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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지방자치체 선거와 노동자계급

현장에서 미래를  제1호
손호철


6.27 지방자치체 선거와 노동자계급


     손 호 철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 연구위원)



1. 여는 글


30년만의 지방자치체 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정계에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선거 직후 터져 나온 삼풍아파트 붕괴라는 어이 없는, 사실상의 국가와 악덕자본의 대규모 인명학살 ‘합작테러’의 충격으로 이같은 소용돌이는 본격적인 가시화가 지연되고 있기는 하지만 내년도 총선과 연이은 대선을 앞둔 힘겨루기와 전략수립이 사실상 벌써 막을 올린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 따른 정계의 역학관계의 변화 나아가 내년도 총선을 포함한 향후 정국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정부․여당의 정치전략의 방향은 올 가을로 예정된 민주노총 출범과 관련하여 노동자계급에게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연 이번 지자체 선거는 노동자계급에게 무엇이며, 이번 선거 결과는 어떠한 함의를 갖는 것일까?


2. 한국통신 사태와 지방자치체 선거


흔히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들을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이 단순히 ‘나쁜 권력’을 ‘좋은 권력’으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분산, 나아가 ‘자기결정’과 ‘자기지배’, 즉 지배/피지배의 분리의 극복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기제임은 사실이다. 특히 오랜 중앙집중적 권력의 억압성에 의해 지배되어 온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과연 ‘민중적’ 대안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때 ‘자치’는 소외된 권력으로서의 국가 내지 정부로부터의 ‘민중의 자치’가 아니라 단순히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의 자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문제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더 친민중적일 보장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정부는 그 근접성 때문에 주민참여 등 직접민주주의적 기제가 상대적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또 민중세력이 그 힘의 한계에 의해 중앙정부의 수준에서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힘을 행사하지 못하더라도 특정 지방정치의 수준에서는 국가장치를 장악하여 민중적 정책을 펼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난 6공하의 지방의회가 보여주듯이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보수주의’, ‘풀뿌리 토호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다.

사실 노예제 폐지를 내건 연방정부에 대한 남부 지방정부들의 반란으로 야기된 남북전쟁 등 미국의 현대사를 보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더 반민중적이어 왔다. 또 지방자치의 강점으로 이야기하는 환경, 공해 등 ‘생활정치’의 측면에서도 지방자치가 오히려 후퇴를 가져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즉 지방정부가 공해기준 강화 등 친환경적 정책을 펴는 경우 기업이 타지역으로 이전하는 사태가 일어나 지방세입이 줄어들까봐 지방정부간에 기업유치를 위한 반환경․친자본적 정책수립 경쟁이 일어난다. 결국 지방자치는 그 자체가 결코 민중적 대안이 아니며 다양한 사회세력간의 힘의 관계와 구체적 실천에 따라 그 내용과 방향이 180도로 달라지는 ‘양날의 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극히 원론적인 의미를 전제로 하여 이번 지자체 선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우선 한국통신 사태이다. 초기 ‘신노동정책’의 좌초 이후 반노동노선을 명확히 해온 현 정권은 한국통신의 노사문제와 관련하여 “국가전복” 행위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와 급기야 명동성당 침탈로까지 비약하였다. 이같은 대노동강경책은 김영삼 정권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반노동적 성향 이외에도 지자체 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지자체 선거는 한국통신 등 올 봄 노동자투쟁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명동성당, 조계사 침탈이라는 정부의 악수에 의해 고양되었던 대중투쟁 등 ‘운동의 정치’와 ‘대중의 정치’가 지자체 선거라는 ‘제도의 정치’의 바람과 함께 잊혀지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한국통신의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자체선거로 투쟁의 모멘텀이 상실되었고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버렸다.

둘째, 노동자계급과 민중진영의 무능력이다. 지자체선거가 민중적 대안은 아니지만 ‘긴 호흡의 싸움’에서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투쟁계기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중진영이 체계적으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전국연합, 진정추, 민주노총 추진세력, 한국노총, 개별노동자, 농민단체, 농민 등이 일부 후보를 내고 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중당 해체 이후 정치단체로 남아 있는 정치조직들이 대중적 기초에 뿌리내린 정치조직으로서 지자체 선거에 대응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또 민주노총(준) 등 대중조직의 경우 정치투쟁으로서의 선거참여에 이르기에는 주․객관적 조건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다. 특히 정당 위주의 선거법, 노동조합 등 비정당조직의 정치활동 금지라는 법적 제한에 의해 이번 선거에 임한 민중단체들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양손을 묶고 뛰는, 어차피 한계가 있는 선거였다.


