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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의미와 과제
 상반기 투쟁과제를 점검한다(1)

현장에서 미래를  제8호
강수돌

특집 2

상반기 투쟁과제를 점검한다(1)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의미와 과제

강 수 돌 (서울대 강사, 경영학)


1. 들어가는 말

1996년 들어 노동계가 주 40시간 노동제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서서히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한국노총이 올 단협에서 주 5일 근무제(주 40시간)나 토요일 격주 휴무제(주 42시간)를 지침으로 내세우고, 민주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이 주 40시간 노동제를 요구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노동시간이 전반적으로 세계 최장인데다가 업종별로도 호황업종이나 영세업종에서 더욱 열악한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현재 한국은 1인당 국민총생산이 1만 달러를 넘어서서 이른바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노동시간은 공식통계상으로도 세계 최고로 길다. 94년 주노동시간을 보면, 덴마크가 31.5시간, 독일이 37.6시간, 미국이 41.4시간, 일본이 43시간으로, 한국의 48.9시간은 이른바 선진국에 비해서 ‘턱도 없이’ 길다. 또한 멕시코의 46시간이나 터키의 46.1시간에 비해서도 길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통하는 대만과 홍콩도 각각 46.4시간과 44.6시간으로 한국보다 짧다. 다만 싱가포르는 49.3시간으로 한국보다 길게 나타났다. 이러한 공식 통계상에 잡히지 않은 잔업이나 특근, 자진 휴가반납, 자의반 타의반 휴가대신 수당으로의 대체 등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노동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다. 독일 금속산업의 주당 노동시간이 44시간으로 된 것이 1959년부터이고, 한국은 ‘93년부터이니, 한국은 독일에 비해 34년이나 늦게 주 44시간제를 도입한 셈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동안 한국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구가하면서 선진국 진입 운운하고 있지만, 실제로 노동시간과 관련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는 어떠한지를 짚어 보기로 한다.

2.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논리

이 글은 두 가지의 기본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노동시간이란 결코 우리 삶의 양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질적인 문제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동시간 단축이란 결코 열심히 일한 데 대한 보상(compensation)의 차원으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새롭게 형성(newly shaping)한다는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20세에서 60세까지 약 40년간 경제활동에 참가하여 일하게 된다. 이 40년간 우리는 매년 대략 2,000시간씩, 약 8만시간의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하러 오가는 시간이 빠져 있다. 또 약 15년 이상의 학교교육 기간도 빠져 있다. 실제로는 이 기간도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이므로 우리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바로 이것이 노동시간의 질적인 측면을 이룬다. 즉 실제 취업시간과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 일터로 왔다갔다 하는 시간 등 모두가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우리의 인생을 꾸릴 수’ 없게 하고 일정한 틀 속에서 일정한 방식을 따라서만 살도록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복종),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내어야 ‘사람대접’ 받는다. 직장에서도 높은 성과를 올려야 능력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승진도 한다. 조직에 거슬리는 일은 어떠한 것이라도 해서는 안된다. 특히 상사의 비위에 거슬리면 계속 괴롭다. 정년퇴임하여 조직을 떠나면 우리는 어떤 조직도 반겨주지 않는 ‘폐물’이 된다. 젊을 때 일하고 늙어서 인생을 즐기기란 꿈에 불과하다. 즉 일하는 시간과 인생을 즐기는 시간을 우리의 생활에서 주중과 주말 또는 직장생활과 정년생활 등으로 분리하여 인생음미의 시간을 자꾸 뒤로 ‘유보’할 것이 아니라, 일상적 노동생활의 하루하루가 ‘일하면서 동시에 인생을 음미하며 사는’ 것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철학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일반적 논리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1) 필요성 1 - 건강과 생명의 수호
(과로사 및 산재, 직업병의 예방: 노동생활의 인간화)

