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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임금,이윤,그리고 초과노동 할증율

현장에서 미래를  제83호
채만수


                                                            


노동시간단축투쟁의 쟁점







채만수 ∙ 노동시간, 임금, 이윤, 그리고 초과노동 할증률

이종호 ∙ 주5일제 투쟁, 반성과 전망

선지현 ∙ 지하철 연장운행의 전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특집:노동시간단축투쟁의 쟁점



노동시간, 임금, 이윤, 그리고 초과노동 할증률

채 만 수/ 부소장





1. 정부의 ‘주5일제’ 입법안

지난해 하반기 민주노총의 주요한 사업이었던 자본과 정부측의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는 투쟁. 노동시간을 보다 더 단축하고 임금, 기타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투쟁이었지만, 그리고 4월 초 발전산업 파업을 어이없이 접음으로써 조합원 대중이 받은 심적․정치적 타격을 보상하고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투쟁대열이었지만, 정부와 자본측의 일방적 노동법 개악은 일단 유보시킨, 반쯤은 성공한 투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투쟁은 외형상 정부의 주5일제 입법안을 둘러싼 것이었는데, 자본측의 의도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노동과 노동시장을 보다 더 ‘유연화’시켜, 즉 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유동화(遊動化)시켜 노동력을 헐값에 이용하려는 것. 그리고, 자본의 그러한 공세에 저항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임금 및 기타 노동조건의 후퇴 없이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려는 것이 노동측의 요구이다. 따라서 투쟁의 한가운데에는 노동시간과 임금의 관계, 혹은 이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간의 이해의 대립이 자리잡고 있다.

이 투쟁에서 노동운동측의 표준 지침이 된 것은 9월 9일에 민주노총이 발표한 “주5일 근무제 정부입법안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일 것이다. 이 문건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국, 산재왕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자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임을 확인하면서, “그러나 정부안은 … 기존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어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주5일제 도입의 기본취지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문건이 담고 있는 주요 문제의식들. 특히, 정부안이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보다는 거꾸로 연․월차 휴가를 축소하고 이른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는 등, 실제 노동시간의 연장을 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단계적 도입’이라는 이름 하에 “전체 노동자 1천3백6십만4천274명(2000년 기준 통계청 발표)의 58.6%에 달하는 7백9십7만5천292명의 30인 미만 업체 근무 노동자”(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자)를 사실상 주5일제 노동의 대상 밖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점, 등등. 정부안의 진정한 노림수들을 강력히 성토하면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귀중하다.

민주노총이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주5일 근무제는 즉각 전산업에 걸쳐서 전면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정노동시간이 44시간이고, 최대노동시간이 주당 56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는데도 현대자동차 등 민주노총의 대규모 핵심 사업장들에서조차 주당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태연히 행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법정노동시간의 단축과 더불어 초과노동 시간의 강력한 제한, 휴가를 보장하지 않는 사용주에 대한 처벌의 강화 등, 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강제적 조치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등 민주노총의 대규모 핵심 사업장들에서조차 주당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태연히 행해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민주노총의 지침이 “할증률 인상을 통해 초과노동 사용에 대한 유인(을) 축소”하고, “주휴 유급”(문제의 문건에는 ‘유급 주휴’)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것은 과연 그 문건이 표방하고 있는 대로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려는 수단일까? 아니면, ‘높은 할증률을 통해서나마 임금을 올려보려는 의도의 부정직한 표현’일까?

우리가 조금 솔직해진다면, 그것은 후자, 즉 조금이나마 임금을 올려보려는 의도의 부정직한 표현이라고 해야 하지 아닐까?



