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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투쟁 패배의 교훈과 선진노동자의 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93호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들

허튼 소리 남발하기가 아니라
현장활동의 진지한 조직화를!
- 총파업 투쟁 패배의 교훈과 선진노동자의 과제 -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들 [ 2003-11-18 ]
자 료 ……………………………………………………………………………… ……………………………………



지난 10월 17일 백여일째 고공농성을 계속하던 김주익 한진중공업 지회장의 자결은 이후 이해남 지회장의 분신, 이용석 동지의 분신, 그리고 곽재규 조합원의 투신으로 이어지면서 “열사정국”을 낳았다. 노동자들은 자연발생적으로 가두로 나가려 하였고, 이에 대해 경찰은 관행적인 행진조차 불허하면서 비무장 시위대에 무차별 폭력 진압을 가했다. 경찰과 경총, 노무현은 하루가 멀다하고 망언들을 쏟아냈다.
……………………………………………………………………………… …………현장활동에 대한 제입장 관련
노동자들, 특히 선진노동자들은 분노했고, 총파업, 무기한 총파업, 압도적인 무장(화염병과 쇠파이프로 무장)을 갖춘 가두투쟁을 요구했다. 이러한 투쟁의 요구들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전혀 조직되지 않거나 제대로 조직되지 않거나 잘 수행되지 않았다.
무기한 총파업은 총연맹 대대회에서 과반수에 크게 못 미쳐 부결되었고, 기아자동차에서는 대대회 결의 사항인 6일과 12일의 경고 파업안조차 부결되었다. 6일의 부분파업과 12일의 전면 파업에 참여한 대오는 10만을 넘지 못했다. 금속노조의 중소사업장들은 계속 투쟁의 전선을 지켜나갔지만, 많은 대규모 사업장들이 파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공공부문에서는 전사노를 제외하고는 준법투쟁이 있기는 했지만 실제적인 파업은 없었다. 현대자동차노조조차 12일에 전면파업 대신에 4시간 부분파업을 하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한진중공업의 손배가압류 철회라는 “파격적인” “백기투항”(파쇼 언론들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 진압 이후 대규모 구속과 공안기관의 대규모 검거작전으로 50여명의 구속자와 수십 명에 대한 수배 조치가 내려진 상태에서 계급으로서의 자본가들은 노동자계급에 대해 파시스트적 탄압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들은 지난 투쟁을 함께 해왔던 동지들에게 김주익 동지의 자결 이후 지금까지 투쟁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들을 진지하게 평가 반성하고 활동을 재조직해야 할 긴급한 과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허튼 소리 남발로 끝난 “무기한 총파업”
지난 10월 3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전국회의 소집권자이자 노힘 회원이기도 한 기아자동차 이정행 대의원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활동가들이 “무기한 전면 총파업”을 핵심으로 하는 수정동의안을 제출하였다.
<노동자의 힘>은 “전국총파업 사수대로 결집”할 것을 주장하면서 “11월 5일 거점 사수, 공식, 비공인 파업과 동시다발 투쟁”, “11월 10일부터 무기한 총파업투쟁에 돌입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무기한 전면총파업 제안에 대해 좌익들은 거의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 자신들의 선전 활동을 도배해버렸다. 그들은 거의 모두 “전면 즉각 총파업”, “실질적인 현장파업”이라는 말들을 인터넷과 기관지와 신문과 유인물에서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현장노동자』는 한 술 더 떠서 “지금 당장 무기한 파업” “공장점거파업을 하자”는 말이 아니라면서 수정동의안은 “실질적인 현장파업”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할 정도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무기한 총파업 주장들은 모두 혁명적인 대중파업 조직화는 단순히 계획과 결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조건과 주체적인 역량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망각한 것에 불과하다. 혁명적인 대중파업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계획은 물론이고 지도부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작은 선진노동자들의 결의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없다. 당면한 상황에서는 혁명적인 대중파업을 전개할 어떤 외적인 조건(전체 주민들에게서 발생하는 그 어느 시기보다 심각한 경제적 궁핍, 지배계급 내에서의 심각한 갈등으로 인한 공권력의 약화 등)이나 노동자 대중의 내적인 힘(혁명적 파업투쟁의 전통과 기억, 계급적 연대에 대한 자신감과 상호 신뢰)과 같은 조건들이 성숙해 있지 않으며,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들이 이러한 투쟁들을 조직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것은 지난 여름 근기법 개악 저지투쟁이나 현자와 기아자동차(그나마 투쟁을 한 대기업 노조) 등 대규모 사업장 노조들의 상태 등을 보면 쉽게 드러나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어느 정도는 모두가 다 아는 문제이다.
