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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불소화 논쟁’에 대하여

현장에서 미래를  제87호
공유정옥

노동과 환경연구팀 기획시리즈(7)


우리 사회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그동안 노동현장이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이 적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후 노동현장이 환경문제에 대해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해야 한다는 바램을 갖고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이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야심찬 기획을 하였습니다. 총론 차원에서 4꼭지를 기획하였고, 각론의 주제는 약간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총론
우리 사회의 환경문제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역사
노동운동과 환경
지구환경문제와 세계자본주의

각론
수돗물 불소화 문제/ 노동현장과 환경문제/ 생명공학과 환경문제/ 주한미군과 환경문제/ 물문제와 환경문제/ 월경환경문제(황사, 산성비, 공유하천과 바다등)/ 기후온난화와 열대우림문제/ 환경호르몬 문제/ 채식열풍과 동물해방론에 대해/ 간척사업에 대해/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도시 공간과 환경문제/ 유전자조작식품을 포함한 농업․농촌과 환경문제/ 20세기 사회주의 환경문제 등.
노동자가 알아야 할 환경쟁점-5
노동과 환경



‘수돗물 불소화 논쟁’에 대하여


공유정옥
민중의료연합 회원






1. 들어가며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란 지역 사회에 공급되는 상수도에 약 1ppm가량의 불소를 섞어서 충치 예방을 통한 구강 보건 증진을 꾀하는 사업이다. 이는 백신의 보급, 산모-영아 사망의 감소, 담배 유독성 인식, 피임과 가족 계획의 확산, 작업장 안전 개선 등과 더불어 미국 질병 통제 센터(CDC)에서 선정한 “20세기 공중 보건 분야 10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대표적인 공중 보건 사업이다.
그런데 최근의 공중 보건 사업들 가운데 과연 또 어떤 사업이 이와 같은 논쟁을 겪어왔는지 언뜻 떠오르는 바가 없을 정도로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논쟁의 양상은 대단히 독특해 보인다. 1940년대 처음 미국에서 상수도 불소화를 시행한 이래 수십년간 찬․반 진영 사이의 공방을 통해 대립지점과 논쟁 주체의 범위가 실로 광범위하게 확장되어왔던 것이다. 그 결과 이 논쟁은 더이상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논쟁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제들을 포괄하게 되었다. 따라서 수돗물 불소화 논쟁에 대한 자료들을 개인이 직접 자료를 검토해보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연구 논문들과 각종 단체의 주장들만 하더라도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데다가, 긴 세월동안 불소화에 대한 찬․반 논쟁이 실로 여러 가지 지점에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어떤 자료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럽고, 다양한 분야의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관점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논쟁을 과연 한 사람이 정리할 수 있을까. 논쟁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2년 전 우연치 않게 수돗물 불소화에 관한 역학 연구에 참여하게 되어 관련 자료들을 뒤적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생업을 제쳐두고 매달리지 않는 한, 찬․반 양측의 근거들을 총정리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은 수돗물 불소화를 찬성해야 하는가 반대해야 하는가에 답하는 것보다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서 이 논쟁 자체의 독특함에 더욱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 뒤 2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다소 어이없는 계기를 통한 것이었다. “현장에서 미래를”에서 앞으로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글이 실릴 예정이라는 소개글을 읽고 혹시 토론 모임이 만들어진다면 참여해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다가 덜컥 원고 청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독자들은 이 글이 수돗물 불소화의 확산이나 폐지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언뜻 관찰한 사람이 이 논쟁을 바라보면서 드는 단상들을 적어내려간 것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혹시 이 글에서 간단히 언급된 내용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분들은 “수돗물 불소화 기술지원단( fluoride.dental.or.kr)”이나 “국민 건강을 위한 시민연대(www.fluoride.or.kr)”, “수돗물 불소화 반대 국민연대(www.no-fluoride.net)” 등을 둘러보시기 바란다.


