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년, 관료주의와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
현장에서 미래를 제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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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노동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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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노동자신문』
04년, 관료주의와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현재 노동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최대의 내부 장애물을
꼽으라면, 선진노동자들은 즉각 ‘관료주의’를 지목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와 대공장 노조 지도부의 관료적 행태들이 계급투쟁에
미친 악영향과 폐해는 너무도 심각하고 재앙적이라서 이를 새삼
떠올리는 것조차 끔직스런 지경이다. 관료주의, 관료적
지도부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한다면 자본과의 전투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계급투쟁의 진리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수년째이지만, 03년 계급투쟁은 이러한 관료주의의 폐해가 다른
어느 해보다도 특히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 해다.
1. 03년 계급투쟁과 노조관료
1)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관료들이 말아먹은 배달호 열사 투쟁
03년 투쟁의 시작은 금속노조 두산지회의 배달호 동지가
손배․가압류를 통해 민주노조를 무력화하고
현장활동가들의 숨통을 조이려는 자본의 탄압에 죽음으로
맞서면서 시작되었다.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와 두산지회
지도부들은 열사의 죽음조차 자본과의 야합을 위한 제물로
삼았다. 관료들은 연대투쟁을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노동자들에게 공원에서의 집회와 거리행진에 그칠 것을
강요했다. 열사의 동료 조합원들이 있고 자본과의 직접 전투가
벌어져야 할 공장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그러면서 투쟁의 확대와 계급적 연대투쟁에 대해서는 냉소를
머금고 오로지 “두산제품 불매운동, 악질자본 규탄, 단사
차원의 손배․가압류 철회”에 투쟁을 제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이러한 타협을 정부가 주도하도록 만듦으로써
‘개혁정부’로서 노무현의 위상을 한껏 높여주고 한편으로는
노사정위 참가의 명분을 쌓아가고자 했다.
2) 조합원의 투쟁의지를 두 번 연이어 배반한 철도 민주노조
지도부
관료들의 배신은 소위 대중적 투쟁의지가 살아있는 사업장에서도
자행되었다. 철도노조는 02년 민주노조 출범 이후 총파업과 현장
구조조정에 맞선 일상적인 투쟁으로 다른 어느 사업장보다
활동가들과 대중의 투쟁의지가 고취되어 있었다. 또한 ‘공사화,
외주화’ 등으로 조합원들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공격받고
있었다. 조합원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 한번
총파업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4월20일 약속했던 4시가 넘어서 지도부는 일방적으로
파업철회를 선포했다. ‘인력충원, 해고자 복직’ 등에서 정부가
던져준 알량한 개량책을 받는 대신 전체 철도노동자의 운명이
걸려있는 ‘공사화, 외주화’ 문제는 차후 협상으로 미룸으로써
사실상 자본의 공격에 무저항 의사를 밝힌 것이다. 조합원들은
분노했고 지도부에 대한 규탄발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전투적인
현장활동가들이 배신한 지도부를 대체할 만큼 결속되지 못했기
때문에 조합원의 분노는 독립적인 행동으로 조직되지 못했다.
현장활동가들의 무기력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부에서는
‘실력에 비해 선방한 투쟁’이라는 식으로 지도부의 파업철회를
옹호했다. 조합원들의 자발적 분노로 만들어진 발언대가
‘아수라장’으로 묘사되기까지 했다. 자본도, 어용도 아닌 소위
철도운동 내 민주파에 의해 자행된 망언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숨길 수 없다. 불과 2개월 남짓 지나 철도
조합원들은 또 한번 총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4.20
합의는 총파업을 철회한 그 순간부터 휴지조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뚜렷이 확인되었다. 공사화 계획은 확정되고, 비정규직이
채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철도 지도부가 총파업을
결의하지 못하면 아래로부터의 반란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래서
철도 지도부는 6월 28일 마지못해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러나
곧바로 조합원들을 산개시킴으로써 총파업 파괴 작전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이 스스로 조를 짜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행되었던 조합원들이 속속 산개투쟁에 결합하자 지도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환규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백기항복’을 하고 말았다. 분노한 현장활동가들이
대체지도부를 구성해 총파업을 사수하려 했지만 이미 조합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허탈한 심정으로 현장에 돌아간
현장활동가와 조합원들 앞에는 무자비한 탄압만이 기다리고
있었고 철도노동자들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3) 민주노총 지도부의 계속되는 총파업 유보로 ‘근기법
개악’이 통과되다
전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이 달려있고, 향후 몇 년간 민주노조
운동의 운명을 좌우할 근기법 개악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6년간에 걸친 자본과의 전투에서 결국 패배한 것이다. 노동자
대중은 이 장기전에서 이미 지쳐 있었으며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변변한 총파업 한번 해보지 못하고 ‘평화롭게’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사기저하와 패배는
결코 대중의 탓이 아니다. 이 문제는 노동자 대중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를 투쟁으로
조직해야 할 민주노조 운동 내 상층 지도부는 매번 ‘국회일정’
등을 핑계로 총파업을 유보하더니, 결국 대공장 노조의 임단투가
종결된 시점에 가서야 ‘부분파업, 평일집회’ 등으로 대응했다.
