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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현장의 선택 속에서, 쉬운 길은 없다
 기획: 노동현장진단3

현장에서 미래를  제113호
김인식

기획: 노동현장진단3/


뒤틀린 현장의 선택 속에서, 쉬운 길은 없다

김인식/ 한노정연 편집위원




현장진단과 관련한 이런 저런 글을 보면 운동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중의 보수화 경향, 운동의 우경화, 간부 기피현상, 노동조합의 집중성 약화, 있을 때 벌자는 고용불안 등. 때로는 이래서 희망이 있겠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장진단을 하면서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까? 하는 고민에 아직은 여전히 현장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맞다. 변했다. 한 동지는 최근 민주노총의 사태를 예로 들며 이런 말은 했다.
“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비리가 터지고 이수호 집행부의 덜 떨어진 대응을 보면서 민주노총 사무실이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해서 사무총국에 있는 동지들에게 물어봤다. 현장에서 항의전화나 항의방문이 없냐고? 대답은 자기가 봐도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96년 총파업 당시 현장에서 당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총파업 지침을 요구했다. 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를 합의한 집행부를 대중의 힘으로 내려 앉혔다. 현장은 능동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는 이런 능동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에 대해 어떠한 기대도 없어서일까? 반대로 사태해결을 위한 모색은 민주노총 사무총국의 집단 사퇴서 제출, 대표자 연서명 등 위로부터 나타났다. 현장이 많이 변했다.”

1. 최근의 현장에서

대우자동차 창원지부 지부장 및 임원 신임 투표 결과가 찬성 426명, 반대 801명, 투표인원 대비 찬성 34%로 나왔다. 집행부는 9월 30일 66%의 신임반대로 사퇴했다. 금속연맹 내부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가장 원칙적이고 모범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되던 대우자동차 창원지부가 조합원들의 신임반대로 내려왔다.
올 초 창원지부는 불법파견 진정을 하청지회와 함께 진행했고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회사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자, 진성도급을 추진했다. 창원공장에서 KD사업을 하던 (주)대정에 대해 9월 30일자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계약해지로 72명이 사실상 정리해고를 당하게 됐다. 창원지부는 잔업거부를 비롯한 투쟁을 배치했지만 대의원의 저항에 부딪쳤다. 창원지부는 신임투표를 통해 돌파하려고 했으나 역으로 대의원과 회사의 작업에 의해 내려오게 됐다. 회사의 치밀한 사전작업이 있었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결정했다. 신임반대라는 결과에 대해 일부에서는 원칙만을 내세운 대응이 현장에서 거부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장의 정서도 모르고 원칙만을 갖고 집행부가 무리하다가 결국은 내려왔다는 것이다.
대우자동차노조 소식지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는 이제 어느 한 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미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도 그랬고 기아자동차의 비정규직 연대 투쟁도 무산되었다. 이러한 것이 이미 전국의 대공장 노동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라고 비정규직 문제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부평공장은 문제가 확대된 11월 4일에야 불법파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는 전체의 문제이지만 아직 대공장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이렇게 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에도 현장에서는 별다른 대응이 보이지 않았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43년의 역사상 용역깡패의 현장납입과 폭행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조합원총회에서 났다. 10월 7일 노동탄압 분쇄, 원하청 공동파업은 조합원 38%의 찬성으로 부결됐다. 기아자동차 한 현장활동가는 “이번 총회는 명백한 잘못이다. 연대와 자본의 탄압에 대한 책임을 조합원에게 떠넘겼다. 조합원들은 그 동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충분히 교육받지도 못했고 이 문제에 대해 충분한 고민의 시간도 갖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총회를 강행해서 사실상 조합원들에게 부결을 강요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38%의 찬성에 의미를 뒀다. 제 현장조직이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비정규직지회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연합한 현장공동투쟁단 활동은 주목된다. 현장차원에서 원청과 하청이 공동논의와 공동투쟁의 소중한 정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소사업장의 경우는 간부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집행부 당선보다 상집간부를 구성하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에 왔다. 대공장에서는 서로 하겠다고 하지만 중소현장에서는 서로 어려운 직책을 맡지 않아 선거가 연기되는 상황을 종종 본다. 예전과 달리 일상적인 구조조정의 공세, 원청의 압박, 해외공장문제, 외주의 확대, 비정규직의 확대 등 노동조합에 예전과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장은 자동화와 신기술 도입으로 예전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요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현직에 있는 한 간부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현장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노동조합 역사가 길어지면서 평가와 요구는 높아지는데 예전보다 참여는 떨어진다. IMF시절 구조조정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도 나이가 하나 둘 늘고, 사람은 새로 들어오지 않고 정체되면서 상집을 다 채우는 것이 위원장 선거보다 어렵게 됐다.”
최근에 나타난 사건과 현장의 선택이다. 이런 문제가 광범위하고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제는 이런 저런 원인에 의해 문제는 발생되고 있고 이런 문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해지고 있다.
2. 바꿔야 하는 현장

