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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화섬 노동조합 사무국장 고 박동준씨 대한중합공장 옥상(68m)에서 투신자살에 대하여

현장에서 미래를  제91호
장민식

대한화섬 노동조합 사무국장 고 박동준씨 대한중합공장 옥상(68m)에서 투신자살에 대하여


장 민 식/ 태광산업 정리해고저지투쟁위원회





사건경과 및 의문점
2003년 9월 27일 오전 8시 50분경 울산에 있는 대한화섬 중합공장 옥상(68m)에서 노동조합 사무국장이었던 고 박동준 씨가 투신자살하였다.
사고 후 경찰은 고 박동준 씨의 왼쪽 상의 안주머니에서 ‘사측은 부당노동행위 중단하라’ ‘사측은 노동조합 운영에 개입하지 말라’라는 두 장의 유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와 경찰은 사건발생 7시간 후에야 미망인에게 연락을 하여,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는지 의문스럽고, 경찰은 처음에는 유서가 없다고 하다가 인터넷에 유서 사본이 게시되자 석 장의 유서가 있다고 번복하는 등 사건을 축소 은폐한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고1의 아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 유서를 비롯한 물품을 가져왔지만 무엇을 가져왔는지 물품 확인서도 없었다.
회사는 무엇을 감추려는지 고인의 문상을 위해 방문한 해고자들의 출입을 막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양복을 입히고 병원주위에 배치했고, 유가족을 납치하다시피 해서 서둘러 합의를 이끌어냈다. 평상시 산재사고가 나더라도 본인의 과실을 말하며 시간을 끌던 행위와는 전혀 다르게 재빨리 사건을 무마시키려 서둘렀다.


사건의 배경
2001년 40년간 적자한번 없던 태광자본이 향후 적자가 예상된다며 127명을 정리해고 하였다. 이중에는 전 현직 노조 간부 중에 민주파 활동가라는 사람은 모조리 포함되어 있었다. 현장에 활동가들의 씨가 마르자 많은 조합원들이 회사의 강제 희망퇴직에 힘없이 무너져내려 천여 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희망퇴직하였다.
이후 회사는 위원장 선거에 개입하여 노동조합을 장악했고, 부정선거를 통해 어용대의원을 100% 당선시켰다. 회사의 조종을 받는 어용노조는 2002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하여 상급단체 규정을 없애고, 위원장 선거를 간선제로 바꾸고, 임기를 3년으로 늘렸다. 대의원의 임기는 2년으로 늘리고, 쟁의기금 규정과 생계비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민주노조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태광산업 대한화섬 노동조합을 태광산업 노동조합과 대한화섬 노동조합이라는 두 개의 노조로 분리했다.
이후에도 태광자본은 현장조합원들이 밖의 해고자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하였다.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촬영하여 개별면담을 하고, 통근버스를 까맣게 썬팅했으며, 해고자들을 만나면 벌점을 받는다는 현장의 제보도 있었다.
태광자본이 노동조합을 장악한 후 임원들은 고위 관리자의 추천으로 대의원은 부서장의 추천을 받아야만 입후보할 수 있다고 한다. 고 박동준 씨도 고위관리자의 추천으로 사무국장이 되었다고 하는 현장조합원의 제보가 있었다.
2003년 초 태광자본은 간접부서의 하도급전환을 시도하다가 현장조합원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었고, 노동조합은 한국노총에 가입하였다.
회사는 2003년 임금협상을 통해 노조 측 요구안 5%에 대해 15%를 제시하면서 한국노총 탈퇴를 요구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어용노조의 사무국장이었던 고 박동준 씨가 노동탄압에 대한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였던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명한 충격적인 사실이 감춰져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태광자본이 사건 이후 현장조합원들에게 해고자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경비를 대폭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무엇을 숨기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태광산업 대한화섬 정리해고저지투쟁위원회의 상황
127명이 정리해고 당하고 20명이 징계해고 당한 후 많은 사람들이 생계의 문제로 투쟁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다. 현재 남은 69명의 동지들도 2년 내지 5년 동안의 해고생활로 인해 생계파탄을 겪고 있다. 현재 정투위는 생계 문제로 인해 자체 투쟁력이 많이 떨어져 있고, 2년 동안 매일 이어온 출근투쟁도 5~10명의 동지들이 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동준 열사 대책위가 꾸려지기는 했지만 가족은 합의를 한 상황이고, 민주노총은 울산지역본부 선거로 인해 투쟁에 어려움이 있었고, 현장은 어용노조가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없이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정투위 마저 투쟁의 동력을 이어갈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다.
다만 고 박동준 열사의 뜻을 잊지 않고 사인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멈출 수 없는 우리의 과제이다. 대책위 중심으로 투쟁을 이어가면서 태광정투위의 부당해고 문제와 손배, 가압류문제를 함께 엮어서 끈질기게 싸워갈 것이다.

투쟁 전망 및 방향
지역본부장 선거가 끝났지만 여전히 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끌어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
우선 가족이 합의를 끝낸 상황이고, 현장에 민주노조의 동력이 끊긴 상황에서 정투위와 지역의 힘만으로 이 문제를 대규모 투쟁으로 확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우리들의 해고무효투쟁과 손배, 가압류 해제투쟁처럼 열사투쟁 역시 장기투쟁으로 이끌어가면서 우리들의 투쟁으로 받아 안고 투쟁할 것이다.
승리할 그날까지 끝까지 싸워갈 것이다. 한/노/정/연

2003-10-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5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