2. ‘초과노동 할증률’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

정부의 입법안은 “최초 4시간 분의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률을 25%로 낮추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민주노총은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의 초과노동사용에 대한 유인을 오히려 증대시켜 실노동시간은 전혀 줄어들지 않게 된다”며 “실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률을 높여 사용자들이 초과노동을 사용하고자 하는 유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와 자본측이 할증률 인하의 근거로서 ILO 조약을 들고 있는 것도 근거가 없으며, “ILO의 25% 조항을 근거로 초과노동 할증률을 낮출 경우, 오히려 ILO 조약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ILO 조약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민주노총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정부나 자본측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억지이다. 민주노총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자본측이 언급하고 있는 ILO 조약도 할증률 인하의 주장의 근거와는 아무 관계없다. 우선 ILO 조약은 25%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25% 이상’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호, 제30호). 또한 ILO 조약 30호는 “본 조약에서 정한 어떠한 제한도 본 조약에서 정한 조건보다 짧은 최장노동시간 혹은 더 높은 초과임금률을 정한 법률, 명령 또는 규칙에서 정한 제한에 추가되어야 하며 그 제한을 저하시키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ILO의 25% 조항을 근거로 초과노동할증률을 낮출 경우, 오히려 ILO 조약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ILO 기준을 근거로 초과임금 할증률을 낮추자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그러면, “실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률을 높여 사용자들이 초과노동을 사용하고자 하는 유인을 없애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어떨까?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자본측은 할증률이 높아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을 선호하기 때문에 초과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행 50%로 되어 있는 초과노동 할증률을 2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그 이유는 “초과노동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논리․논거를 그대로 들어 보자.


초과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초과노동 할증률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엄연히 초과노동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사용자들이 생산물량이나 업무량에 따라 초과노동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지,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자본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초과노동이 발생하는 이유로 ‘일손 부족, 납기 촉박 등 불가피한 회사 사정 때문’이라고 응답한 업체가 63.3%로 가장 많았다. 반면에 ‘수당지급을 선호해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자원’이라고 응답한 업체는 6.1%에 그쳤다(대한상공회의소, 근로시간, 휴일․휴가 실태조사, 2000. 8). 이런 상황에서 초과노동 할증률을 인하하면 사용자들의 초과노동 선호도를 높여 초과노동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것은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와는 다른 ‘거꾸로 가기’이다. 따라서 장시간 노동을 줄여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오히려 할증률을 늘여, 사용자가 초과노동을 시키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일본도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할 때 할증률을 인상한 바 있다.

우선, 자본측이 초과노동 할증률의 인하를 꾀하면서 그 목적을 “초과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잠자던 소도 “허허” 웃을, 너무나도 새빨간 거짓이고 위선이다. 그들이 할증률의 인하를 꾀하는 목적은 누가 보나 오직 하나. 다름 아니라, 헐값의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켜서 잉여가치, 즉 이윤을 증대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연히 초과노동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에 “할증률을 인하하면 사용자들의 초과노동 선호도를 높여 초과노동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는, 그리하여 오히려 할증률을 높혀 “사용자가 초과노동을 시키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맞다”는 민주노총의 논리․주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로 제시한, 대한상공회의소의 ‘실태조사’ 결과나 ‘일본의 예’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초과노동 혹은 연장노동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측에 있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노동자가 연장노동을 하고 싶어도 그에 대한 사용자측의 필요가 없으면 연장노동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연장노동에 대한 할증률을 인하할 경우, “사용자들의 초과노동 선호도가 더욱 늘어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높은 할증률 하에서도 초과․연장노동을 선호했는데, 그 할증률이 낮아지면 그들의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야 불문가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증률이 높아지면 연장노동이 줄어들고, 낮아지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의 주도권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민주노총이 필시 자신들의 논리․주장에 ‘객관적인 증거’를 부여하고자 인용했을 이른바 ‘실태조사’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자. 조사 대상의 의견, 태도를 묻는 ‘실태조사’, 실은 ‘의식 실태조사’는, 주지하듯이, 오늘날 부르주아 사회학에서 널리 쓰이는 학문의 방법론이고, 부르주아 학자들에 의해서 ‘과학적․실증적․객관적인 방법론’으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과학적이지도 실증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다만 실증주의적인 것일 뿐이다. 즉 그것은 주관적 관념론에 기초한 방법론일 뿐이다.

