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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민주주의를 일구어 가는 사람들: 부안공동체

현장에서 미래를  제90호
김남희


소박한 민주주의를 일구어 가는 사람들: 부안공동체


김 남 희
부안주민






올 여름 내내 순박한 부안 사람들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있다. 농사짓느라 시커멓게 타들어 가야 할 농투성이 얼굴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타들어 가고 있다.
부안 군민의 의사를 대변해야 할 군수가 군의회조차 부결할 수밖에 없었던 핵폐기장 유치 안건을 군수독단으로 신청하면서 부안 군민들은 극심한 배반감과 모멸감으로 속내까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자기 땅에 뒷간을 짓는 일도 아니고, 7만 부안 군민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핵폐기물 쓰레기장을 짓는 어마어마한 사안에 대해 자신을 뽑아 준 군민들에게 단 한차례 의견을 묻는 과정도 없었다. 그리고 군수는 핵폐기장 유치 신청 하루 전까지만 해도 기자회견을 통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입장이 돌변해 몰래 유치 신청 도장을 찍고 도망가버린 군수의 독단적이고 반민주적인 작태에 분노한 군민들은, 이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낮밤 구분 없이 반핵민주광장이라 이름 붙여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50여 일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김종규 군수의 절차를 무시한 반민주적 행태는 거꾸로 부안 군민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해주었고, 공동체 정신을 일구어 나가게 해주었다.
누가 나오라는 것도 아닌 데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그 비를 다 맞아가며 촛불집회를 여는 사람들, 농사도 장사도 고기잡이도 다 뒤로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목이 터져라 핵폐기장 반대를 외치는 군민들에게 끝임 없이 생수병을 날라대는 사람들, 혼자 몸으로 어렵사리 6남매를 키우면서도 6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소를 팔아 핵폐기장 반대 투쟁기금으로 선뜻 내놓는 아주머니, 다 늙은 노인네들이 경노당에만 앉아 있으면 무엇 하냐며 우리 손주들에게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부안 땅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촛불집회에 나와야 한다고 외치시는 할아버지, 모두들 고생한다며 수백 명 분의 밥을 해 가지고 나오시는 시장 아주머니들, 부상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의사․약사․한의사들, 해 뜨자마자 나가 해 질 때까지 뜨거운 햇빛 아래서 밭일해야 겨우 2만원 일당 받는 아주머니․할머니들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용돈을 들이미는 아이들까지 십시일반 모여진 반핵투쟁기금은 일찌감치 1억원이 넘어섰다.
지금 부안 군민들은 서로에게 고마워하며,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며 부안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동체 정신을 아픔을 통해서 익혀가며 이를 실현하고 있다.
이제 부안군민들은 핵 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전문가들이 다 되었다. 단순히 부안땅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것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어디에도 생명을 위협하는 핵폐기장은 들어서면 안된다고, 그 불행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고 외치고 있다. 주식회사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촌무지랭이들을 돈으로 유혹하려고 수백억원 뿌리며 다니지 말고 정부는 근본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렇듯, 지금,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역사가 부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강경진압,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평생을 부안 땅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노인네들을 비롯하여 부안군민 대부분은 수천명에 이르는 전투경찰(그것도 서울서 차출되어 온 최고 진압부대인 일빵빵부대들)을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그 전투경찰들이 맨 손 비무장의 아이들, 노인네들을 방패로 찍고, 몽둥이로 치고, 군화발로 짓밟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부상의 정도가 심해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 만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부안은 지금까지 부상자가 이백여명에 이르고, 구속자, 수배자, 연행되었던 사람도 백여명이 훨씬 넘는다. 전투경찰들에게는 ‘제2의 광주’로 생각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하니, ‘부안군민은 대한민국 정부가 보호해야 할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보다’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떠돌고 있다. 부안나라, 부안민국이라고......
온 부안 군민이 한마음이 되어 외치고 있는데도 대답은커녕 강경진압만을 지시하는 노무현 참여정부, 반민주적 행태로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해 놓고도 반성은커녕 구국의 결단이었노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부안 군수, 그것을 잘했다고 칭찬이나 하며 격려전화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며, 부안군민은 또다른 결단을 하게 되었다. 이런 대통령과 군수에 대해 학교에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점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아름다운 산과 들과 바다를 물려줄 수 없는 이 상황, 아이들과 그 후손의 생명을 소중히 지키기 위해, 부안군의 초, 중, 고 모든 학생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등교거부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부안은 요즈음 천진난만한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많은 상처를 안고 기나긴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진정 더 큰 상처를, 불행을 막기 위해 오늘도 여전히 식지 않는 열기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된 부안군 위도에서도 핵폐기장 반대로 민심이 달라지고 있기에, 꼭, 승리할 것이라고 믿으며......
역사는 결코 거꾸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설움의 땅, 위도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된 부안군 위도는 섬의 모양이 마치 고슴도치 같다하여 이름이 위도라 붙여진 섬이다. 부안군 격포항으로부터 14km 떨어진 위도는 붙여진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고즈넉한 땅이다. 동시에 설움의 땅이기도 하다.
위도 주민들은 작은 배로 멸치와 조기잡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들이었다. 그런데 노태우 정권시절 새만금방조제 사업을 시작하면서 갯벌은 변형되고 생태계는 파괴되어 근해에서는 멸치를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멸치잡이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위도 어민들은 농협, 수협으로부터 수천만원에 이르는 빚을 내서, 먼 바다까지 나갈 수 있는 큰 배를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새만금 사업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는 명백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시한 보상권내의 거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위도 주민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였다.
위도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생존권 위협은 전라남도 영광에 핵발전소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영광에 핵발전소가 들어서기 전까지 그 유명한 영광 굴비의 참조기는 위도 앞바다에서 잡힌 조기였다. 그런데 영광 핵발전소의 가동 이후 참조기의 크기가 현격하게 작아졌고, 어획량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는 핵발전소의 가동으로 열폐수가 발생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게 되는 데 문제가 있었다. 유입되는 냉각수와 배출되는 온수의 온도차는 평균 10도 정도 차이를 보인다. 이는 어패류에 있어서 크나큰 생태파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어패류의 폐사와 기형, 그리고 어획량의 감소를 가져왔다. 이처럼 더 이상 참조기를 잡을 수 없게 되어 생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도 주민들은 역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위도는 영광으로부터 17km 거리에 있어 정부가 제시한 보상권 반경에 해당되었으나, 핵발전소의 위치는 행정적으로 전라남도이고 위도는 전라북도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위도 주민들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었던 것이다. 실제 영광 핵발전소로부터 18km 떨어진 전라남도의 한 섬은 적절한 보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위도 주민들은 새만금 사업과 영광 핵발전소 건설로 이루 말 할 수 없는 생계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설움들을 안고 살아야만 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순박한 사람들, 그들을 눙쳐먹은 사기꾼 정부
정부의 새만금방조제 사업과 영광 핵발전소 사업추진으로 생존권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해도 어디다 제대로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설움을 삭히며 살아가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민초들의 섬, 위도에는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아픔만이 남아있다. 모든 보상으로부터도 소외된 위도 주민들은 늘어만 가는 빚더미에 눌려 있었으나 그래도 바다를 등지고 살 수 없어 고단한 일상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영광 핵발전소로 인해 피폐해진 위도 주민들에게 정부는 핵폐기장이라는 죽음의 안을 제시한 것이다. 3억을 준다, 5억을 준다는 소문과 함께,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을 돈으로 현혹하기 시작했다. 새만금과 영광 핵발전소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던 1700명의 위도 주민들 중 90%에 달하는 주민이 불과 3일만에 찬성 서명을 하기에 이르렀고, 7만 부안 군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위도 주민의 90퍼센트 찬성 서명만을 가지고 부안군수는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기습적으로 강행한 것이다. 17년간 그 어느 곳에도 핵폐기장을 유치하지 못하던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와 한수원은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위도 주민들을 한 평생 만져 볼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3억, 5억 현금 보상설로 현혹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유치신청이 성립되자 정부의 입장은 돌변하였다. 현금보상은 불가하다는 방침을 분명하게 내세우며 이후 위도 주민들이 혹여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철회한다하더라도 핵폐기장 건설은 강행한다고 발표했다. 위도 주민들로서는 복장이 터지는 일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서럽고 아픈 삶을 어루만져주기보다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무지랭이들이라고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노무현정부의 적나라한 모습은 이렇게 본질이 드러났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진행되면서 난공불락 같았던 위도 땅에서도 산자부와 한수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심은 서서히 핵폐기장 반대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하고 있다.