3. 6.27 지자체 선거결과의 함의


이번 선거결과가 민중, 특히 노동자계급에게 갖는 함의를 분석하기에 앞서 민자당의 참패로 특징지워지는 이번 선거의 결과와 ‘노동자후보’들의 선거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농민, 빈민 등 다른 민중후보들의 선거결과는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아 제외하였다).


<표1> 기초단체장․광역의원 정당별 분포

 

기 초 단 체 장

광 역 의 원

민자

민주

자민연

무소속

민자

민주

자민연

무소속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2

14(*)

  2

  5(*)

13(*)

  9

  4

  8(*)

11(*)

  3

23(*)

  5

  5(*)

  1

11

  1

  2

13(*)

22(*)

  1

 

 

  1 

 

 

  4(*) 

 

  1(*) 

  2 

15(*) 

 

 

 

 

 

 

  2 

  5(*) 

 

 

 

  7 

  7 

  3(*) 

 

  1 

  2 

14 

10 

  1(*) 

  11

  50

   8

  14

  50

  27

  11

   3

   1

  50

  50

   7

122

  17

  23

  59

   6

  11

   2

  50

  62

   1

   2

 

 

  7 

 

 

23 

 

  1 

  3 

49 

 

 

  2 

 

 

 

   9 

  22 

   1 

 

 

  14 

  18 

  11 

   1 

   2 

   5 

  31 

  31 

   8 

계

71(5)

84(4)

23(3)

52(3)

282

355

83

149

  (** 괄호안은 특별시장과 도지사)


<표2> 노동자후보표 실적

 

민주노총(준)

한노협

진정추

민정련

한국노총

계

광역의회

기초의회

3/7

14/22

0/ 0

4/ 4

1/ 3

3/10

1/ 1

1/ 8

15/ 30

25/ 79

20/ 41

47/123

계

17/29

(56.6%)

4/ 4

(100%)

4/13

(28.6%)

2/9

(22.2%)

40/109

(36.7%)

67/164

(40.8%)

(** 괄호안은 당선률이고 일부 극소수 후보는 각 단체에서 중복산정되고 있음)


우선 노동자 후보들의 선거결과를 살펴보고 전체적인 선거결과의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자 후보들은 제도적 제약 등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특히 정당 공천이 배제되었고 선거운동이 용이한 기초의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당공천이 허용된 광역의회에서는 대구 등 무소속이 강한 특수지역을 제외하곤 정당공천을 받지 않은 후보가 모두 낙선함으로써 기존 정당체제의 두터운 벽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다음에 주목할 점은 민주노총(준)과 한국노총의 선거결과의 비교이다.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조직, 자금 모든 면에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준)측이 당선율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 점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총이 울산, 마창 등 노동자계급이 밀집한 공단지역에서 극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대신 서울, 전북 등에서 명맥을 유지한 반면, 민주노총 등 민주노동자 후보들은 울산, 마창 등 공단지역에서 일정하게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노동자계급을 놓고 민주노총과 노총간에 ‘자유경쟁’이 벌어질 때 그 결과가 어찌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하긴 노동자 국제회의에 나아가 정부의 사주나 받아 민주노동운동을 역으로 비난이나 하는 노총을 노동자후보의 범주에 놓아주는 것 자체가 노총을 지나치게 미화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선거 결과 전체가 갖는 함의이다. 이는 한 마디로 ‘환호, 침통’, 더 정확히 표현해 ‘환호, 침통, 침통, 침통’이다. 이번 선거는 민자당에 대한 국민의 가차 없는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환호작약’할 만한 통쾌한 일대 사건이다. 특히 아직 파업결정도 내리지도 않은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을 ‘국가전복’ 행위로 몰아부쳐 사실상 ‘파업예비음모죄’(이같은 예비음모죄는 국가보안법에나 내란예비음모죄 등으로 존재해 왔고 이 또한 가장 반민주적 독소조항으로 비난을 받아 왔다)라는 새로운 죄명을 만들어낼 정도로 오만방자해진 현 정권의 최근 행태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유보조항이 필요하다. 즉 이번 선거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지만 ‘민중’의 심판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심판은 현 정권이 반민중적이고 반개혁 내지 사이비 개혁적이라는 민중적 입장에서의 심판이기도 하지만, 반민자 심판을 내린 표 중에는 현 정권이 지나치게 ‘개혁적’이라는 수구적 입장에서의 심판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김영삼 대통령은 초기 개혁을 추진하면서 수구세력으로부터는 그들에 뿌리를 둔 ‘민자당’ 총재라는 이유로,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들(대선시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국민들을 포함하여)로 부터는 개혁을 이유로 지지를 받음으로써 80% 이상의 유례 없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신노동정책의 시금석이 된 현대파업에서 나타난 반개혁적 태도 이후 ‘개혁’이 실종돼 버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모두를 만족시키려던 그의 포퓰리즘적 정책은 모두를 소외시켰다. 수구세력은 현 정권의 개혁포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지 않았고 개혁지지세력 또한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 점에서 이번 민자당 심판을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와 관련, ‘환호’는 순간이라면 ‘침통’은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이며 구조적이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의 최대의 승리자는 민중이나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자유주의적 부르조아를 대표하는 보수야당도 아니라, 민자당보다도 더욱 수구적인 유신잔당(자민련)과 무소속으로 나선 TK 5, 6공 잔존세력(현 정권도 반민중적이고 보수적이지만 이들에 비한다면 그래도 차라리 맑스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망국적인 지역주의이기 때문이다.