위의 예를 보자. 거기에서 민주노총은 대한상공회의소의 실태조사 결과를 인용, “초과노동이 발생하는 이유로 ‘일손 부족, 납기 촉박 등 불가피한 회사 사정 때문’이라고 응답한 업체가 63.3%로 가장 많았”던 “반면에 ‘수당지급을 선호해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자원’이라고 응답한 업체는 6.1%에 그쳤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6.1%의 업체에서는 ‘수당지급을 선호해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자원’해 연장노동이 이루어진 듯이, 그렇게 해서 연장노동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인 듯이 얘기한다.

하지만, ‘수당지급을 선호해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자원’하다고 한들 어찌 그러한 연장근로가 이루어지겠는가? ‘일손 부족, 납기 촉박 등 불가피한 회사 사정 때문’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도 마치 그것이 당연히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버젓이 제시되고 있다. 다름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영광과 함께 말이다. 그것이 오늘날 부르주아 사회학의 정신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이를 자신의 논거로 내세울 때, 민주노총은 “엄연히 초과노동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엄연히’ 스스로 부인하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다. 적어도 6.1%만큼은 말이다.



3. 할증임금과 임금, 그리고 이윤

다음에는, “일본도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할 때 할증률을 인상한 바 있다”고 한 데에 대해서 보자.

법정 노동일을 넘는 연장노동에 대한 임금 할증과 관련하여 노동측이 그 할증을 요구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그 연장노동은 자본측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만큼 노동력의 추가적 혹은 가속도적 소모를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장노동에 대한 임금의 할증이라는 것이 전제로 주어졌을 때, 다른 한편에서, 자본측은 헐값의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키기 위한 탐욕에서 법정노동일 이외의 연장노동시간의 임금에 대한 할증률의 인하를 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할증률을 높이는 것 또한 자본측이다. 노동시간을 제한하려는 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항하여 연장노동․초과노동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노동자들의 단결의 힘이 강할수록 연장노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자본측은 임금 할증률을 높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노동입법사<勞動立法史를> 추적해보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할증률을 인상한 바 있다”면, 그것은 필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장노동․초과노동을 유도하여 “실노동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경우 ‘주5일 근무제의 실시’는 노동자 계급의 압력에 밀려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것이지만, ‘할증률의 인상’은 그렇게 ‘실노동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서’인 것이다.

사실, “엄연히 초과노동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민주노총의 논리․주장은 너무나 일방적이다. 아니, 극도로 비주체적이고 차라리 노예와 같은, 전적으로 자기 의지가 없는 노동자를 전제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민주노총의 주장대로, “엄연히 초과노동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따라서 ‘일손 부족, 납기 촉박 등 불가피한 회사 사정’이 없다면, ‘수당지급을 선호해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자원’하더라도 자본은 노동자에게 할증임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초과․연장노동을 시키지는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그러나, 자본측의 자의(恣意)가 대체로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비조직 사업장도 아닌, 강력한 노조를 가지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의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아무리 ‘일손 부족, 납기 촉박 등 불가피한 회사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의 주도권’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어 연장․초과노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주도권’은 노동자들의 ‘수용과 동의’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따라서 노동조합의 명시적 혹은 암묵적인 수용과 동의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현실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 민주노총은 솔직해야 한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마치 자본측의 ‘주도권’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듯이 전제하면서 ‘할증률과 노동시간간의 상관관계’를 논하고 있다. 당연히 올바른 논의일 수 없고, 올바른 대응,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올바른 대응, 정책을 내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이, 그리고 노동조합이 어떤 환상과 잘못된 사고에 기초해서 그러한 초과․연장노동을 수용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자본측은 왜 임금의 할증에도 불구하고 추가 고용을 통해서 법정노동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연장노동을 선호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노동시간과 임금, 이윤, 그리고 연장근로시간에 대한 할증률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연장노동에 대한 현행 임금 할증률은, 주지하듯이, 50%이다. 그런데도 자본측은, 예컨대 현대자동차는 이러한 할증임금을 지불하면서 노동자들을 주당 60시간을 훨씬 넘는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있다. 하루 법정 노동시간을 8시간이라고 할 때, 하루 12시간 이상, 그러니까 하루 4시간 이상의 연장노동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법정 노동시간의 노동에 대한 노동자 한 사람의 시간당 임금이 1만 원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지금 현대자동차 등 일부 비상한 호황을 맞고 있는 기업들처럼 24시간 가동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지금처럼 노동자들을 ‘2조, 맞교대’를 시켜서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시킬 때,1) 노동자 한 사람당 하루 임금은 ‘8만 원+(4만 원 x 1.5) = 14만 원’이다. 한 교대조의 인원이 1만 명이라고 하면, 이 공장의 노동자 총수는 2만 명이고 하루의 임금 총액은 ‘14만원 x 2만 명 = 28억 원’이다.

