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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 무지개 시위를 다녀오고

현장에서 미래를  제85호
민영

색다른 어울림

3.8 여성 무지개 시위를 다녀오고


민 영/ 서울대 동아리 통합과학연구회




3월 8일이면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여러 행사들이 열린다. 그 중에서 내가 참가한 무지개 시위는 올해로 두 번째로 열리는데,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WAW, 장애여성공감,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가 모여 만든 “다름으로 닮은 연대”가 주축이 되어 꾸렸다.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는 규모가 큰 주류여성운동단체들이 주최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와는 별도로 시위를 하게 된 것은 “여성”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때의 여성은 이성애자이며, 비장애여성, 기혼여성으로 대표된다)으로 구호를 외치고, 싸울 때 여성 안에서도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묻혀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여성의 날 행사들이 여성문제를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끌어낸데 반해 ‘변방’의 문제는 더욱 ‘변방’으로 밀어내었다. 여기서 말하는 변방이란 성매매 피해여성, 장애를 가진 여성, 여성성적소수자, 전쟁에서 피해를 당하는 여성 등이다. 그녀들은 차이가 다름으로서 인정되지 않고, 또 다른 차별의 기제가 되는 현실에 문제제기하며, ‘다름’이 묵살되는 운동방식을 거부하며 ‘소수자’라는 정체성으로 함께 모였다.
이렇게 비주류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꾸려진 무지개 시위는 인사동의 문화마당이라는 곳에서 열렸다.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도착하니 무지개 색깔의 뱃지, 진분홍의 두건을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성소수자인권운동단체들과 함께 하는 시위이다보니 아웃팅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리고 함께 나눠준 깃발에는 각자 쓰고 싶은 구호를 쓰게 해서 색색의 꼬마깃발을 손에 들고, 어색하지만 귀여운 두건을 쓰고 무지개 뱃지까지 단 사람들이 가득하니 행사장 자체가 축제의 장이었다. 계단에 옹기종기 친구들과 자리를 잡고 앉자 곧 행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은 “차별조장하지 말아요”라는 “얼굴 찌뿌리지 말아요”의 개사곡과 율동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차이가 차별로 되는 현실과 이를 이겨나가자는 내용의 노래였는데, 경쾌하게 풀어내서 사람들도 함께 즐거워하며 율동을 따라했다. 그렇게 몸을 좀 움직이고 나니 조금은 어색하고 멀게 느껴졌던 시위참가자들이 훨씬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름으로 닮은 연대 소개와 3.8의 의의에 대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서로 다른 억압과 피해들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정상”의 기준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서로의 현실에 공감하고 함께 저항하겠다는 얘기들은 감동적이었다. 축하공연을 하러왔던 지현씨의 말대로 마이너리티의, 마이너리티의, 마이너리티가 모인 의미있는 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뿌듯했다.

장애여성들이 준비한 패션쇼도 인상적이었다. 장애여성들은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그냥 “장애인”으로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당했다. 남성중심적이고 비장애인중심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의 몸을 긍정할 기회조차 박탈되었다. 가족에게서도 하나의 성인이 아니라 미성숙하고 의존적인 존재로서 대우받았다. 그리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남성들의 성폭력 대상이 되기 쉬웠다. 교육권이나 노동권에 있어서도 비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남성보다 더 소외되었다. 이러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패션쇼를 통해 장애여성들은 사회적 차별에 맞서서 자신들의 당당한 주체성과 독립성을 표현하였다. 장애여성들의 패션쇼라고 하여 하나의 구경꺼리 정도로 생각하고 옆에 서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패션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부정당했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장애여성공감과 여성장애인자조모임 다올의 장애여성들이 리허설도 제대로 못했다는 뒷 얘기와는 다르게 정말 멋있게 패션쇼를 했다.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며 앞으로 일어날 전쟁에 죽어갈 이라크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추모하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난 아직 어려서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날아 다니는 그 미사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만 보였던 미사일이 이라크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 그 실상을 알고 나니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주는지 깨달았다. 미국이 아무리 전쟁에 대해 명분을 만들려고 해도, 그 피해를 생각하면 어떠한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생필품 공급이 중단되고, 사회복지 예산이 깎이고, 전쟁의 폭력 앞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여성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전쟁전보다 훨씬 더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아동들과 장애인들 역시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한다. 그리고 세르비아나 보스니아 내전의 경우처럼 전쟁은 많은 여성들에게 강간과 폭력을 경험하게 한다. 석유와 이라크 사람들의 인권은 바꿀 수 없다. 퍼포먼스는 제단과 바닥에 깔린 하얀 천, 그 위로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을 이라크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로하며 살풀이하듯이 꽃을 뿌리는 것이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들떴던 행사장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이 외에도 관악 노래방프렌즈의 노래와 춤공연도 있었고, 여성풍물패 바람소리의 풍물공연도 있었다. 내용을 담아내면서도 즐거운 집회자리였다.
마지막 순서는 행진이었다. 장애여성들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리프트 체험을 포함하는 시위를 계획하였는데, 집회신고가 나지 않아 대신 인사동에서 국세청 앞까지 짧은 행진을 했다. 행진은 바람소리의 길놀이를 따라 장애여성들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이동하였다. 국세청 앞에서 큰 원을 만들어 서로 격려하며 자리를 정리하였다.
집회가 끝나고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여성성적소수자들의 공연이 따로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변태’라는 식으로 그녀들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기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다. 홍석천 씨가 대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했을 때도 여론의 비난과 방송에서 쫓겨나는 것을 봐도 사회가 얼마나 이성애 중심적인지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위 자리에서도 여성성적소수자들은 사진에 찍힐까봐 신경을 쓰게 된다.(주최측에서 사진을 못 찍도록 했지만 모든 사람들을 다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사진 하나 원하지 않게 찍히는 것도 막는 판인데 무대 앞에 나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런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 전에는 남성중심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내가 여성이라서 항상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이 변함이 없을지라도, 무지개 시위를 다녀와서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이고, 비장애여성이고, 이성애자인 내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험은 나에게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성찰을 하게 해주었다. 나의 위치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다른 여성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묵살하고 배제한다면, 내가 여성이라서 당한 차별, 폭력을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이 된다. 아직도 그녀들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은 많다. 그러나 나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해주고, 사회의 억압적인 구조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기 때문에 단순히 시위 한 번 참가로 그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그녀들의 싸움에 함께 하고 싶다. 한/노/정/연

2003-03-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4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