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검찰개혁”에 대하여
이 진 우
회원
자해공갈단
검찰인사를 둘러싸고 표출된 정권과 검찰의 힘겨루기는,
평검사들이 법무부장관의 인사에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정면대결로 치달았다. 그리고 3월 9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가 TV에 생방송 되면서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인사권
문제와 검찰의 정치적 중립문제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노
정권과 검찰의 승부는 누가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서
시청자들과 상대방을 설득했느냐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다.
평검사들은 대통령을 거칠게 공격하며 그만 자신의 특권의식과
폭력성을 노출시켰다. 대통령에게 저 정도로 무례하고 오만하니,
하물며 힘없고 빽없는 민중들을 어떻게 대할지, 그동안 얼마나
참기 힘든 굴욕과 수모를 강요했는지, 또 검찰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특권과 특혜를 생각하며 민중은 분노했다.
“9일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과의 공개토론을 지켜보던
30대 남성이 검사들의 언행에 불만을 품고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조선일보 2003. 3. 10)
검찰은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패배했다. 대대적인 검찰의
‘물갈이 인사’가 이어졌다. 평검사들과의 공개토론을
언급하며, 노 대통령은 “검찰을 이번에 꽉 쥐었다”평가했다.
그리고 이 말은 이른바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아주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공개적 투쟁에서 패배했지만 수면
아래에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SK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그 증거이다. 애초에 수사는
참여연대가 SK증권주식을 둘러싼 SK글로벌과 JP모건의
이중거래와 SK글로벌의 부당내부거래를 고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분식회계를 폭로하였고, 또한 토론회에서
SK수사에 대한 여당 중진과 정부 고위인사의 외압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내수침체, 북핵, 유가상승 등으로 취약해진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고 금융시장을 위기로 몰아갔다. 수사를
법대로, 소신을 가지고 하면 어떠한 결과가 오는지를 무력
시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삼성, 한화, 두산 그룹이
이미 고발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이번에 발탁된 신임
서울지검장은 13일 취임식 뒤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수사를 할 때 국가의 균형발전적인 측면을 도외시할 수 없다.
검찰이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기소는 할 수 없고 … 혐의가 있다고
무조건 기소하는 것은 정의에 맞지 않다 … 검사의
기소편의주의는 사건에 따르는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을
참작토록 돼 있다.”(조선일보 2003. 3. 14)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검찰은 국가를 망하게 할 수도
있을 만큼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노무현 정권이여
그대가 인사권이 있다고, 1회전에서 완승했다고 자만하지 마라.
그까짓 말재주에 무릎 꿇을 우리가 아니다. 범죄자가 되지 않고
기업하고 정치하라는 것이, 바로 사형선고라는 것을 그대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검찰은 정말 당신들의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을 참작”하여 혐의가 있어도 기소하지 않고
눈감아 주고 있다. 바로 정치가, 자본가, 관료인 검찰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심하라! 한 몸인 정치가와 자본가와
검찰은 국가의 주인으로서 ‘균형적으로 발전’하여야 한다.
만약 검찰을 종속시키려―균형을 파괴하려―한다면 국가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검찰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수사권을
활용할 것이다. SK그룹을 보라! 우리의 지분을 인정하라.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가?
정권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법무부 장관이 인사권을
틀어쥐고 과거 검찰 옷로비사건, 이용호게이트, 검찰
피의자사망사건 등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고위간부진들을
대대적으로 물갈이 해야 한다고 한다. 검찰은 검찰총장이 실질적
인사권을 가져야 하며, ‘현재 법무부 장관이 가지고 있는
검사의 인사제청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겨 달라’고 한다.
노 대통령은 말한다.
“검찰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이관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검찰은 권력기관이다. 권력기관에 대한 문민통제를 위해
법무장관을 둔다 … 나는 검찰조직의 상층부를 믿지 않는다”
(3.9. 전국검사들과의 대화)
정권의 검찰에 대한 인식은 ‘문민통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극우․파쇼적인 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 검찰 등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적인 노
정권은 검찰의 현재 상층부와는 적대적이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권은 이를 위해 이른바 “서열을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사법고시 선후배 기수를 존중하는 검찰에서 서열파괴가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후배에게 승진을 추월당한 기수는 후배 아래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직을 사퇴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있다.
따라서 서열을 파괴할 수 있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곧
정리해고권을 의미한다. 즉 정년을 보장하지 않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어, 검찰을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수서열에 따라 차례로 승진을
하면서 자신의 정년을 보장받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인사권을
자신들이 가지고 자율성을 획득하면, 정권의 입장에서는 검찰을
통제하기 위해서 당근을 줄 수밖에 없다. 검찰의 특권, 특혜가
그만큼 커진다.
