬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최광 교수에 의하면
1985년경 GNP의 12%에서 5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영수
교수에 의하면 1988년의 경우 GNP의 12.9%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조세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1993년 현재 지하경제가
국민총생산의 22%, 5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정부패의 크기만을 대략 계산해보면 정부재정 가운데 사업비
지출의 10~20%는 다양한 경로의 음성수입으로 공무원들에게
들어가며, 이것은 전체 공무원 인건비의 1/4~1/2에 달하는
규모로 추정된다. 이권 부서일수록, 고위직일수록 음성수입을 더
많이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국고의 사금고화’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여기에다가 탈세에 따른 세무공무원의
부패와 음성수입, 민간건설공사에 대한 감독과정에서
뇌물주고받기, 소방, 건설, 경찰공무원에 대한 떡값 등도 모두
합하면 거액에 달할 것이다. 민간기업에 비하여 공무원의 봉급이
적음에도 공무원 지망자가 엄청나게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부패의 규모는 제조업 매출액 경상이익율이
통상 2~4%에 불과하고 매출액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13%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부패 때문에 저임금이
강요되는 것으로 ‘재주는 노동자가 넘고 돈은 부패
관료정치인이 먹는’ 전형적인 관료자본주의체제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농업문제이다.
기후조건이 농사짓기에 적합하여 인구가 밀집하여 살아왔고,
60년대까지 농산물을 90% 이상 자급했던 우리나라가 현재는
농산물수입액이 100억 달러에 달하고, 미국의 식량수출 대상국
가운데 일본, 중국 다음으로 3~4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해
쌀 생산량은 3천2백60만 섬으로 94년에 비해 무려 2백53만
섬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쌀의 추정재고량은 금년
10월에는 2백78만 섬으로 세계식량농업기구의 권장 재고량 6백만
섬의 절반에서 밑돈다. 이에 따라 산지 쌀값이 전례없이
수매가를 웃돌고 출하량도 줄어드는 등 출하기 벽두부터 파동
조짐을 보였다. 현재 산지 쌀값은 80kg들이 한 가마당 14만4천
원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1등품 기준 정부수매가 13만2천8백
원을 훨씬 웃도는 실정이다. 여기에다가 현재 국제적
식량수급사정이 대단히 악화되어 있다. 세계곡물 기말 재고량은
1992/93년의 3억7600만 톤에서 1995/96년에는 2억6200만 톤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이월 재고량은 1996~97년도 예상소비량의
겨우 14%에 불과하다. 이는 식량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수준보다 3~4%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곡물수출가격은
지난해 5월 이후 급등하여 1995년 7월 현재 곡물수출가격도
1년전에 비해 밀은 40%, 옥수수는 27%, 태국산 쌀은 톤당
244달러에서 362달러로 50%나 상승했다. 신농정은 외국농산물
수입확대와 식량작물 생산감소와 과수, 채소의 과잉생산을
부추켰다. 농업소외정책으로 농민들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은
결과 이제 우리의 밥상마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여섯째, 교육문제이다.
대학생 수는 인구 1만명당 400명 선으로 선진국들의 두배에
달한다. 대학생이 많다고 과학기술인력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대학의 교육여건은 대단히 열악해서 교수 1인당 학생수는
34.7명이나 되어 중․고등학교의 교사 1인당 학생수
23.7명보다 훨씬 많다. 이것은 대만의 13.5명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국제적인 평균 수준과 비교해도 2~3배나 많다. 대학생
과잉으로 대졸자의 절반 정도는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하고
하향취업을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대학졸업자들의 취직이 잘
되지 않는데도 우리 부모들은 기를 쓰고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것일까. 대학을 나와야만 공무원이나 대기업 관리직
사원이 되어서 안정된 갖가지 음성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대학에 넣기 위하여 모든 국민들은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생산직 근로자까지도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학원비 부담
때문에 부인이 저임금을 감수하면서 파출부로, 상점 점원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세계화 = 영어능력
제고’ 라는 식으로 잘못된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영어
과외열풍이 대부분의 가정을 휩쓸었다. 교육개발원의 추정에
의하면 94년 현재 사교육비 부담은 17조5천 원에 달해 공교육비
16조7천억 원보다 많다. 가장이 40세 전후로 두 세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월급의 20~30%를 사교육비로 쓴다.
이렇게 사교육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초중등교육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학급당 50명의 과밀학급,
교사의 낮은 대우, 과도한 수업시간 수, 교사와 학부모의 주체적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는 교육관료와 사학의 전횡 등으로
아이들은 전혀 개별적이고 인격적인 교육과 지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김영삼정부가 발표한 교육개혁도 학급당 학생수의
획기적 축소 등 본질적인 내용이 빠져 있고, 경쟁력강화에
초점을 맞춰서 교육의 본령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곱째, 세계 최고의 지역간 불균형이다.
