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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단계 한국 노동운동의 한계와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81호
김세균


현 단계 한국 노동운동의 한계와 전망
김 세 균/소장





한국의 노동운동은 오늘날 심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의 핵심은 노동운동이 가중되는 권력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항하는 투쟁을 제대로 조직해 내지 못하고 있고, 노동운동의 성장․발전에 힘입어 진척되어온 ‘계급형성’ 과정이 일정하게 ‘계급해체’ 과정으로 대체되는 양상이 생겨나고 있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기란 새로운 도약을 가능케 하는 호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전환을 만들어내기 위한 비상한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이 발제문에서 나는 위기를 어떻게 호기로 전환시킬 것인가의 관점에서 현단계 한국노동운동의 한계와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해 보려고 한다.


1. 민주노조운동의 성장-발전
군부정권이 강행한 억압적-민중배제적 산업화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1970년대가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태동기’로 불릴 수 있다면,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시기는 크게 보아 ‘민주노조운동의 본격적인 진출과 활동’의 시기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거대한 ‘집단적 권리선언’으로 불릴 수 있는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은 계급적 노동운동의 첫 거보(巨步)였으며, 적어도 많은 개별기업에서 자본의 사업장독재체제를 종식시키고 이전의 한국노총 중심의 어용노조운동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을 본격적으로 탄생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체로 다음의 과정을 밟으면서 발전해 왔다.
첫째, 신규노조들의 대대적인 결성을 통해 노동조합운동의 보편화가 이루어졌으며, 지역별, 업종별 등으로 새롭게 생겨난 민주노조들 간의 연대가 확장되어 갔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성과로서 1990년 1월 22일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구심체로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가 결성될 수 있었으며, 1995년 11월 11일에는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출범함으로써 민주노조진영의 총단결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둘째,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임투를 중심으로 한 생존권투쟁과 이른바 ‘집단적 노사관계’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자신의 당면투쟁과제로 삼는 가운데 성장-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은 (한국경제의 성장세가 자본측의 양보를 강제하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는 ‘전투적’ 노동운동의 전개를 통해 생존권투쟁을 성공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이 본격화된 후 한국의 계급대립 지형은 기본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성장-발전을 막으려는 정권과 자본의 억압에 맞서 민주노조진영이 노조활동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굴하지 않는 저항을 전개해 온 것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숱한 상처를 입고 많은 굴곡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정부의 탄압을 이겨내고, 민주노조운동의 ‘시민권’을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 내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에 힘입어 아직 많은 제한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는 ‘집단적 노사관계’가 상당한 수준에서 민주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성장-발전해온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층의 하나의 계급으로의 성장-발전’ 내지 ‘계급형성’의 원동력으로 기능했다.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의 그러한 성장-발전이 있었기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1996년말~97년초 총파업투쟁과 같은 대투쟁을 조직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2. 신자유주의 구조개편 하의 노동운동
민주노조운동의 성장-발전과 더불어 권력과 자본은 노동에 대한 과거와 같은 억압적 탄압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경쟁력의 강화 등을 명분으로 개별적 노사관계의 유연화를 요구하는 자본의 요구가 커지게 되며, 93년 12월 UR가 타결된 이후부터 국가의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적인 색조로 뚜렷하게 변하게 된다. 이후 97년 12월 15대 대선기간 중에 터진 한국의 외환-금융위기는 그간 몇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지칠 줄 모르게 성장해온 한국경제를 미증유의 위기국면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한국은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IMF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되며, 97년 12월 15대 대선을 통해 출범하게 된 김대중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IMF 처방을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니라 위기 극복과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한 한국민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삼겠다고 공언하는 가운데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구조개혁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그런데 사회질서 전체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과들을 산출하고 있다.