그 정치생명이 끝나도 한참 전에 끝났어야 옳은 김종필 자민련 대표는 87년 양김 분열에 따라 독자적인 갈등구조로 전면 부상한 망국적인 지역주의 덕으로 기사회생한 뒤 다시 ‘토사구팽’에 따른 동정론, 광범위하게 유포된 반민자 정서를 정말 저질스러운 지역주의 선동으로 묶어내어 다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선거 결과에 얼마나 자신이 붙었으면 선거 전까지만 해도 입만 열면 내각제를 읊조리던 김종필 총재가 대통령제 지지와 대선출마 가능성을 밝히기까지 하고 있다. 5, 6공 세력 역시 아직 5.18 고소고발사건이 남아 있는 등 공식적으로 조직적인 정계복귀를 시도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조직적인 대응을 자제했지만 무소속의 형태로 대구 장악에 이미 성공하였다.


이제 한국정치판에서 불행히도 유신잔당과 TK를 중심으로 한 5, 6공세력이 캐스팅 보드를 쥐게 되었다. 앞으로 민자당과 민주당은 정계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이들 세력에 대한 ‘추파경쟁’에 들어갈 것이 자명하다. 물론 이들 군사독재세력의 복귀는 민자당 심판의 결과이다. 그러나 문제는 왜 하필 민자당 심판이 이처럼 유신잔당과 군사정권세력의 재기로 귀결되었느냐는 것이다.

이는 지역주의, 특히 이번 선거에서의 야권 정치인들, 특히 야권의 양김의 망국적인 지역주의적 정치선동의 결과이다. 정말 충청도와 강원도의 유권자들은 그 어두웠던 유신시대로 돌아가기를 원한단 말인가? 한심한 노릇이다. 더욱 ‘침통’한 것은 ‘적의 적은 동지’라는 원시적 논리에 의해 바로 유신체제에서 가장 고통받았던 정치인이 지역등권론, 반민자연대 등을 통해 유신잔당의 재기에 작으나마 일조했다는 비극적인 사실이다.

물론 민주당의 경우도 민자당의 실정과 ‘지역등권론’이라는 새로운 ‘방어적 지역주의 공세’ 전략에 힘입어 호남지역의 수성과 서울지역의 ‘근 싹쓸이’라는 성과를 획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군사독재세력의 재기와 지역주의의 심화라는 대가를 지불해서 획득한 결과라면 과연 그 득이 실보다 더 큰 것인가 정말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민주당이 그간의 지역패권주의에 얼마나 고통을 받아 왔으며 오죽했으면 지역등권론이라는 궤변같은 논리를 들고 나왔을까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또 지역주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구조적 현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쨌든 이번 선거의 경우 직접적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들고 나온 것이 자민련과 민주당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지역주의의 약화로 약화되는 자신의 정치적 힘을 지역주의에 호소함으로써 ‘기존영토’라도 다시 챙겨놓자는 한심한 발상이다. 다시 말해 지역등권론은 기존의 지역차별구도를 전제로 하여 ‘기존영토’라도 챙기자는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방어적 지역주의’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주의를 직접 호소하고 나선 것이 민주당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는 ‘공격적인 공세’이다.

민주당이 일각에서 비판하듯이 지역주의의 또 다른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이고 진정으로 지역주의의 타파를 바랬다면 지역등권론이라는 새로운 지역주의 전략이 아니라 전북을 잃더라도 부산을 이기는 선거전략을 택했어야 했다. 또 민주당이 단지 당략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외쳐온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정당이라면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에 따라 자민련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군사독재세력의 재기에 일조를 해서는 안되었다. 3당통합을 군사독재세력과의 야합이라고 비난해 온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이제 자신들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정당화할 지 궁금한 일이다.