<노힘>조차 “우리 역시 주장하는 만큼 즉각 현실화시켜낼 힘을 갖고 있지 못함을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들은 모든 것을 “말로만 하는 총파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총파업 조직을 하라는 열사들의 주문”이라는 말로 정리해버릴 뿐이다. 좌익들이 지금까지 파업과 관련해서 한 것이라고는 “말로만 총파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총파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진짜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한 것이 아니라 말로만 “실질적인 총파업” 조직화를 했다는 것뿐이다. 그럼으로써 좌익들은 혁명적인 대중파업이라는 정말로 혁명적인 투쟁수단을 한 편의 코메디로 전락시켰다.
“무기한 전면총파업”을 조직하자는 것에서 드러난 이러한 좌익들의 태도들은 모두 하나 같이 (말로만이 아닌 진짜) 혁명적인 대중파업을 위한 구체적인 상황과 대중의 계급의식 발전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의 대중들을 조직하려는 진지한 계획과는 무관하게 단지 더 좌익적으로 보이기 위한 혁명적인 광고선전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현장노동자』처럼 “공장을 점거해서 현장을 장악하고 며칠 간만이라도 파업투쟁을 사수하면 현장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급속히 상승하는데” 장애물은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지도부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것은 현재의 정세와 대중의 의식 상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역량과 활동에 대한 솔직한 평가조차 없는 무책임한 언행일 뿐이다.
무기한 공장점거파업이 즉각(말 그대로 즉각!)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오직 지도부 때문이라면, 그 지도부를 즉각(말 그대로 즉각!) 불신임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어떤 조직―『현장노동자』가 내심으로 원하고 있는 혁명적인 노동자평의회로 성장하게 될 무슨 위원회―라도 즉각(말 그대로 즉각!) 구성해서 공장점거파업에 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어떤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현장노동자』가 말한 즉각적인 공장점거 무기한 전면파업은 조직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무기한 총파업”, “실질적인 현장파업”, “즉각적인 공장점거파업” 등을 소리 높여 외친 좌익들은 진지한 현장 활동과 투쟁의 조직화에는 관심이 없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유포시켰다. 현장투쟁의 조직화에 진짜 조금이라도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활동가라면, 현재 대규모 사업장들에서 현장투쟁을 조직하고 파업을 조직하고 민주노총 대대회에서 결의한 총파업 계획에라도 결합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의 문제를 결코 사소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현장노동자』는 11월 1일자 특별호에서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신화적인 투쟁의 역사를 남겼던 현대중공업이나 서울지하철, 그리고 민주노총 최대 사업장 KT 노조의 비참한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혁명가요의 한 구절과는 다르게 천만 노동자의 폭주 기관차는 압제의 터널 속에서 멈추어 버린지 오래다. 그나마 투쟁의 전통이 남아 있는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조차 올해 임단투는 그 어느 시기보다 낮은 파업 찬성률과 투쟁 참여도를 보였다. 이러한 대기업 노조들의 상태는 그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강화와 발전을 방해한다고 평가되었던 여러 가지 요인들(노조 관료주의, 교섭주의, 투쟁 회피, 실리주의,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 조합원들의 계급적 연대에 대한 불신 등)이 결합되어 영향을 미친 결과다.
