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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 인간의 사고와 사상을 어떻게 형성, 제약하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92호
박래군



노무현 정권하의 매카시즘


박 래 군 ∙ 국보법이 인간의 사고와 사상을 어떻게 형성, 제약하는가?
이 성 백 ∙ 이건 아닌데 : ‘송두율 교수 귀국 사건’을 바라보면서


국가보안법이 인간의 사고와 사상을
어떻게 형성, 제약하는가?



박 래 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1
지난 9월 이후 갑자기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그 이름이 회자된 사람은 죽은 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미국의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였다. 야심만만한 미국의 정치가였던 그는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연설을 했다. 그의 이 한 마디는 당시 소련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중국이 공산화되었던 시기였다. 한국이 내전 상태에서 전면전으로 돌입해가던 시기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이 팽배했던 시기에 매카시의 이 발언은 미국을 순식간에 공산주의자 색출 선풍으로 몰아갔다. 매카시 앞에서 정치인이건, 공무원이건, 할리우드 영화배우이건 자신이 공산주의가 아님을 고백하고, 공산주의자들을 고발하도록 만들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은 거기서는 침묵했다.
그는 1954년 상원에서 견책조치를 받으면서 급격히 영향력을 상실했고, 3년 뒤인 1957년 48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마녀사냥의 구도도 똑 같았다. 자신이 마녀로 낙인 찍혔을 때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심지어 마녀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방법은 펄펄 끓는 물에 던져져 살아나면, 마녀이고 그렇지 않으면 마녀가 아니라는 식이었다. 구애를 거절한 처녀를 마녀로 몰아 죽이기도 했고, 협박을 통해 강제로 여자를 취득하기도 했다.
극단의 이데올로기 앞에서 인간의 존엄함은 인정될 수 없었다. 중세 종교질서의 유지를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던 그 마녀사냥은 그대로 현재에도 유효한 수단이 되었다.

마녀사냥도 끝났고, 매카시는 죽었지만,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남아 있다. 반공 분단체제인 한국에서 그의 이즘은 맹위를 떨쳤다. 아직도 죽은 매카시의 망령이 지배하는 나라임을 새삼 일깨워 준 사람은 송두율 교수였다. 그의 37년만의 귀국 뒤에 한국 사회가 보여준 반응은 국가보안법이 갖는 극단적인 세계관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유감없이 발현되었다.
매카시 앞에 불려갔던 숱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입증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동료들을 고발해야 했으며, 조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송두율은 결국 11월 19일 검찰에 기소되었다. 그에게 씌어진 혐의는 간첩이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아직도 존경하면서 구체적인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송두율 교수가 구체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일인 북한에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임을 인정하고, 이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검사 앞에서 반성한다면, 선처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송두율 교수가 만약 반성을 하였다면 그대로 풀려날 수 있을까? 한 때 송두율 교수에 대한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검찰에 공소보류로 풀어줄 것을 주문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그래도 우리 사회의 지식인으로, 나름대로 진보적인 세계관을 갖고 활동한다고 자타가 공인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송두율 교수가 구체적인 반성을 하고, 공소보류로 풀려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서약서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즉, 대한민국에 대한 중세 시대식의 충성서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고, 최소 2년 동안 검찰이 공소 보류한 것을 취소하여 다시 기소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근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간첩들이 전향할 때 써야 하는 이 서약서는 국가보안법이 온전한 상태로 있는 이 나라에서 공소보류를 받으려면 피할 수 없는 절차이다. 우리 사회에 사상전향제가 폐지되었지만, 사상전향을 요구하는 각종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이 서약서인 것이다.

<별지 제1호 서식>

서 약 서

본적:
주소:
직업: 성명: 연령:

이번 본인이 공소보류의 은전을 받음에 있어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대오각성하여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할 것이며, 규칙을 성실히 이행하고 모든 지시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굳게 맹세하고 서약서를 제출하나이다.

년 월 일
성명 (인)


이 서약서에서 공소보류는 ‘은전’을 받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그것도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사람이라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마당에 그런 형벌을 면제해주는 것인데 어찌 은전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은전을 베풀어준 대한민국에 충성을 맹세해야 하고, 전향했음을 확인받기 위해서 모든 지시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겼을 때는 다시 철창행이라는 무서운 협박이 거기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서약서를 작성하고 공소보류로 풀려난 사람 중에는 1980년대 강철서신으로 한때 운동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김영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지금 이른바 북한 민주화운동을 한다면서 보수우익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송두율 교수는 전향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런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재판정에서 그의 사상행적에 대해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사상재판이 그의 앞에 놓여 있다.