환상의 섬, 위도
위도는 천연기념물의 보고이자 생태학적으로 뛰어난 보호가치를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세계적으로 위도에서만 자라는 위도 상사화를 비롯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후박나무 등의 상록활엽수림, 관목층이 어우러져 있고, 천연기념물인 수달은 여름 피서철만 지나면 흔하게 나타난다.
오랫동안 위도를 탐사해 온 한 식물학자는 멸종위기의 많은 위도의 천연기념물들을 세상에 공개하면 자칫 남획과 도벌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까 우려하여 위도의 생태학적 가치를 세상에 공개하는 것을 주저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7월 전격적으로 위도가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된 것을 보면서, 차라리 일찍부터 널리 홍보를 했었어야 했다는 자책감과 아쉬움이 엇갈렸다고 한다.
최소한 주민들에게만이라도 그 가치를 이해시켜 스스로 보호하도록 했더라면, 아무리 억대의 현금 보상금을 준다고 유혹하더라도 그렇게 주저 없이 유치찬성 서명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위도는 다양한 자생식물과 천연기념물들로 가득한 아름답고 청정한 섬으로써 충분한 보호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인 위도 띠뱃놀이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위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당연히 재검토되어야만 한다.
유치신청을 하는 과정에서의 속임수와 비민주성, 불철저함이 만천하에 알려진 지금, 유치신청을 한 군수가 이를 철회하지 않는 한 계속 진행하겠다는 정부의 모습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정부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가운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국책사업의 정당성을 정부 스스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식물학자의 말을 빌려 핵폐기장 부지 선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정부는 애초 위도 주민 대다수가 핵폐기장 유치에 찬성했다는 것을 사업강행의 주요한 근거로 내세우지만, 위도의 원주민은 사람만이 아니라 더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생물들도 포함된다. 자연은 말이 없다지만 그들의 생존권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자격이 과연 사람에게 있는지 의문이다.” 한/노/정/연

2003-09-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5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