그래서 집행부와 대의원들을 장악한 관료화된 노조 지도부는 투쟁의 조직화를 안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작고 권위도 떨어지는 선진노동자들이 파업을 조직하는 것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고작 4시간 파업”이라고 비웃음으로 간단하게 조직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진지한 현장 활동가들은 누구나 조합원들에게 단지 “열사의 명령이다, 총파업으로 노동해방 쟁취하자”는 식의 구호만으로는 파업투쟁의 조직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평조합원들은 과거 투쟁에서 총연맹 지도부나 대기업 노조 지도부가 배신을 때림으로써 총파업투쟁을 박살내고 지도부 지침에 따라 열심히 투쟁한 사업장이나 지부의 노동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당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결코 1~2년만에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힘>이나 『현장노동자』와 같은 좌익들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의된 투쟁계획을 “실망 그 수준 이하”, “이 무슨 여유?”, “조퇴하듯 파업”, “이걸 투쟁하는 걸로 느낄 수 있겠는가?”, “관료들의 쑈” 등으로 비난만 할 줄 알았지 실제로는 현장에서 그것조차 투쟁을 조직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매우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이들은 자신들이 현장에 대해 뭔가 많이 알고 있으며 혁명적인 것처럼 정말 겁나게 무시무시한 슬로건들만 외치고 레닌 사진이 붙은 기관지나 돌려보면서 겉멋만 내는 활동 작풍만 양산할 뿐이지 실제로는 현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판만 두드리는 소부르주아 지식인 집단에 불과하다. 좌익들의 이와 같은 태도들은 특히 선진노동자들에게 그러한 지식인의 나쁜 면들만 본받도록 함으로써 매우 큰 해악을 유포시키고 있다.

오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4시간 총파업을 결의한다고 한다. 속으로 욕이 빙빙 돈다. “씨발 죽은 사람이 몇 명인데 고작 4시간 파업하나 우라질 세상.” 1시간 짜리 인생도 안되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들의 목숨이 고작 한시간 짜리인가 말이다. (중략) 그런데 답답하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미 관료화될 대로 관료화되어서 어떻게 총파업을 조직할 지를 모르는 것 같다. 아니 현재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려고만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10월29일 날 서울 집회에서 폭력경찰에게 엄청나게 맞았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동지들이 있어야 싸울 거 아닌가? 동의한다. (중략) 열사들의 뜻을 따르겠다고만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해야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강력히 요구하고 싶다. 전면 총파업을 포함한 투쟁을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시간 5시간이 아닌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전체 노동진영의 총파업 말이다. 96-7의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을 생각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번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손병곤 (기아자동차 화성 노동해방 선봉대장), 「총파업투쟁으로 열사정신 계승하자」, 『기관지노힘』, 제42호.

위 글은 <노힘>, 『현장노동자』와 같은 좌익들이 이번 총파업투쟁을 말아먹는데 얼마나 중요한 공헌을 했는가, 선진노동자들의 의식과 활동을 타락시키는데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자료로 문제가 없다. 필자인 기아자동차 선봉대장 동지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한심”하기 짝이 없다면서 “어떻게 총파업을 조직할 지를 모르는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말 그대로) 투쟁의 경험은 기아 선봉대장 동지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더욱 한심하기 짝이 없으며 총파업을 어떻게 조직할 지를 정말로 모르는 있었음을 보여주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아의 많은 선진노동자들이 무기한 전면총파업만이 실질적인 현장파업이라 4시간 부분파업은 시시한 투쟁이므로 조직할 필요조차 없이 저절로 되는 것처럼 말하는 동안 기아자동차 현장에서는 그 4시간 부분파업조차 부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기아자동차 노조의 민주노총 대대 결의안 부결은 극우 파쇼 언론인 동아일보가 사설을 통해 환영할 정도로 자본가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4시간 부분파업이 시시한 투쟁이라 조직할 필요조차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조중동의 칭찬을 받을만한 것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많은 기아자동차 선진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부분파업을 한심한 투쟁계획이라고 비난하는 동안 자신들의 현장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사측과 집행부에 대한비난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책은 회사에게 총파업투쟁을 조직할 수 있도록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전국의 활동가들에게 비웃음을 사기에 딱 알맞은 것이다. 집행부보다도 총회 가결을 위해서 한 활동이 없는 상태에서 집행부에 대한 비난은 거의 누워서 침뱉기에 불과하다.
