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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조직의 위상과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76호
이종호

현장조직의 위상과 전망


이 종 호/편집위원




현장조직은 현장활동가조직과 현장대중조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렇게 나누는 것은 현장조직에 대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너무나 다른 얘기들을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고 현실의 현장조직운동을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논의들을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다.


1. 현장활동가조직
현장활동가조직은 현장활동가들이 노동운동 내부의 일정한 경향과 노선에 따라 결집하여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 등의 활동을 벌여나가는 조직이다.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많은 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체제에서 정당과 의회․정부가 맺는 관계와 같다. 즉 현장활동가조직(정당)-대의원회(의회)-집행부(정부)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현장활동가조직들은 노동조합 공식체계에서 다수파․집권세력이 되기 위해 일상적으로 각축한다. 대의원 선거에서 어느 조직이 얼마만큼의 대의원을 배출해내느냐에 따라 다수파와 소수파가 갈린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 무소속이 거의 없을 정도로 9개 현장활동가조직들이 대의원을 대부분 분점하고 있다. 현장활동가조직들 사이에는 특정 사안을 두고 경쟁과 협력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선거 연합이 이루어지거나 정책 연합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현장활동가조직 전체가 공동투쟁을 위한 연대체를 꾸리기도 한다. 노동조합 집행부를 배출한 현장활동가조직은 집행부와 일종의 당정협의라 할만한 협력체계를 갖는다. 집행부는 현장활동가조직에서 ‘파견’된 것으로, 그리고 그 집행은 현장활동가조직과 집행부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으로 인식된다. 때로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해 해당 현장활동가조직의 ‘비판’과 ‘견인’이 요구되기도 하며, 이 관계가 얼마나 ‘조직적’이냐에 따라 그 집행부의 ‘대중적’ 지도력이 판가름되기도 한다.
과거 현장활동가조직을 ‘사’조직으로 보고 노동조합 조직을 ‘공’조직으로 보는 식의 관점은 지금 시기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다. 자칫 현장활동가조직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져서 대중의 고통과 소망에 근거하여 활동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현장활동가조직들 사이의 역관계로부터만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역학과 분파역학, 대중적인 것과 조직적인 것의 관계의 문제이고 요는 이 관계를 활동 속에서 얼마만큼 성숙시키고 발전시켜나가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제도권, 현장활동가조직을 비제도권으로 보는 식의 발상 또한 일면적이다. 이런 발상은 현장활동가조직이 노동조합과는 다른 조직구성과 운영원리를 갖는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의 대립적 관계만을 부각시키고 노동조합 자체의 한계와 부정성이라는 측면만을 극대화하는 식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민주노총의 위기에서 보듯 노동조합 그 자체의 한계가 도드라지고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87년 이후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일궈온 성과들이 죄다 부정될 수는 없다. 투쟁 시기에 의사결정과정과 집행과정을 통일시켜 쟁대위라는 대중투쟁지도부를 꾸려왔던 것이나 잠정합의에 대해 반드시 조합원 대중의 찬반을 물었던 총회민주주의는 여전히 살아있는 한국 노동조합의 전통이요 힘이다. 한편 거꾸로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이 역동성을 보고 한국에서는 노동조합 그 자체가 평의회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 그렇게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노동조합을 대신할 어떤 평의회적 질을 갖는 대중투쟁기관이자 권력기관이 아니다. 또 그렇게 발전할 전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노동조합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을 때 현장활동가조직들이 노동조합 공식체계의 여타 부분들과 함께 직접 투쟁지도부로 나섰던 적은 있지만 그 경험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장활동가조직에 뭔가 자꾸 평의회적 질을 덧칠하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것은 마치 정당더러 직접 대중권력기관이 되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한편 노동조합은 현장활동가조직에 의해 대체되어야 할 절대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여전히 역동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시기 아직도 대중투쟁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거의 유일하게 담당하고 있다. 물론 정치총파업조차 오로지 노동조합의 몫으로 되어버리는 현 시기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정치조직운동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은 시급히 바로잡혀야 할 문제지만.
