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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수색지구의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

현장에서 미래를  제83호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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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연대로 빚은 소중한 승리
철도노조 수색지구의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


김 상 현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승무지부 교육선전부장





1. 들어서며
지난해 12월 5~7일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산하 수색지구 4개 지부는 노조 간부에 대한 부당한 징계와 전출 조치에 맞서 ‘안전운행 집중실천’이라는 이름으로 준법투쟁을 벌였다. 수색지구의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은 총파업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했고 결국 노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2․25 총파업 투쟁 이후 현장의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수색지구의 투쟁은 노조탄압 분쇄투쟁의 돌파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철도 현장투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자못 의의가 큰 투쟁이었다. 이에 여기서 그 진행과정과 의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수색지구는 서울역에서 시․종착하는 거의 모든 열차의 조성과 차량의 정비 및 운전을 담당하는 곳으로써 전국 철도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색지구에는 각 직종별로 가장 투쟁력이 높은 서울기관차승무지부, 서울차량지부(객차․화차 정비), 수색차량지부(기관차 정비), 경의일산선역연합지부 등 4개 지부가 모여 있다. 그리고 수색지구 4개 지부는 2․25 총파업을 전후로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지구 차원의 연대를 꾸준히 실천해왔다.


2. 부당 징계 철회투쟁에 나서다
또 다시 재연된 막가파식 징계
지난해 11월 2일 철도청 서울지역관리역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수색역장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수색역 수송원으로 근무 중인 김**동지(경의일산선역연합지부 여성부장)에 대해 1개월 감봉과 함께 인사조치(전출)를 의결했다. 애초 김**동지에 대한 징계는 근무지에 민주노동당이 제작한 선전물을 부착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선전물 부착이 국가공무원법상 정치활동금지 위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지역관리역은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징계를 강행했다.

수색지구 4개 지부 연대투쟁 결의
김**동지에 대해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징계가 강행되자 경의일산선지부는 즉각 부당징계 철회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했고 서울기관차, 서울차량, 수색차량 등 3개 지부도 연대투쟁을 결의했다. 그리고 11월 15일 수색지구 4개 지부는 확대간부회의를 개최하여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요구안과 투쟁계획을 확정했다. 요구안은 징계 철회보다는 인사조치(전출) 철회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한번 의결된 징계를 번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과 함께 전출이 징계보다 훨씬 더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린 여성 동지에게 무연고지 전출은 사실상 퇴직 강요에 다름 아니다. 요구안은 △수색역장의 공개 사과, △본인이 희망하는 근무지로의 재배치, △소청심사위원회 탄원서 제출 등 3개항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11월 16일부터 수색역장실 앞에서 매일 항의집회를 개최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천막농성과 준법투쟁을 전개하기로 투쟁계획을 마련했다.

