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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81호
류미경

경제특구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류 미 경
투자협정WTO반대국민행동 사무국장





남한을 동북아의 물류, 금융, 기업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경제특구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안)」이 지난 10월 15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상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대중정부가 지난 5년간 추진해온 외자유치 정책의 결정판인 이 법안은, 그 동안의 외자유치정책이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철저하게 짓밟는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국회에서의 본격적인 심의를 앞두고 이루어진 전문위원 검토에서도 ‘수도권으로 자본이 집중됨에 따라 지역간 불균형이 심화될 것임’, ‘국내 기업들을 역차별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음’,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적 측면이 있음’ 등 그 효과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국회 통과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예측되기도 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주5일제’ ‘공무원조합법’과 함께 이 법안을 폐기하라는 투쟁에 나섰다.


법안의 주요 내용
인천국제공항과 부산항, 광양항을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만들고, 그 주변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여 해외투자를 대폭 유치하겠다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경제특구법안」이다. 따라서 이 법안은 경제특구로 지정되는 지역에 투자를 하는 해외투자자들이 누릴 수 있는 온갖 특혜를 열거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되는 지역에 입주한 외국인투자기업은 「근로기준법」상의 ‘월차휴가’와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할 수 있고, 경제특구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면 「파견법」상의 파견대상 제한 업종과 파견기간 제한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외국인 투자기업은 개발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사업 승인을 얻는 것만으로, 약 30여 가지에 이르는 환경관련 인허가 조치를 일괄 타결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경제특별구역 내에서는 외국인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사립학교법」, 「의료법」에 상관없이 외국인들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학교 및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기업들은 조세감면, 자금지원, 국․공유지의 임차․매수 등 각종 혜택을 누리게 된다. 한마디로,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환경 파괴를 규제하는 법적 근거를 무력화하고, 교육․의료의 공공성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금융화된 세계경제에 종속적으로 편입하는 것을 경제위기 극복 전략으로 삼아온 김대중정부는, 지난 4년 동안 ‘외자유치’를 최우선의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초국적 자본에 최적의 투자환경을 제공하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각종 조처들을 단행하여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했다. 또한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했던 각종 금융구제를 완화하고자 했다. 교육업 등 일부 투자금지항목, 공기업 등 투자지분 제한항목 이외에 모든 부분을 완전 개방했고, 공기업에 대한 개인소유, 외국인 투자지분의 제한정도를 완화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제정하여 외국인투자기업에게 각종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부여했고, 2단계에 걸친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를 통해 기업간․개인간 외자의 유출입을 자유화했다. 이밖에도, 얼마전 국회비준절차를 마친 ‘한일투자협정’, 협상중인 ‘한미투자협정’ 등 양자간 협정을 통해 해외투자자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손실이 없도록 ‘소유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조처를 마련했다. 이렇듯 김대중 정부는 초국적 자본에 온갖 혜택을 주면서 한국 사회를 이들의 투기장으로 변모시켜 왔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경제특구 법안은 한술 더 떠, 외자유치를 위해서 노동권을 내팽개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더욱 적극적인 투자유인책이 필요하니, 노동권-환경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근거들을 모조리 포기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극도로 유연한 노동력’과 ‘노동자 민중의 제반 권리를 파괴할 수 있는 특혜’를 유인책으로 삼아, 오로지 해외투자 유치에 한국 사회의 미래를 송두리째 내거는 참으로 위험한 도박이다.


불안정 노동의 양산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 실현방안」은 특정도시를 이른바 ‘세계도시’로 개발, 외자유치를 촉진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인천공항 인근지역인 영종도, 송도, 김포 매립지, 고양시는 각각 ‘국제적인 관광-레저단지’, ‘국제 업무-지식기반산업 중심지’, ‘국제금융단지’, ‘관광-숙박전시단지’가 된다. 부산항, 광양항 주변은 지방의 수출 및 물류 거점인 ‘자유무역지역’이 된다.
오늘날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데 관건이 되는 것은, 금융화된 초국적 자본이 선호하는 첨단 IT산업 기반과, 금융귀족들이 회합,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각종 레저 및 편의시설 등의 서비스 기반, 그리고 이에 종사할 비정규, 불안정 노동층이다. 70년대 수출자유지대가 노동3권이 적용되지 않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필요로 했다면, 오늘날 경제특구는 금융귀족들의 소비를 충족시킬 하인노동을 제공하는 각종 비공식, 비정규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경제특구법안」을 통해 경제특구 내에서 사실상 근로자파견제를 자유화하고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이러한 시도를 한정된 지역에서 노동권을 제한하려는 것쯤으로 여길 수만은 없다. 재경부는 경제특구가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 혹은 지역간 차별을 조장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 그 범위와 대상을 확대해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근로기준법과 파견법이 적용되지 않는 ‘자본의 특구’가 확산될 것이다. 또한 역외펀드로 들어오는 재벌기업에게도 동일하게 법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극악한 노동조건을 경쟁의 무기로 삼는 ‘밑바닥을 향한 경쟁’은 끊임없이 계속 될 것이다.