1) 사회질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국민경제를 세계시장에 더한층 공고히 편입시키고 있고, 자본들 간의 관계를 금융자본 지배체제로 변모시키고 있다.―이에 따라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체제는 (미국의 금융자본이 중심이 된) ‘초국적 금융자본의 전세계적 지배체제’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 그런데 신자유주의란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의 증대를 절대적 잉여가치생산에서의 일정한 양보와 결합시킨 ‘케인즈주의’와는 달리)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모두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축적전략으로서 ‘노동유연화’ 공세를 그 핵심적인 측면으로 지니고 있다. 노동유연화 공세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① 노동과정으로부터 산 노동을 대량으로 추방함으로써 상대적 과잉인구 및 취업기회를 영구히 상실한 사회적 탈락층인 상대적 과잉인구를 증대시키고 있고, 불안정노동의 비중을 증대시키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전면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② 이른바 ‘비물질적 노동’ 내지 지식노동의 비중을 증대시키고 정보통신분야 및 문화산업 분야 등에 새로운 노동자층을 형성시키고 있으며, 산업노동자층의 비중을 감소시키고 있다.
③ 고용과 해고 및 노동과정 통제에 있어서의 수량적 유연성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전략의 결과로 정규직 노동자층과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층간의 분할과, 소수의 ‘다기능 전문기술 지식노동자층’과 (미숙련노동자, 중소기업노동자, 여성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이민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다수의 ‘주변부 노동자층’으로의 분할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계급분할’을 촉진시키면서 자본은 대체로 노동자계급의 상층을 포섭하고 다수의 하층을 배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하나의 계급으로의 단결을 저지하고 ‘계급해체’를 촉진시키고 있다.

2) 국가가 ‘주식회사 국가’의 성격을 지닌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로 변모함과 더불어 시장경제적 논리에 대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소멸되고 있고, ‘경제논리로의 정치의 종속’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기업국가는 자본에 대해서는 자본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약한 국가’로 기능하면서도, 노동과 피지배대중에 대해서는 사회구조의 신자유주의적 개편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뒷받침하고 그 개편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거나 탄압하는 데에 앞장서는 ‘강한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척됨과 더불어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가 많은 적든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국가’ 내지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과 더불어 종속적 신자유주의국가에서 국가체제의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로의 전화는 한층 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3)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소유적 개인’으로 원자화․파편화시키고 있으며, 이들 개인들을 경쟁논리와 업적에 의한 보상체계 하에 종속시키고 있는데, 이는 계급해체를 촉진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나아가 모든 나라에서 거의 예외 없이 경쟁, 효율성 등이 절대시되고 있고, 부가가치 내지 이윤 창출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으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상품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4) 시민사회가 신자유주의적 개편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반이 되면서 ‘시민운동단체들의 준국가장치화’가 초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는 속에서 시민사회가 실질적으로 소멸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 새로운 유형의 시민사회를 시장적 가치를 절대시하고 그 가치에 따라 사회적 관계 전체를 주형하는 ‘시장전제정사회’, ‘시장주의적 전체주의사회’ 내지 ‘시민사회적 전체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시민사회적 전체주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국가체제’의 사회적 기반이 되고 있다.

