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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제와 성평등의 정치

현장에서 미래를  제80호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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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제와 성평등의 정치



정 주 연/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몇 년 전 국정감사가 한창이었던 무렵 검찰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침 그곳에 법사위가 열릴 예정이어서 때마침 국회의원들 한 무리가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모두 검은 양복에 어두운 계열의 넥타이들을 두른 ‘남성’ 일색이어서 영락없이 장례식장을 연상케 했다. 영문을 몰랐다면 반드시 그런 오해를 했음직한 상황이었다. 사실 TV 뉴스를 통해 보는 국회의 전경도 이와 다를 바는 없지만, 실제로 시커먼 양복차림의 일군의 국회의원들을 보자. 우리 사회가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섬뜩하게 체감됐던 기억이 난다.

짚어보면 남성들이 주를 이루지 않은 사회영역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그럼에도 특정 영역에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많은 수가 진입하면 기성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하여 보도하거나, ‘진단․논평․사설’ 등을 통해 그 분야가 여성화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어댄다.1) 그러나 남성들이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과대대표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이론(異論)을 제기하지 않는다.

몇해 전, 교대가 대부분 여학생들로 채워지자 사회 지배층에서는 ‘교육의 여성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으며 교대에 대한 남학생 할당제 실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남학생 할당제는 어떤 기성언론도 특혜라거나 여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없다. 반면에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할당제는 1996년 도입된 이후로 수적인 할당제를 넘어 실질적으로 여성의 참여가 보장되는 방안으로서 더욱 풍부해지기보다는 시시때때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공격에 직면해왔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이 남성들로 채워져 있는 데는 무감할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참여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장하려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질적 평등 vs 역차별

할당제는 여성을 포함한 소수집단2)의 실질적인 평등 실현을 위해 차별받는 집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한 형태로서 등장하였다. 적극적 조치는 과거의 ‘구조적 차별’이 현재로 이어져서 형식적 평등3)이 주어져도 차별받는 집단이 이를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은 주부 혹은 아이의 양육자로서 규정받는다. 그 결과 여성은 사회활동에서 배제당한다.

산업사회 도래 이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대거 늘었지만, 이는 자본과 국가에 의한 여성노동력 활용차원이었을 뿐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인식이 사라지거나 혹은 개선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인식이 사회 각 영역으로 이어져 여성과 남성간의 성별분업을 합리화하며, 이러한 분리와 배제전략은 여성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성차별을 낳는다. 적극적 조치로서의 할당제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 차별을 인식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여성의 배제와 과소대표성을 적극적으로 수정함으로써 결과적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할당제를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도입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정치․경제․교육․고용 부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함으로써 여성이 사회의 모든 부분에 걸쳐 대표성을 갖고 여성집단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획기적인 여성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북유럽국가 뿐 아니라 대만, 필리핀 등에서도 정치 부문에서 여성할당제 40~50%를 두어 여성 국회의원 수를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다수 집단인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여성을 포함한 소수 집단의 세력화를 꾀하고자 하는 할당제의 도입과 실행은 만만찮은 반대와 저항을 받으며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다. 30년 넘게 할당제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적극적 조치를 시행해온 미국의 경우 이 제도가 시행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으며 끊임없이 존폐의 위협 속에 놓여있다. 역차별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할당제가 동등한 기회에 반대되고 모순된 것이라는 역차별 주장은 사회 지배세력인 남성들의 개인적 성취의 장벽만을 문제시할 뿐, 한 사회의 권력관계 불평등과 그로 인한 남성(혹은 백인) 위주의 사회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따라서 할당제가 다수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남성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주장하며 기회의 평등에 어긋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실제로는 자유주의 원칙 하에 성별(혹은 인종)에 따른 자원 배분의 불균등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유경쟁만을 옹호하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할당제를 둘러싼 역차별 혹은 폐지 주장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대한 남성들의 적대감의 한 표현일 뿐이다.



