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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정당운동 이념적 기조와 성격에 대한 역사적 고찰

현장에서 미래를  제75호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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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민주의는 우리가 지향할 바인가?



김영수
한국의 진보정당운동
: 이념적 기조와 성격에 대한 역사적 고찰
최경희
대중투쟁의 정치적 진전으로써 선거의 의미를 세우자!




발전노조의 파업이 계속 진행중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타협을 통한 사회의 개량을 전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가 하나의 대안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와 지자체 선거가 놓여있으며 진보진영 내 몇몇 정치세력은 합법적인 선거공간을 통한 정치에의 개입을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고 바쁜 행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 경선 및 보수 정치권 내의 이합집산이 마치 정치권의 환골탈태로 비춰지는 지금 의회민주주의, 그리고 사민주의에 대한 재인식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에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3월호는 “사민주의는 우리가 지향할 바인가?”라는 기획을 통해 한국에서의 사민주의의 역사와 양대 선거를 앞둔 진보진영의 과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한국의 진보정당운동*
이념적 기조와 성격에 대한 역사적 고찰
김 영 수/연구위원


* 이 글은 ꡔ고대문화ꡕ(2001년 12월)에 게재했던 것을 대폭 수정, 보완한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당운동
특집: 사민주의는 우리가 지향할 바인가?
1. 들어가는 말
최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문제는 국내외 정치의 주요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생존권을 비롯한 다양한 권리를 유지하려는 노동자계급과 산업구조의 구조조정으로 자본축적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는 자본가계급간의 대립․갈등이 국면별․사안별 차원을 넘어 전반적인 사회체제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진보적 정치세력은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서 ‘정치의 땅’을 따먹기 위한 싸움을 새롭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진보적인 정당을 결성하고, 그 정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권력을 수립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2002년 현재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대표적인 경우이다.그런데 한국사회의 역사를 들추어보면, 진보정당운동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 1920년대의 조선공산당을 시작으로 하여 가장 최근의 사회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운동의 단절과 복원이라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떤 정당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고, 또 어떤 정당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문제는 역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진보정당들이 정말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시키려 했던 ‘진보적 주체’였는가 아니면 자본주의체제를 강화․개혁시키려 했던 ‘진보 속의 보수적 주체’였는가를 규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진보정당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현실의 많은 주체들이 전자의 역사를 새롭게 계승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운동이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제 하에 후자의 역사를 계승하려는 경향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운동은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여 진보정치를 역사와 현실의 ‘뒤안길 쓰레기’로 내 던지는 것이고, 몰계급적이고 탈계급적인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운동은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면서 진보정치를 현실과 미래의 ‘희망의 사닥다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하게 존재했던 진보정당의 이념적 기조와 성격을 규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대부분 정강정책으로 표출되는 ‘말의 정치와 글의 정치’는 진보적인데, 구체적인 정치활동으로 표출되는 ‘행동의 정치’에 있어서는 보수적일 수 있거나,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정치적 아류세력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또한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대변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경우가 있었다. 즉 권력을 위임받고자 할 때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권력을 위임받고 나서는 목에 힘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외에도 ‘말의 정치’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성명서 정치’와 득표획득만을 추구하는 ‘의회주의적 선거정치’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계급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정치적․사회적으로 계급적 분화가 심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을 아로새길 필요가 있다. 철갑으로 무장한 보수정치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자 현실에 존재하는 사실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진보세력의 도전이 강할수록 보수세력의 결집도 강하게 이루어졌고, 자본주의체제의 변혁도 결코 쉽지 않다. 자본주의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진보정당운동의 도전도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고 보수세력의 대응도 고도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계급대립이 격화될 수도 있고 완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진보정치의 주체들은 노동자 계급과 민중이 보수정치의 땅을 보다 많이 소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진보정당운동의 패러다임과 역량을 새롭게 구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정당운동의 이념적 기조와 성격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역사의 화석처럼 존재하는 진보정당운동의 역사가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의 현실로 부활하는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2. 진보정당운동의 다양한 이념적 기조와 성격
