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송두율 교수 귀국 사건’을 바라보면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92호
이성백



이건 아닌데
― ‘송두율 교수 귀국 사건’을 바라보면서 ―
이 성 백/ 부소장,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요즈음 들어 이 사건, 저 사건 할 것 없이 많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일 많고 사건 많은 것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한 단면이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분명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요즈음에 일간신문에 볼거리도 많아졌다. 일간신문을 장식했던 사건 가운데 하나가 송두율 교수 귀국이었다.
송두율 교수의 귀국은 여러 매체들에 의해 이게 이렇게 큰 사건인가 의아스러울 정도로 대대적으로 다루어졌다. 귀국하기 며칠 전부터 그의 귀국을 알리는 기사가 일간지들에 실렸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귀국하면서부터 최소한 일주일 이상 그에 관한 기사가 일면에 주요기사로 다루어졌다.
송두율 교수라는 한 사람이 현직 대통령보다 더 주요한 인물로 “예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대통령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마 일주일 이상 일간지에 일면 주요기사로 다루어진 적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송두율 교수가 귀국하기 전 KBS TV에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은 송 교수의 귀국을 미리 준비한 일종의 환영 팡파레와 같은 것이었다.
하여튼 송두율 교수 귀국 사건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제 소란스런 상황은 지나갔지만, 이 드라마가 종결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한 채 장기화될 것처럼 보인다.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러 왔다는 소감과 함께 매우 들뜬 마음으로 공항문을 들어섰던 송교수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그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감내하기 힘들 “귀국 체험”이 앞에 주어져 있다.
솔직히 송두율 교수 사건과 관련하여 무슨 말을 하기가 나로서는 상당히 껄끄럽게 느껴진다. 송 교수에 관한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나에게는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언론과 수사기관에서 송교수 문제가 다루어지는 방식과 내용이나, 민주진영(송 교수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진보진영보다는 더 넓게 민주진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과 보수진영 이쪽 저쪽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 뭔가 사실 내지 진실에서 벗어나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사실부터 바로 알아야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혹여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고초를 겪고 있는 송 교수에게 자칫 내가 한 말이 누가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말을 꺼내는 것이 전혀 내키지 않는다.
송 교수 귀국 사건이 한창일 때, 여기저기서 송 교수와 관련된 물음을 적지 아니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송 교수가 정말 독일 대학의 교수가 맞느냐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또 송 교수와도 개인적인 안면이 있는) 어느 보수 언론사 기자로부터 이를 묻는 전화를 받고 문득 집히는 것이 있어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말해줄 수는 있지만, 혹시 이것이 신문기사에 송 교수 흠집내기에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부터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송 교수를 깍아 내리려고 하는 보수언론의 작태에 내가 나도 모르게 정보제공자가 되는 꼴인데, 나는 이를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고 분명히 하였다.

당시 보수 세력과 언론의 공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다른 보수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와 친분이 있는 또 다른 기자가 당시 나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그는 보수언론 소굴 한 복판에서 엄청난 수모를 받았던 모양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남북학자대회들에 북경으로 평양으로 취재를 다니면서 송 교수와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이 기자는 “경계인”, “세계적인 학자” 송두율을 높이 평가하는 말들을 하고 다녔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북한 공작원”을 그동안 그렇게 두둔해왔느냐는 강한 비난을 받고 변변히 답변도 못하고 마치 북어처럼 흠씬 두들겨 맞은 모양이다.
보수 세력과 언론이 이른바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고, 더욱이 송 교수가 안쓰럽게 혼자 당하고 있는 상황에, 어떻게든 대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필요성을 많은 사람이 절감했겠지만, 뾰족한 대응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마도 더 답답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응에 필요한 논리 내지 명분이 확실하지 않은 데에 있는 것 같다. 어떻게든 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던 몇몇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보수 세력이 날뛰게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느냐며 혹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 둔 게 있는지를 물었다. 전화한 사람들이 이 방면에 훨씬 더 전문가들인데, 그렇지 않은 나에게 전문가인 그들도 답답해하는 방안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당연 전화통화는 별 소득없이 답답함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대응에 필요한 명분을 확실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 명분을 확신할 수 있었다면, 보수 세력과 언론의 매카시즘이 아무리 드세더라도 민주진영이 이를 정면으로 맞받아칠 수 있었을 터인데.

송두율 교수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송 교수에 대해 상반된 두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 해외 인사이자 독일 학계에서 독자적인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학자란 이미지이다. (심지어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표현되기까지 한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북한을 위해 암약한 친북 인사란 이미지이다.
전자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송 교수의 이미지였다. 그러던 것이 후자의 이미지가 의혹처럼 제기되면서 (물론 이와 둘러싼 의혹이 사실인지 시시비비가 분명히 밝혀질 때까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겠지만) 송 교수를 전적으로 전자의 이미지와 동일시하기는 쉽지 않게 된 것 같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민주진영이 확실한 대응을 할 수 없었고, 보수 세력은 기회다 싶어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까지도 과장하여 송 교수를 북한을 이롭게 하는 활동을 해 온 반국가적 사범으로 몰아붙이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러한 이미지의 분열이 송 교수 사건에서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열되어 있는 두 이미지는 어느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의 표현을 빌면 “시뮬라크르”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둘 다 송 교수란 인물과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허상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된 이미지들은 주변 사람들이나 한국적 상황만이 생산해 낸 것이 아니라, 여기에 송 교수 스스로도 어느 정도 참여하였다. 그는 남한에 대해서는 민주화 해외 인사라는 이미지로 행동하였다. 그와 북한과의 관계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북한 방문은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그의 민족주의적 열정 정도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비록 그가 김철수는 아니더라도, 그와 북한의 관계는 “경계인”의 경계를 훨씬 넘어 상당히 긴밀한 것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서 그와 북한과의 밀접한 관계 자체를 문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북한을 ‘선택’하였다면 그것은 지식인으로서 그의 양심에 따른 자유로운 행위이다.
문제는 송 교수가 지식인으로서 본인의 이미지 관리를 적절하게 못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분단현실의 모순이 분명 지식인으로서의 행동을 어렵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굳이 친북적 이미지를 숨기고, 민주 해외인사라는 이미지만을 보이려고 한 것은 지식인으로서 일관되고 정정당당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그가 북한을 선택하였다면 그는 또한 그에 일치한 이미지로 행동해야 했다. 그는 민족통일을 염원하면서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라 하였지만, 경계선상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적절한 이미지 관리가 귀국 후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이미지 혼란이 거의 반평생을 타국에서 지내야 했던 한 지식인이 꿈에 그리던 고국땅을 밟자마자 보수 세력에 의해 다시 냉전 수구 논리로 탄압받는 것에 빌미가 되고 있다.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송 교수는 또 다른 시련대 앞에 서게 되었다. 그가 조국의 따뜻한 품을 느껴보지 못하고 혹독한 탄압을 받게 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만 좀 시달리고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시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그는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해 온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신념, 그리고 이 신념에 일치되는 이미지를 일관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이미지 분열을 그가 스스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친북 이미지를 들이대는 수사당국에 민주 해외인사라는 이미지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수사당국은 친북활동을 잘못으로 인정하고 전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식인으로서의 송두율은 죽고, 생물학적 인간으로만 살라는 한 지식인에 대한 살인음모이다.
잔인한 요구일지 모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지식인으로서의 송두율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분열된 이미지를 봉합하여 일관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이미지가 보이게 될 때 민주진영도 이 이미지에 부합되게 어떻게든 그의 투쟁에 연대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2003-11-24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