<노힘>, 『현장노동자』는 기아자동차 현장 활동가들에게 반성을 요구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뒤돌아보고 진지하게 반성하려는 자세조차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아의 선진노동자들이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투쟁계획을 “애들 장난”으로 취급하면서 지도부 비난에만 열을 올리지 않고 현장을 조직하려는 최소한의 진지한 노력만 있었어도 총회 부결이라는 치욕적인 결과는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경향을 부추기는데 앞장 선 <노힘>, 『현장노동자』야말로 먼저 진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드러난 기아자동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대규모 사업장과 금속노조 지부와 지회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노조 관료들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나는 무정부주의
노동조합의 관료주의 문제는 지난 수년간 노동자계급운동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좌익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민주노총 지도부와 산별연맹 지도부, 대기업 노조 간부들에게 공공연한 비난을 가하는 것을 자신의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선진노동자들은 물론 민주노총이 탄생한 이래로 있어왔던 온갖 배반과 굴종, 거래의 역사들 및 사례들(노사정위 정리해고 합의 직권조인, 현자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과 탄압 등)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며, 노동자 대중에게 그 경험들을 전달하고 현장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기회주의적 행동의 생생한 사례들을 폭로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러한 매우 정당한 문제의식과 태도를 가지고 덮어놓고 무조건 모든 것들을 총연맹 지도부 때문이고, 산별 때문이고, 대공장 간부들 때문이라고, 한 마디로 노조 관료들 때문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결론만을 반복해서는 대단히 곤란하다. 또한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근로자”라는 말을 쓰다가 이제 겨우 “노동자”라는 말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민주노조운동을 막 시작하게 된 노조 간부에 대해서 비판할 때조차 아무 때나 “관료”라는 비난을 가함으로써 그 사람을 진짜로 산별연맹의 관료적 질서 속에 묶어버리는 행동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최근 선진노동자들 사이에는 이러한 매우 유해한 분위기와 경향이 매우 널리 확산되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이번 “열사 정국”과 총파업투쟁 과정에서도 자주 발견되었다. 특히, 『현장노동자』는 이러한 경향을 극단적으로 대표해서 보여준다.
『현장노동자』에 따르면, 실질적인 총파업, 현장투쟁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오직 지도부, 노조 관료들뿐이다. 그래서 노조 관료들을 비난하는 것이 곧 총파업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라는 태도로 선전하고 있다. 『현장노동자』에 따르면(11월1일자를 보시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정치쑈”일 뿐만 아니라 “투쟁회피”를 넘어서 “투쟁파괴”다. 그리고 대의원들은 “하늘의 별 같은” 모리배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있으나마나한 조직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되는 반동적인 조직이고, 대의원들은 몽땅 자본가들의 개들에 불과하다, 현장 노동자들은 모두 공장점거 전면 무기한 총파업을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노동조합이 이것을 가로막고 있다, 노동조합은 투쟁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조직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을 때려 부숴라 등등. 이것이 『현장노동자』가 그 동안 해왔던 선전 활동의 요약이다. 그러면서 정작 그들 자신은 무기한 공장점거파업을 조직한 곳이 하나도 없다. 이런 선전 활동은 “민주노총은 노동운동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한 노무현 발언에 대한 『현장노동자』판 변주곡이며, 거의 조중동과 조갑제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한 내용일 뿐이다.