할당제에 관한 여성주의적 관점

이전의 구조적 차별에 의해 피해를 받아온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 집단에 대한 할당제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과거의 불평등을 수정하기 위한 실질적 평등전략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할당제라고 반드시 여성에게 긍정적인 제도만은 결코 아니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할당제를 찬성하는 여성주의자들은 할당제를 통해 소수자 집단(여성)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것은 그 집단의 역할모델이 됨으로써 소수집단의 사기를 높인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남성지배사회에서 보수․진보를 떠나 남성들이 득실거리는 현실을 볼 때, 이 주장에 일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단지 같은 성이라고 하여 할당제의 통해 정치․사회영역에 진입한다고 해서 그들이 억압받는 집단을 대표할 것인가, 할당제의 혜택이 실제로는 거의 도움이 필요 없는 엘리트 집단의 여성에게 돌아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에서 할당제 유지가 과연 여성이라는 소수 집단에게 유익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이들이 중심부에 진입하게 위해서 지배세력의 동화정책에 흡수되거나 이들을 지지하는 들러리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어 이 점에서 더욱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등장한 것이 계급적 관점이다. 소수집단이라도 그들 간의 계급적 지위가 다름으로 인해 받은 차별의 양과 질이 다르다는 것인데, 이 관점은 소수집단을 지배집단의 잣대에 따라 나누는 또 다른 형태의 분리와 배제를 낳았다.4) 하지만 할당제가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모두 수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좀 더 숙고해볼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고는 하나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 문제는 여성들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며, 이것의 발현으로 인한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의 여성배제와 분리이다. 최보은5)의 말처럼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다 찍어야 하느냐는 물음은 깊이 고민해야할 문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의 정치현실처럼 여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드문 경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또한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거나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이 여성에게 역할모델을 한다는 자유주의적 관점의 문제에 앞서, 그 동안의 남성의 과대대표성을 통한 남성 주도의 사회정치적 지배가 더욱 문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할당제에 대한 여성주의의 주요한 문제제기의 또 다른 지점은 앨리슨 재거6)와 같은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녀는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의 평등전략은 남성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된다는 가정에 도전하지 못한 채, 남성과 같아짐을 지향하면서 여성으로 하여금 가부장제적인 틀에 편입해 가도록 유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할당제로 정계에 진출한 여성들은 남성지배사회의 기본틀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성화되거나 남성들의 지지세력으로 자신을 위치지우고,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닐 때도 중립을 택한 채 위태롭게 존립한다. 남성지배사회란 결국 남성의 척도가 사회의 선(善)으로서 가치를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유지되는 한 진정한 여성해방은 불가능한 것이다. 진정한 평등이 실현되는 것은 주변부가 중심부에 통합되어 가는 일방성을 넘어 새로운 가치의 창출을 통한 새로운 사회틀이 마련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 할당제의 현황

국내에서 적극적 조치의 한 형태로서 할당제 논의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주류여성단체7)들이 중심이 되어 ‘고용할당제 도입을 위한 연대모임’을 발족시키면서부터이다. 이듬해인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8)에서 여성의 사회참여확대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점진적 목표할당제에 해당하는 ‘여성공무원채용목표제’를 채택하면서 본격화된다.

할당제가 제도로서 자리잡은 지 어언 6년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할당제가 선거에 있어서의 일정비율 할당제와 공무원채용목표제 등 공직사회 진출에 관한 것이 주축을 이룬다. 또한 할당제를 둘러싼 논의들도 할당제의 합법성을 주장하거나 역차별에 대응하는 것이 고작이며, 혹은 선거시기 등에 여성할당제를 몇 퍼센트로 할 것인가 하는 형식적인 측면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유럽 및 북미 국가들처럼 앞서서 적극적 조치를 실시한 국가들은 단순한 비율할당을 넘어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마련하여 실시하고 있다. 또한 그 범위도 정치에 한정하지 있지 않다. 예를 들면 개별 기업의 일자리와 승진에 있어서의 차별에 대해서도 적극적 조치로서 개입하곤 한다. 만일 한 여성이 작업대의 위치가 높아서 특정한 일자리에 배치될 수 없다는 제안을 받을 때, 우리 사회라면 충분히 기업이 ‘경영상의 합리성 때문’이라는 아무런 부가적 설명 없는 이유를 앞세워도 기업의 입장이 받아들여지나, 적극적 조치가 보다 광범위하게 시행되는 사회에서는 기업이 ‘경영상의 합리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여성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작업대의 높이를 조절하게 하는 평등조치들이 내려진다.

