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연금파업의 현장
많은 지식인들과 저널리스트들이 노동자 계급의 종말을 얘기해왔다. 서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중도노선으로의 수렴이 오랜 동안 주류 정치를 지배해왔고, 노동자 계급은 이에 대해 오랜 동안 침묵 혹은 타협으로 대응해왔다. 투표성향으로만 보면 이미 ‘노동자 계급’의 존재감조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작년 프랑스 선거에서의 국민전선(FN)의 부상과 저소득층 및 육체노동자들의 이들에 대한 높은 지지성향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5월부터 서유럽 전반에 걸쳐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파업투쟁이 벌어지고 있다.1)
5월 13일 화요일 프랑스 상황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학교는 텅 비어있고 지하철,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비행기조차 멈췄다. 출근하려던 사람들은 콩나물시루 버스를 타던지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 스쿠터, 롤러블레이드, 혹은 스케이트보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TGV 운행회수도 1/3로 줄었다. 항구 또한 그 기능을 멈춰버렸다. 윤전 노조의 파업 참여로 르몽드와 르피가로 등 전국 대상 일간지들도 발행되지 못했다. 국영 TV와 라디오는 파행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공급도 줄어들었다. 전기, 가스, 전화, 우편, 병원, 운송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교육노동자(교사들), 방송노동자, 세관, 항공관제사들(민간항공노조)까지 전국의 80여개 도시에서 100만이 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이날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서 항의시위를 전개했다. 재미있는 것은 파업시기에 프랑스에서 선진 7개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G-8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여기에 참가한 각국의 정상들은 프랑스의 교통이 마비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웃 스위스의 제네바를 거쳐서 간신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시라크 대통령은 속으로 이들이 히치하이크를 하지 않아야 할까 무던히도 걱정했을 것이다.
이웃 오스트리아에서도 10만명의 교사들이 1일 파업을 하는 등 수도 빈에서는 공공교통과 우편 서비스도 완전히 멈추어버렸다. 시위자들은 공항출입조차 봉쇄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이번 파업은 2차대전 이후, 50여년 만에 최대의 것이었다.
마침 이 두 나라의 노동자들이 분노를 터뜨린 이슈는 동일한 것이었다. 프랑스 100만 시위자들의 슬로건은 ‘시라크-라파랭 정부의 연금개혁안 철회’였다. 4월 TV 토론에서 사회부 장관인 피용이 공개한 라파랭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현행 연금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발생이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점차 연금 기여액은 늘리고 급여액은 축소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우선, 완전연금 수급을 위한 기여기간을 공공부문 노동자의 경우 기존의 37.5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며, 사부문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 대해 2010년까지 요건기간을 41년, 2020년까지는 42년으로 연장하며, 둘째, 공공부문 노동자의 7% 연금부담율을 2008년까지 사적부문 수준인 10%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파업을 촉발한 것 역시 공적연금 급여를 11% 삭감하려는 정부의 계획안이었다.
5월 1일 노동절에 시작된 노동자들의 시위는 5월 13일 이후에도 19일 교사들이 바칼로레아(대학입시) 시험감독 거부, 22일과 25일의 파업 등 그 열기가 여전히 식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부 모두 자신들의 연금 개혁안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프랑스의 피용(Fillon) 장관은 11일 ꡒ이 개혁은 지난 1월에 약속한 대로 오는 7월 14일 이전에 끝나야 한다ꡓ라며 정부의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13일 파업당일에도 “정부는 연금개혁으로의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13일 검은 화요일 다음날의 노-정 협상 결렬 이후에도 그는 정부는 가능한 모든 일을 다했으며 이제 노조가 자신들의 역할(?)을 해야할 때라고 언급했다. 오스트리아의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도 교육 및 과학부 장관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향해“당신들은 노령화에 대항하여 파업을 할 수는 없다.”고 언급하였다.
이들 정부들은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은 노령화라는 객관적인 변화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기에 물러설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연금제도의 재정상의 문제에 비하면 이들의 조치는 오히려 우파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대담함이 결여’된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금개혁안의 효과는 결코‘약간의 급여삭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연금재정’을 위해 1993년에 이미 노동자들은 한차례 양보를 한 바 있다. 연금액 산정을 위한 기준소득을‘소득이 가장 높은 기간 10년의 평균소득’에서 25년간의 평균소득으로 크게 낮추었던 것이다. 게다가 목표급여액도 과거에는 기준소득의 78%였던 것이 66%로 크게 감소하였다. 여기에다 완전연금수급 자격을 위한 기여기간을 라파랭 정부의 안처럼 42년으로까지 증가시킨다면 완전연금 수급을 위해서는 25세에 자격을 얻은 교사는 67세까지 일을 해야 한다. 42년에서 1년이 부족할 때마다 연금급여액은 기존의 연수당 3% 감액에서 6% 감액으로 변경되었고, 결국 만약 60세에 퇴직을 한다면 그는 완전연금액의 42%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2) 실제로 자본가들이 점점 더 많이 고령노동자들을 빠르게 젊은 노동자들로 대체시키고 있고, 총리 라파랭은 노령노동자 두 사람이 은퇴하면, 그 자리는 한 사람 고용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게다가 실업률은 계속 증가하면서 점점 더 많은 빈곤층이 양산되고 있는 반면 부자들에 대해서는 경기부양 명목으로 조세특혜조치를 계속 내놓고 있다. 즉, 최근 서유럽 정부들이 내놓고 있는 연금개혁안은 우파 정부의 노동자계급의 노동권, 사회권에 대한 일련의 공격의 일환인 것이다. 따라서 최근 노동자들의 저항이 연금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벼랑끝으로 몰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3)
또한 이번 서유럽 노동자들의 연금 투쟁의 중요한 특징은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분노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 파업을 이끈 것은 공산주의자들과 연계된 CGT 뿐이었고, 일주일 후에 다른 3개의 노조들이 참여하였다. CGT와 FO(노동자의 힘)를 포함한 모든 7개의 주요노조들은, 이미 2월 1일에 완전연금 수급 충족기간을 감소시키기로 한 안에 이미 사인을 하였었다. 이미 이들은 이에 관해서는 노동자들의 이익 수호를 포기하기로 정부와 합의한 것이다. 다만 이후 이들이 정부와 합의에 실패한 것은 연금기여금 증액 문제를 둘러싼 불화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들 노조들은 민영화와 관련하여 정부 및 자본가들과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연금개혁안에 대한 불만은 더욱더 포괄적이고 폭발적이기까지 하다. 일반 노동자들이 관료화된 노조 지도부들을 재촉하는 형국인 것이다.
