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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와 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98호
최경희

2004년 4월 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와 평가 :

형식적 민주주의 또 하나의 축의 형성



최 경 희

연구위원






“새 이론은 옛 이론의 한계뿐 아니라 장점도 보여주고, 우리가 더 높은 수준에서 개념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 아인슈타인과 인펠트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된 형태를 위한 하나의 변화의 계기로서 4․15

4월 15일 치뤄진 17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열린우리당의 승리, 한나라당의 회생,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 민주노동당의 쾌거로 평가된다. 민주노동당의 쾌거는 40여 년만의 진보정당의 의회진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부르주아 언론기관에서도 놀라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언론은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입을 통해 기존 보수정당들도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의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정확하게 맞는 얘기다. 한국 의회정치의 수준이 그 동안 그만큼 철저히 수준 낮은, 눈뜨고는 봐 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대단히 놀랍다고 평가하지만, 정말 그러한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의회주의 접근방법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는 좌파들은 부르주아 지배체제 내의 ‘선거’라는 정치제도가 일상적인 계급투쟁의 이슈들을 수면 위로 올리기보다는 수면 아래로 감추거나 선택적으로 위로 올라오게 하는 기본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파악한다. 그래서 선거가 계급투쟁의 장이기 보다 의석수 싸움의 장이 되는 것에 대한 원칙적 비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의석수의 배분 결과가 계급투쟁이자 그 결과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1990년 전노협 결성 이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고민하고 실천했던 다양한 진보진영 내에서 의회 내에 진보정당의 진입을 그 방법과 노선으로 선택하는 그룹이 생겨났고,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노선의 형성과 확대는 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태 변화에서도 기인하는 것이다. 군부파시즘으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1992년 김영삼 정부, 1997년 김대중 정부, 2002년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과 그 사회적 결과와 맞물려 진행되는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치체제’가 ‘민주적인 정치체제’로 변화하게 되면서 ‘정당정치’와 ‘의회정치’가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고, 의미가 확대되어 가면서,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의 방향은 그 방향으로 모아지게 되었고, 당연히 이전보다 그 진입의 가능성은 확대되어졌다. 대중은 이전과 다른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로서 정치사회지형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4년 4월 15일 총선을 통해 기본틀을 구축하였다. 즉, 형식적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축인 진보정당의 진입이다. 주체의 노력도 있었지만, 한국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용능력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의 요구―정치지형의 변화―도 있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입을 ‘진정한 민주화의 완성’이라고 평가한다. 맞는 말이다. ‘민주화’는 제도 정치 영역 내에서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을 통해 의회의 다수당이 되고, 그래서 집권세력이 되는 메카니즘이 입헌적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민주화는 소위 1987년 ‘개헌’ 이후 ‘보수 아니 수구반동적’ 정당과 정치세력의 합법적 권력유지 외에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이들과는 다른 정치세력이 경쟁의 틀 내에 진입하는 것은 애초의 민주화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2002년 대선을 통해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불리우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형성과 드러남의 과정이 그렇고, 그것이 열린우리당으로 결집되는 것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정당의 하나이자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과 차이를 갖는 좌파정당의 의회진입이야 말로 경쟁적인 정당정치의 완성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사회 측면에서도 고려해 보자. 1992년 김영삼 정부 이후 민중운동을 대체할 대안 세력인양 등장한 시민운동, 그리고 각종 시민사회단체들은 무섭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활동은 2000년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으로 집결하였다. 지역주의, 부패정치인, 철새정치인 심판하자고 유권자들한테 호소하는 계몽운동이었다. 그 때는 처음이라서 센세이션하고 신선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2004년 ‘총선연대와 물갈이 연대’와 같은 조직의 활동은 2000년의 신선함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탄핵국면 이후 전면적으로 노골화된 ‘열린우리당’ 2중대로서의 그 역할을 목도하였다. 2004년을 통해 민중운동을 압도할 것처럼 보였던 시민운동이 체제 내로 합법화되어 들어가는 그 과정을 확인하였다. 2000년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신선하였다. 2004년을 통해 그 역할과 의미가 사회적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변혁적 민중운동을 대체하는 시민운동은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은 그렇다. 처음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처음이라고 해서 모두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에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전 것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맥락과 구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새롭지만 어떻게 보면 새롭지 않기 때문에, 그 구분을 잘 지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글 맨머리에 “새 이론은 옛 이론의 한계뿐 아니라 장점도 보여주고, 우리가 더 높은 수준에서 개념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라는 이러한 인용구를 쓴 이유는 2004년의 선거가 이렇게 이해될까봐서이다.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입은 새로운 구조의 형성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성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처음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즉, 아직 한국정치의 지형을 바꾼 새로움이란 실질적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없었다는 점이다. 좌-우의 정당 구도로 정치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치권력 형성의 메카니즘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현재 대단한 의미를 받고 있는 것은 ‘한국’이란 공간적 특수성―분단과 세계정치구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부연설명 1: 투표결과

4월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7대 총선의 최종 투표율이 60.6%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총 유권자 3,559만 6,497명 중 2,158만 1,550명이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지난 16대 총선거 투표율 57.2%에 비해 3.4% 오른 수치라고 한다.