노동력의 지출이란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명력(Lebenskraft)을 지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출퇴근시간, 작업준비시간 등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한 교대근무와 밤근무 등은 건강에 부담이 되는 데도 ‘처자식 먹여살리기 위해’ 기꺼이 하고 있다. 중세 길드 수공업에서도 종교상의 휴일과 노동시간제한에 의해 노동시간이 엄격히 규제되었다. 해진 뒤의 노동은 화재 위험 때문에 야간작업이 금지되기도 했다. 중세초기에는 평균 주 48시간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독일의 저명 사학자인 쿠친스키(Kuczynski)도 “초기 산업자본주의 시기에 카톨릭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1주 5일 노동이 인정되었다. 일요일은 휴일이고 성도제일도 매주 휴일이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선 월요일은 조금만 일하거나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라 성도제일도, 휴일도, 반휴일인 월요일도 없어졌다. 일요일도 무시된다. 동시에 야간노동이 일반화되었다”고 쓰고 있다. 즉 전기의 발명, 기계의 발명 등 산업혁명 이후 기계적 작업방식 자체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여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욱 급속도로 늙고 더욱 빨리 생명력을 잃고 죽게 된다. 물론 이러한 사태에 맞선 의학의 발전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과로사나 수많은 산업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는한 개별기업들은 노동자의 건강이나 수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저노동시간법 같은 것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나오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 필요성 2 - 고용의 확대
(대량실업 하에서 한정된 일자리 나누기:실업자와 취업자의 연대)

한 사회의 제한된 일자리를 ‘가능하면 여러 사람이 조금씩 나누어 갖자’는 것이 두 번째의 논리이다. 물론 경제성장과 더불어 일자리도 새로 생긴다. 그러나 인건비가 비싸지면서 사람의 수를 줄이는 자동화기계나 시스템 합리화가 가속화되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비례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 현재 실업률이 공식통계로는 2.5% 내외에 불과하지만 실업자는 40만명 이상이고, 고학력으로 갈수록 실업률은 높다.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 중, 언제라도 일터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은 50만명 이상이다. 물론 독일과 같이 400만명의 실업자가 우글거리는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동화나 하청화, 해외이전, 공장폐쇄, 업종전환 등 경제의 구조조정과 합리화 등에 따라 실업자는 늘어나는 추세이다.
예컨대 독일 실업자의 수는 1985년 5월에 350만명에서 5백만명(신고된 실업자수만도 232만명-최고치)으로 추정될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 1986년 9월까지 신고된 실업자는 13만이 감소(직업교육 5만 8천명, 조기정년제 4만 7천명, 실업자 통계기준변화 4만 감소)하고 1983년말부터 취업자 수가 40만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부분의 1/3은 노동시장정책과 직업교육, 양육휴가 덕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나머지 20만은 주당 38.5시간노동제의 도입으로 인한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고용이 증가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나머지는 파트타임제, 일시계약, 임시고용 증대에 힘입은 것이다. 즉 독일에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효과적인 고용창출 수단이 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점이 지적된다. 1) 경제성장률과 생산성향상의 차이를 메워 고용안정을 유도한다 (추가 노동력 수요=국민총생산증가율-노동생산성 증가율+노동시간단축율), 2) 1986년부터 1990년 사이에 매년 평균 9만 2천명씩의 새 일자리가 창출되고 실업자 증가를 사전에 방지하였다. 3) 약 60만명 정도의 기존 실업자를 감축하였다. 결국, 경제성장에 걸맞는 노동시간 단축은 해고 또는 조기 퇴직을 예방하고, 기존 실업자에게도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3) 필요성 3 - 지적 발달이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활동 증대
(일상생활의 풍부화)

노동시간의 단축과 여가시간의 확대는 다음 노동을 위한 휴식과 노동력 재생산의 의미를 뛰어 넘는 것이다. 즉 자신과 그 가족의 삶의 내용을 풍부화, 다양화, 고차원화시킬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여가시간의 확대는 지적, 사회적 발달과 문화적 정치적 활동의 증대 가능성으로 연결되어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고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인간 삶의 욕구는 주말이나 정년 이후로 연기할 것이 아니라, ‘매일’ 추구해야 한다는 관점이 중요하게 된다. 또한 노동시간의 단축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조화로운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여성노동자는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의 이중고에 허덕이는데,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하여 남녀 모두가 가사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도 하나의 사회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또, 자녀교육과 집안일은 매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 주말이나 휴가 때에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일 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한 것이다.
또 여가생활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예, 낚시나 수영, 조개잡이, 등산, 소풍)은 자신의 일터나 산업 일반이 자연과 인간을 얼마나 파괴시키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계기도 되며,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부단히 만나서 하나의 통일을 이룰 경우, 산업의 생산과정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저항할 수 있는 ‘건강한 생명력’을 분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은 유럽 등 선진 각국에서 노동시간의 단축과 생태계운동이 서로 맞물리면서 발전하고 있는 데서도 잘 확인되고 있다.