『현장노동자』는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 조직화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 경제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점,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평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한 그들의 대표자들이라는 점, 민주노총이 그나마 전국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유일한 노동자 조직이라는 점과 같은 기본적인 측면들조차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장노동자』의 활동 전체가 무정부주의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장노동자』의 무정부주의적 경향은 그들이 대중의 자주성을 대중의 계급의식적 자각의 계기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무관심하고, 결국 대중의 자주성을 불신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현장노동자』는 대대회 결의안에 대한 총파업 찬반투표나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총회조차 민주노조운동을 우롱하는 것이며, 관료적 합리주의로 공격하고 있다. 결국 『현장노동자』가 주장하는 남은 것은 오직 선진노동자들의 과감한 “행동”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소수라도 소수로 이루어진 부서투쟁위 등을 만들어서 노동조합과는 다른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진활동가들이 도망가는 지도부를 대신하여 나서야 할 때다”라는 것은 기회주의적 지도부를 불신임해서 선진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다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벗어나 그것과는 독립된 평조합원 조직을 만들어서 투쟁해야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이런 선전은 과거부터 계속 있어왔던 아나코 생디칼리즘(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의 03년판 버전에 불과하다. 단지 간판만 바뀐 채 이런 식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노동자』와 같은 이러한 선전 활동은 선진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좌익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무정부주의적인 태도를 부추기고 자기 사업장에서 노조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광범위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선진노동자들을 분리시키는 작용을 한다.
『현장노동자』의 주장처럼 민주노총 활동이 “투쟁파괴”와 “정치 쑈”에 불과하다면, 그런 곳에서 하는 활동에 함께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단병호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는 것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주장을 선전하기 위해 왜 민주노총 집회에 오는가? 그건 그래도 그나마 투쟁하는 전국 조직이 민주노총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면총파업”, “무기한 점거파업”을 선전하고 제안할 수 있는 곳이 민주노총 대대회나 소속 노동조합, 집회 밖에 없다는 것은 좌익들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대중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적 형식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그 권위를 인정해주어야만 한다는 타협을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 조직화에서 불가피한 조직 형태이고, 현재 민주노총이 전국적으로 투쟁하는 유일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라고 한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그 속에서 노조 관료들과 함께 투쟁해야 한다. 이것은 총연맹과 산별연맹, 대기업노조 지도부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도 함께 투쟁하는 여러 시기를 거쳐야만 그러한 노조 관료들로부터 노동자 대중을 분리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노조 관료들보다 별로 진지하게 현장투쟁을 조직하는데 나서지도 않으면서 (바로 조합원들 스스로 선출한 대표자들인) 대의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비난과 욕설만 쏟아낸다면, 어떻게 민주노총 내에서, 노동조합 내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진지한 투쟁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만 대중으로부터 그러한 선진노동자들의 고립화만 낳을 뿐이다.

정치적 선동의 내용과 방식
자살과 분신에 이른 동지들의 극단적인 행동과 죽음은 법원의 살인적인 액수의 손배 가압류 결정,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탄압,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노조 불인정,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파쇼 언론들의 악의적인 흑색선전, “차별 철폐”라는 약속으로 노동자들을 기만한 대통령 노무현의 공공연한 배신에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었다. 또한 이러한 개별 자본가들로부터 시작되어 입법․사법․행정부와 대통령을 포함한 전체 자본가계급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바로 지난 97년 “IMF 위기” 이후 정도를 더해가고 있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극심한 노동자 착취 강화와 현장통제가 근본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정치적 지배에 있다.
좌익들은 이러한 것들을 다 알고 있지만, 노동자 대중은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노동자 대중이라 함은 단지 6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1,400만 임금노동자들과 3,000만에 이르는 그 부양 가족들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좌익들은 그 중에서 단지 10여만 명의 노동자들만이 파업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것이 뒤집어 질 것처럼 온갖 혁명적 투쟁 전술들을 신문과 유인물, 인터넷을 통해 쏟아냈다. 그러나 좌익들이 말하는 “무기한 공장점거파업”, “압도적인 무장을 통한 공권력의 무력화”, “전국적인 열사투쟁전선”, “전국적 전계급적 대반격”은 단지 자신들의 유인물과 인터넷에서만 떠도는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좌익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주장을 현실화하기 위해 선전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좌익들의 혁명적 주장은 단지 유인물 속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투쟁에 보이는, 집회에 보이는 수천 또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나 민주노총의 수십만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1,400만의 남한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한 그 어떤 진지한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열사의 명령이다”는 한 마디로 무시해버렸다. “열사의 명령이다”는 말이 좌익들의 모든 주장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열사의 명령이다”는 선언으로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자본주의적 모순들에 대한 폭로와 선전, 선동,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에 대한 폭로를 대신했다. 많은 좌익들이 이제 막 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한 청년, 학생들처럼 주변 분위기에만 휩싸여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로 과학적으로 정세를 분석하고 빈틈없는 전술을 내오려는 노력은 조금도, 조금도 없었다. 단지 “열사의 명령이다”는 선언만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열사의 뜻을 자기 맘대로 끌어다대는 종파주의적 태도로 일관했을 뿐이다.