노동조합이 더 이상 대중투쟁기관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노동조합을 대체할 새로운 투쟁기관이나 권력기관이 창출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옳다. 그러나 그것이 현장활동가조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싹은 현장대중조직들이 풍부하게 갖고 있으며 평의회운동을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사회권력 창출운동으로 이해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현재 맹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장대중조직운동에 착목해야 한다.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은 이렇듯 그 관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체제의 당과 국가체계와의 관계와 흡사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결정적 차이를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이 지금껏 분투하며 함께 일궈온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최근의 심각한 위기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체제가 갖고 있는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의 괴리, 그리고 대중을 대상화시키는 온갖 대리주의적 한계를 넘어서서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와 그 힘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는 점이다.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은 최근 대우조선 현민투가 노동자의 힘에 집단 가입한 예에서 보듯 점차 ‘하나’로 되고 있다. 전국노동자회(준)는 그 출발부터 이미 사회당과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전국노동자회(준)를 현장활동가조직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민주노동당이야 노동자정치조직이라기보다는 마치 노동조합처럼 현장활동가조직들이 그 안에서 각축하는 정치적 대중조직(PMO)이므로 논외로 치더라도 현장활동가조직이 특정한 정치적 입장과 색조를 강화해나가면서 특정 노동자정치조직과 조직적 관계를 보다 더 긴밀하게 맺어가는 경향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하나의 현장활동가조직 안에 이른바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가 섞여 있는 경우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의 구분과 경계가 엷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활동가조직은 ‘아직’ 그 자체로 노동자정치조직이 아니다. 이 점에서 현장활동가조직의 과도기성이 존재한다.
한편 현장활동가조직을 선진노동자대중의 풀로 보고 노동자정치조직들이 그 안에 ‘프락션’해야 할, 또는 그 ‘밖’에서 계몽하고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현장활동가조직 안에도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 선진적 부분과 상대적으로 중후진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시기 현장활동가들의 ‘수준’이 이른바 ‘바깥’의 그것보다 전체적으로 낮고 따라서 여전히 지도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것은 엄청난 시대착오다. 일상적인 대중적 선전과 선동능력, 조직 능력, 자본과의 투쟁력, 계급적 직관력 등에서 현장활동가들의 선진적 부분을 능가할 ‘바깥’ 활동가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오히려 여러 점에서 현장활동가조직의 지금 ‘수준’이 노동자정치조직들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본다면 ‘수준’ 들먹이는 식의 현장활동가조직에 대한 위상 논의가 얼마나 공허하고 부당한 것인가가 명확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이 ‘함께’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이다. 현장활동가조직은 노동자정치조직이 되어야 하고 노동자정치조직은 명실상부한 현장활동가들의 자기 조직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스스로를 노동자계급정당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또 그럴 의사도 없다. 사회당은 스스로 밝히듯 ‘아직’ 노동자계급정당이 아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불어닥치는 거센 ‘노풍’ 앞에 민주노동당이 어찌 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고 있고 민족주의 정당으로 민주노동당을 재편하려는 민족주의세력들의 총체적 공세 앞에 민주노동당 내부의 사민주의적 경향들과 이른바 ‘당 개혁을 위한 입당파’들의 입지가 보존될 수 있을지도 심히 의문이다. ‘노동운동 없는 정치운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그래서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이라는 그 양자의 지향점을 두고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는 사회당 또한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통일시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한 주체로 설 수 있을지, 아니면 사민주의세력과의 ‘동거’(?)까지를 포함한 이벤트적 선거정당의 길로 완전히 어그러질지 지금으로서는 확실치 않다. 한편 노동자의 힘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자신의 직접적인 조직 과제로 제출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힘은 그 과제를 ‘계급적 좌파진영의 혁신과 연대, 정치적 재조직화’를 통해, 그리고 ‘현장정치활동의 전형 창출과 노동자대중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되는 노동자계급정치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은 계급적 좌파진영의 정치조직들과 ‘함께’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주요한 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혁신과 연대를 통한 계급적 좌파진영의 정치적 재조직화’라는 과제는 ‘현장활동가들의 조직운동’에 대한 ‘정치적 재조직화’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2. 현장대중조직
