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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와 민주노총의 대응

현장에서 미래를  제86호
김태연


노무현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와 민주노총의 대응
김 태 연/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1. 노동정책 :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배경
2월 21일, 대통령직인수위는 3대 국정목표, 4대 국정원리, 12대 국정과제로 표현되는 이른바 ‘참여정부’의 국정비전과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노동정책은 12대 국정과제 중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으로 제출되어 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가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산업평화’나 김대중 정권의 ‘신노사문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구구절절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른바 4대 국정원리 중의 하나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면서, 대결과 투쟁의 문화는 조선, 일제, 군부독재의 구시대적 잔재이며 이제 ‘대결과 투쟁’의 시대는 가고 대화와 타협의 시대임을 선포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노사간의 새로운 협력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이데올로기적 선전선동의 색깔을 짙게 띄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은 결국 산업평화를 이루지 못한 채 노동자대투쟁을 불러왔고, 김영삼 이후 민간정부의 노사협조주의는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변화와 아무 연관 없는 선전선동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어떤가?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정책의 전체 기조를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권이 사용하고 있는 ‘사회통합’이라는 개념은 노동정책 그 중에서도 노사관계나 노정관계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닌 듯 싶다. 정책 전반을 규정하는 상당히 비중을 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여정부’란 ‘방어․저항하던 국민(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정부이며, 현 시기를 ‘경제와 사회분야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새로운 도약의 시대, 사회의 각종 독점과 집중, 갈등과 소외를 극복하는 통합과 균형의 시대, 남북관계의 질적 개선으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해야 할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통합’을 기존 지배세력이 양산한 정치적 분열주의(정치파벌, 지역주의 등), 자본의 신자유주의가 극도로 심화시킨 독점과 빈부격차, 그리고 남북분단까지 결부시킨 개념으로 위치 지으려 한다. 이런 점들이 노무현 정권을 스스로 개혁적인 정부라고 말하는 근거일 것이다. 반면에 이런 점들이 노무현 정권의 개혁성의 한계를 표출시킬 수 있는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사회통합 개념의 한 축인 남북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노무현 정권의 한계가 너무 빨리 드러나 버렸다. 스스로가 내세운 국정원리의 하나인 ‘원칙과 신뢰’가 벌써 허물어져 가고 있다. 국제적 규탄을 받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의 정당성을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면서 ‘국익’이라는 논리로 파병을 결정하여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주구가 되고자 한다. 이는 국내의 다른 사안들 예컨대 사회통합 개념의 또 하나의 축인 독점과 빈부격차의 문제에서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이미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불황이라는 충격이 가해지면 ‘성장과 분배의 조화로운 21세기 한국사회’는 휴지조각이 되고 ‘국가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파시즘적 ‘국익’ 논리에 빈부격차해소로 표현되는 계급․계층간 분배의 형평성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많다. 노무현 정권이 대통령 당선직후부터 지금까지 자본의 공세가 강도를 높일 때마다 개혁의 속도조절이 거듭 발표된 데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사회, 문화, 여성’ 정책의 틀 안에서 제출되고 있는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 ‘국민통합과 양성평등의 구현’,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구축’ 등으로 제출되고 있다. 비록 사민주의 우파 수준에 접근할까말까하지만, 사회복지향상과 빈부격차완화를 통해 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토대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선전선동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어느 정도 실현할 것이며, 개혁실현을 위해 한국사회의 어느 계급계층을 파트너로 삼는가이다.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현재까지 나타나는 정책으로 보면 의료, 주택, 교육, 사회보험 등 사회복지정책에서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재원확보방안 등 구체적인 추진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국민연금제도나 기업연금제도 등에 있어서 기금안정성 확보에 중점을 두고 복지의 후퇴를 초래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권이 정권의 파트너로 삼고자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역량이 사회복지강화를 통한 빈부격차완화 정책추진력으로 가세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때문에 분배형평성 제고를 통한 사회통합 근거를 일정정도 확보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2.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내용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은 3월 19일 노동부가 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에서 노무현 정권의 핵심 전략과제로 다소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세 가지의 과제가 제출되었다. 첫 번째 과제는 ‘노사관계 법․제도의 선진화’이다. 복수노조 체제하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마련, 직권중재제도 개선, 손배․가압류 남용방지 제도마련 등 구체적인 내용이 제출되었다.
노무현 정권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전제로 이러한 개혁방안을 제출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의 한국노총 포섭, 민주노총 배제를 축으로 하는 노동정책이 노사정위원회 체제를 사실상 반신불구로 만들었고, 그 결과 한국에서는 여전히 극심한 노동탄압이 자행되어 왔다. 현장에서 70~80%의 노동자들이 현 노동법 체제하에서의 불법파업이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현장에서의 ‘폴리스 라인’을 약간 뒤로 물리지 않고서는 노무현 정권 역시 대량구속과 손배․가압류라는 공적, 사적 노동탄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포섭’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5년간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과 배달호 열사의 죽음이 실정법인 노동악법을 무력화시킨 결과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무현 정권에게 개혁의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변수가 많다. 파업권을 제한하는 직권중재제도, 손배․가압류, 구속남발 문제를 어느 수준으로 개혁할 것인가? 노동법개정이라는 제도적 개혁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 조치로 끝날 정책운영의 개선에 머무를 것인가? 아직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 노무현 정권은 대통령이 극심한 노동탄압 상황은 개선되어야 함을 공언하고, 국가의 노동행정 주무부서인 노동부가 공식문건에서 노동탄압 완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언급한 것으로 노무현 정권의 전략과제의 제1과제를 완수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