오래 동안 함께 투쟁해왔던 동료나 가족들이 적들에 의해 죽음을 맞거나 감옥에 끌려갈 때 그 주변의 노동자들은 매우 큰 정신적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 비탄과 울분과 분노와 자책감이 그들의 마음 전체를 휘감아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를 이유로 거기에 휘말려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그러한 분위기를 자신들의 낭만주의적 선전 활동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근거로 남용할 때 그것은 열사들의 이름을 팔아 혁명적 광고선전이나 하려는 종파주의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좌익들은 동지들의 자결과 분신이 “투쟁의 한 판”을 만들어주려는 것이니, “즉각적인 총파업을 요구”하는 것이니, “죽어서라도 자본가 세상을 확 뒤엎고 싶은 것”이니 하는 식으로 고인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이용했다.
이러한 주장을 쏟아낸 <노힘>, 『현장노동자』 등의 좌익들은 동지들의 유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기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이를 이용해먹으려는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동지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개혁”을 말하고 “노동자의 벗”을 자청했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의 언행들이 거짓과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남한의 노동자들은 이제 겨우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의 위선과 거짓과 기만과 배신에 대해서 깨달아가기 시작하고 있으며, 그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선진적인 노동자들의 의식의 발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권영길이나 단병호는 물론이고) 노무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는 “의리 있는 장세동을 찍겠다”는 40~50대 노동자들도 많이 남아 있는 그러한 현실 속에 좌익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1,400만 노동자들의 90% 이상이 노동조합도 없고, 일상적 투쟁의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부르주아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 민주주의나 공화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후진적이고 반동적인 색깔론에 휩쓸리는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좌익들은 이러한 남한의 비참하고 치욕적인 현실에 대해 “하면 된다”, “열사의 명령이다”는 몇 마디 선언과 선전으로 무시해버리고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과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대한 태도
남한에서는 혁명적인 정치활동이 국가보안법과 비밀경찰에 의해서 철저히 금지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적 정치활동조차 빨갱이로 취급당하면서 수십년 동안 탄압받아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의 정치적 영향력은 좌익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조차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그것을 진지하게 시도한 선진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남한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노무현조차 좌파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선진노동자들은 그런 노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무현과 386들이 결코 노동자의 벗이 아니라는 점을, 1987년에 가두에서 함께 투쟁하던 그 시절의 노무현이 아니라는 점을, 심지어는 2002년 국민경선에서 “국가보안법은 문명국가의 수치”라고 말하던 시절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노무현이나 문재인이 철교 위에 올라가 외친다고 하여도 “빨간 다리 밑에서 물고기 잡던” 그 시절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수많은 사건과 교훈들을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진노동자들이 노무현을 결코 지지해서는 안되지만, 그런 노동자들에게 노무현 정권 퇴진이나 타도 슬로건을 막무가내로 제시한다면, 결코 그런 노동자들을 노무현으로부터 분리시키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들은 선진노동자들과 진지한 토론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을 설득하고 부르주아들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분리시킬 기회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데 일조할 뿐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 퇴진” 슬로건은 당면한 모순의 본질이 자본주의 체제 전체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억압이 국가 기구 전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나 한 정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러한 슬로건에 반대한다. 