대중적 동력 없이 상층관료들의 ‘항의방문, 단식농성’ 등으로
진행된 이 투쟁은 결국 “지도부는 할 만큼 했는데 현장동력이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진실에 대한 철저한
왜곡이며, 대중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근기법 개악을 통과시킨 이후 자본은 연이어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선전포고를 날리고 있다. 이미 체결된 대공장 단사의
주5일제 합의도 다시 해야 한다느니, 사용자 대항권 강화니,
노사관계 로드맵이니 하는 직격탄이 민주노조의 앞마당에
떨어지고 있는 데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한가하게 ‘낙선운동’
따위나 고민하고 있다. 더 이상 이들에게 투쟁을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확실하게 인식되어가는 만큼 일선의 현장활동가들이
겪는 압박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관료적 지휘체계에 의해
투쟁이 고립 방치되고, 파괴되는 민주노조운동을 되살려야 할
이중적 과업에 신음하던 현장활동가들이 급기야 죽음이라는
극단적 투쟁형태를 취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4) 열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분노마저 통제하려 든 관료들
이현중,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곽재규 열사의 잇따른
죽음으로 촉발된 노동자들의 분노에 찬 투쟁으로 마침내 전국적
투쟁전선이 펼쳐졌다. 이 투쟁에서마저 자본에게 밀린다면 이후
민주노조 운동은 정말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만연되어
있었다. 그래서 현장활동가와 대중은 이 투쟁에 매진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와 대공장 노조 관료들은 이
투쟁마저 확대는커녕 ‘사태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투쟁을
제한하는 데 급급하고 자기 통제 하에 두려 안간힘을 썼다. 그
중 이현중, 이해남 열사를 낳고 2년여에 걸친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전개해옴에 따라 전국 전선을 밀어온 중심고리로 위치한
세원투쟁에서 이런 행태는 특히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관료들이
계속해서 공원과 거리집회로 대중을 유도하자 현장노동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원공장 진입투쟁을 제기했다.
공장진입에 필요한 대중동력과 무기를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서로의 힘을 규합했다. 그리고 마침내 19일 공장진입 투쟁이
감행되었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사전에 이 정보를 파악한
관료들은 철저히 대중을 통제했으며, 동시에 25, 26일 대대적인
투쟁을 할 것처럼 공수표를 날렸다. 노동자대회의 후유증으로
전투적 투쟁을 꺼리던 현장활동가들은 관료들의 이러한 농간을
뻔히 알면서도 관료들의 통제에 저항하지 못했다. 결국 19일
투쟁은 한차례 투석전으로 끝나버리고 26일 노동자대회는
폐기되었다. 그 후 전투적 행동에 대한 말만 무성한 채 마지막
남은 두 분의 열사를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렇게 열사투쟁의
불꽃은 사그라들었고, 민주노조 운동의 앞길은 더욱 더 짙은
어둠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2. 2004년, 대공장 현장에서부터 관료와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
어디서부터 이 어둠을 헤쳐 나갈 것인가? 전국적으로 펼쳐진
투쟁전선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관료들의 배신과 투쟁파괴는
그것이 아무리 충격적일지라도 그 자체로는 이미 운동의
밑바탕에서 진행되고 있던 변화의 극적인 표현일 뿐이다. 즉
그것은 위기의 현상일 뿐, 위기의 본질은 일상의 현실에서
노조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대공장 현장의 운동질서 속에서
찾아야 한다.