정치권력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간의 대립․갈등은 과거나 현실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가 유지되는 한 지속될 미래의 문제이다. 그것을 표출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했다.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적 주체들의 다양성, 즉 이념, 투쟁방식, 목표, 그리고 정치운동의 조건에 있어서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는 정치적 주체들은 다양한 정치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노동자 정치운동은 각 국가별, 각 시대별, 각 정권별, 그리고 각 투쟁국면별 조건에 따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진보정당은 다양한 조건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이들 주체들은 일정한 투쟁시기와 투쟁국면에서 전략․전술적 목표, 조직형태, 정치활동의 핵심적 내용과 방식, 그리고 제도권 정당에 대한 대응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정치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결과로 계급갈등을 완화시키거나 증폭시켰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체제에 속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대부분의 진보정당운동이 단편적으로 이해되거나 매우 협소한 영역으로 제한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정당의 결성이 곧 정치적 계급주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거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역량을 선거에서의 득표역량이나 의회에서의 의석확보역량으로 간주하곤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에 기반하는 정치적 주체와 그러한 주체들의 정치활동만을 혹은 제도적이고 합법적인 의회공간을 배제하는 주체들의 정치활동만을 진보적인 정치운동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정당의 성격은 정당의 이름이 무엇이냐, 합법적이냐 비합법적이냐, 혹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조직과 긴밀한 관계냐 소원한 관계냐 등의 기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양한 판단기준들은 계급적 힘의 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유동적 변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 자체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 중에서 최소한 네 가지 정도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정강정책, 당원들의 출신배경, 구체적인 정치활동의 내용, 그리고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세력과의 상호관계이다.
각 정당의 주체들은 이념과 노선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정치활동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그 성격을 표출한다. 역사 속에 화석화되어 있는 정당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당도 그 성격을 드러낸다. 진보정당의 성격도 마찬가지이다.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수많은 정당들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각 정당의 진보적 성격을 규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아무리 진보정당운동을 표방한다 할지라도, 그 운동의 이념과 노선에 따라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강화할 수도 있고 약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약화시키기 위한 운동도 개혁적인 노선을 취할 수도 있고 변혁적인 노선을 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체제에서 전개되는 진보정당운동의 성격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① 체제강화적 운동 ② 체제개혁적 운동 ③ 체제변혁적 운동이다. 즉 자본주의체제나 의회주의적 권력대리체제의 강화에 기여하는 정당운동이 존재하기도 하고, 자본주의체제의 혁명적 변혁과 의회주의적 권력대리체제의 폐지에 기여하는 정당운동이 존재하기도 한다. 전자는 체제강화적 정당운동이고 후자는 체제변혁적 정당운동이다.
진보정당을 결성하는 주체들은 정당의 노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체제를 강화하는 노선과 자본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노선으로 구분하고, 후자의 노선에 해당하는 것을 체제변혁적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이념과 노선을 범좌파의 범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런데 각각의 정당운동 주체들이 정치활동의 목표와 결과를 이분법적으로 단순화시켜 표출하는 경우가 드물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고, 이념적 패러다임의 폭도 너무나 넓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주의체제의 혁명적 변혁이 이니라 개혁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정당운동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체제개혁적 운동은 체제강화에 기여하는 효과나 체제변혁에 기여하는 효과를 은폐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진보정당운동은 다양한 정치활동의 누적된 효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비록 체제변혁적인 노선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 정당의 다양한 정치활동을 체제변혁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의회주의적인 선거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대리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당이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정당을 체제변혁적인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 체제강화적인 정당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말의 정치, 글의 정치, 행동의 정치’에 있어서는 진보를 표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초반에 사회민주당이 존재했었다. 