금속연맹 하반기 비정규직 투쟁을 논의하는 원하청 대표자 간담회가 9월에 있었다. 간담회에서 기아자동차 위원장은 비정규직 공동투쟁의 어려움을 얘기하며 “대공장은 이미 자판기 노조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조합원들이 돈을 넣고 눌렀는데 지금은 돈도 넣지 않고 나오기를 원한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것은 왜곡된 현실이다. 현장과 먼저 얘기하고 조직하는 것이 집행부의 역할인데, 이런 자신의 역할을 조합원들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

대우자동차 위원장은 대자 창원지부 신임투표 결과를 듣고 연맹회의에서 “연맹은 지부만의 얘기를 듣지 말고 현장의 여론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연맹 내부에서 가장 원칙적인 창원지부를 66%의 조합원들이 왜 신임을 반대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라”얘기했다고 한다. 연맹이 그나마 해보려는 비정규직 투쟁에 제동을 걸었다.

현장은 자신의 이해가 없으면 안 움직인다. 현장의 이해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와 포섭에 의해 왜곡되기 쉽다. 노동자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왜곡된다. 현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노동의 이데올로기 설파를 위한 노력이다. 투쟁을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꾸준히 각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형식적인 임단협,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교육으로 현장에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이다.

민주노조운동은 87년 이후 민주노총까지 이제는 제조업, 사무직, 비정규직, 공무원까지 포괄하며 양적인 성장을 해왔다. 자본의 탄압을 뚫고 합법성을 쟁취했다.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을 확대했다. 양적인 성장과 함께 노동조합의 일상사업의 틀은 안착되고 발전하고 있다. 교섭전술과 내용, 구조는 발달하고 있다. 그 내용의 빈곤이 문제이다. 교섭구조와 교섭기술은 발달되고 있지만 현장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빈곤과 자본의 포섭이 선거를 ‘집행부 장악’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이 들어와야 바뀐다. IMF경제위기 이후 사람이 안 들어온다. 그 놈이 그 놈인데 위로 고참들은 하나 둘 나가지만 채용은 없고 비정규직으로 대체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현장의 한 활동가는 이런 얘기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 맞습니다. 그렇지만 현장에 물어보십시오. 현장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현장의 생각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정규직을 신규 채용해라는 것입니다. 이제 현장의 요구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현장은 외면하고 노동조합은 뜰 수도 있다.” 뻔한 재원을 갖고 운영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다. 노조운동에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철폐는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현장의 활력을 불어넣는 받침돌이다.

현장에서 서로의 생각이 다름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공동투쟁을 기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현장을 조직하고 노동자의 관점으로 인도하는 문제는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문제와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문제는 같이 가야 한다.

3. 쉬운 길은 없다

요즘 대공장을 제외하고는 노동조합 간부 인선하기가 정말 힘들다. 간부하면 집회 참석해야지, 오라는 데는 많지, 시간 빼야지. 노동조합 간부들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동원 중심의 지침 남발과 가시적 성과(얼마 모였나, 어디서 왔나?)에 집착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조직부장의 역할은 할당된 머리수 채우기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현장은 왜 간부들이 자리를 비우는지 모른다.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면 “모르는 일이다. 처음 듣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간부들은 집회, 회의 참석, 동원되다보면 정작 현장순회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내용 공유에 따른 대중의 자발적 참여 조직이라는 정도는 없어지고 간부 중심의 쉬운 방법을 놓지 않으면 현장은 더 멀어진다. 어려울 때 일수록 정도를 가야 한다. 급하고 중요한 문제일수록 현장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 현장 조합원들은 자신이 알고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진다.

현장에 대한 암울한 폭로가 진단을 대체할 수는 없다.
“현장이 먼저 배신한 적은 없다.” 어렵고 힘든 조건인 것은 맞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조금씩 바꿔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현장을 탓하기 이전에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이 반성할 지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아니 현장을 버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뭐 있습니까? 죽으나 사나 일 하면서 밥 벌어먹는 현장에서 함께 하고 조직하는 것 밖에 저는 다른 방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고 토론하자. 함께 하자. 현장활동가 전국조직을 만들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자. 열심히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운동에 성실성은 중요하지만 성실성이 대안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대안은 현실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조직적 토론, 실천적 검증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이제는 전망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자.

2005-10-28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