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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연대 상반기 투쟁

현장에서 미래를  제88호
강효찬

궤도연대 상반기 투쟁


강 효 찬/ 도시철도노조 대협국장





서울지하철 노조와 부산지하철 노조 그리고 철도의 전기협 선배들이 공동파업을 성사시킨지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9년이 지난 지금 조건과 상황은 다르지만 선배들의 투쟁을 기리며, 6월 24일 부산지하철, 대구지하철, 인천지하철 노동조합이 공동파업을 선포하고 준비하고 있다.

2002년 8월 중순에 한국노총 사업장인 도시철도연맹에 소속된 대구지하철노조, 인천지하철노조, 서울의 도시철도노동조합 위원장 및 간부들이, 공공연맹 운수분과 수련회에 초청되어 상급단체가 다르다 할지라도 궤도 사업장간의 교류와 연대가 필요함을 서로 인식하게 되었다.
서울의 도시철도노동조합에서는 나영섭 위원장이 불신임되고, 보궐선거로 현 허인 집행부가 당선되면서 궤도노동조합간의 모임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연장운행문제가 발생하여 철도노조, 인천지하철노조, 도시철도노조가 자연스럽게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공동의 대응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서울지하철노조는 처음엔 논의를 같이 하였으나 연장운행에 대한 입장이 상이하여 결국 대책위에 결합하지 못했다).

연장운행투쟁이 마무리되고 나서 궤도노동조합 대표자들의 모임은 보다 조직적인 틀을 요구받게 된다. 그래서 전국궤도노동조합 연대회의(이하 궤도연대)를 구성하였고, 당장의 큰 사업보다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노동조건조사를 중심으로 하여 낮은 단계부터 사업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나, 도시철도노조 같은 경우 장기적인 것보다, 03년 상반기에 궤도연대가 공동의 사업을 배치하고 투쟁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대구참사가 터지기 전까지 도시철도노조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각 사업장별로 임단협이 있었으나 시기를 맞추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오직 철도노조만이 2.27합의 이행과 현장인력 쟁취 투쟁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이 일정 또한 도시철도노조와 상당한 시간적 간극이 있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위의 어려운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 주는 계기 되었다. 또한 궤도연대 내부의 쟁점이었던 서울지하철 참여 문제도 일단락 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궤도연대는 3월 19일 대구 중앙로역에서 진행된 추모 집회에서 지하철 안전과 관련된 요구를 가지고 공동대응과 공동투쟁을 하기로 결의하고 이에 대한 사업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전에 주된 요구는 1인승무 폐지와 역 안전인원 확충, 기술, 차량의 외주용역철폐, 역 민간위탁 철회, 안전비용의 정부직접투자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궤도연대에 소속된 모든 노조가 공동투쟁을 결의하지는 않았다. 철도노조의 경우 국회일정과 내부일정 등의 문제로 먼저 4월 20일 파업일정을 잡았고, 서울지하철노조의 경우는 타 지하철 사업장에 비해 구조조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동의 요구안이 맞지 않은 측면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공동의 투쟁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의 도시철도노동조합, 부산지하철노조, 대구지하철노조, 인천지하철노조 등 4개 노조가 5월말에서 6월초 까지 공동투쟁을 결의하고 궤도연대 차원에서 투쟁준비에 들어갔다.
궤도연대는 대표자회의를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였고, 대표자회의 결정에 대해 집행을 하는 집행회의로 구성되었다. 집행회의는 각 노조 별로 실무책임자가 결합하였다.
대구지하철노조와 인천지하철노조는 노조의 역사가 5년 정도로 짧았고, 쟁의행위 찬반투표 조차 해보지 않은 사업장들이었다. 서울의 도시철도노조 또한 불신임 이후 보궐로 당선된 집행부의 임기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부산을 제외하고는 조건이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궤도연대에서는 지난 4월 진행된 철도투쟁이, 이후 있을 4개 노조 공동투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일단 4월 20일 철도파업투쟁 지원에 집중하였다. 철도투쟁이 마무리되면서 4사 노조도 가능성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현장을 설득하는데 여러 가지로 유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4월 대의원 대회부터 4개 노조는 공동의 보조를 맞추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도시철도노조에서는 대의원 대회가 무산되고 일부 간부들이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사퇴를 하였지만, 공동투쟁의 일정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특히, 상급단체가 틀렸던 대구, 인천, 도시철도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 시에 상급단체변경투표를 같이 진행하기로 결의하여 공동투쟁의 걸림돌(?)을 해결하려고 했다.
도시철도노조는 상급단체는 변경하였으나, 쟁의행위를 부결시킴으로 인해 사실상 공동투쟁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지만 3사 노조는 일정대로 투쟁을 진행하기로 했다.
도시철도노조에서 쟁의행위가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와 인천의 현장의 분위기는 큰 동요없이 계속 동력들이 살아나고 있어, 애초 걱정했던 것을 극복하고 현장조직력이 강화되고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궤도연대라는 틀을 가지고 궤도노동조합들이 하나의 테이블에서 논의하고 집행해가는 과정은 어찌되었던 각 사업장 조합원들에게 큰 힘을 준 것은 사실이다.
모든 연대들이 그렇듯이 궤도연대 회의나 집행과정에서도 조직별 특성과 상황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여전히 상층간부를 벗어나는 현장으로부터의 연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직종별로 몇차례 교류는 있었으나 확대되지는 못했다.
아직 안전확보 투쟁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도시철도노조는 쟁의행위가 부결되어 투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대구와 인천, 도시철도노조가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변경한 것은 투쟁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3개 노조뿐 아니라 전국궤도노동조합이 하나의 단일한 대오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03. 6. 10.) 한/노/정/연

2003-06-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