이 정당은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기초하는 정당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동원되고 조직된 것에 불과한 정치조직이었다. 한편 체제변혁적 운동주체로서의 정당도 그 성격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말의 정치, 글의 정치, 행동의 정치’로 표현되는 정치활동의 내용은 체제변혁적이지만, 그 정치활동의 영향력이 자위적이고 자족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경우나 혹은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틀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수많은 비합법적 전위정당운동, 즉 인민혁명당, 남조선해방전략당,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맑스레닌주의당, 사회주의노동자동맹 등이 그렇다. 이러한 정당들은 이념과 노선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한국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추구하고자 한 세력들이었다. 또한 외국의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당들이 그렇다. 노동자 정치운동이 합법적으로 제도화된 정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국가, 예를 들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스칸디나비아, 일본, 브라질 등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에 주력하는 정당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정당들은 결국 의회주의적 계급화해나 혹은 의회주의적 계급갈등을 심화시키는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각 정당의 성격은 이념과 노선에 따라, 정치적 이해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방식에 따라,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정치적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각 성격은 형식적으로는 의회 및 선거제도 중심의 경향성 및 계급이해를 표출하고 해결하는 방식에 따라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체제가 아닌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이념적 노선과 정책에 따라 각각의 특성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운동의 각 성격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계급간의 힘의 관계에 따라, 계급이해를 추구하는 방식에 따라, 정치활동의 주체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표출할 수 있고,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성격에 해당하는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3. 체제개혁적 운동으로서의 진보정당운동
1948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수많은 진보정당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받는 계급과 계층의 제반 이해를 대변하려 하였다. 1950년대 후반의 진보당, 1960년 4․19 혁명 이후의 사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 1990년대 초반의 민중당, 1991년 하반기에 결성된 한국노동당, 1992년 초반에 민중당과 한국노동당이 통합해서 만든 통합민중당, 199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투쟁의 성과를 토대로 2000년 1월에 창당하여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그리고 청년진보당으로 활동하다가 2001년 6월에 새롭게 결성된 사회당 등이다.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진보정당의 성격을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진보정당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정당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파간의 이념적 투쟁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정당 내부의 이념적 블록세력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좌․우파 세력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당 내부에 다양한 이념적 투쟁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정당의 정치활동은 주도적 이념을 반영하는 정치활동으로 현실화된다.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이 정당의 노선과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고 또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획득하기 위한 정치활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의 여부 등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체제개혁적 진보정당운동은 체제강화운동에 기여하기도 하고 체제변혁운동에 기여하기도 한다.

1) 몰계급적 대중에 기반한 진보정당운동
1952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바람과 함께 진보의 바람도 뒤늦게 불어왔다. 1956년 당시 216만 표에 달하는 조봉암에 대한 지지는 이승만과 자유당을 위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자유당 정권 하에서 제3의 정치세력으로 존재했던 진보당의 주체들은 새로운 정치권력의 수립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1960년 4․19 혁명이 발생하고 난 이후, 수많은 진보세력들은 민주당의 권력그늘에 자리를 깔려는 진보적인 창당운동을 전개하였다. 1957년 하반기에 진보당이 결성되었고, 1960년 4월 혁명 이후에는 정치활동의 공간이 확장된 상태에서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통일사회당, 사회혁신당 등이 결성되었다.
과연 이러한 정당들이, 특히 1957년 11월에 결성된 진보당이 당명처럼 진보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재평가의 기회가 있어야 하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진보당의 진보성 여부에 대한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의회주의적 선거정치를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보당을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의 전형인 것처럼 간주한다. 그러나 진보당은 진보적인 정당으로서 실질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는 진보당의 주도세력은 창당되기 이전에 자본주의체제나 의회민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전개하지 않았고, 또한 1950년대 노동자․민중들의 토대와 긴밀하게 결합된 정치활동을 거의 전개하지 않았다. 조봉암이 진보당의 창당개회사에서 밝히고 있듯이, 단지 관료주의적인 특권으로 무장한 세력들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의 건설, 즉 반관료주의적이고 반특권주의적인 ‘복지사회’의 건설을 추구한 것이다.
