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TO 5차 각료회의 결렬 WTO에 맞선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승리 |
현장에서 미래를 제91호
|
|
원영수
|
WTO5차 각료회의와 칸쿤 투쟁
원 영 수 ∙ WTO 5차 각료회의 결렬,
WTO에 맞선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승리
류 미 경 ∙ WTO 5차 각료회의 무산, 어떻게 볼 것인가?
권 미 란 ∙ 트립스(TRIPs) 협정과 공중보건
전 소 희 ∙ 지구적 반WTO 투쟁, 지금부터 시작이다.
강 상 구 ∙ WTO 각료회담 투쟁 참가기
WTO 제5차 각료회의가 결렬되었다.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후에도 지속될 세계 자본의
음모 전부를 기각시킨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미래를 이번 호 특집으로는 반WTO 투쟁을 설정하였다.
먼저 첫 번째 글에서 WTO 회담 결렬의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는 회의에서 제출되었던 의제에 대한 분석을 총괄적인
부분과 트립스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지구적 반WTO
투쟁, 지금부터 시작이다’에서 칸쿤 투쟁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투쟁 참가기를 싣었다.
칸쿤 투쟁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하였던 한국의
칸쿤투쟁단, 이경해 열사의 뜻이 본 특집을 통해
노동자․민중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희망한다.
WTO 5차 각료회의 결렬,
WTO에 맞선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승리
원 영 수/ 국제기획실장
Todos somos Lee!
Lee, hermano, te has hecho Mexicano!
Lee, presente, hoy manana y siempre!
Lee no murio, la OMC lo asasino!
우리 모두 다 이경해다!
이경해, 우리 형제여, 당신은 이제 멕시코인이다!
이경해,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언제나!
이경해 동지는 죽지 않았다, WTO가 그를 살해했다!
-- 비아 캄페시나의 행진 중에 외쳐진 구호
칸쿤 투쟁의 승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강요하는 WTO 체제의
취약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전세계 노동자-민중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에게 정치적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의 전망을 여는 결정적
전기를 제공하였다.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 제2의 시애틀
9월 13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WTO 제5차 각료회의 선언문
초안이 배포되면서 멕시코 칸쿤은 긴장감이 돌았다. 과연 WTO는
합의에 도달할 것인가? WTO 회원국 내부의 갈등과 모순 외에도
이경해 동지의 할복항거로 회의장 밖의 투쟁열기는
고조되었지만, 부르주아 언론은 누가 선언문 초안에
반대하겠느냐는 조심스런 진단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선언문 채택여부는 대단히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마침내 9월 14일 칸쿤 협상의 결렬이 선언되었다. 농업협상의
첨예한 대립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역원활화, 정부조달,
투자 및 경쟁정책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 ‘싱가포르 이슈’에
관한 협상에서 새로이 세력을 형성한 개도국 대표단이
반발하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로써, 9.11 테러 이후의
국제공안정국과 제국주의 전쟁공세 하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노선을 강제하려는 제국주의 진영과 초국적 독점자본의
정치적 의도는 1999년 시애틀에 이어 다시 한번 좌절되었다.
칸쿤전투는 시애틀전투의 뒤를 이었다. 물론, WTO와 제국주의
정부들은 여전히 “DDA 합의 사항의 성실한 이행”과 “협상의
지속”을 다짐했지만, WTO의 앞날은 결코 순탄할 수 없다.
냉전체제 종식이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공백을 투쟁으로
돌파해온 반세계화 운동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반세계화 운동은
아직 초기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발전의
궤적을 보이며 또 한번의 정치적 승리를 쟁취하는 비약적 발전을
하고 있다.