그래도 확실해진 것이 있다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제 야권의 양김은 앞으로 지역주의에 관한 한 탓할 것이 자신들밖에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역주의는 노동자계급 등 민중이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따라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 즉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막는 최대의 장애라는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민중들에게 너무도 침통한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환호’와 ‘침통’간의 비대칭성이다. 민자당 심판이 너무도 통쾌한 일이지만 이같은 ‘환호’가 단기적․순간적이라면 지역주의의 문제, ‘침통’의 문제는 너무도 오래 갈 그 후유증이 너무도 엄청난 구조적․장기적인 문제라는 비대칭성이다. 정말 이제 지역등권론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국가체제로서 ‘연방제’, 즉 통일을 위한 남북한의 연방제가 아니라 남한내의 지역성을 기정사실로 전제하여 이를 아우를 수 있도록 남한의 국가체제를 연방제로 재조직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든다. 아니라면 광주의 후보를 부산시민이 뽑고 부산후보는 대구시민이 뽑고 대구후보는 광주시민이 뽑는 식의 ‘교차투표제’라도 도입해야 할 것 같다. 유고슬라비아의 비극적인 민족분규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에코의 책 제목처럼 우리의 미래는 포스트모던이 아니고 지역 영주들의 분할지배인 ‘새로운 중세’인가?

‘침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욱 침통한 것은 지방자치체 수준에서의 ‘여소야대’ 정국에도 불구하고 향후 한국정치는 민주화가 진전하는 것이 아니고 후퇴하고, 개혁이 촉진되는 것이 아니라 수구화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면돌파를 선호하는 김영삼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감안할 때 정부는 현재의 위기를 특단적인 개혁조치들의 재개로 돌파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선거후 실시된 당직개편이 이미 보여주듯이 정부는 그동안 개혁추진 과정에서 소외된 민정계와 군사독재 세력 나아가 수구세력을 끌어 안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5.18 고소고발에 대한 무혐의결정설, 구여권에 대한 대사면 등이 다 그러한 것이다. 나아가 경북지역 무소속 후보들의 지지기반이 된 수구세력을 다시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 끌어안기 위해 자민련과 ‘수구화경쟁’에 들어갈 것이다. 야권의 경우도 사태는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이 과거보다 개혁적인 입장을 취하고 나설 이유가 없고 또 중앙정치의 무대에서 기존의 입장을 관철시킬 힘이 커진 것도 아니다. 이는 결국 자민련과의 연대를 통한 반민자투쟁을 필요로 하는데 자민련이 그 속성상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에서 민주당과 연대해 줄 리는 만무하다.

특히 이는 가을로 예정된 민주노총 출범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지방 수준에서의 여소야대의 정국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출범운동은 이번 지자체 선거로 더욱 어려운 조건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계 개편 등 아직 상황이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이같은 정계의 수구화 분위기, 정국의 불안정성과 관련하여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전략, 수구세력에 대한 아부 목표, 통치권의 시범효과, “남산에서 뺨맞고 엄한 곳에서 화풀이 한다”는 심정 등 다목적인 측면에서 민주노총을 타겟으로 해서 예상보다 강경한 탄압책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한국통신 사태 등이 보여 주듯이 이같은 전면전에서 민주당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챙기자”는 태도를 보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자계급도 이같은 이번 선거결과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통감해야 한다. 즉 적지 않은 노동자들도 정치권의 지역주의 담론에 포로가 되어 군사독재세력의 재기에 한 표를 던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계는 변화된 정국구조를 바탕으로 총선과 대선을 위한 전략 수립 등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사실상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재단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고, 지역타파와 세대교체를 내건 개혁신당의 움직임도 거세게 일고 있다. 또 무소속 형식으로 이미 교두보를 확보한 5, 6공 세력의 본격적인 경북당 추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와 관련 민자당 내의 이 지역 민정계 의원들의 행보 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환호, 침통’, 아니 이 두 모순된 감정의 비중을 고려한다면 ‘환호, 침통, 침통, 침통’하다. 그래도 또 내일은 해가 뜰 것이다. 또 한국통신 사태를 삼켜버린 지자체선거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앞으로 예상되는 엄청난 정치적 격변의 스팩타클 속에 모두들 넋을 잃고 이를 쫒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부르조아 정치의 진수이다. 또 그러하기에 이탈리아의 변혁운동가 그람시는 “파시즘이 아니라 부르조아민주주의야말로 변혁운동의 지옥같이 고통스러운 끊임 없는 낮은 포복”이라고 한숨을 내쉰 바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우리의 희망은 이같은 정치인들의 ‘제도의 정치’가 아니라 기층대중조직 속에서 꿈틀거리는 ‘운동의 정치’, ‘대중의 정치’ 속에 살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정치의 문제는 아직도 충분히 썩지 않은 데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우리 민중은 아직 기존 정치인들에게 충분히 농락당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썩자. 썩자. 그리고 계속 능욕당하자. 그 때만이 새로운 정치는 꽃 피어날 것이다.

1995-07-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