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수산업과 전쟁을 위한 전쟁 |
현장에서 미래를 제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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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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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산업과 전쟁을 위한 전쟁
채 만 수/ 소장
I
군수산업은 전쟁을 위한 전쟁산업으로서 오늘날 독점자본의
주요한 존재형태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찍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자본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그 소모적 성격을 논한 바 있긴
하지만, 제국주의 전쟁의 불가피성을 논증한 고전적
제국주의론에서조차 아직 크게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것은 당시 아직 자립적인 산업으로서 성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하였고, 특히
대공황과 제2차 대전 이후에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주요한
구성부분으로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무엇보다도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극도로 심화되어
대공황으로서 폭발하고, 그에 따라 독점자본간,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간의 경쟁․대립․항쟁이 극도로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혁명 이후 노동과
자본간의 계급투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제2차 대전 이후
그것이 이른바 ‘냉전’의 형태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2차 대전 이후 미국 등 제국주의에 의해서 주도된
‘냉전’에 대해서 특히 주목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것은 단지
‘미-쏘 간의 대립’, 혹은 ‘미국과 쏘련을 각각 중심으로 한
진영간의 대립’이라는 국제정치상의 파워 대립으로, 따라서
사실한 무개념한 내용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이라는 블록(bloc) 간의
대립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었고 그들의 저항과
혁명투쟁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이자 과정이었다. 아니, 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간의 대립이야말로 사실은 노동자 계급과
독점자본가 계급간의 대립․투쟁이 지리적으로 외화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는 온갖 선전․선동수단을 동원,
쏘비에트 진영에 대한 데마고기를 일삼고 국가주의를 고취하면서
냉전을 격화시켜 갔고, 그러한 냉전이 본격화되고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각국의 노동자 계급은 변혁성을 잃으면서
국가주의에 중독되어 갔다. 물론 노동자 계급이 그렇게 변혁성을
상실하고 국가주의에 중독되기까지 제국주의 및 그 종속국의
경찰, 군대, 정보기관 등에 의한, 한마디로 부르주아 국가에
의한 납치, 고문, 학살, 매수 등등이, 나아가 독점부르주아지
좌파의 정치부대가 된 사민주의 정치세력의 대중 기만이, 그리고
노동운동 내부의 악질적인 반쏘 종파주의가 커다란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편, 냉전은 또한 미국이 종래의 제국주의 열강을 자신의
헤게모니 하에 재편성하면서 동시에, 이미 격화되어 있고 갈수록
격화되어 가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 즉 과잉생산을
완화․경감시켜 가고자 하는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냉전은 곧 국가가 전쟁을 위한 산업으로서의 군수산업을
비대화시키는 훌륭한 명분이었다. 이 군수산업은,
독점자본에게는 거대하게 자본을 축적해 가는 산업이면서도,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물질적 생활자료를 생산하는
것도 아닌 순전히 소모적인 산업으로서 격화된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 즉 과잉생산을 완화․경감시키는 훌륭한
통로였던 것이다.
II
그리하여 전쟁을 위한 산업으로서의 현대 군수산업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주요한 구성부분이 되었다.
주지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1930년대의 대공황,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면적 위기를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시대로 진입하였다. 자본주의 국가는 더
이상 과거의 자유주의적 야경국가로 머물러 있을 수 없었고,
경제적 재생산 과정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고, 그 자신이 거대한
경제의 조정자 및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했던 것은 과잉생산에 대한 이른바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전히 소모적인
산업으로서의 군수산업은 부르주아 국가에게 있어서 더 없이
좋은 과잉생산의 배출구였던 것이다.
군수산업은 자본주의의 이러한 전면적 위기와 그에 따라
불가피해진 국가 기능의 변화 혹은 확대에 기초하여 급속히 거대
독점자본으로 성장해 갔다. 국가가 안정적인 시장․판로를
보장해줬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제품의 구매는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경쟁입찰보다는 주로 수의계약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리하여 사실상 터무니없는 독점이윤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방상의 필요’라는 이유로
국가는 군수산업체에 막대한 금액의 연구개발비를 제공했고, 그
결과 얻어지는 새로운 기술 또한 다시 그 기업의 독점적
권리로서 보장함으로써 소수 군수독점자본의 거대화를
조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수자본과 군의 실력자, 펜타곤(국방성) 및
백악관의 고급관리, 과학자, 대학, 첨단기술연구소 등 사이에
강고한 유착이 발생했는데, 다름 아니라 1960년대 이후
‘군산복합체’라고 불려지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
군산복합체는 미국을 지배하는, 따라서 세계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세력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이 비대해질수록
미국은 더욱더 전쟁국가로 되어 갔다.