5) 정치․경제질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편과정은 어디에서나 소수 독점자본으로의 부의 집중과 소득불평등구조를 심화시킴으로써 다수대중의 생존권을 항상적으로 위협하고 다수대중의 ‘절대적 궁핍화’를 가져옴으로써 무엇보다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고 있고 ‘사회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수의 중간층은 몰락하고 있지만 그 일부는 금융화의 과정에서 ‘골드칼라’로 성공적으로 편입되고, 가계 금융화의 주력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금융화의 혜택을 보는 중간층은 매우 협소하다.) 그런데 이 과정은 노동자․민중의 사회적․정치적 권리가 훼손되는 과정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이후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민주주의의 더 한층의 발전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질적 후퇴가 이루어지고 있고,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훼손되는 만큼 민주주의의 형해화․공동화 역시 진척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노동자층의 분할과 해체를 촉진시키면서도 사회를 ‘20 대 80의 사회’로 만들고 있는 사실과 관련하여, 우리는 그러한 분화와 해체가 크게 보면 ‘사회의 양극화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6)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시장경제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경제적 관계에 종속되고 있고 가치창출이 가능한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있는 과정은 동시에 ‘화폐권력의 전능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 화폐권력이란 사실은 자본권력의 외화형태이다. 그런 만큼 시장적 관계로의 전일화는 사회 전영역의 자본권력에로의 포섭과 자본권력의 강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장적 관계로의 전일화 과정은 자본 지배의 모순을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7) ‘20 대 80의 사회’로의 전환은 일국적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 수준에서 진척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중심부독점자본의 이익만이 아니라 세계시장 속에서 자기증식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종속국가들의 독점자본들의 이익에도 기본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을 오직 제국주의자본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과정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진척과 더불어 중심부국가와 종속국가들 간의 격차 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미국의 초국적 독점자본 중심의 독점자본 대 전세계 노동자․민중간의 대립구도를 지구적 수준의 가장 중요한 대립구도로 부각시키고 있다.

노동유연화 공세가 중심을 이루는 국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본격화되면서―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공세의 핵심이 ‘금융세계화’ 등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유연화 공세’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의 노동운동 지형은 크게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의 주된 측면은 ‘고용안정 투쟁’ 등이 임투를 대신하여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의 중심이 되고, 집단적 노사관계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대신하여 민영화반대투쟁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대정부투쟁의 중심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공세가 본격화 된 후 이러한 형태의 투쟁은 밑으로부터 줄기차게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국 도처에서 그러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민주노조운동의 그간의 성장-발전은 그러한 투쟁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밑으로부터 그러한 투쟁이 줄기차게 전개되고 있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은 여전히 국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공세에 밀리고 있으며, 밀리고 있는 만큼 계급분할과 계급해체의 과정이 더욱 진척되는 사태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진척되고 있는 이유는 사회적 관계를 주형하는 지배적인 힘인 국가와 자본이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을 강제해 나감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이 경쟁논리에 더 많이 휘말리게 되고, 위계성을 지닌 여러 부분으로 분할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상층을 포섭하고 하층을 배제하는 전략에 휘말리고 있는 데에 기본적으로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인들은 계급분할과 계급해체를 촉진시키는 객관적인 요인에 속하는데,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그 주체적 요인들이 무엇인가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공세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편으로는 계급분할, 계급해체를 촉진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자계급의 전반적인 불안정노동자화, 다수 중간층의 몰락과 다수대중의 절대적 궁핍화 및 자본 지배의 모순의 사회 전 영역으로의 확산과 같은) 새로운 형태로 계급형성을 촉진시키고 민중연대를 한층 확대-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3. 노동운동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노동운동 자체의 요인들
위에서의 논의와 관련하여 오늘날 노동운동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노동운동 자체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규명해 보자.