둘째로는 진보당이 실질적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진보당은 1957년 11월에 결성되고 1958년 초반에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무너졌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조봉암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정당을 결성한 것이지, 진보당이 그 선거에서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조봉암 개인에 대한 지지가 진보당에 대한 지지로 전화될 수는 있지만, 결코 완전하게 등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의 진보당 탄압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주체적으로 전개되지 못했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물론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국민대중들에게 반북의식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반론은 또한 1956년 선거에서 나타난 조봉암에 대한 지지가 진보당에 대한 지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로는 진보당이 몰계급적인 대중노선을 지향하였다는 점이다. 진보당의 발기취지문과 조봉암의 사상에서 진보적인 정당의 ‘말의 정치와 글의 정치’를 확인할 수 있다. 조봉암과 진보당은 ‘공산당 독재도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반대하는 대중본위의 사회체제’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노선을 유럽에서 유행하는 제3의 노선이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조봉암과 진보당의 노선은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배적인 인물의 교체를 토대로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노선이다.
물론 국민대중들의 지지와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은 당시의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전쟁이 형식적으로는 1953년에 끝났지만, 실질적으로는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러한 통일론을 제시하였다는 측면을 중요하게 간주하여야 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대중들의 불만을 정치적 힘으로 전화시켜 냈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곧 진보당이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당운동의 주체였다는 것은 아니다. 진보당은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이었지, 진보적인 정치세력은 아니었다. 진보당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당운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부르주아 세력이 추구하는 의회주의적 권력대리체제를 보다 더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계급연합적 민중에 기반한 진보정당운동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을 거치고 난 이후, 진보적인 정치세력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다시 추구하였다. 정치운동의 조건이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에서 ‘보수 대 진보’의 전선으로 변화되었다고 간주했던 것이다. 1988년에 민중의 당, 1988년에 결성된 한겨레 민주당은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당선되자마자 평화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는 선거 초반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다. 당 내부의 개별적 주체들간에는 약간의 차별성이 있었지만, 문제는 한겨레 민주당이 출발부터 이념적 정체성도 존재하지 않았고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소위 소부르주아적인 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당이었다.
1990년 11월에 창당한 민중당, 1992년 1월에 창당한 한국노동당, 1992년 3월의 국회의원 총선 직전에 민중당과 한국노동당이 통합해서 결성한 통합민중당, 그리고 1997년 대통령에 선거에 참여한 진보세력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 1월에 결성한 민주노동당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들은 출발부터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중독되어 있고 강고한 보수정치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의식이 그렇고, 노동자․민중운동의 발전을 위한 전략과 전술에 대한 진보적 정치세력들간의 의견의 차별성이 그렇고, 진보적 정치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둘러싼 차별성 등이 존재했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세력은 내적으로는 제도권 보수야당을 지지하는 세력들과 투쟁을 전개해야만 했고, 외적으로는 보수주의 정치세력들과 투쟁을 전개해야만 하는 이중적 고통을 극복해야만 했었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이들 정당들은 기본적으로 합법정당을 중심으로 한 의회주의적 선거전략을 주요한 노선으로 채택하였다. ‘한국 사회주의 노동당’의 결성을 추진했던 주체들도 ‘신노선’, 즉 정통적인 사회주의 노선의 폐기 및 맑스-레닌이즘에 입각한 혁명적 노선을 폐기하는 대신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선거사회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합법적인 의회공간을 활용하는 전략이 진보정치운동의 주요한 목적으로 배치되었던 것이다.
당시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이 노선을 채택하게 된 동기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패망을 접하면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이념적 정치운동을 포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로는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점진적 개혁으로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보장하고, 체제 수준의 갈등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다. 셋째로는 전투적인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은 부르주아 국가의 탄압을 자초하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에 불과하다는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넷째로는 다수자 중심의 정치운동이 아니고서는 사회체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식을 내재하고 있었다. 다섯째로는 노동자 계급운동의 고립화 현상이 다수의 국민대중과 함께 하지 않는 노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정당들은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포기하는 대신 민중의 중심성에 기반하는 정치운동을 전개하였다. 다양하게 표출되었지만, 이들 정당들은 민중 주체의 정당, 민중이 주도하는 정당,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 등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당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이들 정당들은 대중에 기반하는 진보정당운동의 주체들과는 달리, 정당을 결성하기 이전에도 노동자․민중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된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정당에 참여하는 주체들도 기본적으로 노동자․민중운동의 출신들이 대다수였다. 한국노동당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중앙위원 5명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한 상태에서 결성되었고, 심지어 1999년에는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조직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내용을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민주노총의 간부들은 민주노동당의 주요 직책을 겸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정당들의 ‘민중 중심성’이 계급연합에 기반하면서 계급화해주의를 추구하였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초반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세계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면서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삶의 현실은 더욱 악화되고, 정치적 운동의 계급적 분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당들은 그러한 현실을 민중 중심의 계급연합적 노선으로 극복하려 하였다.