바로 노동부가 제2과로 제출한 노사정위원회 위상강화와 제3과제인 합리적 의식․관행 형성 및 노사자치주의 확립일 것이다. 제3과제는 이미 추진되고 있다. 노동부가 3월 19일 업무보고에서 21세기 노사행동규범을 마련하여 현장에서 채택하겠다고 한 지 불과 열흘 후인 지난 3월 28일 권기홍 노동장관, 김금수 노사정 위원장,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강찬수 한국노총 수석부위원장, 김창성 경총회장 등 노사정 대표들은 민간단체인 노사문제협의회 주관으로 회동하여 ‘21세기 노사행동규범 권고안’이라는 것을 채택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보도자료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민주노총도 참석했다는 사실왜곡까지 하면서 널리 홍보하고 있다. 제1과제에서 노동3권의 일부분의 개선을 말하면서 제3과제에서 ‘노동자의 행동규범’으로 ①사용자의 경영권 존중과 국가․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주력 ②임금․근로조건에 대한 합리적 요구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에 대한 성실 교섭 ③기업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경영합리화 모색 ④위압적 복장이나 비신사적 언행․폭력․파괴 등 불법행동 근절 등을 강요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신노사문화 정책의 일환인 노사협력사업에 재정지원을 하고, 헌법과 노동법에 의한 노동3권을 사적 조정제도 활성화로 ‘민영화’하려는 정책을 노무현 정권의 노동부가 전략적 과제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 정권이 ‘대결과 투쟁’의 시대는 가고 ‘대화와 타협’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중심에는 노사협조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대결과 투쟁의 문화는 조선, 일제, 군부독재의 구시대적 잔재라고 한 배경에는 노동자의 헌법상 정당한 투쟁에 대한 근본적 부정의 사상이 도사리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를 지나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사명이라고 말하면서 형식적 민주주의 수준인 노동3권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악으로 치부하고 있다. 제1과제로 제출된 극심한 노동탄압완화 조치가 어떤 수준에서든 이루어진다면 그 다음은 보다 엄중해진 현행법의 잣대를 들이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핵심은 물론 노사정위원회이다. 노동부는 노사정위원회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운영시스템을 개선할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노동정책은 물론 산업․경제․사회정책 전반을 다루도록 하고, 공익위원의 기능을 강화하며, 지역․업종․산업별 노사정위원회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노동부가 제출한 노사정위원회 강화방안 세 가지는 사실상 민주노총 현 집행부가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지점들이다. 모든 노동사안을 노사정위원회로 몰아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반해 노동부는 노동정책은 물론 산업․경제․사회정책 전반을 다루는 노사정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활용론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조차도 공익위원의 역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데 오히려 공익위원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안을 내고 있다.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지역․업종․산업별 노사정위원회 활성화에 대해 노동운동을 완전히 파편화시키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3.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민주노총의 조건
민주노총 내부는 어떤가?
지난 2월 1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문제가 안건으로 다루어졌다. 집행부는 2003년 사업계획 중 교섭방침으로 ‘노정교섭, 노자교섭, 노사정교섭을 포함하는 총체적 교섭제도를 마련한다’는 안을 제출했다.