그런데, 이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연장노동을 시키는 대신에 임금의 할증을 피하기 위해서 고용을 증대시켜 하루 8시간이라는 법정 노동시간만 일하게 한다고 가정하자. 이때, 역시 작업의 준비나 정리에 필요한 시간을 무시하면, 하루 8시간씩 24시간 가동에 필요한 교대조 수는 3개조가 되고, 한 조의 인원은 1만 명이므로 노동자 총인원은 3만 명이 된다. 그리고 하루 한 사람당의 임금은 8만 원일 것이므로 이 공장의 하루 임금 총액은 ‘8만 원 x 3만 명 = 24억 원’이 된다.

공장을 24시간 가동시키는 경우에도, 공장주 혹은 자본측이 고용 노동자 인원을 늘려서 8시간의 법정 노동시간만 일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인원을 줄이고 연장노동을 시킬 것인가는 물론 단순히 임금액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고용 인원과 관련해서 수지의 타산을 따지는 자본측에게는 무엇보다도 그 고용에 따른 ‘지출’이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고장의 24시간 가동을 전제할 때 결국은 혹은 기본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임금액의 크기 여하에 따라서 고용 인원을 결정한다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방금 우리가 위에서 가정한 예는, 예컨대 최근의 현대자동차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제의 예와 유사하다.2) 물론 현대자동차 자본측은 고용 인원을 늘려 ‘3조, 3교대’를 시켜 법정 노동시간으로 노동자당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대신에 50%라고 하는 ‘고율의’ 할증임금을 지불하면서 ‘2조, 맞교대’를 시키고 있다. 위의 예에서 든 계산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도 말이다.

왜?

이는 “임금이란 노동의 대가”라고 주장하는 자본이 사실은 “임금이란 무엇인가”를, 즉 임금이란 노동력의 재생산비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에서 예로 든 노동자 한 사람당의 시간당 임금 1만 원과 한 교대조의 인원 1만 명을 전제할 때, 2만 명을 고용하여 하루 4시간씩의 연장노동을 시킬 경우 하루의 임금 총액은 ‘14만 원 x 2만 명 = 28억 원’이지만, 3만 명을 고용하여 하루 8시간의 법정 노동시간을 노동시킬 경우 하루 임금 총액은 ‘8만 원 x 3만 명 = 24억 원’ 대신에 “결국은” ‘14만 원 x 3만 명 = 42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본능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2만 명을 고용하여 50%의 할증임금을 지불하면서 ‘2조, 맞교대’를 시킬 때보다 3만 명을 고용하여 ‘3조, 3교대’를 시킬 때 무려 14억 원이라는 거액을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그만큼 자신의 이윤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비”라는 사실을 그저 암기하고 입 끝에 올리는 대신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안다면, 위와 같은 경우에 자본측이 왜 24억 원 대신에 42억 원이나 그 언저리의 금액3)을 지불해야 하는가를 곧 이해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문건은 “초과노동에 대한 주도권은” “엄연히” “사용주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맞다. “초과노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손 부족, 납기 촉박 등 불가피한 회사 사정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자측에는 어떤 사정이 있기에 그 초과․연장노동을 수용하는 것일까? 저 대한상공회의소의 ‘실태조사’가 말하는 것처럼 ‘수당지급을 선호해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자원’하기 때문이 아니라면, 민주노총의 문건이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단지 ‘사용자의 강요’에 못 이겨서일까?