노무현의 비겁함과 배신, 기만적인 행동이 노무현 개인의 실수나 오류 또는 인격적 문제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노무현 주변 핵심 세력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노무현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개인적 책임까지도 포함하여) 노무현 주변의 핵심 세력들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개혁 세력 전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국가에 대한 계급적 태도와 관련된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그들은 피지배계급을 억누르기 위해서 억압적 국가 기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상비군과 관료제를 폐지할 생각이 결코 없으며, 이 때문에 상비군과 관료제에 어떤 치명적 위협도 주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파시스트적 관료들을 설득하거나 겨우 젊고 개혁적인 새로운 인물들로 대체함으로써 노동자들과 인민 대중의 열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에 핵심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개혁 세력들의 기대와는 달리 파시스트적 부르주아 관료들은 결코 자신들의 실제적인 기득권과 이익을 포기하면서 대중의 요구를 부분적으로라도 충족시켜줄 어떤 진지한 개혁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조중동, 김용갑, 정형근과 인적 유대와 선후배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그들은 결코 “지리멸렬(支離滅裂)”하지 않다. 그들은 노무현을 교육시켰고, 개혁 세력을 무력화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오히려 강화해나가고 있다. 특히, 선진노동자들은 이러한 반동 세력이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과 언론사 세무조사 등을 경험하고 촛불 시위에 경악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매우 집요하고 철저해졌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오마이뉴스에서 김재홍과 손호철은 개혁이 조중동의 압력에 의해 “타살”되었느냐 노무현 자신에 의해서 “자살”되었느냐를 가지고 논쟁하였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적되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 “개혁”이 실패한 것은 그것이 혁명적 수단을 배제한 채 추진된 개혁적 방법을 통한 개혁이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은 계급간 투쟁의 일시적 타협물로서 피지배계급의 혁명적 대중운동에 의해서만 공고하게 주어지는 중간기착지이거나 아니면, 혁명적 투쟁의 부산물로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재홍과 손호철은 모두 의회주의적, 체제내적 방법, 개혁적 방법을 사용해서 개혁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국가에 대한 환상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로, 그것은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조직되어 있는 남한의 정치집단인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파쇼 세력에 의해서 타살된 것이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대통령직의 유지에만 골몰하는 노무현의 배반(민주주의와 공화주의적 대의에 대한 노무현의 배반)이라는 과정을 거쳐 타살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교살 행위에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시민운동으로 대중운동을 제한하고 송두율 사건에서처럼 신세를 조지지 않기 위해 파시스트들에게 굴종하는 진보적 기회주의자들, 민노당같은 자들 역시 그만큼 기여했다는 것이 폭로되어야 한다.
합법적인 투쟁, 평화적인 운동만을 고집하는 후진적인 대중, 반동적인 대중들에게 반동적인 제도와 제도화된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투쟁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단호하게 체계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런 대중들에게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대한 투쟁에서뿐만 아니라 문민정부 아래였던 1995년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는 과정에서도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동원된 대규모 폭력투쟁이 있었음을 상기시켜야 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되고 있으며, 사실상 남한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따라서, 불법 폭력 투쟁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현재 제기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끝내기 위해서는 국가기구를 타도하는 폭력혁명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개혁을 위한 투쟁조차 혁명적 운동에 종속되고, 혁명적인 방법으로 실행되지 않는 한,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언론과 정치권에서 몰아내는 것도, 파쇼 악법들을 말끔히 청산하는 것도, 공권력의 테러 행위를 중단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또한 우리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선봉대 동지들이 투쟁에서 보인 전투적인 태도와 용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지지한다. 그리고, 부르주아 공권력에 맞서 가투를 조직하기로 대중들이 결정한 이상 선진노동자들은 쇠파이프와 꽃병을 들고 함께 투쟁에 나서야 하며 평가와 책임은 이후에 공동의 과제로 삼아야 하지만, 현장으로부터 조직된 대중파업에 확고히 기반하지 않은, 치고 달리기식의 가두투쟁은 적들의 공격을 용이하게 해줄 뿐이라는 점도 분명히 각인하고 있어야만 한다. 