항의집회와 천막농성
수색지구 공대위는 11월 16일을 기해 매일 아침 수색역장실 앞에서 항의집회를 개최했다. 공개 사과와 부당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에게 수색역장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발뺌하다가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11월 20일 경의일선선 지부 조합원 총회 직후 경의일산선 지부장은 ‘파면을 각오하고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삭발과 함께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천막농성과 함께 공대위는 선전팀을 구성하여 투쟁속보를 발간하고 전국 현장에 수색지구의 투쟁을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11월 27일 공대위는 인사권자인 서울지역관리역장 항의방문 투쟁을 전개했다. 항의방문 직후 서울지방본부의 중재로 서울지역관리역과 처음으로 노사협의를 가졌다. 첫 번째 교섭은 노사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고, 다음 날 2차 교섭도 결렬되었다. 서울역장은 내규를 들며 1년 내에 원소속 복귀가 불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러한 가운데 11월 28일 철도청은 정기 인사 형식을 빌어 전격적으로 수색역장을 제천역장으로 전보 발령을 냈다. 철도청은 사실상 문책성 인사를 통해 사태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을 결의하다
수색역장의 전보 발령 이후 공대위 내외에서 투쟁을 종결짓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약간의 진통 끝에 공대위는 3개항의 요구안이 관철될 때가지 끝까지 투쟁하기로 결의하고 계획한 준법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11월 29일 수색지구 2차 확대간부회의는 준법투쟁의 방식으로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세부 전술은 전술팀에서 수립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수색지구는 2․25 총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반 규정을 준수하는 준법투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준법투쟁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전술팀은 지난 경험에 대한 평가와 함께 각 지부별로 마련한 실천지침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전술을 수립했다.
1단계 안전운행 투쟁은 조합원들의 부담을 고려하여 매일 14시~18시까지 4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시간대는 대부분의 차량이 연료만 주입한 채 반복 운용되기 때문에 투쟁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시간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세부 실천지침은 모든 규정을 준수하기보다는 조합원들이 실천하기 쉽고 열차운행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큰 사항들로만 간추렸으며, 불법태업이라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관리자들이 각종 교육을 통해 강조하는 사항을 실천지침으로 삼았다. 아울러 안전운행 투쟁의 성패는 서로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조합원들의 상호 신뢰와 유기적인 협조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각 지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침만 최종적으로 방침에 포함시켰다.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실천하기 힘든 지침을 포함시키게 되면 상호불신이 싹 트게 되고 결국 연대투쟁은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안전운행 투쟁에서 또 다른 관건은 서울기관차승무지부 이외 소속 승무원들의 협조 여부였다. 실제 수색에서 입․출고하는 열차의 절반 이상을 타소속 승무원이 담당하기 때문에 이들의 협조 여부는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사활적 문제였다. 이를 위해 서울기관차승무지부 간부를 서울역에 상주시키는 한편 선전유인물을 제작하여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로 했다.
전술팀은 각 지부별 실천지침을 확정하고 이를 수첩으로 제작하여 조합원들에게 배포하기로 했다.

* 경의일산선역연합지부 실천지침
달리는 차량에서 내리거나 올라타지 않기/ 입환 작업시 뛰지 않기/ 입환속도 안전속도로 유지하기/ 안전받침대나 승강장이 없는 열차 매달려서 입환하지 않기/ 곡선구간 몸을 내밀어 입환기나 전호등 흔들지 않기/ 3인 이상 입환조 유지하기/ 입환시 열차감시 배치하기/ 주야간 모두 육안확인 입환하기 (무전기사용 자제)/ 입환기 1대로 입환하기 (인접선로 동시입환 금지)/ 열차운행시 인접선로 입환금지/ 위 사항 실행시 기관사나 검수원에게 사전설명

* 서울기관차승무지부 실천지침
제한속도 지키기/ 서울역 회송열차 출발시 발차전호 확인후 발차하기/ 수색-서울간 회송열차 무리하게 회복운전 하지 않기/ 수송원 규정입환 협력/ 수색차량 규정검수 협력/ 시발역 열차조성시 제동시험 철저

* 서울차량지부 실천지침
안전검수/ 차가 검수선에 도착하면 공기걸고 검수 시작/ 불량차 유치(디스크 균열등)/ 라이닝 및 슈 규정대로 교환/ 발기 불기전 모든 공기통 열어 수분 제거/ 차량의 불량 상태 기관사에게 전달
- 제동시험시 기관사와 함께 시행/ 보수품 유용하지 말 것

* 수색차량지부 실천지침
작업지시서 전달받은 후 검수 시행/ 기관사로부터 불량개소 인계 받으면 정확히 확인 및 수리


3.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과 철도대란
최종 교섭 결렬
12월 2~4일 3일간 4개 지부는 각 지부별로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고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의 의의와 세부 지침에 대해 조합원들의 결의를 모아냈다. 이 과정에서 12월 4일 서울지역관리역과 마지막 교섭이 열렸다. 마지막 교섭에서 서울지역관리역은 인사권자의 유감 표명과 1년 뒤 본인이 희망하는 근무지로 재배치하되 탄원서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대위는 사과를 대신한 유감 표명에 대해서는 합의할 수 있고 근무지 재배치 경우도 탄력성을 발휘하여 소청심사가 끝나는 3개월 이내로 하자는 입장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대위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고 협상은 결렬되었다.

