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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사형선고, ‘사회보호법 폐지’의 당위성

현장에서 미래를  제96호
유해정

정세초점
유 해 정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소리없는 사형선고, ‘사회보호법 폐지’의 당위성



0. 들어가며
2002년 청송보호감호소(이하 감호소)에서는 세 차례에 걸친 피보호감호자(이하 피감호자)들의 집단 단식농성이 있었다. 담장 안에서의 처절한 외침은 23년 간 묻혀져 있던 사회보호법의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성공했다. 인권, 시민, 사회단체들이 사회보호법 제정 이후 최초로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한 연대기구(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이하 공대위)를 결성하고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 것이다.
사회보호법은 사회복귀를 촉진한다는 명분아래 이른바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자에게 보안처분을 과하여 구금시설에 격리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한다. 정부는 사회보호법에 의거한 보호감호제도가 “재범의 위험이 있는 자를 사회에 복귀시키고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권단체와 피감호자들은 사회보호법의 폐지를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1. 사회보호법 폐지의 정당성
가. 사회보호법은 국가가 사회의 ‘쓰레기’들, ‘위험할 수 있는 자’들을 격리 수용하고, 이들을 교화시킴으로써 사회를 보호하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전두환 정권은 불법적인 권력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삼청교육대를 신설하고 이를 합법화하기 위해 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사회보호법을 제정했다. 사회보호법 제정으로 삼청교육대생 중 7,478명이 재판절차나 사전통지 없이 보호감호를 부과 받았으며, 이들 중 2천여 명이 청송감호소로 이송돼 수감됐다. 사회보호법이 내건 명분은 이들의 재사회화였지만 이들은 사회의 ‘말썽거리’, ‘불안요소’로만 인식되면서 이들에 대한 처우 역시 사회적 격리와 억압을 그 핵심 내용으로 진행돼왔다.

나. 보호감호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헌법의 이념에도 반한다.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유로 형사책임이 종료된 자를 사회로부터 격리, 일정 시설 내에 구금하는 보호감호제도는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제도다.
정부와 보호감호 존치론자들은 보호감호가 형벌과는 다른 독자적 의의를 가진 사회보호적 처분인 데다가 처우 역시 교도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실상을 왜곡하는 것에 불과하다. 보호감호제도가 피감호자들의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사회적 인접성을 고려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청송감호소는 ‘육지 위의 섬’처럼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 사람의 발길조차 다가가기 힘들다. 피감호자들의 처우는 행형법을 준용하고 있으며, 시설은 일반 교도소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들은 최저임금의 10분지 1에도 못 미치는 보상금을 받으며 노역을 해야 하는데 7년의 감호기간 내내 일을 해봤자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백만 원을 넘지 못한다. 휴지․비누․속옷 같은 생필품마저 턱없이 모자란 것은 물론이고 장기 수용자가 많아 발병률도 높지만 진료와 치료가 어려운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면회나 서신, 신문과 정보의 검열과 제한, 청원이나 소송의 제한과 방해 등도 일반 교도소와 다름이 없다. 출소 후 직업과 연계될만한 효과적인 직업훈련이나 심성프로그램도 갖고 있지 않다.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응 능력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다. 2003년 3월 조사 당시 청송감호소에 감호자들의 76%는 절도범이었다. 사회보호법 시행 20여 년 동안 절도범들이 피감호자의 절대 다수를 점하는 통계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또한 피감호자의 60% 이상은 무학이거나 초등학교 교육밖에 이수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통계는 피감호자의 대다수가 빈곤계층 출신으로 범죄성향 역시 ‘좀도둑들’, 즉 생계범죄자들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 범죄의 원인과 책임은 상당 부분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 등으로 사회정책적 노력을 통해 해결되어야하지만 이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된 상태다. 범죄자 개인에게 모든 범죄의 책임을 묻고 형벌 이외에 추가적 구금을 강요하는 것은 용인될 수도, 또한 어떠한 해결책도 될 수 없다. 2001년 현재 피감호자들의 재범률이 45%를 넘고, 피감호자들의 과반수가 재감호자들이라는 통계는 ‘범죄는 사회가 생산해내는 병리현상’이라는 진리를 외면한 당연한 결과였다. 보호감호제도의 본질은 결코 이 사회와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지 않다. 시작부터 불평등하고 비틀린 사회에 태어나 언제든 ‘범죄자’의 낙인이 찍힐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의 빈곤층 국민들을 위협하기 위한 장치이며, 기득권 층의 ‘평화’를 보장하는 전형적인 치안법인 것이다. 또한 ‘범죄자’라 낙인찍힌 이들을 영구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한 투쟁
피감호자들의 단식농성과 공대위의 결성은 지난 89년 위헌논란과 90년대 후반 피감호자들의 인권침해 실상 폭로 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있던 사회보호법 문제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대위를 주축으로 3월과 6월 청송감호소에 수감 중인 피감호자 616명이 단체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며, 5월과 9월, 그리고 지난 2월에 걸쳐 세 차례에 걸친 단식농성이 진행됐다. 청송감호소의 실태를 알리는 민간 최초의 실태조사와 국가인권위원회의 현장조사가 실시됐으며, 사회일각에서 사회보호법을 폐지해야한다는 여론도 폭넓게 형성됐다. 대한변협이 사회보호법상의 보호감호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데 이어 형법학자 등 176인의 법률가들 역시 사회보호법 폐지를 선언했으며, 인권시민사회단체는 물론이고 사회각계 원로 역시 사회보호법의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투쟁의 과정에서 보수적인 색채를 가진 동아일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중앙 일간지에서 사회보호법의 폐지가 적절하다는 사설을 보도했으며, 결국 이러한 투쟁들은 국가기구로는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회보호법 폐지를 국회와 법무부에 건의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사회보호법 폐지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어가면서 법무부는 지난 5월 보호감호제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대책은 기존의 보호감호를 유지하는 선상에서 피감호자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어 피감호자는 물론 인권시민사회단체로부터 반발만 샀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9월과 12월에 각각 발의된 3건의 사회보호법 폐지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국회가 정쟁과 총선에 매몰되면서 고난을 헤치고 온 사회보호법 폐지법률안은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는 비단 사회보호법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민생법안들이, 개혁법안들이 국회의원들의 ‘망국놀음’ 속에서 무참히 유린되고 있는 현실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더욱 고민되는 것은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안의 국회통과보다도 우리들 속에 각인돼있는 ‘사회보호법’에 대한 근거 없는 잔영이며, 법안 폐지 이후의 대책이다.