- 교섭체제 문제 이전에 노정 신뢰회복을 위한 가시적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 노정교섭 : 최소한 정부가 사용자의 위치에 있는 공공부문 등에서는 노정교섭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 산업별 노사교섭 : 착취의 직접 당사자인 자본은 노사정체제에서 노정간의 비판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별 교섭체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 노사정 교섭 : 노정교섭과 노자교섭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위원회 개편안을 검토하여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기구 참여 문제를 결정한다.


2003년 정기대의원 대회에 제출된 교섭방침은 지난 98년 민주노총이 2기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후 공식적인 입장으로 가져왔던 ‘노정 직접교섭’ 방침과는 변화된 안임에 틀림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①노자 역관계는 자본이 절대적 우위에 있고, 제도정치권에서 노동자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노사정 사회협약체제는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를 개선한다해도 기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②노동문제의 성격상 노정교섭, 노자(산별)교섭, 노사정교섭 등 다양한 형식이 총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채 모든 사안을 노사정위원회로 넘기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③민주노총은 지난 5년간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배제전략으로 인해 투쟁요구를 쟁점화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근거 하에 이러한 교섭방침안을 제출했다.

대의원대회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대의원 분반토론 결과발표에서 이제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강하게 제출되었다. 그리고 안건심의 과정에서 원안에 대한 수정안이 제출되었다. 노사정기구 참여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제출된 ‘노정교섭과 노자교섭이 보장되는 조건’을 삭제하자는 안이었다. 찬반토론 후 표결에 들어가기로 했으나 의사정족수가 문제되어 의사진행에 협조한다는 취지에서 수정안을 철회하고 원안도 통과시키지 않는 선에서 이 문제는 미봉되었다.

이날 참석 대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조건참여 9.3%, 불참 6.5%, 노정신뢰회복을 위한 선행조치시 참여 16.4%, 총체적 교섭체제 하에서 참여 65.5%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로만 보면 수정안은 부결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권이 배달호 열사 분신을 계기로 공언한 노동탄압 제한을 위한 제도개선조치를 일정정도 추진하고, 노정관계와 산별교섭제도 보장을 위한 조치를 일정정도의 약속을 한다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다수의 지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은 제5차 중집에서 노정관계와 관련하여 노동부와의 정례 정책협의회, 청와대나 총리실 산하에 노동관련 정부부처를 일원화한 노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산별교섭과 관련하여 사용자단체 교섭의무조항 강화, 다사용자교섭의무 조항 강화 등 산별교섭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 김금수 지도위원이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4월부터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많다.


4. 민주노총의 전략과 전술
현재 노사정위원회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전술적 수준의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1997년 말 제1기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체제’라는 내용으로 사실상 노동운동의 전략적 선택이 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논의과정에서 ‘전술’이라고 표현한 것과는 무관하게 전략적 전망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만 1997년의 상황에서 전략적 전망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사람들도 사회적 합의모델의 필수요건인 제도권 내의 노동자정당을 김대중 정권의 ‘개혁성’으로 대신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어서 ‘전술’로 표현했을 뿐이다. 2003년 개혁적인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민주노총이 만든 민주노동당의 100만표 획득이라는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는 단기적으로는 전술, 장기적으로는 전략의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교섭전술론(활용론)을 근거로 든다. 대정부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힘있게 조직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일단 전술적 측면에서 검토를 해 보자. 전술이란 당면한 시기에서의 노자역관계가 중요한 판단근거의 하나가 되는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코포라티즘으로 가는 길목이므로 무조건 안 된다는 좌파의 주장은 너무 앙상하다. 이미 ‘동북아경제중심국가’로 표현되는 핵심정책이 초국적자본의 세계화 질서에 확실하게 편입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듯이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신자유주의 공세는 계속될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노동운동은 조직․투쟁역량이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노동3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850만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두어 발 떨어져 있다. 정권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노동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세력은 대공장 몇 군데만 요리하면 민주노총의 투쟁을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다양한 작동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 활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정으로 투쟁을 조직하는 데 관심이 없고 잿밥에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 투쟁이 안되면 노사정위원회에서라도 공세를 지연시키고, 이 과정에서 투쟁을 만들어 보자는 진지한 고민도 있음을 무시한 채 노사정위원회 문제를 다루는 것 역시 옳지는 않다.