총파업에 버금가는 위력을 떨친 안전운행투쟁
12월 5일 4개 지부는 천막에 상황실을 설치하는 한편, 조합과 지방본부의 지원을 받아 각 사무소와 수색역 구내, 그리고 서울역 요소 요소에 간부를 배치하고 안전운행 투쟁을 제반의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14시를 기해 안전운행 집중실천투쟁에 돌입했다. 애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수색역으로 입출고 하는 타소속 승무원들도 적극적으로 투쟁에 협조했다. 투쟁의 효과는 즉각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색역을 출발한 열차들이 서울역에 속속 지연 도착하기 시작했으며 1시간 정도 경과하자 서울역 시발 열차의 출발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한번 열차가 늦어지기 시작하자 연쇄반응을 일으켜 모든 열차의 출발이 지연되었다.
서울역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대합실과 각 홈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넘쳐 났고 사과방송이 끊이질 않았다. 서울역뿐만 아니라 영등포역, 수원역, 평택역, 천안역, 대전역 등 주요 정차역에서도 열차의 지연도착으로 말미암아 대혼란에 빠졌다. 18시 안전운행 투쟁이 종료된 이후에도 열차운행이 정상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첫날 안전운행 투쟁은 대성공이었다.

철도대란
첫날 성공적인 투쟁으로 간부들뿐만 아니라 조합원들 모두 크게 고무되었다. 12시에 개최된 중식 집회에는 전날보다 훨씬 많은 조합원이 결집했으며, 조합과 지방본부 그리고 다른 지부에서도 대거 지원을 해왔다. 철도청도 감사반과 안전지도관을 총동원하여 안전운행 투쟁을 막고자 했다.
14시를 기해 안전운행 투쟁이 재개되었다. 전날 투쟁 소식이 전국적으로 퍼졌기 때문에 별도의 홍보나 교육도 필요 없었다. 6일은 임시열차가 증편되는 주말이기 때문에 전날보다 투쟁의 효과가 더욱 크게 드러났다. 14시 30분 출발하는 285열차가 2분 지연 출발한 것을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출발이 지연되었다. 최장 1시간 늦게 출발하는 열차마저 나왔다. 18시를 기해 안전운행 투쟁을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파가 계속되어 서울역을 출발하는 마지막 열차까지도 정시에 도착하지 못했다.
결국 열차지연사태가 TV뉴스에 보도되었다. 느닷없는 홍역을 치른 각 사무소, 역 관리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부당 징계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대위는 토요일은 7일부터 안전운행투쟁을 2시간 연장하여 13시부터 19시까지 실천하기로 결정했다.

“차량과 운전, 그리고 운수 조합원이 하나되어 호흡을 맞추는 것을 보니 차라리 ‘예술’이었습니다. 파업보다 더 어렵다는 규정 입환을 눈으로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고, 목이 메어질 것 같았습니다. 독려를 하러 갔다기보다 거기에서 진한 동료애와 힘을 얻고 왔다는 표현이 오히려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철노 홈페이지 게시판)

마침내 철도청이 백기를 들다
투쟁은 전면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연 이틀 속수무책으로 당한 철도청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영업본부장과 안전환경실장 등 철도청의 최고위 간부를 비롯하여 노정과와 감사반, 안전지도관, 서울지역과 대전지역 관내 승무사무소 소속장 및 관리자들을 총동원하여 수색에 집결시켰다. 이에 맞서 조합과 서울지방본부 전임간부 및 해고자들도 수색으로 총집결했다. 오전부터 수색지구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철도청은 열차 지연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해 장항선을 운행하는 열차 등에 대해 입고하지 않고 서울역에서 반복 운행하도록 지시하고 일부 열차의 출고지를 용산과 청량리로 변경했다. 그리고 수색~서울역간 운행하는 열차에 대해 중간역에서 1분간 정차하도록 하는 운전명령을 하달했다.
13시를 기해 안전운행 투쟁이 재개되었다. 철도청은 열차지연이 기관사가 준법운전을 한 탓으로 오판하고 각 기관차마다 감사반원과 안전지도관을 동승시켜 감시했다. 그리고 수색구내 전역에 관리자들을 배치하여 조합원들을 감시했다. 하지만 이들의 감시도 규정 준수 투쟁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할 수 없었다. 전날보다 지체되기는 했지만 열차의 출고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철도청도 점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오후에 열린 교섭에서 철도청은 공대위의 요구를 100% 수용했다. 마침내 철도청이 백기 항복을 한 것이다. 7일 안전운행 투쟁은 두 시간에 종결되었다.