투기행위의 확대
김대중정부는 ‘해외투자 유치만이 한국 경제가 살 길’이라고 외쳐왔다. 그러나,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해외투자’는 공장을 설립하는 등 생산설비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행위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산업자원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한 해 동안 외국인 직접투자(신고기준)는 3,424건, 118억7천만 달러이다. 그러나 이 중 공장을 실제로 짓고 신규고용을 창출한 투자는 단 한건뿐이었고, 외국자본이 증자를 하여 시설투자와 고용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투자까지를 포함해도 전체 직접투자의 10%를 넘지 않는다.
이를 제외한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헐값에 나온 국내기업을 사거나, 지분을 인수하였다가 다시 되파는 주식투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외자유치 가운데는 국내 자금이 해외 조세피난처의 역외펀드를 통해 들어오거나, 외국의 투기자본에 담보를 제공하고 들여오는 사실상 ‘해외차입’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외자유치’란 것이 초국적 금융자본이나 이에 편입된 국내재벌기업의 투기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몰두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은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기업의 항상적인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임금억제, 노동강도 강화, 고용불안을 획책한다. 그럼으로써 생산활동과는 전혀 상관 없이도 주식가치를 증대하여 이윤을 남기고, 거품을 형성하였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여 국민경제 전체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온다. 아르헨티나와 같이 급격한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거품형성과 뒤이은 붕괴, 그리고 이에 따른 외환․외채위기로 국가경제가 파산 나버린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역간 불균형의 확대
금융세계화에 안정적으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형평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생존을 위한 차별화’ 중심으로 정책을 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이 제시하듯, 특정 지역만 ‘세계도시’로 육성하여 산업기반과 자금을 집중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국은 기본적인 노동법조차 무시되고 금융투기가 만연하는 ‘외자유치의 발판’과, 산업기반이 전반적으로 붕괴되는 지역으로 양극화될 것이다. 이것이 양자의 노동자․민중 모두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탄광촌이었던 정선이 ‘부족한 세수를 늘리고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폐광카지노를 설립하면서 지역전체가 도박장이 되어 고용이라고는 청소․경비 등의 용역직 밖에 남지 않는가 하면, 그 인근 태백 등은 주민들의 급속한 전출로 ‘공동화’를 이루게 된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미 수도권 중심으로만 금융시장, IT산업이 팽창하여 자금이 이곳으로만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중소기업의 연쇄부도, 지역 금융기관의 합병과 퇴출을 겪고 있다. 「경제특구법안」의 도입은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지역간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경제특구법안,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정부는 외자 유치만이 한국 경제가 살길이므로, 이에 따르는 다소간의 고통을 참을 것을 강요해왔다. 이제 「경제특구법안」의 도입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기업의 천국’으로 일컬어지는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이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데에는, 낮은 임금을 유지하는 데 앞장섰던 노동조합의 역할이 컸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 스스로의 위기를 다시 한번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에는 ‘국가 신인도’를 내세워 사상 초유의 정리해고를 단행하며 노동자․민중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더니, 이제는 동북아의 비즈니스 중심 국가가 되겠다는 장밋빛 환상을 내놓고는, ‘이것의 성공 여부가 모두 노동자들에게 달려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덩달아 전경련은, 특정 지역에 한정하여, 그리고 해외투자자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경제특구법안」이 역차별을 조장한다며, 그 범위를 전국으로, 그 대상을 국내기업에까지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아예 한국 사회 전체를 ‘무법지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경제특구법안」이 아무런 보장 없는 미래를, 노동자․민중의 삶을 담보로 기약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민중의 삶을 파탄내고, 한국 사회를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경제특구법안」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한/노/정/연

2002-11-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3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