서울과 지방 간, 도시와 농촌 간 격차 심화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이 모여사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외에 거주하면서 도시로 출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도시과밀을 막을 수 있고,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 교원, 농협직원 등은 대부분 도시에 살면서 농촌으로
출근한다. 이러니 농촌은 지역사회가 유지되지 않게 되고
농촌지역 학교는 속속 폐교되고 있다.
대도시 인구집중은 지역불균형과 그에 따른 비효율을 낳는다.
토지가격이 크게 오르고,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니 교통난으로 산업의 혈맥이 막히는 정도에 이르렀다.
대도시지역에서 인구 1명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사회유지
관리비용은 군지역의 7배에 달한다.
여덟째, 세계 최고의 남녀성비 불균형이다.
여아 100명당 남아출생수를 나타내는 출생성비가 최근 들어 계속
높아져 85년 109.5에서 94년에는 115.5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출생성비는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경북이
124.3, 대구가 121.3으로 가장 높은 반면 전북이 110으로 가장
낮다. 이는 경상북도 사람들이 군부독재에 오염되어 훨씬 더
심각한 비정상적 정신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들을
낳아야만 출세를 시켜서 권력을 휘두르는 데서 얻는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 아닐까. 성비불균형 심화로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동들이 결혼할 때인 2010년경부터는 결혼을
하지 못하는 청년이 크게 늘어날 것이고, 중독, 자살, 각종 범죄
등 사회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그것은 상상하기도 끔직하며 그
부작용은 10년이나 지속될 것이다. 태아 성감별과 여아 낙태가
이렇게 광범해진 것은 우리 사회가 남녀차별이 얼마나 심하고,
돈을 위해서 인간을 어떻게 학대하고 있는 지를 잘 말해준다.
아홉째, 세계적인 수준의 교통사고와 안전사고이다.
94년에 교통사고 부상자 35만8백92명, 사망자 1만87명이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이 년간 6조4천 원으로 GNP의 2.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사고 사망율은 일본의 8.5배에
달한다. 교통사고 후유 장애자는 한 해 평균 2만5천명 정도
발생하는데 그들의 절반 가량은 다니던 직장을 잃었고, 이혼 한
사람이 12%, 자살기도한 사람이 41%나 된다. 심하게 말한다면
교통사고 장애자들은 완전히 무용지물,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차와 사람 간의 사고가 사망사고 건수의
50%를 차지하는데 이는 영업용차량들이 영업시간에 쫒겨
피로와 과속으로 운행하다가 사고를 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사람보다 이익을 더 중시하는 천민자본주의의 결과이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와 사고로 인한 사망, 만성간질환, 간암,
폐암으로 인한 중년기 남성들의 돌연사가 많아졌다. 이것도
과중한 노동과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말부터 올해에 들어와 성수대교 붕괴(94.10.21.),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94.12.7.), 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95.4.28.), 삼풍백화점 붕괴(95.6.29.) 등 대형사고가
잇달았다. 이런 대형사고의 빈발은 기업윤리 부재와 부정부패의
만연에 따른 부실공사의 필연적 결과이다. 이것 역시 돈에 눌려
인간의 목숨이 형편없이 경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천민자본주의적 모순의 심화는 자본축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미국, 일본, 대만 등 주요경쟁국보다 금리 2~3배,
노동비용 상승률 1.8~6배, 공장용지 가격 1.5~8.4배, 물류비용
1.3~1.8배가 높아 총체적인 산업경쟁력이 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임상승이 빠른 것도 물론 전세값 상승, 물가 상승,
학원비 상승 등 생활비 상승 때문이다. 매출액 대비 금융비용은
한국이 5.6%인 반면 일본 1.8%, 대만 2.2%이며, 차입금
평균이자율은 한국 11.4%, 일본 4.8%, 대만 7.2%이다.
평방미터당 공장용지 가격은 한국(인천남동공단) 176~200달러,
일본(센다이) 121~132달러, 대만(민웅)52~118달러,
미국(일리노이) 21~62달러 등으로 한국이 최고 8.4배나
비싸다(매일경제신문 95.11.9).
이상에서 살펴본 것을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한국자본주의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자본과 권력의 일방적 지배로 인해
자본주의적 모순이 극단적인 수준으로 심화되어 다수 근로대중의
삶을 피폐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본의 정상적 재생산을
위협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땅가진 자, 돈가진
자들의 횡포가 자신의 발밑을 파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5.18특별법이 제정된 1995년은 군부 35년 지배 청산의 획기적
전기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힘은 광주시민과 학생을 선두로 한
민주국민들의 줄기찬 투쟁이었다. 1996년부터는 자본의 지배와
횡포로부터 인간의 존엄성, 특히 일하며 살아가는 다수 국민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 핵심과제로 등장했다. 그것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주체는 노동자들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현재
기존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임과 동시에 지난해 11월 11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적 단결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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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1-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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