예상외의 돌발변수: 이경해 동지의 자결투쟁
9월 10일 멕시코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는 육탄전 와중에
한농연 전 의장 이경해 동지가 자해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이 동지는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끝내 사망했다. 개인적
결단에 의해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죽음은 미약한 한
개인으로서 극단적 저항임과 동시에, 자유화와 개방으로 유린된
한국 농민의 삶을 처절하게 대변하는 한국농민 전체의
투쟁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으로 칸쿤의 상황은 돌변했다. WTO 측이 과거와는
달리, 일부 대표자에 한정된 것이지만, 소위 NGO 대표단에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애썼지만,
전세계 농민조직 ‘비아 캄페시나’를 중심으로 한 투쟁대오는
WTO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른바 ‘케언즈 그룹’에 의해 주도되는 농업개방협상은 소수의
농업 초국적독점자본의 막대한 자본력 앞에 소농경제에 의존하는
제3세계 농업과 농민의 생존권을 그 뿌리부터 말살하는
것이기에, 전세계 농민들의 저항은 절박한 것이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우르과이 라운드 이래 농가경제 전체가 파산의
나락으로 내몰리고 있기에, 이경해 동지의 자결은 그 방법에
동의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결단이었다.
그러나 한국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그의 죽음을 교묘하게
흠집내기에 급급했으며, 한국 농민의 생존에 대한 어떤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사실상, 한국정부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여전히, 대세론의 핑계하에 어떤 전략적 접근도 배제한
채 제국주의 세력의 주구역할에 충실했었고, 바로 이것이 한국의
농민과 민중, 칸쿤의 투쟁단을 분노케 하는 부분이었다. 이경해
동지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자살이지만, 그를 죽음으로 내몬
주범은 바로 WTO와 한국정부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칸쿤투쟁과 반세계화 운동: 평가와 전망
1999년 시애틀전투에서 촉발된 반세계화 운동은 짧은 기간이지만
역동적인 발전의 길을 걸었다. 9.11테러와 국제적 공안정국
하에서 일시적 후퇴를 강요받았지만, 이라크침공에 맞서 국제적
반전투쟁과 결합하여 국제적 반제투쟁전선을 구축하였고, 이번
칸쿤 대회전에서 또 하나의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한편에서 회원국간의 이해와 입장차이의 조율실패라는
현상적 요인 외에도 본질적으로 WTO체제의 계급적․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더 조직화되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의 지속적 저항과 투쟁 때문이다. 반세계화
운동의 강력한 포위타격투쟁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소극적․외교적 저항으로 일관하는 이른바 개도국
정부들에게 보이지 않는 엄호를 통해,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신자유주의적 개방과 자유화 노선에 맞설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시애틀의 실패 이후, 사막 한 가운데서 뉴라운드
‘도하개발어젠다’(DDA)를 어거지로 출범시켰듯이, WTO는 이번
칸쿤의 실패를 딛고 또다른 술책을 통해 협상을 종결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칸쿤투쟁은
WTO 체제의 내적 취약성을 폭로하였고, 다시한번 정치적
패배주의를 넘어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재확인하였으며,
여기에 바로 칸쿤투쟁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국제적 동원의 측면에서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번
칸쿤투쟁은 현지투쟁의 격렬함과 정치적 승리에 비해
전체적으로는 상대적 취약점을 드러냈다. 이는 지난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의 4차 각료회의 시의 상징적 국제동원에 비교할
정도로 취약한 것이며, 이는 이번 투쟁으로 WTO를 좌초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또는 자신감 결여에서 비롯된 정치적
패배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 외에도, 당면투쟁을 정치적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도 역시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세계화 운동의 현단계에서 어떤 구조화된 지도력 구축의
문제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빈약한 국제적 동원은
반세계화 운동 주체의 수준과 한계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반세계화 운동의 한 축을 형성하는 세계사회포럼이 그 자체로서
주체형성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세계사회운동 네트워크의 형태로
조직적-기술적 구조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과연 이런 과제를
담지해 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어쨌든, 이번 칸쿤투쟁을 통해 반세계화 운동은 시애틀에 이어
또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으며, 보다 강화된 자신감을 가지고
국제적 동원타격투쟁과 세계사회포럼에 임할 것이다. 칸쿤
협상의 결렬은 WTO의 정치적 한계를 드러냈으며, 반세계화
운동은 더욱 유리한 입장에서 공세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유리한 정세에서 반세계화 운동이 자신의
조직력과 정치적 지향을 강화할 전략적 전망을 도출할 주체적
역량의 구축여부로 귀결될 것이다.