2
이 원고의 주제는 국가보안법이 사람들의 사상과 의식의 형성을 제약하는가를 설명하라는 것이다. 이 주제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와 분석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보안법 제정 55년을 맞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이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된 연구가 나온 적이 있을까? 아쉽게도 없다.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주로 법률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졌고, 통일운동, 인권운동의 맥락에서 거론되었다. 국가보안법이 갖는 피해의 총체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각 사회영역에 끼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여야 하지만, 단편적인 연구밖에 나와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심리학의 입장에서, 사회학의 입장에서, 언론학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였지만, 우리 사회 진보적인 학자들마저도 이 분야에 대한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았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국가보안법의 피해는 이 법으로 구속된 일부의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그 수많은 조작간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우선적으로 수십일 동안의 고문을 당한 사람들이고, 연좌제에 의해 취직도 제대로 못한 그 가족들이 최대의 피해자이지만, 그 사람과 그 가족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 갖는 공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피해였다.
예전,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가 실제로 적용되던 시절에는 이른바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명명되던 피해자들이 있었다. ‘김일성보다 나쁜 놈’, ‘에이, 더러운 세상, 빨갱이보다도 지독한 새끼들’, ‘북한은 세금도 없다는데…’. 술김에 홧김에 내뱉은 이 말 한 마디에 그는 중앙정보부(또는 안기부), 보안사에 끌려가 죽도록 두들겨 맞아야 했고, 몇 년씩을 감옥에 살아야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남이 신고하여 자신이 신고하지 않은 죄를 묻기 전에 경찰에 이를 신고해야만 이 죄를 피해갈 수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상호간의 고발체계를 통해 보수 기득권 지배세력은 국민 상호간에 단결이 아니라 감시를 하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이간의 체계’를 갖고 있다고 말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술인들이 주로 호소하던 국가보안법에 의한 피해는 표현의 제약이었다.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표현해 놓은 것이 국가보안법의 이적행위에 포함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직접적인 화법보다는 간접적인 화법으로 에둘러 표현하거나 아예 그와 같은 문제를 표현하기를 회피해버렸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모내기’ 사건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 계통의 그림인 그 작품에서 신학철 화백은 그림의 상단에는 백두산 같은 산을 그려놓고, 산 밑 들판에서는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형을 그려가며 춤추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림 하단에는 농부들이 제국주의 문화를 상징하는 코카콜라, 헐리우드 영화와 미사일을 쓸어내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
문제의식은 분명한 것인데, 검찰에 가서는 달라졌다. 이 그림은 북한을 찬양하는 이적표현물로 둔갑한 것이었다. 그림 상단에는 북한을 이상향처럼 그려 넣고, 하단에는 삶에 찌들린대로 찌든 남한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려 놓았다고 판정하고, 화가를 입건했고, 결국 법원도 유죄를 선고했다.
문제는 그림을 이적표현물로 단정하고 검찰이 기소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공안문제연구소의 홍종수라는 연구원의 판정이라는 것이었다. 홍종수라는 연구원은 1980년 광주항쟁 당시 북한이 내려보냈다는 간첩이었고, 검거된 뒤 전향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향 이후에 공안문제연구소에서 이적표현물을 감정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전문적인 감정을 할 수 없던 비전문가에 속하는 그의 판단에 따라 현재까지도 신학철의 그림은 이적표현물인 것이다.
1989년 그 사건이 터진 이후로 최근까지 신학철 화백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자기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을 제약하는 자기검열 행위 때문이었다. 이렇게 표현하면 이적표현이지 않을까. 이렇게 그려야 괜찮을까를 고민하는 예술가라면 이미 그 사람은 예술창작의 자유를 침해받은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이렇다. 늘 자기검열을 강제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정해준 세계는 한정되어 있고, 그 세계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그 화라는 것에는 공포의 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중앙정보부(안기부, 국정원)이 있고, 보안사(기무사)가 있고, 경찰 대공분실이 있다. 이근안과 같은 고문기술자가 있어서 온갖 고문으로 몸과 마음을 찢어놓는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이들은 빨갱이 새끼라는 손가락질을 당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일지 모르는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고, 호적에는 빨간줄이 그어진다는 등등의 그물망처럼 촘촘이 짜여진 공포의 체계이다. 왠만한 개인으로는 이 거대하고도 그물망 같은 공포의 체계에 도전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3
국가보안법의 세계관은 매우 단순하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편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남한 편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이 좋은 남한을 배신하고, 북한을 찬양하고, 지지한다니 이런 미친 놈들 하면서 그 좋은 남한에 강제로 붙들어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구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복잡해진다. 그 북한은 세상의 악을 상징하는 것이다. 북한만이 아니라 북한을 비판하는 사회주의 사상도 북한과 연결되어 사고된다. 마르크시즘의 다양한 조류에 대해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북한 사회주의는 비판하면서 쿠바사회주의 노선을 따른다는 것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1991년 국가보안법이 일곱 번째 개정될 때까지는 모든 사회주의 사상을 포지한 사람은 모두 북한 사회주의에 동조한 사람으로 처벌되었다. 그 후에는 조금 달라졌지만, 기본 논리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악의 존재인 북한 편이라는 것이다.