할당제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시행의 유의미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전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에게 주어진 일종의 적극적 조치이나 결국 할당된 몫을 채우는 것은 피억압집단의 엘리트 여성이라는 점, 이들이 과연 그 억압집단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무엇보다도 남성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것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관점에 투항하고 가는 것 등등.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차별을 수정하려는 적극적 조치로서의 할당제의 폐지나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할당제를 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의미로서의 ‘적극적 조치’로서 재개념화하는 것에서부터 진정 필요한 곳9)에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당장에 더욱 시급하다. 다양한 여성운동 주체들은 주류 여성운동에서 할당제를 정치 및 공직사회에 한정한 것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할당제가 안고 있는 여성주의적 관점의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펼쳐가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초 최보은씨의 박근혜 지지선언은 할당제에 관한 여성주의자들간의 논의의 지점을 촉발시킬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하지만 이 논의는 본격화되지는 못하고 박근혜 개인에 대한 여성주의자 간의 찬반논쟁으로 한정지워지며 흐지부지되어 사라졌다. 여성할당제를 무력화시킬 기회만을 엿보는 보수적 집단이 득실거리고,10) 여성정치인은 시행착오조차 용납되지 않을 만큼 일거수일투족이 남성들에 의해 예의 주시되는 현실 속에 여성주의안의 차이와 다양성을 기반으로 적극적 조치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기란 녹록치만은 않다.



사회운동 내 ‘적극적 조치’ 실행을 위하여

적극적 조치로서의 할당제가 진보진영에 도입된 역사는 보수집단에 의해 채택․시행된 역사보다 짧고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노동운동, 사회운동 모두 남성중심성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수적인 여성의 열세는 의사결정에서 여성적 입장의 배제로 이어진다. 여성이 다수인 곳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대표적인 의사결정은 남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여성이면 모든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것은 적극적 조치로서 해소되어야할 시급한 문제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분명한 것은 남성에 비해서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공유해온 여성이 여성의 입장에 설 가능성은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회운동에서도 여성할당제, 아니 이보다 더 확장된 의미로서 ‘적극적 조치’의 폭넓게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 내에서 여성할당제를 우선적으로 도입했던 것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출범 이전인 1999년 여성할당제 30%를 결의했다. 당시 나도 당원으로서 이 과정에 참여하였는데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가득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진보지식인은 민주노동당의 여성할당제 도입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여성이 할 일과 남성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이 어려운 정치를 왜 하려 하십니까? 정치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여성 동지들은 편히 계십시오”라는 기막힌 발언이 있었던가 하면, 한 남성 당원은 “할당제가 무슨 필요입니까? 설마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당시는 창당준비위원회였다)이 고작 30%만 할당하겠습니까? 준비된 여성만 있다면 100%라도 여성이 못하겠습니까?”라며 할당제가 오히려 더 많은 여성들의 참여를 제한하게 될 것이라며 할당제 도입을 반대했다. 여성할당제가 표결에 붙여지면 내부적으론 통과시키기로 결의했지만 개별 투표에서 남성 당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것을 두려워한 당 지도부가 결국 오랜 시간 회의를 중단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해프닝으로 그날의 여성할당제 통과는 무사히(?) 종결되었다.

할당제는 통과되었지만 그날 이후 90년도 초반부터 이 운동에 때론 적극적으로 때론 한 발 물러선 채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던 사람으로서 결국 진보운동 내의 여성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과연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운동에 동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들에 휩싸였었다. 할당제 통과 이후에도 할당된 수치를 채울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현실화되지 못한 지부들도 있었으며, 준비된 여성도 없이 할당제를 요구했다고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로 쏟아진 비난도 만만치 않은 수위였다. 이제 3년여가 되면서 비로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한 특정 당을 예로 들었지만 ‘예’가 되지 않은 다수의 진보진영 단체 혹은 정치 세력 내의 정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지난해 조금은 획기적인 움직임 전교조에서 일어났다. 2001년 전교조 중앙위원회에서는 대의원 및 중앙위원에 여성할당제 50%를 결정했다. 우리 사회에서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으로 30%이상을 넘어선 곳은 전교조가 처음이다. 현재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도 적극적 조치로서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 단체의 경우 할당제를 여성에 대한 것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 사회 차별의 요소가 되는 학력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 적용하고 있는데 운영 내규에 능력중심적 엘리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신학교별 쿼터제를 명시하고 있다. 여성할당제의 경우도 여성은 과반수 이상을 넘어도 되지만, 결코 남성은 반을 넘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권력과 권위에 익숙함을 감안해서 지나치게 단체의 활동이 남성활동가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제한하는 적극적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할당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여성의 과소 대표성을 극복하는 과정은 의사결정에서의 전반적인 여성 배제 현상을 극복하는데 있어 할당제는 기본적 단계로서 그 의미를 띈다. 물론 이 과정은 수적인 할당을 넘어서는 것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며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는 실질적인 지원 조치들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성부에서 할당제를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로 명칭을 바꾸고 내용적으로도 재개념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비록 적극적 조치의 도입에서는 기성 사회보다 뒤늦었지만, 각 사회 운동 조직들이 할당제 도입은 물론 사회운동 내의 성차별, 성별분업을 없애고 성평등한 운동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층 폭넓은 시행을 이루어가길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한/노/정/연