한국의 반세계화 운동: 전망과 과제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은 그동안의 반세계화 투쟁의
성과를 모아, 전농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180여명의 대규모(?)
투쟁단을 멕시코 칸쿤에 파견하였다. 현지의 준비과정의
미흡함과 대규모 국제투쟁단 조직경험의 부재로 여러 가지
실무적,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 투쟁단의 파견은 한국
노동자․민중운동에 있어, 특히 국제연대활동에 있어
새로운 경험이자, 질적 발전의 계기였다.
비록 이경해 동지의 자결투쟁이라는 우발적 변수로, 한국
대표단은 현지투쟁의 주력부대가 될 수밖에는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다양한 전술구사와 특유의 투쟁력으로 멕시코 현지의
활동가들과 민중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난 30여년간
군부․민간독재와 자본에 맞선 투쟁을 통해 축적된 전술적
경험과 투쟁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특히 이경해 동지의 죽음 이후 멕시코 경찰은 호텔 내 감금,
납치, 강제출국 위협 등 한국투쟁단에 대한 조직적 방해를
기도했지만, 투쟁단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강력한 투쟁을
주도함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로써, 지난 2001년
반아셈투쟁에서 나타났던 기회주의와 절충주의적 실천의 한계는
이번 칸쿤투쟁 속에서 어느 정도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국제연대활동은 과거 지도부의 외유성 행사로 한정된
관행을 벗어나, 보다 대중적 차원의 국제연대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이번 칸쿤투쟁단은 그 첫걸음으로서, 하나의
모범으로서 더욱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내년 1월 인도의
뭄바이에서 열리는 제4차 세계사회포럼은 또 한번의 대규모
대표단이 조직되어야 할 행사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자면 국내의 반세계화 운동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이다. ‘WTOFTA 반대 국민행동’(KoPA)는 소수
활동가들의 헌신성에도 불구하고 반세계화 운동을 위한 강력한
대중적 연대체로 자리매김 하기에 여전히 내적 취약성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노동운동은 반세계화 투쟁을 자신의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는 데 대단히 인색하다.
1997~98년의 경제위기를 통해 IMF의 계급적 본질이 대중적으로
확인된 바 있지만, 많은 노동자들에게 WTO와 자유무역의 문제는
여전히 남의 문제로, 협소한 농민생존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반세계화 운동에 내재한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적 지향에 대한
과학적․전략적 인식은 소수의 활동가들에게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핵심적 과제는 한마디로
대중화이다. 소수의 활동가층을 뛰어넘어, 농민의 생존권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전민중적 과제로 확장하면서, 한편에서
신자유주의에 굴종하는 정권을 압박함과 동시에, 국제적 운동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아시아 지역, 더 나아가 전지구적
차원의 반세계화 운동의 투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활동가들의 대중교육과 지속적 선전활동, 특히 국가와
자본에 맞선 이데올로기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더불어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함의와
동력, 그 발전전망에 대한 보다 정교하고 세부적인 연구와
정치토론의 조직화는 반세계화 투쟁의 대중화를 위한
기초이다.