4. 뜨거운 연대로 빚은 소중한 승리: 직종을 넘어선 단결투쟁
“지금 수색지구 조합원은 최상의 단결력과 투쟁력 그리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3개 직종이 똘똘 뭉쳤기 때문에 각 직종의 단순 합 보다 몇 배의 시너지 효과를 유감없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직종의 동의 없이 어느 한 직종이 힘들다고 먼저 투쟁을 접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제 공동운명체가 된 것이다. 농성장에서의 호형호제하는 따뜻한 정감이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정말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철노 홈페이지 게시판)

이번 수색지구의 안전운행 집중실천 투쟁은 철도 현장에서 운전과 차량, 운수 직종이 하나되어 투쟁한 첫 번째 현장투쟁 사례로 기록될만하다. 그리고 직종을 넘어선 단결투쟁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간부들이 열정적으로 설득한다면 직종의 벽은 ‘불가피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님을 여실히 확인시켜 주었다.

현장은 살아 있다!
2․25 총파업 이후 철도노조는 현장이나 조합, 지방본부 할 것 없이 끝없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파업 이후 청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계속 밀린 결과이다.
파업 이후 철도노조의 행보는 철도노동자의 생명력을 훼손하는 과정이었다. 조합원들보다 간부들이 먼저 숨을 죽이기 시작하였고 전임간부들은 현장을 도외시하였다. 현장성을 상실했을 때 남는 것은 상층 중심의 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참담한 상황이 그 결과이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살아 있고 조합원들의 잠재력은 파업 때보다 한층 더 강해졌음을 이번 수색투쟁을 보면서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조합원과 함께 하는 지도부만 있다면 우리는 파업 때보다도 몇 배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조합원과 간부간에 깊은 신뢰만 있다면 우리 앞에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준법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다
이번 수색지구의 안전운행 투쟁은 준법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 노조가 확실한 무기를 하나 개발한 것이다. 지난 총파업 투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철도노조는 다양한 준법투쟁 전술을 구사했다. 스티커 부착, 쟁의복 착용 등등. 하지만 당시의 준법투쟁은 소모적인 반면 효과가 그리 크지 못했다. 철도청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해말 법원의 조합비와 개인임금에 대한 64억원 가압류 결정이 남에 따라 철도노조는 이를 집행할 시 12월 26일부터 안전운행 투쟁에 돌입하기로 했었다. 결국 철도청은 가압류 집행을 유보했다. 수색지구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주요 지구에서 안전운행 투쟁이 벌어진다면 철도는 곧바로 운행중단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당한 징계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번 수색지구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보다도 철도청의 막가파식 징계 관행에 제동을 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철도청은 매 시기 징계의 칼날을 앞세워 노조를 탄압하고 현장 투쟁을 잠재워왔다.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 의무, 복종의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 등은 일체의 노조 활동에 대해 징계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철도청은 일단 해고하고 전출시킨 뒤 소청이나 소송을 통해 살아오라는 식의 징계를 남발해왔으며, 노사합의 혹은 선처를 약속하고도 투쟁이 수그러들면 반드시 보복을 해왔다. 이러한 막가파식 징계로 수많은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했으며, 심지어 가정파괴로 자살한 동지마저 생기기도 했었다.
이제까지 철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현장 투쟁은 사실상 부당징계(전출) 저지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간 철도 민주노조운동은 징계의 칼날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 민주노조 출범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투쟁은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징계를 내린 자가 오히려 전출을 당한 것이다. 투쟁 직후 한 본청 관리자가 “이제 징계를 하려면 사전에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푸념을 늘어놓은 것처럼 명백한 비위 사실이나 과실이 없다면 함부로 징계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징후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노/정/연

2003-01-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