실업이나 불완전 고용 등 산업예비군, 즉 상대적 과잉인구의 문제가 심각한 조건에서 장기간 노동에 대한 사용자의 요구는 거부하기 어려운 강요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연장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장의 현실은 그러한 직접적인 강요에 못 이겨 연장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기보다 노동자측이 자본측의 제의를 기꺼이 수용하고, 심지어 많은 경우에는 연장노동이 배정되는 것을 일종의 ‘특혜’(advantage)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진실 아닐까? 그리하여 많은 사업장에서는 연장노동의 배정이 심지어 노동자들에 대한 은근한 통제수단으로까지 발전해 있는 것이 현실 아닐까?

도대체 왜 이러한 현실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도 비조직 사업장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등 강력한 노조를 가지고 있는 사업장에서조차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저임금’ 탓이다. 어떤 노동자가 형식상은 마지못해서든 ‘자원’해서든 초과․연장노동을 수용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법정 노동시간에 받는 임금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법정 노동시간에 받는 임금이 ‘노동력의 재생산비’에 못 미치기 때문에 연장․초과노동을 통해서 그 부족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가 가정한 예에서는 노동력의 재생산비가 하루 8만 원이 아니라 14만 원이기 때문에, 즉 8만 원으로는 가계를 꾸려갈 수 없고 14만 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력의 재생산비가 그렇게 하루 14만 원인데, 공장에서는 ‘3조, 3교대’로 8시간만 노동하게 하고 하루 임금 8만 원을 지불한다고 할 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까?

우선, ‘씀씀이’를 줄이려고 할 것이다. 바로 노동력 재생산비의 ‘탕력성’의 문제이다. 그런데, 기회만 있으면 자본측의 이데올로그들은 노동자들의 ‘과소비’, 즉 ‘과대소비’를 경계하지만, 사실 자본측의 힘의 우위가 관철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씀씀이’는 대개는 사실 줄어들 대로 줄어들어 있어서 그 ‘탄력성’이란 것은 사실 미미한 것이다. 예컨대, 하루 생활비 14만 원을 8만 원으로 줄일 수 있을 만큼 그 탄력성이 엄청나게 큰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아마 기껏해야 13만 원이나 12만 원으로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4) 그리고 이렇게 줄어든 재생산비는 노동력의 ‘위축된 재생산’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또 다른 길을 찾아 부족한 재생산비를 보충하려 할 것이다. 바로, 제2, 제3의 직장, 직업을 찾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파트 타임 노동을 하고, 아내는 파출부를 나가거나 집에서 ‘봉투’를 만들고, 저녁에 포장마차를 하고, 등등.