이들 군수산업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 혹은 미국이 얼마나
이들 군수산업에 의해서 지배되는 전쟁국가인가는 미국의 연방
예산 구조를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예컨대, 부시 행정부가 제안한 2003 회계 연도의 총예산 규모는
약 2조1,630억 달러이고, 이 가운데 공무원의 급여 등
경상경비를 제외한 ‘재량예산’(discretionary budget)은 약
7,670억 달러인데, 그 가운데 ‘공식적인’ 군사예산은 약
3,970억 달러이다. 재량예산의 53%를 군사예산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혹은 공개적인
군사예산이고, 그 외에도 군사예산은 여러 곳에 숨겨져 있다.
하나의 예로, 재량예산의 3%를 차지하는 ‘일반 과학, 우주,
기술’ 관련 예산은 성격상 그 상당 부분이 사실상
군사예산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North Korea를 가리켜 대량
살상무기를 확산시키는 ‘악의 축’, ‘무법 정권’이라며,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서두르고 있고, 이 땅에도 일촉즉발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3,790억 달러라는 미국의
군사예산은 “미국이 이라크, 수단, 시리아, 쿠바, North Korea,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등 잠재적인 전쟁 상대로 지목하고 있는
8개국의 총 군사비의 26배나 되는 금액이다”(Leslie Feinburg,
“Pax Pentagona”, Workers World news, 2002년 3월 14일).
그리고 거기에는 소위 ‘미사일 방어계획’(MD)를 위한 예산 약
78억 달러와 핵무기를 위한 예산 약 156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
핵무기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미국의 ‘핵과학
교육재단’(Educational Foundation for Nuclear Science)의
2002년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은 1951년 이후 약 6만7,500기의
핵 미사일을 생산했고, 그 비용은 5조5천억 달러였다. 그리고
‘핵무기 비용연구’라는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에 걸쳐서 약 1천만
에이커의 땅에 미국의 핵무기가 저장되어 있고, 그 대부분인
1만5,654평방마일은 미국 본토에 위치해 있다(이상, Heather
Cottin, “Environmental Nuclear Disaster made in USA”,
Workers World news, 2003년 1월 30일).
이상의 숫자들은 미국의 예산 가운데 군사예산이 얼마나 엄청난
금액․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데, 이는 말할
나위도 없이 군수산업의 규모와 영향력, 혹은 그 지배력을
웅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기생적, 파괴적 군수산업의 이러한 팽창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 과잉생산이 극에 달해서 이미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른 지 오래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III
실제로 근래에 지구상의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과
전쟁은, 물론 상품 및 자본 시장이나 석유 등 원료 자원의
확보라는 전통적인 이해관계가 기본적인 원인으로 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 군수산업의 직접적인 이해와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종의 병기가 누적적으로 비축될
수만은 없고, 또 군사예산 증액의 구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져야 하고, 어느 나라, 어느
정권인가가 ‘미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언가의 존재로
선언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과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확립되어 있던
동안에는 주로 ‘공산주의의 위협’이 좋은 구실이었고,
그리하여 ‘냉전’을 격화시켜 가면서 군사수요를 확대시켜
갔다. 그리고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붕괴된 지금은 세계화라고
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걸림돌이 되는
민족주의적 국가․정권들이 ‘미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의 축”, “무법 정권”으로 선언되면서 공격의 목표로 되고
있다.
미국의 독선, 독단이 도를 넘으면서 최근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이 미국의 전쟁 책동에 반대하고 나서고 있지만, 사실
언제 어떤 이권과 추잡한 거래를 매개로 하여, 지난 90년대
이래의 여러 제국주의 침략전쟁에서처럼, 다시 같은 패가 되어
폭격에 나서거나 짐짓 외면하면서 침묵할 지 모른다. 실제로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굿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이고, 러시아는 물론 어떤 면에서는 중국도
‘시장경제화’를 추구하면서 미국의 시장, 자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끝내 미국의 의지에 맞설 처지가 아니지 않는가?
사실, 석유․군수 자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전쟁 책동에
비타협적으로 맞설 핵심세력은 노동자․민중밖에 없다.
특히 노동자 계급의 이익과 자본의 이익은 정면에서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야말로 반제국주의, 반전 투쟁의 핵심적
주도적 세력이 될 객관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불행히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국가주의․애국주의라는 최면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미 국내를 포함, 세계의
곳곳에서 커다랗게 떨쳐 일어나고 있는 반전 투쟁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제국주의와 군수자본의 음모를 꿰뚫어보면서 그와
일전을 다짐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이 반전 투쟁은 노동운동이 냉전 시대의
유산으로서의 무기력과 국가주의․애국주의를 청산하고
새롭게 변혁의 길로 나서는 계기로도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노동자 계급은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 공세와
힘겹게 싸우고 있지만, 역시 반전․반제국주의 투쟁에
시급히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에 처해 있다. 그리고 정세가
요구하고 있는 이 투쟁에 적극적․주도적으로 나섬으로써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명실상부하게 새 역사를 창도하는 계급으로서
성장․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미 제국주의에 의한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반전․반미․반제국주의 투쟁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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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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