4) 가능성 1 - 생산과정의 총체적 합리화를 통한 생산성 및 효율성 증대

1983년에서 1985년까지 독일의 GNP 증가율 5.5%는 시간당 노동생산성 향상치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 일인당 노동시간 단축만이 고용증가를 유인한다는 결론을 가능하게 한다. 만일 하루에 10개 생산하던 작업을 100개 생산하여 생산성이 10배 뛰었다고 하자. 그러면 하루의 노동시간을 1/10로 단축하여 나머지를 여가로 쓸 수 있어야 우리의 생활이 좀 더 여유있게 된다. 1/10은 아닐지라도 그 절반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경제는 1980년대에 10%내외의 고도성장을 계속하였고 90년대 들어서도 8%내외의 고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기초는 물론 사회적 생산성과 개별기업의 생산성이 총체적으로 증대하는 데에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생산성 향상의 열매는 어디로 갔는가? 한국의 GNP는 1980년에서 1994년까지 5배 이상 증가했다(1980년의 605억불에서 94년의 3800억불로, 1인당 GNP는 80년의 1592불에서 1994년 8500불로 증가). 그런데 노동시간은 그 1/5(20%)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 92%에 이르고 있다(비농전산업의 월평균 근로시간이 80년 223.9시간에서 94년 205.9시간으로 15년간 약 8%만 줄었을 뿐이다). 이것은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물론 경제성장의 모든 과실이 전적으로 노동시간단축으로만 연결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까지는 줄어들어야 수많은 노동대중이 더욱 신바람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미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하여 사회적 생산성은 증대하였고 그만큼 노동시간 단축의 물적 토대는 갖춘 셈이다.

5) 가능성 2 - 노동자와 노조의 가치지향성의 변화
(‘삶의 질’에 대한 인식 고양)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변수가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인상과 생산성향상이 저절로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동시간은 바로 삶의 시간이요, 비인간적 장시간 노동은 생명의 시간을 좀먹음과 동시에 노동외 시간까지도 파먹게 되어(스트레스, 건강 침해, 휴유증 등) 생활시간을 파괴한다는 깨달음이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신세대 노동자들의 가치관 변화나, 신세대나 구세대를 막론하고 이른바 ‘3D’ 노동을 기피하는 현상은 이러한 가치관 변화의 뒷면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비인간적 노동조건에 대한 ‘소리없는 저항’이라 말할 수 있다.

6) 가능성 3 - 기업별, 그룹별 노조의 틀을 뛰어 넘는 지역별, 업종별, 산별 연대의 강화

나아가 개인적인 태도변화를 뛰어 넘는 변화들도 있다. 노동자의 자각, 조직적 연대와 통일은 노동시간 단축의 객관적 필연성과 가능성을 현실로 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추동력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역사와 사회의 진보를 위한 주된 동력이기 때문이다. 앞서 본 바와도 같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노총에서는 물론이요, 전통적 보수온건 노선을 고수하는 한국노총에서조차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나선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것은 개별 사업장 단위를 넘어 업종별, 지역별, 전국적 행동통일을 통한 조직적 운동 속에서라야 비로소 사회적 요구가 현실로 관철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현실적 과제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측의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다. 지난 10년간 급격한 임금인상과 함께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기업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는 논리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의 직간접 임금비용을 증대시키고 따라서 경쟁력 약화를 수반하며 고용불안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제운용 논리가 항상 비슷한 논리로 일관해 왔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 앞서도 말한 바대로 경제성장과 삶의 질향상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오히려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으로 개개 노동자의 각성이 필요하다. 즉 모든 노동자들이 다 ‘똑똑하여’ 노동시간 단축의 필연성과 가능성에 대해 잘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설득력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이 문제에 관하여 부단한 연구조사 사업도 필요하다. 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인식전환과 더불어 대동단결된 연대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 없인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지지 않는다. 즉 모든 노동자들이 ‘시간에 대한 주권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그러나 사회적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공간을 열어나가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상황은 항상 긴장되어 있다. 조금만 긴장(정확한 인식 및 단결과 연대)을 늦춰도 집단별, 개인별로 분할하고 노동시간을 연장하며,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려는 반동적 시도가 부단히 들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 등 여러 선진국의 진보적 경험과 반동적 경험을 교훈 삼아, 다음과 같은 요구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모든 노동자가 그 필요를 “절실히” 느껴야 함), 그 관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 본다.