대표적인 경우이지만, 민중당, 통합민중당, 민주노동당 등은 합법공간에서의 의회주의적 선거정치를 위해 계급연합에 기초하는 정당운동을 추구하였다. 물론 진보적인 정치세력 내부에서는 민중주의적인 합법정당의 노선을 둘러싼 논쟁과 투쟁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민중당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을 이탈하는 과정에서 당시 민족민주운동 진영 내부에 존재했던 세 가지의 주장, 즉 합법정당의 ‘즉각 건설론, 시기 상조론, 창당 불가론’ 중에서 즉각 건설론을 채택하였다. 통합민중당 역시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에 대한 ‘고수론, 개조론, 폐기론’ 중에서 개조론 혹은 폐기론을 선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결성과정 및 운영과정에서 대두되어 모든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이념적 논쟁의 지점은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에 대한 소위 우파․중앙파․좌파간의 대립이다. 물론 한 정당의 정책이 당의 노선을 일관되게 반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정책에 반영하기도 하고 폐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급연합정당의 정책은 대부분 부르주아 세력이 즐겨 쓰고 또한 진보진영도 절충형으로 곧잘 사용하는 쓰레기모델(garbage model), 즉 협상 주체들간의 입맛에 따라 누더기 같은 합의안을 도출하는 형식으로 결정된다.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정치적 주체들의 합리적인 결정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정책을 조정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존재하지만 명확하게 책임을 지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쓰레기모델형 합리성’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안별 정책이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서, 그 정당의 이념과 노선이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한 정당의 이념과 노선은 분절화된 정책으로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적인 정책의 이념적 기조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주노동당의 기조이다. 2001년 1월에 결성한 민주노동당은 창당 준비과정에서 논의되었던 노동자 중심의 민중정당 노선을 노동자가 앞장서는 민중정당 노선으로 대체하였다. 또한 이들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이미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강화에 기여한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보수주의 지배구조가 강고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구축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 정치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제3의 정치세력이 최소한 정치권력을 장악해서 사회체제의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현실은 그러한 정당의 이념과 노선이 ‘절충과 혼돈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계급연합적인 민중주의 노선에서 비롯되는 필연적 결과이지만, 그 결과는 계급간의 정치적 투쟁전선을 희석화하는 ‘매개적 권력’을 양성화하고 있다. 의회주의적 선거정치를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면, 부르주아 대의제도나 노동자․민중들의 투표행태의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만이 가능할 것이고, 그러한 변화는 또한 사회구조의 혁명적 변화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2인 2표제의 도입으로 부르주아 대의제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러한 대의제도는 이미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지배세력의 정치적 지배나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를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노동자․민중들의 투표행태도 제도화된 대의제도의 틀을 극복하기 위한 진보정당운동의 토대가 구축되지 않는 한 급격하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당들은 의회주의적인 대의제도의 틀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활동에 주력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경우이지만,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당원에 가입하는 숫자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에 대한 정치적 지도력을 거의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민중운동 출신의 지식인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상의하달(上意下達) 식으로 정당을 결성하고, 노동자․민중들을 정당의 정치적 동원대상으로 간주하는 엘리트주의적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권력을 위임받고자 하는 정치적 주체들이 실질적인 권력의 주체를 대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진보정당들은 계급연합정당으로서의 이념적 정체성을 형성하였는데,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점진적 개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을 지향하지 않는 점진적 개혁노선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간의 영합게임(zero-sum game)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투쟁은 계급간의 이해에서 비롯되는 계급적 갈등전선을 형성하고, 그 전선에 투여할 수 있는 계급적 역량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가 계급은 체제의 개혁적 조치에 상응하는 퇴행적 요구, 즉 노동자 계급에게 다양한 권리의 포기를 강요하면서 계급이해를 서로 주고받는 형식의 영합게임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3) 계급중심적 대중에 기반하는 진보정당운동
21세기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는 미완의 정치 프로젝트인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추진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계급적 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대안적 정치주체로 나서고자 하는 정치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합법적 공간과 비합법적 공간을 넘나들면서 국민대중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회당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합법적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량주의를 경계하고 비제도적 공간에서 노동자 계급대중의 정치적 주체형성에 주력하고 있는 노동자의 힘 추진위원회이다. 이 추진위원회는 정치적 좌파세력을 통일시키는 과정에서 완전한 의미의 계급정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미완의 정치적 조직주체이지만, 아직까지는 정당을 실질적으로 결성하지 못하였다. 이 글에서는 노동자의 힘 추진위원회의 이념적 기조와 성격을 다루지 않는다.

