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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껏 남아있을 희망을 위하여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79호
성준규

참관기


아직껏 남아있을 희망을 위하여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


성 준 규/연구기획실





2002년 하반기 사업과 투쟁계획을 논의, 확정하고 지난 4월 이후 공석으로 남아있던 부위원장 임원보궐선거를 진행하기 위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8월 27일, 영등포구민회관에서 개최되었다.
대회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본 대회의 시작에 앞서, 경희의료원, 한진면세점 등 장기투쟁사업장에서 기간의 투쟁경과 보고 및 향후 투쟁에의 결의 시간을 가졌고 그후 민주노총 주요회의 보고와 2002년 상반기 회계감사 결과보고를 시작으로 임시대의원대회가 진행되었다. 보고에 이어 안건논의의 시간이 있었다. 우선, ‘중소영세비정규직 기본권쟁취투쟁’, ‘노동운동탄압분쇄와 노동기본권쟁취’, 그리고 ‘총연맹 조직정비와 공공성확보투쟁’을 핵심사업 및 투쟁과제로 설정한 하반기 사업과 투쟁계획에 대해서는, 이날 선출될 임원들이 제출된 전체안을 기조로 세부계획을 고민하여 사업을 집행한다는 전제하에 별다른 논의 없이 원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장기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에 대한 지지와 엄호의 강화, 나아가 하반기 노조탄압 분쇄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민주노총 대의원들의 동의와 결의로써 ‘노동운동탄압 분쇄, 직권중재 철폐, 보건의료노조 장기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두 번째 안건 역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임원보궐선거가 마지막 안건으로 올랐다. 7명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뽑는 선거에 모두 11명의 후보가 등록하였는데,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들간의 정치적, 조직적 지향이 일정정도 가시적으로 구분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후보들의 정치적 지향성은 다름 아닌 그들이 내건 선거 슬로건으로 드러났다. 즉 ‘여성차별 철폐’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단결’을 주장한 두 명의 후보를 제외한다면 그 나머지는 사실상 “민주노총의 찌든 때를 벗겨라!”라는 슬로건과 “노동계급 총단결”의 슬로건으로 이분하여 출마한 것이다. 그리고 슬로건을 탄생시킨 조직적 배경과 의도에 대한 고민을 잠시 젖혀둔다면, 이들 슬로건은 그 자체로 민주노총을 포함한 전체 노동운동진영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핵심적으로 압축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민주노총의 찌든 때를 벗겨라!
이번의 대의원대회를 소집케 한 직접적인 원인이 민주노총의 4․2총파업 철회에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며 실제로 임원선거 유세발언의 과정에서 다수의 후보가 당시 총파업을 철회한 지도부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판자체가 아니다. 예정된 4․2총파업을 철회한 민주노총의 태도에 대해서는, 파업철회의 당사자들인 집행부들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자리를 물러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도부 사퇴의 결과는 잘못된 전술운용의 주체인 지도부 스스로의 고민과 반성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파업에 참여하거나 이를 지지했던 대중들의 분노와 비판을 통해 추동되었으며, 이러한 대중적인 분노에 바탕하여 민주노총을 혁신하고자 노력하는 어떠한 활동가라도 총파업 철회에 대해 비판할 ‘권리 및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문제는 비판의 내용과 방향일 것이다. 발전노조의 파업을 지지․연대하며 이 투쟁을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전국적 투쟁으로 발전시켜내야 할 중대한 기점에서 이루어진 당시 민주노총의 총파업 철회선언에 대해, 그저 ‘끓어오르는 불꽃에 찬물을 끼얹는 짓’이었다는 식의 행위자체에 대한 비판을 넘어 민주노총의 총파업 철회선언을 낳게끔 한 역사적, 구조적 원인들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위기상황을 넘어설 올바른 관점과 전망을 도출해내지 못한 채 민주노총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비록 유세라는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4․2총파업 철회에 대해 후보자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는 나에게 있어 큰 관심거리였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민주노총의 찌든 때를 벗겨라”는 슬로건을 걸고 나온 몇몇 후보자들의 발언에 주목하였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이 벗겨야 하는 찌든 때가 바로 ‘파행적 총파업 철회’라는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했고, 또한 이 찌든 때가 어떠한 운동의 역사 속에서 발생했고 나아가 이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관심을 가진 이들이야말로 위의 슬로건을 내세운 후보들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세의 과정과 선거 홍보물을 통해서 보여진 이들 후보의 문제의식은 나에게 다소 실망스런 것으로 비춰졌다. 민주노총의 4․2총파업 철회는, 그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사회적 합의주의의 결정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일정 시기에 상승된 대중투쟁동력을 자본 혹은 정부와의 유리한 협상고지 선점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상승된 투쟁동력 자체를 정치적, 계급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목표를 둘 것인가라는 동떨어진 입장 사이에서 민주노총이 자기 자리를 잡아나갔던 역사로도 평가 가능할 것이다. 노사정위에의 참여와 탈퇴를 번복하며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는 와중에서도, 발전노조의 강고한 투쟁으로 상승된 사회적 지지 및 대중투쟁동력을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전국적 전선으로 결집시켜내지 못하고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오히려 투쟁동력을 급속히 소진시켜 버림으로써 그동안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에의 경도현상을 경고해왔던 계급적 좌파진영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 버린 것이다.
결국, 대중의 투쟁동력을 정부, 자본과의 협상을 위한 수단으로 상정해온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비판 및 지도부의 총파업 철회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과 분노를 계급적이고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반자본․반신자유주의 투쟁전망을 구체화하는 속에서 총파업 철회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혁신전략을 ‘조합원을 믿자’는 식으로 단순화하거나 원칙 없는 통일단결과 반미의 구호로 대체함으로써, 몇몇 후보들의 주장은 혁신의 원칙이 되어야할 계급성과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등사회를 향한 노동자계급 총단결로!