2. 수돗물 불소화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
수돗물 불소화 논쟁은 가장 먼저 과학적 근거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된다. 불소화 사업은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구강 건강의 혜택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반대 진영에서는 불소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근거가 충분치 못하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는 불소가 충치 예방 효과가 없고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 물질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논쟁은 과연 수돗물에 불소를 탈 필요가 있느냐, 혹은 그래도 되느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토론보다도 과학적 검증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찬․반 양쪽에서는 각각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쉬지 않고 쏟아내었다. 또한 과학 지식에 배치되는 신념이 설득력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상대편의 연구 결과들을 열심히 비판하였다. 그 비판의 논리는 반대 진영의 경우 주로 찬성론자들의 연구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것이었고, 찬성 진영의 경우 반대론자들의 연구 방법이나 해석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찬성론이 다소 우세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찬성론의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 진영의 주장들이 과학적 연구 방법을 따르지 않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우세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 논문들이 있었지만, 많은 논쟁 지점들 가운데 수돗물 불소화가 지역 사회의 충치 예방에 유익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말고는 어느 것도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기존의 연구 결과들만을 가지고는 불소화에 의한 부작용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찬․반 양측은 서로의 입장을 확신할 만한 근거들이 많다고 주장하지만, 중립적인 입장에서 문헌들을 검토해 본다면 사실상 그 많은 연구들 가운데 과학적 타당성을 인정할 만한 것들은 의외로 적은 편이라는 것이 국내외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가령 2000년 요크 대학 등에서 여러 연구자들이 불소화에 대한 전세계의 연구 결과들을 총망라하여 검토한 보고서를 인용하자면, “공공 수도의 불소화 문제를 둘러싼 관심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볼 때, 양질의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수돗물 불소화 논쟁 검토위원회’가 꾸려져 환경, 의학, 화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논쟁을 검토한 바 있는데, 그 보고서에서도 “이번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부 고농도 불소로 인한 독성이 과장된 상태로 제기된 경향은 분명 있지만, 과거에는 무시했던 수준의 건강위해도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대중들이 과거에 의식하지 않았던 위해도에 대하여 의심하고 걱정한다면 이 위해도에 대하여 다시 검토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적 근거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 하겠다.


3. ‘과학적 근거’를 넘어선 논쟁의 확산
현재 수돗물 불소화 논쟁은 과학의 범위에 국한되지 않고 환경과 생태, 윤리, 법, 인권, 정치 등 실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찬성 진영의 과학적 근거가 상대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일까? ‘과학의 영역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논쟁 지점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이 속에서 반대 진영은 공통적으로 ‘수돗물 불소화의 효과나 안전성이 입증되더라도 반대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환경 및 생태의 측면이다. 불소화 반대 진영에서는 수돗물에 인위적으로 화학물질을 첨가하는 것은 ‘물을 죽이는 행위’이며,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위해가 될 지도 모르는 행위로서 인간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과학기술 만능주의적 사고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찬성 진영에서는 불소가 본래 물이나 토양 등 자연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물질이며 수돗물 불소화란 물 속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질을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소 농도를 자연적인 범위 내에서 조절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둘째, 권리의 측면이다. 반대 진영에서는 설령 불소가 충치 예방 효과를 가지고 있고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충치가 그렇게 절박한 문제도 아니고, 불소를 원하는 사람들이 불소 함유 제품들을 구입해서 사용할 수도 있는데 굳이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수돗물에 섞으려는 것은 불소를 사용하고 싶지 않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침해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여기에서 살짝 오버하여 ‘수돗물 불소화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찬성 진영에서는 충치 예방법 중 수돗물 불소화가 가장 비용-효과적인 방법이며, 치과 진료비를 대폭 줄여 사회적 의료비 절감을 꾀할 수 있고, 특히 구강보건용품을 소비할 능력이 없는 빈곤층까지도 혜택을 누릴 수 있어 공동선을 추구하는 복지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과학 바깥의 논쟁’ 세번째는 정치적 측면이다. 반대 입장에서는 불소화 사업이 일부 산업체의 정계 로비를 통해 진행되어온 일종의 음모이거나, 적어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에 대하여 찬성 진영에서는 불소화를 통해 사기업이 대규모의 상업적 이윤을 남기기는 어려우며, 불소화 실시 여부는 지방 정부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하거나 주민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있으므로 민주적이고, 오히려 반대론자들이 비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대중의 판단을 오도하는 것이 더욱 비민주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네번째의 논쟁 지점은 사회학적 측면에서 제기되었다. 불소화 반대 진영에서는 의사와 치과의사 집단이 수돗물 불소화로 인한 의학적 부작용을 치료함으로써 돈을 더 많이 벌려는 부도덕한 의도로 이를 찬성하고 있다는 음모론부터 시작하여 아무리 좋은 보건사업이라 할지라도 의료 지식을 독점하는 전문직의 독단으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찬성 진영에서는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보건 사업을 제안하고 알리는 것이 전문가의 사회적 역할이며 이에 부도덕한 의도가 있을 수 없고, 불소화를 통하여 지역 사회는 충치 치료에 쓰이던 의료비를 절감하고 치과 의사는 충치 이외의 치과 치료에 전념할 수 있어서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주장하였다.
찬․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찬성이냐 반대냐에 대한 입장을 밝힐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소개한 여러 논쟁 지점들을 종합해 볼 때, 현재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은 찬성에 속한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공중 보건 사업으로서의 수돗물 불소화의 취지에 공감하며, 그 효과에 대해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간의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데, 이런 연구는 아무리 효용이 명백한 사업이라도 실시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찾아내기 위해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미리 알아낼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4. 찬․반 논쟁의 뒤에 숨겨진 것들
논쟁판에는 불소화를 추진한다는 혹은 저지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실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해쳐모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동일한 진영 안에 존재하는 주장들이 서로 대립되는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진풍경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속에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주장과 가장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주장이 공존하는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철학과 이념의 차이들이 전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로 나뉜다는 사실 이외에는, 다른 어떤 차이도 토론되지 않고 갈등이나 투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음의 두 글을 살펴보자.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분들은 충치를 돌볼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추진하는 분들의 좋은 목적을 왜곡하고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수돗물불소화 사업이 목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난한 사람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을 해칠 위험성이 있는데도, 불소화사업의 안전성이라는 맹신에 묻혀 간과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중략) 가난한 가정들이 불소 수돗물을 마시기보다 치과진료의 혜택을 보다 쉽고 저렴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더욱 온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협’, 「청주 수돗물불소화 중단을 위한 시민행동」 홈피