사회당은 2001년 6월에 ‘반자본주의, 반조선로동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창당되었다. 청년진보당을 모체로 하고 있는 이 정당은 1987년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독자적인 민중후보운동을 계승한다는 이념적 기조를 밝히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을 지향하는 반자본주의 노선과 남한 사회변혁운동의 동력이자 질곡으로 작용했던 북한의 존재를 거부하는 노선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특히 후자의 노선은 북한 사회의 비민주주의적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튼 사회당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양한 진보정당이나 민주노동당과 다른 점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의 제반 모순의 진원지를 청산하겠다는 노선을 채택하였다는 점이고, 또한 합법공간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당의 계급중심적 대중노선은 구체적인 정치활동으로 표현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저해하고 노동자계급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전략의 하위동반자로 체제내화하려는 계급화해주의를 거부하였고,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된 상태에서 목적의식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계급주체를 형성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으로 양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2001년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은 전체 고용된 노동자 중 약 58.4% 정도이다. 이들은 보통 임시계약직, 특수고용직, 파트타임직 등의 형태로 고용되어 있다. 1998년 이후 정리해고되었다가 다시 고용된 노동자의 9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들의 투쟁, 특히 대우캐리어 노동자들의 투쟁,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 등과 긴밀하게 결합된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만약 제도적 공간에서의 정치활동과 비제도적 공간에서의 정치활동이 상호 호응적이고 유기적으로 통일된다면, 사회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노선, 정치활동의 방식과 내용 등은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사회당은 양자간의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선거정치에서 드러나는 이념과 비제도적 공간에서 드러나는 이념간의 간극으로 말미암아, 사회당의 이념적 정체성이 계급연합적 민중에 기반하는 진보정당과 명확하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0년 총선투쟁과 2001년 10․25 재․보궐선거투쟁에서 드러난 투쟁노선의 국민주의적 경향성 선거공약으로 제시했던 내용, 국가보안법의 철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의 폐지, 여성해방정책 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은 양 선거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이 추구했던 의회주의적 득표획득전략과 차별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 단지 집중적인 선거공약을 부각시켰다는 것, 선거투쟁을 전개하는 방식이 이벤트 형식으로 특별했다는 것, 선거투쟁 이후의 후속작업을 지역에서 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차별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력의 주체들이 대상화되지 않고 또한 소외되지 않는 선거투쟁의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못하였다. 사회당은 소위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의 토끼조차 잡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2000년 총선투쟁의 주요한 투쟁기조는 국민대중적인 좌파정당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대중적인 좌파정당은 그 자체적으로 형용모순에 빠질 수 있다. 부르주아 정치체제의 틀 내에서 몰계급적 대중과 계급적 정당간의 이념적 매개고리를 현실적으로 형성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계급적 정당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에 기초하는 정당의 이념과 노선을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대중화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대중화의 형식과 내용이 의회주의적 선거투쟁으로 제한될 가능성조차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투쟁을 통해 국민 대중들에게 정당의 이미지 각인시킨다는 전략도 바로 이러한 가능성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부르주아 대의체제 및 권력 대리주의에 대한 이념적 정체성이 아직까지 완전하게 형성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자본주의에 대체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상이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성해 나가는 과정의 정치운동’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체제의 상을 비롯한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정치, 즉 ‘과정의 정치’는 한편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가능성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무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치적 계급주체의 형성은 선언적으로 혹은 소수세력의 조직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계급적 혹은 전 사회적 관점에서의 운동력, 즉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진보정당운동 주체들의 사례들이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많이 존재한다. 