그렇다면 노사정위원회 전술적 활용론의 함정은 무엇인가? 노동조합이 노사정위원회를 교섭틀로 접근한다해도 노사정위원회는 사실상 노자, 노정간의 제3의 심판자와 같은 구실을 한다. 노동과 자본의 주장은 애초에 좁혀질 수 없는 상수이고, 그 이해의 차이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는 힘인 노동조합의 파업권은 제3의 심판자의 판정으로 대체되도록 되어 있다. 정부는 공익위원의 그늘에 숨어서 심판관의 노릇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정 모두 노사정위원회에서 첨예한 쟁점들이 합의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배달호 열사의 분신으로 촉발된 손배․가압류 문제가 노사정위원회에서 다루어졌다면 아마 노무현 정권은 지금 수준의 문제해결 의지도 천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노무현 정권의 개혁드라이브를 강제하고자 한다면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라는 완충구조에 완전히 안주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정관계에서 정권이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를 갖도록 하는 것이 전술적 의미가 있다. 그것을 통해 정부의 책임이 노사정위원회의 그늘로 숨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자본에 대해 교섭결렬에 따른 파업권의 행사가 확대될 수 있도록 대자본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비정규 노동시장을 무기로 한 불안정 고용체제는 기업별 정규노동자의 현장통제 강화로 귀결되는 상황에서 산별투쟁, 산별교섭의 강화를 노사정위원회 체제로 희석시켜버리는 것은 전술 중에서도 하수에 속한다. 민주노총의 총체적 교섭방침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제출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노총의 10대 노동개혁과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여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의 교섭방침과 노무현 정권의 이런 정책이 민주노총 내외에서 대립할 가능성이 많다.


전략의 문제는 무엇인가?
단기적으로 전술적 선택을 한다해도 전략의 문제는 남는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정확한 표현은 노사협조주의 노사관계의 구축이다. 21세기 노사행동규범 채택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집행하는 핵심요직인 노동부장관, 노사정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이 참석하여 채택한 노동자 행동규범은 서툰 민간단체의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지만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민주노총의 총체적 교섭방침에 접근하는 안을 낼 경우 민주노총은 전술적 선택으로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 우선 이 경우 전술적 선택이 코포라티즘이라는 전략적 선택으로 귀결되는 문제가 남는다.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위원회는 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정책은 물론 산업․경제․사회정책 전반을 다루도록 하는 것에서 그런 전망을 담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권의 성격상 앞으로 5년 기간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노동조합을 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한 결정주체로 흡수하는 것은 어렵다. 노무현 정권이 노동조합을 권력의 파트너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전략, 노동조합과 당과의 관계, 민주노총의 이념과 노선 등 여러 가지 문제들과 결부된 복잡한 문제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조합의 투쟁력이 거세되고 지역별, 업종별 노사정위원회 등으로 노동조합이 파편화되고, 기형적 산업(업종)별 노동조합체계로 가는 맹아가 싹튼다면 한국노동운동은 자신의 전략적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미 지난 1,2기 노사정위원회를 거친 민주노총이 다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1,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산전수전 겪은 바 있으므로 민주노총이 조합원 대중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 상황이라면 귀한 생명 들쳐업고 나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무현 정권의 개혁향방이 판가름나는 2003년도에 비정규노동자 기본권쟁취, 사회복지강화 그리고 노동3권 강화를 위한 제도개혁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불사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상반기 투쟁을 통해 구체적인 개혁요구를 조합원대중의 투쟁결의로 모아내고, 노사정위원회에서 지지부진 하다면 단호하게 결렬을 선언하고 총파업투쟁에 돌입할 결의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4~5월경으로 예상되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논의가 현장으로부터 한국노동운동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2003년 총파업투쟁 결의를 함께 하는 수준으로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한/노/정/연

2003-04-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4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