파업 없는 가두투쟁은 일회적인 전투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지속적인 가두투쟁을 전개하기에는 정말로 역량이 너무나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지난 11월 9일 노대회를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 완전 무장한 전투병인 기동대를 상대로 잘 훈련되어 있지도 않고 숫자도 적은 선봉대가 쇠파이프와 꽃병만으로 그것을 제압할 수는 없다. 11월 9일 노대회 투쟁에서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100여명의 동지들이 부상을 당하고 수십명이 구속당하고 수배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적들은 전담반까지 만들어서 이번 시위의 배후와 주동자들 및 적극가담자들을 끝까지 추적 검거하겠다고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장노동자』(11월 12일자)처럼 “소규모라도 가투선봉대”를 만들어서 가두투쟁을 이끌어가자는 것은 자멸적인 결과만을 낳는 극좌맹동주의로 비판받아야 한다. 지금 적들은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현장의 활동가들을 잡아넣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인데, 그래서 적들의 추적을 물리치고 역량을 보존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로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도망간 지도부를 대신해 가투선봉대 만들어서 가투에 앞장서라는 것은 “선진활동가들”만 다 죽으라는 말밖에는 안 된다. 이건 완전히 정보과 형사들 연말 보너스 높여주는 전술일 뿐이다. 명백히 도망가야 할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고 적들에게 잡혀서 다음의 투쟁 기회를 없애버리거나 더욱 멀리 보내는 것에 불과하다.

조중동, 경찰, 검찰의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은 물론이고 노무현의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맞서 투쟁할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것은 단병호 등 민주노총 지도부, 대기업 노조 관료들의 무능력과 무기력,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멈추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부르주아들의 탄압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해야 하지만 동시에 관료주의와 교섭주의, 의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속해야 한다. 이러한 비판이 없다면, 선진노동자들은 <다함께>나 노힘과 같은 활동으로 추락해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정권 타도”, “정권 퇴진”, “정권 심판” 같은 슬로건들이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불신을 표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르주아 국가 기구에 대한 비과학적 태도와 환상, 의회주의, 선거주의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점을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적극 설명해주어야 한다. 현존하는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적대적인 폭력성은 정부의 수반이 되는 어떤 특정 인물, 또는 특정 내각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부를 비롯한 군대와 경찰 등 국가기구 전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정권의 타도가 아니라 이러한 기구의 타도와 해체, 그리고 혁명적 대중파업으로 구성된 노동자대표평의회로 대체를 끈질기고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자족적 구호가 아니라)들에게 “노무현 정권 타도(또는 퇴진)”가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혁명적 타도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슬로건을 내기 위해서는, 그런 슬로건을 공공연히 거리에서 외치기 위해서는 대중의 광범위한 의식과 행동의 고양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과정들을 거쳐야만 한다. 또한 민노당을 통해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개혁적 방법, 의회적 방법, 합법적 방법에 의한 개혁이 아니라 혁명적 대중운동, 비합법 혁명 전위당의 지도와 결합된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적 개혁을 위한 운동의 요구들 역시도 성취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현장의 선진활동가들은 과격한 구호를 남발하거나 잘 조직되지도 않을 총파업을 탁상공론으로 제출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구체적인 현안들에 대한 일상적인 투쟁들을 조직하는 작은 과제들부터 진지하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모순들에 대해 정말로 체계적인 선전과 선동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결코 단순하고 간단하지 않은 부르주아 정치세력들과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폭로를 구체적이고도 엄밀하고 진지하게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들을 자본가계급에 대한 혁명적 투쟁으로 결집시킬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전위들의 결집체인 비합법 혁명 전위당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을 체계적으로 집요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선진노동자 동지들에게 그러한 진지한 활동과 자세로 함께 할 것을, 허튼소리 남발하기가 아니라 진지한 현장활동의 조직화를 호소하고 촉구한다.

2003-12-24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