마치며 ― 또 다른 시애틀과 칸쿤을 꿈꾸며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이번 칸쿤전투에서 반세계화 운동
진영은 중대한 위기에 처할 위험에 처해 있었지만, 한편으로 WTO
체제의 내적 모순, 다른 한편으로 한 한국농민의 자결과 그에
이은 한국투쟁단의 선도적 투쟁을 통해, 칸쿤협상의 결렬이라는
예상외(?)의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칸쿤전투의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WTO의 정당성이
완벽하게 부정되었다는 점이다. 1999년 시애틀전투와 그로 인한
뉴라운드 출범의 실패는 우연으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시애틀에
이은 칸쿤의 실패는 WTO체제와 그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 따라서 WTO는 물론 신자유주의 공세를 계속하려
하겠지만,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받았으며, 과연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또다른 면에서 이번 협상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바로
개도국의 반란(?)을 주도한 G21 그룹의 등장이다. 물론,
본질적으로 이 그룹을 이끄는 인디아, 브라질 등의 개도국 정부
역시 신자유주의 대세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에, 회담 전부터
확고한 반WTO 입장을 천명했던 베네수엘라 정부를 제외하면,
이들을 반세계화 운동의 동맹상대로 설정하는 것은 일부 NGO들의
기대와는 달리,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강할수록 WTO체제의 내적
균열이 가속화되리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성과와 몇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된 반세계화 운동의 과제는 여전히 형성과정에 있는
운동주체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다시 반복하여 언급하거니와,
반세계화 운동 전반에서 노동운동의 목소리는 대단히 빈약하며,
이번 칸쿤투쟁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남반구
노조연대회의(SIGTUR)의 국제회의가 칸쿤에서 조직되었지만,
이를 대중적 노동운동의 전략적 개입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것
같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핵심주체인 초국적 독점자본에 대한
투쟁이 노동기본권 또는 아동노동캠페인 류의 NGO운동으로
돌파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며,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조직적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것도 이미 상식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실천은 여전히 일국적, 지역적, 단위사업장의
시야에 갇혀 있으며, 이미 형성된 국제적 전선은 일부 간부들의
관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WTO 체제에 맞선 국제적 총파업! 현재로선 정치적 상상력의
차원에 머물고 있지만, 이를 위한 주체형성과 전략개발의 과정이
조직된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애틀에서 칸쿤까지
반세계화 운동의 궤적은 19~20세기 국제주의 구두선을 실천으로
돌파하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존 자본주의 질서를
극복하는 대안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어쨌든, 반세계화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WTO 체제를 타도하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참고자료> WTOFTA 반대 국민행동
한국민중 칸쿤투쟁단 활동 및 WTO 협상 과정 보고
1. 칸쿤 투쟁단 활동 보고
o 한국민중 칸쿤투쟁단 총 인원은 181명으로, 9월 4일에서
10일까지 거쳐 칸쿤에 도착.
o 9월 7일부터 각종 포럼과 회의가 시작하여, 8일 및 9일에는
투쟁단이 조를 짜서 농민포럼, 여성포럼 및 기타 세미나 및
강연에 참여.
o 9월 9일 오전, 호텔 앞에서 투쟁단 발대식을 갖고 오후
국제민중포럼 개회식 사전행사로 한국투쟁단 투쟁선포식 및
농민선포식을 거행. 투쟁단 선포식은 전교조 이병주 실장 사회로
각계 대표 발언으로 진행되었으며, 농민선포식은 농민캠프장에서
상여 행진이 시작되어 결합, 투쟁단 선포식에 이어 농민선포식이
진행.
o 본격적인 투쟁은 9월 10일 “국제농민공동투쟁”부터 시작.
바리케이트가 세워진 “킬로미터 제로” 지역으로부터 1-2km
떨어진 농민캠프장에 집결하여 행진 시작. 한국투쟁단은 전원
농민투쟁에 결합. 특히 이날 한국투쟁단의 상여가 행렬의 가장
앞쪽을 장식하였고, 비아깜페시나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활동가 5천여명이 바리케이트 앞에 모여 반 WTO를 외치며
“킬로미터 제로”까지 행진. 시위대는 바리케이트 저지선을
뚫기 위해 계속적으로 진입을 시도하였고, 학생과 한국 투쟁단의
상여가 선봉에서 바리케이트를 밀어내는 치열한 투쟁을 전개. 이
과정에서 시위대 다수가 경찰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부상.
o 오후 1시 경, 이경해 동지가 바리케이트 위에서 자결하여 급히
병원에 실려갔고, 한국투쟁단은 지속 투쟁을 전개. 병원에서
이경해 동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고, 4시에 가까운 시각
이경해 동지 수술 중 사망. 한국투쟁단은 바리케이트 앞에서 1차
기자회견을 갖고, 병원으로 이동하여 5시에 공식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WTO을 규탄하고 한국정부의 철수를 요구. 호텔,
농성장과 농민캠프장에 분향소 설치.