다음에 생각될 수 있는 것은 공안당국이 ‘너는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할 때 이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마치 중세 마녀사냥에서 그 마녀로 찍힌 사람이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온갖 고문 끝에 죽음을 통해서만이 입증되듯이 말이다. 내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좀 더 깊이 생각하면 왜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님을 밝혀야 할까, 안 밝히고는 살 수 없을까).
이미 55년 동안 수많은 노하우를 축적해놓았고, 법원도 판례로 그 노하우들을 뒷받침하고 있고,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의 조항들은 한번 걸린 먹이감이 빠져 나갈 수 없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의 제7조의 조항들은 바로 그런 정치들로 정치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에 따르면, 이적표현물인 책 한권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걸려든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입증하는 것은 끝난다. 그 책을 어떤 목적으로 소지하고 있건,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책을 소지한 것이고, 책을 소지한다는 것은 그 책을 탐독한 것이 되고,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배포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회주의자가 되고, 그로 인해 몇 년 동안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이런 정도는 집행유예로 풀어주지만, 여전히 전과기록은 남는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간첩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평범한 한 이간을 공안당국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아들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최대로 활용되던 때에 대공 계통에 종사하던 자들은 상관의 승진을 위해서 간첩을 만들기도 했고, 그 공으로 훈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의 세계에 걸려들면 국가보안법이 허용하는 만큼의 창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창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모두 불순한 것으로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국가가 국민의 의식체계를 제한하게 되며, 그 국민은 그 제한된 의식체계를 넘어서는 것이 한없이 불안하다. 혹시 이것을 누가 아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순한 생각이 들킨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다가 얼마나 중압감이 컸으면 머리가 진짜 돌아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가끔 인권단체에 찾아와 호소한다. 안기부가, 보안사가, 경찰이 나를 미행하고, 머리 속까지 도청하고, 원격고문장치로 매일 고문해대고 있다고 살려주십시오. 그들의 고통을 국가보안법을 알리 없는 정신과의사들이 치유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55년이나 지배했던 이 나라에서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하지 않으면 늘 불안하다. 안전하게 주류가 요구하는 세계에 안주하려 하고, 그것을 결코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진보운동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렇게 형성된 사람들의 의식체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세계관에 찌들어 있는 노동자들이 ‘계급적 혁명관’을 갖기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4
이 글을 계속하기에는 허용된 지면이 별로 없다. 아무튼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하다. 국가보안법의 영향에 대해서 동료가 감옥에 잡혀가는 것만 생각하지 말자는 얘기다. 몸이 아플 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외부로 드러난 상처가 아니라 몸 속에 깊숙이 침투한 세균이다. 그 세균을 잡지 않는 한 몸은 건강을 회복할 수 없다. 그렇듯이 우리의 의식을 좀 먹으면서 진보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이제는 좀 더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연구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국가보안법의 현상의 깊이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은 보수우익 세력이 그토록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보안법은 보수우익세력의 기득권을 지탱해주는 중심기둥과 같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득권 세력의 사상적, 의식적 뿌리를 뒤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가보안법은 하나의 사상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하여 왔고, 계속 지배하려 한다.

송두율 교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뤘다. 신고식에는 반드시 마녀재판과 매카시즘이 따라 붙는다는 것도 우리는 보았다. 그가 치룬 혹독한 신고식의 전 과정을 제대로 분석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제대로 규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제대로 알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말하면서 나의 글을 맺는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포로로 잡혀 있는 수많은 남한 민중들이 사상의 자유를 누릴 날을 고대하면서. 한/노/정/연

2003-11-24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