1) 계급타협주의적 노선의 등장: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그 연대의 폭을 넓히고 그 수준을 높여 전노협의 결성을 거쳐 민주노총의 건설을 성취해냈다. 그런데 전노협이 ‘변혁지향적 노조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총 제1기 지도부의 운동노선은 집단적 노사관계의 민주화 내지 민주노조운동의 합법화를 보장한다면 체제내적 개혁을 추구할 것임을 공식화하고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의 길을 열어 놓은 계급타협주의적 노선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총 1기 노선’(내지 ‘민주노총 1기 지도부노선’)은 크게 보아 ① 변혁지향성의 포기와 체제내적 개혁의 추구, ② (‘국가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과 같은) 상위적 자본이데올로기의 수용과 계급타협주의의 옹호, ③ 시민운동적 성격의 운동 추구와 같은 특징을 지닌 것이었는데(이에 대해서 졸고, “국민승리21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장에서 미래를』제41호(99년 2, 3월호) 참조), 이 노선은 이후 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반대투쟁을 확대-발전시키기보다 그 투쟁을 일정한 수준에서 제어하고, 집단적 노사관계의 민주화 등을 대가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묵인하거나 지지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밑으로부터의 노동자투쟁의 성장-발전을 교란하고 방해해 왔다(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우리는 96말~97년 초 노동자총파업투쟁을 투쟁의 고조기에 서둘러 종결시킨 것, 98년 2월 노사정위에서 민주노총이 교원노조의 합법화 및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허용 등을 약속받는 대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법제화에 찬성하는 것, 2002년 4월 발전노조 파업에 연대하는 총파업투쟁을 별다른 명분 없이 유보시킨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노조지도부의 계급타협주의적 처신은 민주노조운동에 심대한 정체성위기를 안겨주었으며, 지도부와 실천적 조합원 및 현장활동가들 간의 괴리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이후 전국적 수준의 총파업투쟁의 조직화 등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다른 한편, 지도부의 계급타협주의적 노선의 추구는 민주노조진영내부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게 되고,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민주노조 제2기 지도부의 시도로 대변되는 그러한 혁신운동은 그러나 철저하고 수미일관되게 행해지지 못했으며, 계급타협주의적 노선과 결부되어 있었던 정치노선인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 방침을 청산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민주노조진영 내부의 계급타협주의적 노선은 오늘날에도 ‘사회적 합의주의’ 나 ‘사회적 조합주의’ 노선 등으로 이어지면서 민주노조진영 내부의 강력한 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임단투 중심의 전투적 투쟁 지양,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선에서 ‘차선’의 추구, 정책참가 및 노사정위원회 참가 옹호, 시민들의 공감을 확보할 수 있는 사회개혁 투쟁 중시 등을 옹호하는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노선은 그간 <한국사회연구소>가 앞장서서 제창해 왔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는 그간 생존권 확보와 구조조정 반대를 위한 전투적 투쟁의 전개, 생존권투쟁과 민주주의의 확대-심화 및 사회화를 위한 투쟁의 결합, 당면과제 해결을 위한 투쟁과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의 결합, 변혁적 정치조직의 건설 등을 옹호하는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론’을 주창해 왔다.)