o 병원 앞에 투쟁단 전원과 해외 활동가들이 집결하여 밤까지
추모대회와 긴급회의가 진행되었으며, 그 날 밤부터 “킬로미터
제로”에서 농성을 시작할 것, 장례위원회를 구성하여
세계농민장을 진행할 것, 매일 저녁 촛불시위를 전개할 것이
결의되었음. 10일 밤 12시 경, 농성장이 세워졌고 밤샘 농성
시작. 한국투쟁단 전원 연행과 추방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많은
현지 및 해외 활동가들이 함께 농성장을 지켜줬고, 물과 식량
제공하는 등의 연대 활동 전개.
o 9월 10일 밤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전농 회원 43명이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억류되었다가 11일 오전에 칸쿤에 도착.
o 9월 11일, 투쟁단 농성 발대식과 저녁 촛불시위, 간단한
문화행사를 국제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행. 브라질노총,
비아깜페시나, 월든 벨로 등 발언. 9.11 군사주의 희생자
추모제에 한국투쟁단 참여. 한편, 9월 11일 예정되어 있던
“무역과 전쟁” 세미나에서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사회진보연대의 박하순 동지가 북한 핵위기의 본질에 대해
발제.
o 9월 12일, 오전과 저녁에 추모제/촛불시위/바리케이트까지의
행진이 진행되었고, 낮에는 계획되어 있던 SIGTUR 회의(전교조
조희주 부위원장 및 민주노총 유덕상 수석부위원장 발제)와
양자간협정 세미나(전농 전기환 정책위원장 발제) 및 기타
회의에 결합. 저녁부터는 비아깜페시나와 사회운동국제네트워크
회의 참여 등을 통해 13일 투쟁 전략 수립.
o 9월 13일 오전, 투쟁단 전원 “국제공동행동의날” 투쟁을
위해 한국투쟁단, 농민, 학생, 멕시코 활동가 및 노조원 등
3,000여명이 시내에 집결하여 행진 시작. 킬로미터 제로까지
행진. 곧바로 바리케이트 앞에 집결하였고, 전농을 최전선에
배치한 한국투쟁단은 시위대를 선도하며 바리케이트를 넘기 위한
본격적인 투쟁을 전개. 여성시위대가 절단기로 바리케이트를
자르기 시작했고, 미리 준비한 밧줄을 묶어 100여명의
‘줄다리기’를 통해 결국 바리케이트 일부 붕괴. 붕괴된
바리케이트 앞에서 전농 전기환 정책위원장 사회로 집회를
전개하였고, WTO 상징물 화형식과 헌화로 13일 투쟁 마무리.
o 이와 동시에 한국투쟁단 15명과 해외 활동가 몇 명이 회의장
기습 시위 전개.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바리케이트 안에 억류되었다가 몇 시간 만에 본대에 합류.
o 9월 14일 오전, 전농 회원 20여명이 버스를 타고 추모제에
참여하기 위해 시내로 오다가 경찰에 불법 연행되었음. 고속도로
점거 등 저항을 하다가 3시간 만에 농성장에 도착. 전농은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대사관에 대책 요구.
o 9월 14일 오전, 유가족과 함께 추모제가 진행되었고 오후에는
투쟁단 일부 귀국 시작. 오후 4시 경, 케냐 대표단이 WTO
각료회의에서 철수함과 동시에 WTO 각료회의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짐. 한국투쟁단은 물론, 칸쿤 전체가 축제의 장이
되었고, 투쟁단은 7시 농성장에서 승리대회를 개최한 후 일부
멕시코/칸쿤조직위 사무실 방문하여 감사와 연대의 뜻 전달.
o 9월 15일에서 17일에 걸쳐 투쟁단 전원 칸쿤 출발하여 귀국.