사회당의 태도 또한 분명하지 않다. 사실 연금제도에 대한 공격의 시초는 이미 1988년-1991년 사회당 총리였던 미쉘 로카르(Michel Rocard)에 의해 주어졌다. 1993년 우파정부의 연금개혁은 로카르의 백서의 제언들을 수용한 것이다.4) TV 프로그램에서 피용 장관은 또한 로카르와 같은 사회당 인사들이 매주 전화를 걸어 연금개혁안을 고수하라고 말한다고 하였다.5)
이러한 프랑스 연금투쟁의 성격은 한편으로는 서유럽 노동계급의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 시라크-라파랭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자신감이 근거가 노조 및 좌파정당의 협력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1995년의 우파정부의 기여기간 연장시도가 대대적인 운송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쥐페 총리는 하야하였고, 이후 총선 패배를 자초한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또 다시 연금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파정부 또한 노조 및 좌파정당들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다는 정치적인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을 정당화하는 글로벌 경제하의 경쟁력 담론 하에서 공적연금 축소 및 주식투자에 기초한 사적연금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연금개혁은 점점 더 정당화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자본가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프랑스의 자본가들은 노동비용 감소를 경쟁력 확보의 전제조건으로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노조와 좌파정당들은, 프랑스 기업의 경쟁력과 투자유인을 줄이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업이윤과 부유층에 대한 더 많은 과세를 통해 연금재정을 조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못하다. 프랑스의 사회당 또한 사실상 국내외에서 프랑스 기업들의 수호신 역할을 충실히해오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주류노조 및 사회당의 관점은 프랑스의 고용주 연합 메데프(Medef)의 관점, 연금파업에 대해 노동자들은 거리를 너무 자주 점거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견해와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
게다가 정부는 1995년의 쥬페의 실패를 거울삼아 각 부문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전술을 채택하였다. 라파랭은 각 부문별 특별연금체계의 개혁을 각 산업별로 하나씩 다루기 위해 이를 연기시키기로 결정하였다.6) 이는 1995년에 대규모의 투쟁을 펼친 철도부문뿐만 아니라 가스, 전기 노동자들, 파리 공공교통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전부문의 기층노동자들은 한꺼번에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1995년의 연금투쟁의 승리가 프랑스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될 것인가? 관건은 연금개혁안에 대한 프랑스 민중들의 불안감과 저항이 얼마나 보편화될 것인가, 또 이러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노조관료들과 우파정부 간의 타협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이다. 만약 이들의 연금투쟁이 승리를 거둔다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적연금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공격을 민중들이 어떻게 저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1)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업규모는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에 비해 작은 편이며, 연금이슈와는 덜 연관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프랑스 사례에 집중하여 소개할 것이다. 알리탈리아(이탈리아 항공) 승무원들은 직무 삭감에 대해 병결로 저항함으로써 285개의 항공편을 결항시켰다. 동독지역에서도 금속노동자들이 서독의 금속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한 35시간 노동권을 요구하는 피켓팅을 하였다
2) 국내언론들도 프랑스의 연금파업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논조는 대부분 프랑스의 자본가 및 우파정당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 ‘놀기 좋아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은...’(중앙일보, 5월, 일자) 등의 표현에서 이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또한 사실에 대한 무지조차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최종임금(흔히 평균임금보다 훨씬 높게 마련인)의 80%의 연금을 받기 때문에 프랑스는 연금생활자들의 천국이라는 식이다.(동아일보, 날짜불명) 행간을 읽어보면 이는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의 감액은 노동자들과의 생활수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이미 10여년 전에 끝장난 신화이다.
3) 시위에 참여한 교사 알랭 브리그너(Alain Brignaud)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영국에서 새처가 공공부문을 축소시켰던 것과 마찬가지의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현재의 시스템을 지켜내야 한다.”
4) 「Les retraites au peril du liberalisme」, 연도불명, The Copernic Foundation.
5) Le Monde, 26 April 2003.
6) Le Monde, 20 April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