- 임금인하 없는 하루당, 주당 노동시간 단축(잔업과 특근의 철폐): 경제성장의 전제인 총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소득감소는 방지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시간 감축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한 기업이나 한 산업분야만을 가지고 논해서는 안되고, 노동시장 전체의 연관성과 경제전체라는 거시적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단체교섭을 통한 획일적 전국적 노동시간 단축만이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 않은 경우 노동시간의 양극화가 이뤄져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재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 완전한 주 2일(토, 일) 휴일제의 실시가 필요하다. 일례로 한솔그룹에서는 18개 사업장 5,100명의 임직원이 오는 96년 6월부터 전면적으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LG, 한화, 동양, 한라, 금호 등이 일부 격주 5일근무제를 실시 중이고, 일부 제약업계와 연구소들이 주 5일근무제를 부분적으로 실시 중이다.

- 연속 작업시간의 단축: 휴식 및 노동시간 단축의 형태에도 관심가져야 한다. 즉 가정생활을 교란시키는 교대제 노동을 가급적 철폐하고, 일상생활과 공동체적 유대를 파괴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는 저지해야 한다. 교대를 하더라도 4조 3교대 노동제를 실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연차 유급휴가도 늘려 보다 긴 시간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창조적인 교류를 증진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작업인원의 충분한 확충 및 실업자의 구제도 필요하다.

- 임금인상과 노동강도 완화, 노동시간 단축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 항목들이 각기 따로 놀면 서로 별 의미가 없어진다. 진정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이것들이 동시에 달성되어야 한다. 나아가 부담이 큰 작업자는 보다 많은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 교육휴가제도의 필요성(연간 1주일 이상): 변화하는 노동환경 및 직무내용의 변동을 올바로 이해하고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계속교육 및 향상교육, 교양교육을 위한 독일식의 ‘교육휴가제’가 필요하다.

- 중장기적으로는 출퇴근시간과 작업준비 시간 등도 노동시간에 포함하는 등 실질적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다.

- 최근 들어서는 “현재의 생산력 조건 하에서는 하루에 한 시간 노동도 충분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이다. 이미 100여년 전에 폴 라파르크는 하루에 4시간만 일하자고 주장했다. 일만 열심히 하면 저절로 모두가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과잉생산공황이 오고, 일자리 감축과 대량실업 등 거시적 측면에서 경제 및 사회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주장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을 삶의 질 향상이라는 방향으로 투입시킨다면 하루에 두세 시간 일하고 나머지를 보다 창의적인 활동에 쓸 수 있을 것이다.

- 노동시간의 길이를 줄이려는 노력, 노동의 강도를 완화시키려는 노력 이외에도 노동의 내용을 전환시키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윤 획득의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을 파괴시키는 데 동참하는 노동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진정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만들어 내는 노동이 노동시간의 절대 단축과 더불어 절실히 필요하다.

- 업종별, 지역별, 산별, 전국적 통일운동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를 통일할 뿐 아니라, 단축된 노동시간과 증가된 여가를 ‘노동자의 통일’ 및 ‘대안사회의 구상과 실천’을 위해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즉 여가시간의 ‘자본화’를 방지해야 한다. 한/노/정/연

1996-02-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