2. WTO 협상 및 결렬 과정
(1) 칸쿤 각료회의의 배경과 개괄
o 칸쿤 각료회의, 그리고 ‘도하개발의제’는 ‘완전한 무역의
자유화’, ‘자유무역혜택을 개도국과 최빈국이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함’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미국과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것은 자국 생산자들에게 유리한
국제적 무역규칙을 부과하는 것이고 이는 오히려 ‘완전한
무역의 자유화’를 해치는 것임.
o 또한 협상의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면 이는 엄밀하게
‘무역’에 관한 협상이라기보다는, 투자, 특허권, 혹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산업정책’에 관한 협상으로 보임.
o 좀더 구체적으로, 이번 각료회의의 커다란 쟁점이 된
‘농업협상’과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것이 분명해짐. 농업협정에서는, 1) 관세인하
2) 수출보조금 폐지 3) 국내보조금의 폐지를 협상의 3대
원칙으로 제시하며 제3세계 국가들로 하여금 농업에 대한
무역장벽과 보조금을 철폐하도록 하면서 정작 자신은 자국
농업생산자들에 대한 보조금 (연간 3조 달러)를 고수하기 위한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임. 이것이 G21+(농산물 수출 개도국)의
강력한 반발을 삼.
o 이는, 미국의 GNP와 경제활동인구를 구성하는 비율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부분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에 기인하며, 특히 공화당 지지층과 공화당으로 흘러가는
정치자금이 대부분 농기업에서 형성되기 때문. 이들에 대한
보호를 보장하는 것이 부시 정부로서는 사활적인 과제.
o ‘싱가포르이슈’는 상품과 서비스 무역에 대한 규범을 넘어,
소유권, 생산, 수입, 세입, 외환거래, 지불균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간 자본의 이동에 대한 규범을 다룬다. 미국과
유럽의 전략은 제3세계 국가들의 투자정책을 자유화하는 것이고,
그들의 전략 산업을 해외투자자들에게 개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농업협상에 있어서의 궁지에 대한 우회로로 이 분야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 내려고 함.
o 이에 대해, G21+은 자국의 농업 수출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의 양보를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합의’의
조건으로 삼았으나, 미국과 유럽연합은 자국의 농업보호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거부했고, 이는 각료회담 무산으로 이어짐.
(2) 핵심쟁점
① 핵심 쟁점: 농업
o 브라질, 인도 등 농업 수출 개도국들이 “G20+”라 불리는
개도국 정부들의 강력한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여 유럽연합과
미국의 불공정한 농업 보호 정책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강대국들과 직접 충돌 - 남북 대립이 형성.
o 이들은 강대국들이 3,000억 달러 상당의 보조금을 철폐할
것과
② 핵심 쟁점: 싱가포르이슈
o 지난 수개월 동안 지지부진했던 농업협정보다 오히려
싱가포르이슈에 대한 이견이 결정적 결렬요인
o 도하 각료회의에서 강대국들은 싱가포르이슈 협상 개시를
요구하였고, 개도국들이 이에 반발. “공개적 합의explicit
consensus”가 있어야 싱가포르이슈 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도하 선언문에 포함시켰으며, 이번 칸쿤 각료회의에서
개도국들은 “공개적 explicit”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음.
o 9월 10일,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방글라데쉬,
필리핀, 탄자니아, 베네수엘라와 자메이카 등 정부의 주도 하에
70여 개도국 정부들이 싱가포르이슈 4가지 중 그 어느 것에 대해
협상이 개시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
o 9월 11일과 12일 사이 개최된 싱가포르이슈 워킹그룹에서는
21개국이 완강한 반대의 입장을, 14개국은 4개 중 2개 의제에
대해서만 협상을 개시하자는 의견을 제시.
o 싱가포르이슈 워킹그룹 의장인 캐나다 무역대표 페티그루는
4개의 의제를 분리 협상(“unbundle”; 통채로 놓고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협상)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이런 제안은
13일에 공개된 선언문초안에 반영이 되었다. 즉, 강대국들은
정부조달과 무역원활화에 대해 먼저 협상을 하고 투자와
경쟁정책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협상하겠다는 것. 이에
개도국들은 더욱 분노하였고, 13일 밤에 개최된
그린룸회의(9개국; 유럽연합, 미국, 멕시코, 브라질, 남아공,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와 케냐)와 14일 오전 30개국이 참여한
그린룸회의에서 개도국들은 다시 한번 완강한 반대입장을 표명.