결국 검찰개혁을 둘러싼 소동은, 인사권을 무기로 해서 검찰을
장악하려는 새 정권과 자신의 권력과 자리를 지키려는 검찰의
투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최근 인사에서 사시
16회, 17회가 중용되어, 13회 15회 등이 줄줄이 퇴진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새로운 판은―통제가 보다 용이한―대통령의
사법고시 기수인 17회와 법무부 장관 기수인 23회를 중심으로
짜여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인사권문제와 함께 다른 하나의 쟁점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문제이다.
강금실 법무장관의 인사에 강력하게 반대한 평검사들은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지난 2월 15일 평검사들이 건의한 검찰개혁방안을 조속히
추진하여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서울지검 평검사 성명서 요지’ 조선일보
2003. 3. 8)
노무현 대통령도 이야기한다.
“다음 인사부터는 검찰인사위원회를 검사장급, 부장검사,
평검사 등 인사의 성격에 따라 따로 구성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하겠다”. (‘전국검사들과의
대화’ 한겨레 2003. 3. 10)
정치적 중립성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정치란 무엇인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지배, 이것이 자본의 정치가 아닌가!
그리고 반대로 노동자 계급이 지배계급으로 상승하고, 나아가
계급사회를 철폐하는 것, 이것이 노동자 계급의 정치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과 자본의 전쟁을 본질로 한다. 당연히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지배기구인 국가에서 핵심적 권력집단인
검사들이 노자간의 정치투쟁에서 중립을 취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검사들의 성경인 형법을 보자. 형법에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죄가 다름 아닌 1장 내란죄이다 : 내란을 일으키면
죽여버리겠다! 2장 외환죄(外患罪): 적국과 힘을 합해 덤벼도
죽여버리겠다. 3장 국기에 관한 죄가 이어진다. 그리고
4장에서는 국교에 관한 죄(외국원수와 사절을 보호)로 “만국의
자본가여 단결하자”고 호소한다. 그래도 불안한지 5장 공안을
해하는 죄: (범죄)단체를 구성하면, 소요를 일으키면 감옥에
집어넣겠다. 6장 폭발물에 관한 죄: 폭발물을 사용하여 공안을
문란하게 해도 죽여버리겠다며, 민중들의 무장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공포감을 숨기지 않는다. 임금노예들의 반란에 대해
몇겹의 안전장치를 하고 한숨을 돌렸는지, 이제는 눈을 내부로
돌린다. 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직무유기). 국가기구의 폭력과 사기(공무상 비밀)를
누설하지 말라. 뇌물을 받아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말라(수뢰)
등등. 형법은 그 자체가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그리고 그 국가는
물론 자본가 계급의 국가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형법인 검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고 한다!
보수언론은 말한다.
“토론(검사와 대통령과 TV 공개토론-필자)에서도 강조됐지만,
국민들은 검찰이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으며, 동시에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편에 설 때 비로소
검찰에 성원을 보낼 것이다” (한겨레 신문 2003. 3. 10).
검사가 국민의 편에 설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자본가도 국민이고
노동자도 국민이다. 노동자 국민의 편에 검사가 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노예를 위한 노예에 의한 노예의 노예사냥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부르주아 분파간의 투쟁에서 검찰의 중립
물론 저들이 말하는 정치적 중립이란 부르주아 정치 분파 간, 즉
한나라당과 민주당과의 투쟁에서 중립을 말한다. 노 대통령은
3월 7일 열린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검찰이 그동안
기꺼이 야당 뒷조사하고 사찰하고 정권은 이런 부당한 방법에
의해 권력을 유지했다”며 “앞으로는 검찰에 신세지지 않고
정권을 당당하게 이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한다.
정권의 바램은 이런 것이 아닐까? 과거 정권은 검찰을 야당과의
정치투쟁에서 자신의 정치도구로 이용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검찰의 특권을 눈감아 주었다. 그 결과 옷 로비사건이 터지고,
각종 게이트에 검찰이 연루되어, 특검이 항상적으로 거론될 만큼
검찰의 권위가 추락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내부의
극우세력은 한나라당과 교감하며, 특히 대선 시기와 같은
권력교체기에는 내부의 적이 된다. 이는 체제유지에 커다란
해악이다. 비리의 주범, 범죄 소굴로 지목된 검찰은 민중에 대한
곤봉으로서, 체제수호의 물리력으로 자신의 기능을 할 수 없다.