그런데 다른 길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하루 8시간의 법정 노동시간에, 혹은 주당 44시간 혹은 40시간, 혹은 30시간의 법정 노동시간에 ‘노동력의 부족하지 않은 재생산비’를 받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다고? 그것은 오직 노동자 자신의 결단과 단결, 그리고 투쟁에 달려 있는 문제일 뿐이다. 그러한 말하자면 ‘생활임금’을 위한 물질적 조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니 자본주의적 생산이 시작될 때부터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통계를 들 필요도 없이, 거대화하고 있는 독점자본, 자본의 과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본이 착취하고 있는 잉여노동은 엄청난 비율, 엄청난 양이어서 노동자들이 ‘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가 아닌가는 사실상 노동자들의 단결력, 투쟁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이라는 장시간의 초과․연장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하루 재생산비 14만 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3조, 3교대’로 연장노동의 길이 막히고, 그런데 강력한 노조를 가지고 있을 때, 부족한 재생산비를 보충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다름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하루 8시간에 대해서 14만 원의 임금을 쟁취해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리하여 자본은 ‘8만 원 x 3만 명 = 24억 원’ 대신에 ‘14만 원 x 3만 명 = 42억 원’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자본이 50%라는 ‘고율’의 할증임금에도 불구하고 초과․연장노동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현실적으로 민주노총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오늘날 수많은 소속 사업장에서 ‘왜’ 심지어 주당 6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이 행해지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방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장시간은 결코 사용자측이 선호하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저임금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지금 초과․연장노동이라는 장시간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재생산비를 보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장노동은 ‘사용주측이 선호하기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연장노동 수당은 마치 임금에 추가적인 어떤 소득인 것과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 추가 수당까지를 합해서 비로소 ‘생활임금’, 즉 노동력의 재생산비로서의 정당한 임금이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환상 때문에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지금의 저임금 현실에 비추어 응당 가져야 할만큼의 인금인상에 대한 진지성, 전투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한, 저임금과 초과․연장노동은 사라지거나 의미 있게 줄어들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장노동에 대한 법정 할증률을 올려서 초과․연장노동에 대한 ‘사용자측의 선호’를 없애거나 줄이겠다는, 그리하여 결국 초과․연장노동을 없애거나 축소시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민주노총의 발상은 전혀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인 것이다.

순전히 산술적으로만 말한다면, 우리가 위에서 가정한 예에서 할증률을 225%까지 인상한다면 틀림없이 초과․연장노동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자본측에서는 2교대하고 있는 두 사람의 노동자들에게 하루 42만 원을 지불하게 되어 3명에게 지불하는 것과 같은 임금액이 될 것이므로 ‘초과노동에 대한 선호’가 사라질 것이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임금액 14만 원을 12시간의 노동 대신에 9시간 50분 남짓한 시간에 벌 수 있어서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은 안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일종이 ‘독장사 구구’일 뿐이어서 전혀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할증률을 그토록 고율로 올린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이지만,5) 여기서는 그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법정 노동시간에 자신의 생활임금을 확보한다는 원칙을 세우지 못할 때, 할증률이 올라가는 만큼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줄어들어서 결국 12시간 노동으로 그 임금을 벌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연장노동에 대한 할증률을 높여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탁상공론은 버려야 한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잠재적으로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법정 노동시간에 생활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행사할 준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노동조합들에게는 거꾸로 할증률의 인하가 약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것이 지금 대규모 민주노총 사업장들에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할증률이 10%, 20% 등등이라면, 할증임금에 대해 환상을 갖기보다는, 그리하여 연정노동에 열중하기보다는 시간당 임금을 인상시키는 투쟁에 더 열중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4. 장시간노동․야간노동 금지법을 강제하자.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대동소이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에서는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그 다른 한편에서는 또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실업 내지 반실업 상태를 강요당하고 있다. 혹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만연한 실업․반실업은 서로 짝을 이루어 한쪽이 다른 한쪽을 규정하면서 지속되고 있고, 오늘날 ‘비정규직의 광범한 확산’에서 보는 것처럼 악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할 때, 이러한 상태를 ‘개선’하는 길은 우선 무엇보다도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실제의 노동시간은 그대로 둔 채 법정 노동시간만을 단축하고, 그리하여 그 단축을 연장노동 수당을 늘리는 수단으로, 그리하여 ‘임금을 인상하는 수단’으로 삼는,6) 그러한 노동시간의 단축이 아니라 실제로 실노동시간 그 자체를 단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실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지금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실업 및 반실업의 문제도 다소 완화될 수 있고, 임금의 실질적 인상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총 등은, 할증률 인하 반대와 같은, 사실상 실질 노동시간 단축이나 시간당 임금의 인상을 (물론 소극적인 것이지만) 어렵게 하는 것에, 그리고 여기서 자세히 논하지 않았지만 ‘주휴 무급화 반대’와 같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투쟁7)에 매달리는 대신에 ‘주5일 근무제’의 전면적 즉각적 실시를 위해서 투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적․직접적인 힘에 더하여 장시간 노동을 금지시키기 위한 어떤 제도적․법적 장치를 실질적으로 확보하고자 한다면, 법정 노동시간을 넘는, 혹은 조금 너그럽다고 하더라도 법정 노동시간보다 주당 12시간이 아니라, 예컨대 길어도 하루 1시간 정도만을 허용하여, 주당 5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을 엄하게 금지하는 법률의 제정과 그 실질적인 시행의 보증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여성이나 아동 노동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건강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는 야간노동을 금하고, 제철소 등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야간노동이 불가피한 경우 그 야간노동에 대해서는 가중치를 부여하여 예컨대 4시간의 야간노동은 8시간의 주간노동으로 계산하게 하여 야간노동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등의 입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에서는, 민주노총, 그 중에서도 현대자동차 등을 포함한 대기업 노동자들의 과제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주당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면서 ‘할증률 인하 반대’와 같은, 장시간 노동을 전제한 싸움에 열중할 때, 실질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목표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지도부, 정책 담당자들, 그리고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새로운 각오와 실천을 기대한다. 