현장대중조직은 노동조합 규약으로는 의사결정기관이나 집행기관의 지위를 갖지 않지만 노동조합과는 다른 대중적 영향력을 갖고 아래로부터의 독자적인 투쟁과 활동을 벌여내는 다양한 현장의 대중조직들이다. 예를 들자면 과거 현대자동차연합투쟁위원회(현연투), 현대자동차 의장부총연합(의총련), 지금의 공동소위원회연합(공소위)과 같은 조직들이 현장대중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91년 현연투는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노민추), 구속해고동지회(구해동), 공동소위원회(공소위), 민주연합대의원회(민대), 풍물패연합 등이 모여 결성되었다. 현연투는 91년 5월 투쟁에서 노동조합을 제낀 채 연일 4~5,000명의 조합원들을 직접 이끌고 공장 안 대규모 집회와 시내 거리행진을 감행한 후 격렬한 반민자당 반노태우정권 거리투쟁을 벌여냈다. 현연투는 더 이상 투쟁하지 않는 노동조합 집행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대중투쟁 지도부가 되어 자발적인 정치투쟁까지 벌여냈던 것이다.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투쟁 당시 파업지도부 또한 어용 집행부에 맞서 부단히 현장의 이중권력을 만들어내면서 투쟁하는 대중들의 목소리와 의지를 직접 반영하고 그 지도력을 즉각적으로 검증받았던 명실상부한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기관이었다. 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 동지 분신투쟁 당시 현장활동가들이 사업부별로 즉각 투쟁대오를 꾸리고 노동조합과는 무관하게 바로 파업투쟁을 벌였던 것도 노동조합을 뛰어넘는 대중투쟁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의총련은 콘베어 타는 의장부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현장대중조직이었다. 사업부별 대표자들과 전공장 회의체계를 꾸리고 일상 선전사업과 콘베어수당 인상투쟁 등을 대중적으로 벌여냈다. 의총련은 자동차 생산공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콘베어 노동자들의 처지와 열망에 근거하여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조직되었고, 콘베어수당 인상을 쟁점화시켜 96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임금인상투쟁 전체의 대중적 동력을 끌어올렸다.
공소위는 규약상 노동조합 공식체계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의 공식 의사결정과정에서 아무런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없고 집행에서의 권한 또한 없다. 그래서 실제 공소위는 스스로 부서별, 사업부별, 전공장 체계를 꾸리고 출범식도 독자적으로 해왔다. 노동조합의 맨 밑바닥에 있으면서 동시에 노동조합 바깥에 있는 셈이다. 공소위는 주요 시기에 자신의 입장을 대중적으로 표명하여 현장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고 대의원회와 대립하여 소위원회 독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소위원회는 활동가를 발굴하고 훈련하는 풀이고, 많은 현장활동가들이 소위원회를 통해 활동에 ‘입문’해왔다. 그렇다고 소위원회가 초보 활동가들의 훈련코스인 것만은 아니다. 집행부나 대의원을 하지 않는 경우 경험 많은 활동가들이 소위원회에서 다시 활동함으로써 소위원회 자체 내에 활동 경험이 축적되고 새로운 활동력들이 보충된다. 공소위는 노동조합 대의원체계와는 달리 현장 대중들로부터 자신들의 ‘일부’로 인식되고 그만큼 소위원과 대중의 관계는 ‘직접적’이다. 소위원이 현장 대중들 안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되고 있지는 않지만 전공장 공소위는 노동조합의 다른 체계들과는 달리 현장의 직접성을 담보로 커다란 대중적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 소위원들이 현장에서 직접 선출되고 그 소위원들의 부서별, 사업부별, 전공장체계가 꾸려진다면 이야말로 공장평의회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될 것이다.
현장대중조직은 아직 평의회라고 할만한 대중조직으로 구체화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노동조합과는 다른, 현장 대중들의 직접적인 투쟁기관이자 현장권력체로서 말 그대로 ‘평의회’로 발전해갈 수 있는 ‘맹아’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현장활동가조직과 노동자정치조직의 정치적 재조직화를 통해 건설될 노동자계급정당은 노동조합을 민주적․계급적으로 강화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아닌 평의회적 현장대중권력의 창출과 그 전국화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3. 노동자정치조직-현장활동가조직-현장대중조직-노동조합
지금 시기 노동자정치조직은 명실상부한 현장활동가들의 자기조직으로 발전해야 하고 현장활동가조직은 정치적으로 강화됨으로써 노동자정치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가 된 노동자정치운동은 계급적 좌파진영의 혁신과 연대를 통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전진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대중조직의 평의회적 맹아를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실천을 통해 아래로부터 현장대중권력을 창출해내고 그것이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권력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사실 평의회적 대중권력이란 노동자대중 스스로의 창조물이고 노동자계급정당은 대중의 그 창조력을 촉진하고 조력할 수 있을 뿐이겠지만.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그 계급적․민주적 발전을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노동조합운동의 과잉결정권을 바로잡아야 한다. 노동조합만이 정치총파업의 투쟁지도부를 ‘독점’하고 있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 노동자계급정당이 그 투쟁의 지도부로 ‘복권’되어야 한다. 한/노/정/연

2002-05-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