1) 재미있는 사실은 ‘여성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여성화(化)를 넘어 여성들이 거의 100%를 차지하는 영역, 이를테면 주부, 유치원교사, 보육교사, 간호사 등의 영역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로 그들이 우려하는 것이 여성화라기보다는  공사분리를 통해 공적 영역을 항시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기게 하려는 것이며, 또한 여성의 공적 영역 진출이 지배세력인 남성들의 시혜적인 것으로 여기게 하기 위함이다.


2) 미국의 경우 할당제는 초기에 인종문제 해결을 위해서 등장한 적극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것이 시행된 이후 차별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지며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차별에 대한 처방으로서 할당제를 여성에게 확대할 것이 요구되어진다. 그러므로 할당제는 여성에게 국한된 제도가 아니며, 유색인종,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집단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여성에게 초점을 맞춰 쓰고자 한다.


3)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평등 개념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여성주의 초기의 목표로서 남성과 동등한 법적․사회적 대우를 받는데 초점을 맞춘 ‘기회의 평등’이다. 이것은 사회적․문화적 여건이 차별적인 상황에서 여성들의 지위향상에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둘째는 ‘조건의 평등’이다. 균일한 경쟁조건에서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여성에게 경쟁의 조건이 같아지도록 해서 실질적 평등을 이루려는 것을 말한다. 이 또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한 조건이 같아질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셋째는 바로 적극적 조치의 기본 개념인 ‘결과의 평등’이다. 결과의 평등은 오랜 동안 차별 받아왔던 집단이 평등한 결과에 도달하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4) 실제로 이 관점은 적극적 조치를 종결시키는 방안으로서 기능한다. 1995년 캘리포니아대학의 평의원들은 적극적 조치에서의 계급의 관점을 수용하며 “1997년 1월 1일부터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은 인종, 종교, 성별, 민족, 국적, 피부색 등을 입학허가 기준에서 제외시킨다”고 결정하였다. 그 결과 소수 집단에 대한 할당제는 폐지되었다. Carol Lee Bacci, “Discrimination: Who is Responsible?”


5) 최보은, 「나는 그래도 여성을 찍겠다」, 월간 ꡔ말ꡕ, 2002년 6월호.


6) Alison M. Jaggar는 여성해방이론의 철학자로 저서로는 Feminist Politics and Human Nature, 1983 등이 있다.


7) 주류여성단체라 함은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출발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박정희 시대 출범한 새마을 부녀회 등을 포함한 관변적 성향의 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을 말한다.


8) 본격적으로 제도화에 앞장선 것이 자본의 무한정한 이윤 추구를 위해 모든 사회적 보호조치 폐지에 앞장서온 세계화추진위원회였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논의하진 않겠지만 그 함의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9) 공무원채용목표제의 경우 형식적인 할당제가 시행되기 이전인 1992년부터 7급 이하 여성공무원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러므로 할당제가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곳은 5급 이상의 직급이다. 박홍주, 「노동시장의 관점에서 본 군가산점제」, ꡔ여성과 사회ꡕ 2000, 통권 11호.


10) 올 상반기 지자체 선거에서 선출직 후보의 30% 여성할당제가 실종된 것에서 이러한 경향은 잘 보여진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명목 하에 후보자 상향식 경선제를 채택하였다. 이것은 여성할당제의 고려 없이 진행된 것으로 남성중심적 정치성향이 더욱 강한 보수적 지자체 선거에서 여성의 참여를 더욱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2002-10-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3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