1) 사태의 본질 접근을 차단하는 민주노총 임원선거
04년 현재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한창이지만, 현장노동자들은
관심이 없다. 아니, 초대받지 못한 남의 잔치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되든 ‘현장’은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마치
민주노조운동의 운명과 향방을 좌우할 ‘좌우’ 대결같이
호들갑을 떨고 공방으로 뜨겁게 인터넷을 달구고 있지만, 정작
매일매일 자본과 전투를 치러내야 하는 현장에서 볼 때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민주노조운동의 향방은커녕 오늘도 조여들어오고
있는 자본의 현장 장악에 털끝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현장노동자들이 볼 때 임원선거가 민주노총 대의원들을
포함한 상층부들 ‘즈그들만의 잔치’로밖에 비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둘 다 똑같은 상층 관료니까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98년 정리해고에 직권조인하고 4/2 백기투항한 관료들
말고는 선택할 놈이 없어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다른 대안,
제3의 후보가 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지금 문제의 지점이
거기 민주노총이 아니라 현장, 특히 대공장 현장인데, 엉뚱한
데서 엉뚱한 문제들을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절박하게 대공장 현장을 바꿔내야 하고, 거기서
문제의 근원을 밝히고 거기가 우리 운동의 쟁점이 제기되어야
하는데 지금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이러한 문제의 근원을 가리고
관심을 엉뚱한 쪽으로 돌리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상층
표피에서 벌어지는 떠들썩한 소동으로부터 눈을 돌려 ‘깃털이
아닌 몸통’ 즉 우리 운동의 심장부인 대사업장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2) 어용이 장악하거나 관료적 노조운동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대공장 현장
그 동안 투쟁을 촉발시키고 선도해 왔던 대공장(대사업장)
단사는 지금 어용이 장악하고 있지 않으면 관료적인 노조운동이
지배하고 있다. 이미 현중, 한통, 서지(지하철)는 어용이 연속
집권하고 있고, 장기집권까지 내다 볼 기세다. 기아차는 이번
비대위의 불신임 운동이 패배함에 따라 어용 세력이 일시적인
집행부 장악을 넘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현자의 경우 이번 임원선거에서 민주노조운동을 계승한
세력이 당선되었다는 사실보다 어용 세력이 1차에서 압도적인
1위를 했을 뿐만 아니라 결선에서도 거의 당선될 뻔 했다는
사실이 더 무섭게 다가오고 있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어용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
어용은 정확히 말해서 노조관료나 노동운동 내부의 기회주의
세력이라기보다는 자본의 세력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어용의 집권이나 득세는 그만큼 사측이 현장을 장악하고 있거나
장악해 들어가고 있고, 노자간 역관계가 자본에 압도적으로
기울어 있거나 기울어 가고 있음을 뜻한다. 자본의 통제력이
조합원들 개개인에게까지 깊숙이 미치고 있고, 현장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 한통이나 현중에 비해 현자, 기아차는 아직 현장이
살아 있고 ‘민주파’가 대의원의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같이 관료적인
노조운동이 지배하는 상황을 시급히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용이
들어서는 것이 결코 먼 훗날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한통과 현중, 서지에서 어용이 득세, 집권하는 과정을 보면
‘민주파’ 활동가들이 조합원 대중과 유리된 관료적
운동세력으로 자립함에 따라 그 빈 공간을 사측이 치고 들어가
현장을 장악해 들어가고 조합원들 개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행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3) 어용의 득세를 불러온 관료적인 ‘민주파’ 활동가들
조합원들의 명운이 걸린 투쟁에서 투쟁을 회피하고 적당히
보여주기식 투쟁이나 하면서 자신들의 투쟁회피를 조합원 대중의
탓으로 돌리는 활동가들을 보면서 조합원들이 ‘믿을 놈이
없다’고 생각할 때 이 틈을 노리고 자본은 현장을 급속히
장악해 들어왔다. 이 점에서 현중, 한통, 서지 등에서 자본이
현장을 장악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어용이 득세하도록 만든
주범은 관료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운동세력으로 전화한
‘민주파’ 활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현자와
기아차에서도 이런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볼 수 있다. 현자와
기아차에서 집권을 놓고 다투는 각종 ‘민주파’ 현장조직들이
과거 현중, 한통, 서지의 ‘민주파’와 같은 궤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현자 임원선거에서 어용세력이 거의 당선까지 갔던
점, 그리고 기아차 비대위가 불신임운동에서 패배한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001년 7.5 총파업 철회, 2002년 4.2 백기투항을 거치면서
‘노동운동의 위기’가 심각하게 제기되었고, ‘노조운동의
관료화와 개량화’를 치유하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이 사태의
본질, 즉 대공장 현장의 관료적 운동질서라는 이 문제를
파고들지 않은 채 추상에서 맴도는 논의에 머물다가 올해
열사투쟁에서 또 다시 무기력한 종결을 맞이하여 이제는 아예
‘위기’에 대한 감각조차 무디어진 듯하다.