2) 민주노조운동 상층부의 관료주의화 경향: 계급타협주의적 작풍의 만연 등으로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그 투쟁을 더 큰 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지도부의 활동이 약화되면서 전노협 시절에는 소속조합원들이 ‘내가 곧 전노협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지도부와 조합원간의 관계가 긴밀했다면, 민주노총 건설 이후에는 ‘민주노총은 만주노총이다’라는 비아냥이 나돌 정도로 민주노총 건설 이후 지도부와 조합원들―여기서 말하는 조합원은 무엇보다 전투적 조합원들, 현장활동가들을 가리키는 개념이다―과의 관계는 크게 보아 갈수록 소원해지고 괴리되는데, 그러한 괴리현상이 강화될수록 민주노조운동 지도부의 관료주의화 경향이 한층 더 강화되는 현상 역시 나타났다. 나아가 이러한 경향은 한편으로는 밑으로부터의 투쟁이 활성화되는 것을 방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로부터의 투쟁의 조직화를 어렵게 만듦으로써 노동운동 전체의 발전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되고 있다.
3) 대기업 및 정규직 노조의 이익집단화 경향: ‘배제와 포섭’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대노동전략이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계급분할, 계급해체를 촉진시키는 가운데 비상한 각오와 명백한 요구를 내건 파업과 자발적으로 뭉친 대중들의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 투쟁이 노동자계급을 하나의 계급으로 상승시키려는 목적의식적인 노력과 결부되지 못함으로써 투쟁의 성과는 대체로 대기업이나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노동자상층에게 집중되고 그 결과 이들이 (기업수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고 있는 반면 그 피해가 하층 노동자층에게 집중되고 그 결과 이들 하층이 더욱 파편화되고 개별화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 및 정규직 노조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대기업 및 정규직 노조의 이익집단화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눈부시게 진척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경향이 진척되면 될수록 자본에 실질적이고 명백한 타격을 주는 위력 있는 노동자투쟁의 전개 및 노동자들의 하나의 계급으로의 상승은 더 한층 어려워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4) 의회주의적 정치노선의 지지: 노동자세력의 의회진출 등이 요구되지만,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저지하고 사회변혁을 추진해 내는 힘은 의회에서의 표결이나 법 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의 고양, 대중정치의 활성화-급진화이다. 이 점에서 의회에의 진출 역시 그 진출이 대중투쟁의 성장-발전, 대중정치의 활성화-급진화에 기여하는 한에서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사민주의적 정치에 의해 대표되는 개량주의 정치노선은 정치=당, 경제투쟁=노조란 이분법에 기초하여 정치를 제도권정치로 축약시키는 한편 대중투쟁의 성장-발전과 대중정치의 활성화-급진화를 방해하는 의회주의적 정치노선으로 특징지워지는데―사민주의의 그러한 의회주의노선은 대중정치의 성장-발전을 항구적으로 방해왔는데, 이는 다시 사민주의가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굴복하는 사태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오늘날 민주노총은 그러한 의회주의적 정치노선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을 뒷받침하는 디딤목이 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반대투쟁을 조직화해 내는 민주노조진영 자체의 역량이 약화되고 만큼 의회주의정치노선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고, 그러한 현상이 강화될수록 대중투쟁의 전개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장래와 관련하여 극히 우려되는 사태발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노조간부들이 관료화되면 될수록 이들이 의회주의정치노선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무엇을 행할 것인가?
1) 현장투쟁의 강화: 노동자투쟁의 기초단위로서의 현장투쟁, 현장에서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 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위해 대중에 뿌리를 내린 현장활동가들의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2) 비정규직 내지 불안정노동자운동의 활성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가장 큰 피해자층인 이들이 피해자집단이라는 공동의 이미지만을 지닌 채 자신의 집단적 미래를 찾지 못한 채 파편화되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 요구된다. 이들 자신의 주체적 조직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연대가 이루어져야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출범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한편, 불안정노동자운동은 조직되기 어렵지만, 일단 조직화되면 노동운동의 가장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부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변혁적 노동자정치운동의 기본대오로 만들기 위한 목적의식적 노력이 요구된다.

3)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혁신의 기본내용은 관료주의적 작풍의 청산, 전투성의 회복,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계급적 연대의 추구,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 노선의 폐기 등이 되어야 한다.

4) 신자유주의반대 민중연대전선의 구축: 기층민중연대를 중심으로 공공성의 회복, 탈상품화를 요구하는 모든 사회운동 및 소수자운동과 연대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반대를 축으로 하여 환경, 여성운동 등과의 연대의 폭도 넓혀 나가야 하며, 그 연대는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해 가야한다.

5) 변혁적 정치조직의 건설: 노동자계급을 하나의 계급으로 상승시키고, 반제반독점민주변혁에 복무하는 변혁적 정치조직이어야 하며, ‘대중정치의 활성화, 급진화’를 추구하는 비제도적 투쟁정당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것이다. 대중에 뿌리를 내린 선진노동자층이 주축이 되는 조직이어야 한다.


5. 결론
우리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노동자대중 자신이 계급분할, 계급해체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신자유주의반대투쟁 및 이를 매개로 한 반제반독점민주변혁의 진정한 정치적 주체로 얼마나 나설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선거나 노동자세력의 의회진출 역시 그러한 과정을 촉진시키는가 아니면 저지시키는가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월15일 정부가 근로기준법 개악안과 경제특구법안 및 공무원조합법안을 의결함으로써 제2의 노동법 개악의 포문을 열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악안의 국회상임위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이 투쟁이 노동자계급의 신자유주의투쟁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민주노조운동 혁신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한/노/정/연

2002-11-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3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