“나는 개인적으로 불소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불소정제를 주어왔고, 내 가족들이 담당 치과의사에게서 불소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공공수도체계에 불소를 넣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이것은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공수도체계의 목적은 단 한가지이다. 즉, 그것은 공중에게 깨끗한 마실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불소정제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치아에 대한 불소 국소처치를 받기 위해 치과를 방문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그렇다. 부모가 되는 데에는 책임이 따른다. 수돗물불소화는 좋은 결과를 달성하려는 게으른 방법이다. 그것은 부모가 맡아야 할 비용과 책임을 정부가 대신 맡아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방법은 세금의 형태로 우리 사회에 비용을 분담시킨다. 이것은 옳은 일인가? (중략)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 될 많은 일들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네. 그럴 때마다 정부가 나서야 되는가? 나는 지금 우리가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더 많은 개인적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건강한 사회의 기반에 필수적이다.”
- 브루스 바턴, ‘수돗물불소화 - 단순한 건강문제가 아닌 원칙의 문제’, ꡔ수돗물불소화를 우려한다ꡕ 2001 수돗물 불소화 반대 국민연대 전국대회 자료집

첫번째 글에서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는 대신에 사회적 약자가 치과 진료의 혜택을 더욱 쉽고 저렴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불소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한편, 좀더 노력을 기울여서 안전하고 적극적인 공중 보건 사업을 시행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두번째 글에서는 불소의 효과나 안전성을 신뢰하고 있으나 각 개인의 건강은 개인(혹은 그 부모)의 책임이며, 이를 위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부당하기 때문에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건강과 사회의 관계, 공중 보건의 철학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의견은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대립되는 것이라 할 만 하다. 가령 첫번째 글의 입장에서는 충치나 그로 인한 치아 소실을 치료하는 데 건강보험을 적용한다거나 극빈층의 치과 치료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 글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무책임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동 책임을 진다거나, 각 개인의 게으름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해결해서는 안되므로 이러한 정책에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 두가지의 견해가 조금 전까지는 단지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나란히 서 있었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환경적 측면에 대해서도 여러 종류의 반대 주장이 공존한다. 이와 관련한 사례로 생태주의적 입장에 대한 다음의 두 글을 읽어보자. 맨 처음의 글에서는 물 속에 화학물질을 첨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이, 두번째 글에서는 염소 소독은 찬성하지만 불소 첨가는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드러난다. 두 글 모두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물을 유지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하지만 앞의 글은 화학물질을 첨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며, 뒤의 글은 “깨끗한 물을 만들기 위한 방편에 한해 허용되어야 한다”면서 부분적인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에 대한 소독기능만을 놓고 본다면 염소는 유익한 세균과 유해성 세균에 대한 아무런 구분 없이 모두 박멸하므로 실제로 수도꼭지에 도달한 물은 모든 생명체가 완전히 죽어서 사라진, 말 그대로 죽은 물이다. 다시 말해서, 살아있는 물이 아니라 물의 ‘주검’이 가정으로 보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욱 중요하고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물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생물들의 혈액과 수액(90% 이상이 물)도 염소에 소독되므로 생물의 체내에서 살아가는 면역세포의 생명력도 약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수돗물로 인하여 바이러스, 세균, 암세포 등을 물리칠 수 있는 면역체계가 손상을 입게 되어 면역체계의 숙주에 해당하는 모든 생물들도 마침내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독한 물을 마신다는 것은 혈액을 소독하는 것과 마찬가지 행위여서 우리 자신의 몸을 질병의 나락으로 내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근 세계적으로 질병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종류의 질병들과 특히 암 발생률이 늘어나고 있다. 에이즈와 기타 치명적인 질병의 출현도 빅터에게는 전혀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인간의 무지로 빚어진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상의 피치못할 교란상태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화학물질을 첨가하여 물을 소독하면서 저지른 악행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필연적으로 치를 것이라고 그는 1933년에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 ‘물의 생명력과 수돗물불소화’, 콜럼 코츠, 위 자료집