열사투쟁에 대한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시작되면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다시
차단되고 쟁점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상층부들의 겉만
요란한 논쟁에 현혹당하지 말고 현 위기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4) IMF 이래 조합원 대중의 투쟁동력을 갉아먹은 대공장의
관료적 운동세력들
그간 민주노총과 연맹 등 상급단체 노조운동이 대중으로부터
자립하고 관료화하는 경향을 강화시켜 왔지만, 대공장 노동운동
제세력들과는 매우 긴밀히 밀착함으로써 노조관료 커넥션을
형성하고 정파적 운동 라인을 구축해 왔다. 계급투쟁에서
상급단체 노조운동의 배신을 주도하고 조장하는 것은 상급단체
노조관료 그 자체가 아닌 대공장 단사의 기회주의 운동세력과의
결합을 통해서였다. 대공장 단사 노동운동이 상급단체
노조운동의 이념․조직․재정 등 실질적 토대임이
명확히 드러나 왔다. 이른바 국민파, 중앙파, 좌파라고 하는
세력들을 보라. 그 골간대오는 모두 대공장의 현장조직들이다.
한편 투쟁을 촉발시키고 선도할 수 있는 동력 또한 대공장
단사의 조직된 노동자계급이어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히 전개된 IMF 이후에도 계급투쟁의 전선을 완강하게
쳐내는 대중 동력은 여전히 대공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대공장의 관료적 운동세력은 생존권 사수의
열망으로 떨쳐 일어선 조합원 대중의 투쟁동력을 갉아먹고
무너뜨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조합원들을 피멍들게 한
회사 살리기, 투쟁동력을 갉아먹는 양보교섭, 투쟁동력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기만적인 잠정합의 및 총회 전술과
무쟁의․노사화합선언 등 온갖 책략과 배신이 대공장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들의 의해 개발되고
자행되었다.
98년 현자 정리해고 저지투쟁 이래 대부분의 투쟁이 패배로
끝나면서 이제 대공장에서 현장권력의 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이 파괴되었거나 무너져가고 있고 사측의 통제가 구석구석 안
미치는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장은 이미 87년 이전을
방불케 하는 현장통제로 피말리고 있다. 자본은 폭력과 회유,
‘합법적인’ 손배․가압류와 ‘부당’노동행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현장 탄압을 더욱더 강화하고 있다. 자본의
현장 장악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까지 왔다.
그러나 대공장에서 자본의 현장 장악은 노조관료와 기회주의
운동세력의 방조와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자본은 이들
기회주의 운동세력의 투쟁회피와 타협주의와 노사협조 아래
노동과정을 폭력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였다. 자본은 자신의
손에 피를 적시지 않고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의 손을
빌어 노동착취와 현장통제를 강화하였다. 이미 IMF 이전부터
현중과 대우조선이 그러했고, 공공부문에서 한통과 지하철이
그러했다. 98년 이후 현자와 기아에서도 동일한 과정이 진행되어
왔다.
5) 04년을 대공장에서 관료와의 투쟁 원년으로! 현장권력 탈환의
원년으로!
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은 현장권력 파괴 기도와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에서의 패배는 정리해고와
고용불안 및 단협개악 등 생존권의 말살과 노동조건의 후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현장의 질서가 사측의 통제 아래 전면적으로
재편되는 것을 수반하였다. 어용세력의 득세는 이처럼 자본의
현장 장악 속에서 부수적으로 따른 것이었다. 결국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이 어용의 득세를 불러들인
셈이다.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이와 같이 자본이 대공장에서 구조조정을 관철하고 현장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 그토록 단시간 내에 거침없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민주노조운동 위기’의 근원은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이 지배하는 대공장 현장의
운동질서이다. 이 최악의 내부 장애물인 대공장
노조관료․기회주의 세력과의 투쟁이라는 과제를 올바로
수행해내지 못한다면 필시 자본의 현장 장악과 어용의 득세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게 된다. 2004년을 대공장에서 관료와의
본격적인 투쟁 원년으로, 자본의 현장 장악으로부터 현장권력을
탈환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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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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