한국과 일본은 4개 모두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찬성 입장
개진
o 오후까지 진행된 그린룸회의에서 결국 싱가포르이슈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자, 각료회의 의장인 멕시코 외교부장관
데르베스는 각료회의 결렬 선포
o 농업협상에서는 G20+가 단결력을 보였고, 싱가포르이슈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연합(AU),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ACP)와 최빈개도국 (총
61개국) 간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여 최종적으로 각료회의가
결렬
평가:
o 각료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싱가포르이슈에 대한 “공개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페티그루는 무리하게 싱가포르이슈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고자
하였으며, 이런 캐나다를 비롯한 4대강대국(quad)의 태도가
개도국 정부로 하여금 더욱 완강한 반대를 하게끔 하였음.
o 로버트 죌릭은 파이낸셜타임즈 (9월 22일 자)를 통해 협상
결렬이 전적으로 개도국 정부에 있으며, 개도국 정부의 반대는
“경제적 결과가 아닌 정치적 행위”라고 평가하면서,
최빈개도국과 중도개도국을 분열시키고자 하였음. 즉,
중도개도국들은 선언문 초안이 논란을 일으키던 미국과
유럽연합의 농업 보조금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각료회의를 지속하고자 하였으나,
최빈개도국 중심의 동맹 때문에 결국 중도개도국들도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 로버트 죌릭의 논리는 개도국들을
“범죄화”하여 소수 “거부자” 때문에 오히려 개도국에게
이롭게 진행되던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다는 것. 그는 인도와
브라질을 핵심적으로 지목
o 루이스 데르베스가 갑작스럽게 각료회의 결렬을 선포한 데에는
보다 타격이 큰 붕괴로 치닫기 전에, 농업협상조차 더욱
양극화되기 전에 각료회의를 끝냄으로서 그나마 향후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한 것이었다는 평가. 또한 의장 중심의
비민주적 협상 절차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이에 부담을 느껴
회의를 종결시켰다는 평가. (EcoNews Africa)
o 문제는 싱가포르이슈의 위상이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
각료회의가 결렬되기는 하였으나, 싱가포르이슈에 대한 향후
재논의의 여지가 남겨져 있다는 점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하였던 개도국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음. 또한 죌릭과
유럽연합이 각료회의의 실패로 자국 이해를 양자간 또는 지역
FTA, BIT를 통해 강행하겠다는 언포를 한 상태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
o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후 협상 과정에서 G20+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논하고 있으며, 브라질 등의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G20+의 향후 단결력과 지속적 활동이 관건이라고 내다보고
있음.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G20+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통해
이들이 농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서비스나 공산품에 대해서도
단결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WTO 내 ‘남반구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음. (월든 벨로)
비아깜페시나는 성명서를 통해 G20+가 각료회의를 무산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이들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즉 이들 역시
주장하고 있는 자유화와 시장접근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 실제로 G20+가 농업수출국
그룹이며 또한 브라질과 몇 개 정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다수가 독재/신자유주의/근본주의 정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G20+에 대한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원과 지지가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져야 하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음.
o 많은 남미 국가들이 G20+에 포함되고 있고, 이들 중 FTAA에
반대하는 국가들도 많아 2005년에 발효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FTAA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음.
③ 한국 정부의 반응
o 이번 협상에서 한국정부는 농업협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농림부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 2인이 공동대표로 협상에
임했다고 밝히고 있음.
o 농업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받았을 때 민감한 품목에 대해
약간 관세인하 폭을 덜하는 방향으로 초안이 나온 것이 정부의
성과라고 평가.
o 한국정부는, 농산물 수출 개도국이 자유화의 수준을 높게 삼은
데 반해, 유럽연합, 일본, 한국은 개방을 지연시키려고 했고,
양자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 결렬의 원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음. 한/노/정/연
|
|
2003-10-20 00:00: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