“염소투입은 물을 깨끗하게 정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지만, 불소투입은 정수된 물에 특정목적을 위해 특정물질을 투입하는 최초의 약물화 시도라는 것이다. 또한 염소는 자연적으로, 혹은 끓이는 과정에서 증발하므로 투입이후 허용치 이하로 더욱 떨어지지만, 불소는 투입이후 허용치 이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은 깨끗하고 순수하게 지켜지는 것이 가장 최선이며 부득이한 경우 약물처리하는 것도 그것이 깨끗한 물을 만들기 위한 방편에 한해 허용되어야 한다. 물에 그 무엇을 넣겠다는 발상은 목적이나 효과를 따지기 이전에 가장 위험천만한 발상이며 자연파괴이자 생명파괴의 전주곡이다.”
- ‘수돗물 불소투입은 절대 안된다’, 반봉찬, 「수돗물불소화 관계 신자료집」 1999.9, 녹색평론사

이런 글들은 우리에게 ‘이 글에 동의하십니까’를 묻기 이전에 ‘수돗물 불소화에 찬성하십니까 아니면 반대하십니까’를 먼저 대답하도록 요구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 글의 입장에서 동의하는 것이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이런 주장들을 보면서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확히 판단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논쟁의 지점이 다각화되고, 더욱 많은 분야의 더욱 많은 사람들이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인터넷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결코 합리적인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한마디로 수돗물 불소화 논쟁에 대한 논리와 근거는 정말 많다. 일일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많은 논리와 근거들은 어딘가 속을 불편하게 한다. 수천 가지 과학적 근거들은 알고보니 과학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정치적․사회적 주장들은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를 살짝 감추고 있다. 그런데도 어쨌든 이것을 보고 찬성이냐 반대냐를 결정하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기만이 아닐까.


마치며
이런 ‘앞뒤 없이 무책임한(?)’ 글을 쓴 이유는 수돗물 불소화가 아니라 수돗물 불소화 논쟁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당신 생각은 뭔데? 라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별로 자신있게 대답할 만한 것이 없다. 글을 시작할 때 밝혔다시피, 수돗물 불소화이건 그 논쟁이건, 좋은 기회가 닿는다면 이에 대해 탁 터놓고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니까.

글을 쓰기 전에 문득 지난 대통령 선거가 떠올랐다. 후보 경선, 미디어 선거 등의 장치들이, 어떻게 해서 대중적인 정치를 구현한다는 명분 아래 이미지 정치의 전국화․대중화라는 함정 속에 사람들을 깊숙이 밀어넣었던가. 이 논쟁 역시 기존의 권위와 가치의 이미지에만 기대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글을 다 적고 난 지금은 또 이런 궁리를 하게 된다. 사회적 결정을 위한 대중적 논쟁에 있어서 겉보기에 번드르르한 말잔치를 극복하고 가치와 철학에 대한 명징한 토론과 이를 통한 사회적 성숙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논쟁에 대해 그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식으로 논쟁이 진행되어온 계기와 원인은 무얼까? 한/노/정/연

2003-05-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4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