한/노/정/연


1) 사실 ‘2조, 맞교대’로 24시간 가동을 할 때, 작업 준비와 정리에 필요한 시간 때문에 실제의 노동시간을 하루 12시간을 훨씬 넘지만, 이는 무시하기로 하자.


2) 물론 시간당 임금이나 노동자 총인원 등 구체적인 수치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 할증률 50%라는 조건 하에서 그 차이가 현대자동차 자본측의 의사결정이나 이 문제의 해명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3) 여기서 “그 언저리의 금액”이라고 말한 것은 물론 임금 혹은 노동력의 재생산비라는 것이 갖는 ‘탄력성’ 때문이다. 즉 일정한 경향적 크기는 주어지지만 절대적으로 ‘정확히 얼마가 아니면 안 된다’고는 되지 않는 것이다.


4) 자본측이 ‘할증률의 인하’를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작은 탄력성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하는 것이다.


5) 어떤 시점에서건 각 기업에서는 주어진 시간당 임금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러한 조건에서 연장노동에 대한 할증률을 예컨대 50%에서 25%로 낮춘다면, 노동자들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시간당 임금을 인상시킴으로써 그 부족분을 메우겠지만, 처음 당분간은 그 부족분만큼 손해를 당하면서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할증률이 50%에서 100%로 올라간다면, 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자본은 결국 시간당 임금을 억눌러 낮추겠지만, 처음 당분간은 역시 보다 높은 할증임금을 주어야 하고, 그만큼 ‘일손 부족’이나 ‘고임금’의 지출에 시달려야 한다. 따라서 자본은, 낮은 임금을 향한 탐욕 말고도, 이러한 할증률의 인상에 극력 반대하게 될 것인즉, 법정 노동시간에 생활임금도 챙기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힘으로 그러한 고율의 인상은 불가능하다. 또 법정 노동시간에 생활임금을 확보할 능력이 있다면, 그러한 고율의 할증률은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고.


6) 이는 물론, 앞에서 논한 것처럼, 환상일 뿐 임금 그 자체의 인상으로 되지 않는다.


7) 예의 민주노총 문건은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주휴 무급화”라며, “월급제 노동자의 경우 통상임금의 삭감 없이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주휴를 무급화하더라도 실질적인 불이익은 없으나,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 일급제, 개수임금제(도급) 노동자의 경우 임금보전에 대한 원칙만을 명시할 경우 시간급 인상 또는 임률 조정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시급제, 일급제, 개수임금제(도급) 노동자의 경우 시급 인상 없이 주휴가 무급화되면 월 52시간급이 줄어들어 20.3%의 임금삭감이 일어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급 인상’이나 ‘임률 조정’이 법률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항이 아닐뿐더러, “시급제, 일급제, 개수임금제(도급) 노동자”의 경우 애초부터 ‘유급 주휴’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2003-01-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4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