또한 여당의 치명적 약점(예를 들어 대북송금과 같은)이
폭로되는 것은 여당에게 뿐만 아니라 체제에도 해악을 준다.
앞으로는 부르주아 정당간의 투쟁문제에서 검찰이 손을 떼고,
자신의 본연의 임무, 즉 체제수호임무에 전념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한나라당에 대한 타협책이기도 하다.
그러면 어떻게? 정치권에 줄을 대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는
간부진, 각종 비리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을 제거하자. 우리의
이러한 의도를 이해하고 알아서 기어줄 사람들 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쓰자.
그러면 정치적 중립은 가능할까?
물론 여기서 정치적 중립이란 부르주아 정당의 범죄행위를 법에
따라 여야당을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오죽하겠는가? 중립이란 공정하게 양당 모두의
범죄행위에 적당히 눈을 감아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램과는 달리 이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검찰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
혹은 위협한다고 속이고 때려잡을 세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혁명적 노동운동도 혁명조직을 자처하는 곳도 찾아보기 어렵다.
반국가단체라는 북한을 자본가가,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이롭게
하는 것을 보면서, 한총련을 이적단체니 어쩌구 하면서 학생들을
때려잡고 있는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할 것이다.
출세를 보장할 수 있는 영역―대공부분―이 사라졌다. 좀도둑
잡아봐야 남는 것 없고, 큰 도둑 잡자니 정관재계의 먹이사슬의
문제라 조심스럽다. 마약이나 조폭을 건드리자니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 때려치우고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해도 경기가 예전만
못하고, 검사내부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진다. 그러나 유혹이
있다. 체제에 대한 위협이 사라졌기 때문에,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부르주아 정당간의 투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사생결단의
투쟁이 벌어진다. 검찰은 전략적 요충지이다. 양당의 힘이
엇비슷해서 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투쟁은 치열하다. 이권이
있는 곳에 분쟁이 있고, 분쟁이 있는 곳에 이권이 있다. 판돈도
엄청나다. 물론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특히 야당에 줄을 선
경우―어쩔 수 없다. 투자수익은 위험도에 비례하는 법이다.
검찰도 갈라진다. 돈과 권력을 위한 검찰내부 분파간의
고함소리는 점점 커지고, 검찰청 담을 넘어간다. 민중들은
손가락질 한다. 썩었다! 정치검사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취할 수 있거나 취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경우란 다음의 경우 정도일 것이다.
첫째, 혁명적 노동운동이 거대하게 성장하여, 체제를 위협하는
경우이다. 검찰은 자신의 본연의 임무에 매진해도 출세가 보장될
수 있고, 부르주아 정당들은 자신들 간의 투쟁을 자제한다.
부르주아 정당들과 검찰은 혁명세력에 맞서 하나가 되고, 갈등을
결코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검찰은 중립적으로
보인다.
둘째, 여당의 전반적인 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검찰이
여당 일색이 되고 검찰이 알아서 티 안내고 기어주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 경우 여당은 검찰을 노골적인 야당탄압의 도구로
이용할 필요도 없고, 여당이 약점을 보이지 않아 야당도 문제
삼아서 소득이 없다.
셋째로는, 여당이 검찰에 대한 독점을 지양하고 양당은 자신의
세만큼 검찰을 양분한다. 그러면 검찰과 여야당이 모두 공범자가
되어, 내부의 투쟁을 민중들에게 폭로할 가능성이 적어지고,
그만큼 검찰은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진행된 노
정권의 검찰수뇌부 물갈이 인사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검사도
중용했다는 언론보도로만 판단해보면, 정권은 이 방법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상생의 정치”다. 그러나 이
방법은 배탈이 날 가능성을 항상적으로 가지고 있다.
결국 검찰 개혁이니, 정치적 중립이니 하는 소란은, 승리에 들떠
기고만장해 있는 부르주아 정치의 환호성이며, 독점한 권력을
자신들 내부에서 재분배하며 발생하는 투정, 회유, 협박으로
요란한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동시에 정치무대를
부르주아들에게 몽땅 내어주고, 관객으로 떠밀려나 있는, 혹은
부르주아 정당들의 꼬리가 되어있는 민중들의 한숨이다. 그러나
이것도 기억해 두자. 자본의 독점이 자본의 사멸의 시작이라면,
정치권력의 독점 또한 부르주아 정치의 사멸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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