3. 사회보호법 폐지 후 대안 ― 자립과 교육
사회보호법상 보호감호제도가 범죄 예방 대책으로서 어느 정도의 실효성이 있는가와는 전혀 무관하게 법무부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심리적 안전장치로써 인식돼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사회보호법 폐지 이후 ‘사회적 혼란이 도래하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함께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설사 국민들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사회보호법 폐지대책은 감호소 출소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라도 고민돼야하고 준비돼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대안은 크게 세 가지. 우선 피감호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립센터 및 자립시설의 신설과 확충이다. 현재 피감호자의 재범률은 45%. 이렇게 높은 재범률은 개개인의 특성과 습성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앞서 거론된 바처럼 ‘기본적으로 없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의 구금생활로 인해 더욱 취약해진 사회적 기반과 경제 능력 등에 기인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출소해 갱생보호공단 갱생보호공단에 대한 평가는 이 글에서는 배제한다.
에서 기거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일정한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등의 사회적 지원을 받은 피감호자들의 경우 재범률이 매우 낮다. 이는 ‘사회적 기반’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데 결국 피감호자들의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돕고 재범률을 낮추기 위한 유일한 대책은 국가가 운영하는 개방형 자립센터 및 시설의 신설과 확충 이때 시설은 기존의 중․대형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집 혹은 10~20여 명 정도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크기가 적당하다.
이며, 신청자에 한하여 일정한 시일동안 숙식을 제공하고 직업훈련 및 취업알선 등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피감호자 1인에 대한 1년 수용비용은 약 750~800만원 선이다. 이는 갱생보호공단이 수용자 1인에 투여하는 예산과 비교했을 때 2~3배에 달하는 비용이다. 결국 현재 청송감호소의 유지 및 피감호자를 수용하기 위해 사용되는 예산을 자립지원 시설 및 센터 등에 전환할 경우 현재보다 더욱 좋은 양질의 서비스와 교육 등을 감호소 출소자들에게 지원할 수 있으며 이들의 재범률 저하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범죄자에 대한 자립 교육은 교도소에서 선행돼야한다. 현재 교도소는 처벌, 즉 응보적 관점에서의 ‘수용’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사회와의 격리, 기반의 취약’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데, 수용자 개개인에 대한 개별처우를 통해 ‘응보’가 아닌 ‘교육’과 ‘자립’ 위주의 시스템으로 전환해야한다. 이는 현재의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인간형을 일컫는 것이 아니며,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 교육’의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사회권의 보장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범죄는 사회의 부산물이며,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는 사회 속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빈곤계층일수록 범죄의 유혹을 받기 싶다. 이는 개개인의 ‘인성’이나 ‘습성’ 혹은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이 그들을 ‘범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사회 소외 및 빈곤계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교육, 문화, 취업 등에 대한 ‘권리’의 보장 등 사회정책적인 노력이 선행돼야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범죄의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0. 사회보호법 폐지가 결국 사회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
결국 사족이 되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사회보호법은 결코 우리 사회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지도, 범죄자들의 사회복귀를 돕지도 못한다. 결국 사회보호법에 의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라곤 범죄자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폭력 위에서 그들이 감호소에 수용돼있을 단 몇 년간의 안정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반인권적인 행태이며, 더욱 더 큰 사회의 불안을 유도하는 얕은 수에 불과하다. 범죄는 개인의 습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소산물’이라는 것을, 피감호자들의 대부분은 우리 사회가 방치해온 소외계층이라는 것을,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어떻게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배제시킬까?’가 아니라 ‘범죄를 낳게 하는 현실’에 대한 개선이며 변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한다. 한/노/정/연

2004-02-19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6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