사회당도 바로 이러한 한계점들을 극복하기 어려운 체제개혁적 측면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이념의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는 주체들이 실질적으로는 제도적 공간에 머무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제도적․비제도적 공간이라는 양날개를 새롭게 펼치는 것과 유사하다. 의회를 중심으로 계급갈등을 강화하는 정당의 정치활동, 계급적 정체성에 기반하는 노동자․민중들의 투표행태, 그리고 정당과 노동조합간의 실질적인 연대 등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좌파세력이 의회공간을 확보하는 과제가 정당의 전략적 과제로 전도되는 양상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당은 한국 사회에서 합법공간과 의회주의적 선거투쟁의 공간을 새롭게 활용하고자 하는 진보정당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체제변혁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거점들을 형성해 나가고 있으며, 합법적인 의회공간도 그 대상에서 예외로 하지 않고 있다. 계급중심적 대중에 기반하는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전형이 사회당에 의해 모색되고 있는 것이다.


4. 닫는 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조는 기본적으로 ‘말의 정치, 글의 정치, 행동의 정치’ 등이 서로 분절되지 않아야 한다. 정당의 노선과 정책 및 구체적인 정치활동이 이념적 노선의 정체성에서 현실화되어야 하고, 권력을 위임받고자 하는 정치적 주체와 권력을 위임하는 권력주체간의 정치적 소외가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정당의 결성이 곧 정치세력화이고 선거에서의 득표획득이 곧 정치세력화의 역량이고, 그리고 정당의 주체들만이 곧 사회의 대안세력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성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보정당운동이 부르주아적인 대의제의 내용과 형식을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에 기초하지 않는 계급연합적이고 계급화해적인 노선과 정책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계급주체가 계급적 역량을 보유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노동자계급의 대안세력이거나 사회적 헤게모니 세력임을 자처한다고 해서, 혹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결성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계급이해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나 혹은 그러한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계급이해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1990년 전노협 결성투쟁 및 사수투쟁, 1991년 5월 전노협의 정치적 총파업 투쟁, 1996~97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2001년 5~6월 김대중 정권 퇴진을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등의 예가 그렇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투쟁을 통해 계급이해를 획득하는데 있어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진보정당운동은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정치적 계급주체의 형성과 계급역량의 정치적 통일을 지향하였는데,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이나 노동자 계급대중들을 ‘유기적인 조응관계’의 주체로 간주하기보다는 노동자 계급대중들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거나 대상화하는 ‘대상적인 비조응관계’로 간주하는 경향성이 보편화되어 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를 지배체제의 틀 내로 포섭하여 체제변혁적인 운동을 약화시킬 지배역량이 구축되지 못한 국가의 경우, 노동자 정치운동의 다양한 주체들은 비제도적 공간에서 계급갈등을 심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치활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운동의 주체들은 정당 혹은 다양한 조직의 결성을 통해 노동자들의 계급이해를 추구하는데, 그 방식과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노동조합의 건설에서부터 사회체제의 혁명적 변혁을 지향하는 조직주체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그 수준과 내용이 다양하다. 하지만 다양한 노동자 정치운동을 통일시켜 내는 지점만은 존재한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계급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자 계급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결국 진보정당운동의 주체들은 이러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노동자 정치운동을 계급정당으로 통일시키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한/노/정/연

2002-03-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2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