사실 누구에게나, 또 무엇에게나 비판을 하기는 쉽지만 그 비판을 넘어선 실천적인 대안을 만드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이는 예외가 될 수 없다. 현실 운동에 대한 비판은 무수하지만 그 무수한 비판을 하나의 현실적인 힘으로 엮어줄 만한 구체적인 운동전망이나 대안의 형성이란 과제는, 물론 현실에 대한 비판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막막한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철회와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경향성을 비판함에 있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그러한 비판작업 자체라기보다는 비판의 내용과 방향이라고 말했듯이, 올바른 관점에 바탕한 비판 역시도 위기의 현실을 돌파할 전술 및 대안적 전망까지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한 면에서 “신자유주의를 넘어 평등사회로, 노동계급 총단결!”의 슬로건으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발언내용 또한 나의 관심을 끌었다. ‘노동계급 총단결’과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평등사회’야말로 각각 추상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현재의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투쟁의 원칙과 전망으로 제시되기에 부족함이 없고, 유세내용과 선거 홍보물을 통해 단결과 평등사회라는 추상적 원칙을 구체화시켜줄 내용을 대략이나마 확인할 수 있을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들 후보는 노동계급의 총단결을 위한 방향으로서 산별노조의 건설과 안정적 지도집행력 구축을, 또한 평등사회를 위한 전망에 있어서는 비정규직 차별철페, 중소영세비정규직 희생 없는 주5일 근무쟁취,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등을 정책내용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하였다.
현재의 정세에 있어 이 과제들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또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끈질기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임에 틀림없다. 이는 위의 슬로건을 내건 후보들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모든 후보들까지도 동일한 정책을 부분적으로든 전면적으로든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 운동이 중요하며 민영화저지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은 노동운동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인 것이다. 결국 관건은 왜 이들 운동을 현 시기 운동을 매개할 핵심적 내용으로 바라보는가의 문제, 그리고 이들 운동을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실제적 운동으로서 풀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에 달려있다. 즉, 최근 들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자본에 의한 불안정 노동자의 양산과 공공부문의 민영화 정책이 축적위기에 직면한 자본의 위기탈출전략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 비정규직 및 민영화저지 투쟁을 하나의 부문운동으로서 고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자본에 대한 공격 및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재조직화를 위한 핵심적인 고리로서 바라볼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비추어볼 때, “노동계급 총단결”을 주장한 후보들을 평가함에 있어 우리는 약간의 조심성과 시간을 요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의 민주노총 역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저지, 비정규직 차별철폐, 주5일제근무 등을 핵심적인 사업방향으로서 강조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민영화문제와 주5일제근무에 대한 계급적 시각을 놓치는 모습, 한편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을 계급적 연대의 동등한 주체로서가 아닌 정규직의 관점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확대를 위한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모습을 빈번히 노출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각각 “정규직-비정규직 계급적 단결”과 “여성차별 철폐”를 내세운 두 후보가 오히려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500일이 넘는 비정규투쟁의 과정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계급적 단결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몸으로 느끼고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 또한 소외받는 여성의 노동권을 올곧게 지켜내고자 여성의 몸으로 선도적으로 선거에 뛰어든 사람이 바로 이들 두 후보이기 때문이다.


선거결과를 바라보며
나에게 있어 이번 대의원대회에서의 임원선거 결과는 일차적으로 고무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업대상, 혹은 단순한 지지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여성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를 당당한 투쟁의 주체로 선포한, 그럼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총단결을 이루어내고자 한 두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당선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선거결과를 곧바로 이후의 운동전망을 낙관하는 판단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이번의 선거결과를 노동자들의 올바른 계급적 단결과 투쟁원칙에 대해 대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결의한 것으로 직접적으로 연결시킴에 있어 우리는 좀더 냉철하고 조심스러워해야 하거니와, 선거의 승리는 단지 출발에 불과한 까닭이다. 당선된 부위원장 후보들이 이후에도 처음의 신념을 놓치지 않고 대중조직 속에서 얼마나 분투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민주노총의 찌든 때를 벗기며 나아가 정규직,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 그리고 이러한 원칙 하에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평등사회의 구체적 전망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이번 선거결과에 힘을 얻어 각자의 현장과 공간 속에서 대중들과 어떻게 만나고 이들과 함께 싸워가는가가의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이번의 두 후보와 그들을 지지하는 활동가, 그리고 억압의 현실을 뚫고 당당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이 하나의 싸움 속에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한/노/정/연

2002-09-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3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