<표 1> 지역별 투표율

서울

경기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울산

62.2%

59.7%

57.4%

58.9%

59.3%

61.9%

60.2%

62.0%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충남

충북

제주

강원

63.4%

61.2%

62.3%

61.2%

56.0%

58.2%

61.1%

59.7%

출처 : 오마이뉴스 4월 16일자 기사


대체로 언론은 투표율이 3.4% 오른 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유권자의 관심이 증가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탄핵국면 이후 전개된 한국 사회의 요동(?)에 비하면―형식적으로 상당히 뭔가 뜨겁게 진행되는 듯 보여지는―3.4%의 투표율 증가는 그 요동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오히려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39.4%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10명 중에 4명은 선거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나라처럼, 투표하지 않으면 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3.4%의 증가가 그렇게 대단한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투표하지 않은 39.4%에 대해 각 정치세력들은 자의적인 해석들을 진행한다. 다음 선거에서 자기의 지지층으로 끌어올 세력이라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그저 그렇게 거기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 <표 2>는 17대 국회의원 선거결과로서 전체 의석수와 지지율에 관한 표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합치면, 74%이다. 이 두 정당을 지지한 사람들이 차기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할까? 어떤 이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 탄핵이라는 ‘위기국면’(?)과 같은 상황이 없었더라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정말 그러할까?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를 민주노동당의 지지자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둘 중의 하나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열린우리당 지지자의 정치사상이 좌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거나,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이념이 우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어렵고, 어느 쪽이 더 쉬울까?


<표 2> 전체 의석수와 지지율

정당

전체 (299)

지역구+비례대표(243+56)

지지율

열린우리당

152

129+23

38.2%

한나라당

121

100+21

35.8%

민주노동당

10

2+8

13.1%

민주당

9

5+4

7.1%

자민련

4

4+0

2.8%

국민통합21

1

1+0

0.6%

무소속

2

2+0

-

출처 : 한겨레신문 4월 17일자 기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정보


대의제 민주주의의 냉정한 경쟁 시스템 내에서 정당은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생존하는 것이다.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려고 한다면, 정책의 선명성과 계급성을 견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근본적으로 대표하는 계급이 독점자본가이지만, 그들을 위한 노골적 정책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복지와 민족과 국가발전을 얘기한다.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포섭의 활동을 통해 50여년 동안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얻은 지지율이 35.8%이다. 스스로 당 개혁과 쇄신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또 열린우리당과 같은 자유주의 세력들이 몰락하지 않는 한 그들의 지지율도 30~40%을 오랫동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과 총선이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민중진영의 의회진출이라는 모토하에 1992년과 2004년을 대비해 보면,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백기완 민중후보’의 지지율은 약 0.8%였는데, 이번 2004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약 12.6%이다. 14년 만에 약 14배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는 축적적인 증가라기보다는 비약적인 증가이다. 2002년 대선에서 3.9%, 2004년 총선에서는 12.9%였다. 그러나 비약적 성장에는 조건이 따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10년 안에 비약적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30~40%의 지지율이지 않을까. 가히 놀라운 성장이지만, 지지율 30~40%로 구조를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생길까. 구조를 압박하는 힘은 지지율이 아니라는 것을 서구의 경험에서 봐야 한다고 하면, 그 때까지 가보자고 반박할 것 같다. 아무튼 제도권 내 각 정당의 지지율은 분할의 의미를 갖는다. 50% 이상의 단독점유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정당간 연합을 통한 50~60%의 지지율은 또 그렇게 위력적일까. 지지율의 상승과 하락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세월을 앞으로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인가?

한국사회의 투표행태의 고질적 병은 ‘지역주의적 투표행태’라고 말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그러한 투표행태가 나타났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기존의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완화될 가능성을 이번 선거에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의 상승이라든가, 민주노동당의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율이라든가 하는 것이다.


<표 3> 권역별 국회의원 당선 현황

 

서울

경기

인천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

광주

전남

전북

대전

충남

충북

강원

제주

열린우리당

32

35

9

1

2

1

0

0

7

7

11

6

5

8

2

3

한나라당

16

14

3

17

14

3

12

14

0

0

0

0

1

0

0

0

민주노동당

0

0

0

0

1

1

0

0

0

0

0

0

0

0

0

0

민주당

0

0

0

0

0

0

0

0

0

5

0

0

0

0

0

0

자민련

0

0

0

0

0

0

0

0

0

0

0

0

4

0

0

0

국민통합21

0

0

0

0

0

1

0

0

0

0

0

0

0

0

0

0

무소속

0

0

0

0

0

0

0

1

0

1

0

0

0

0

0

0

출처 : 한겨레 4월 17일자 기사


그러나 2002년 대선 때부터 지역주의는 신지역주의적 전략의 의미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지역주의가 “우리가 남이가”류의 ‘정서적 지역주의’에서 누가 상대지역 후보를 떨어뜨릴 경쟁력이 있는가 하는 전략적 계산에 기초한 ‘전략적 지역주의로’로 변화한 것이다(손호철 2003, 687). 이번 선거에서 호남이 민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을 선택한 것이 대표적인 ‘전략적 지역주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영남은 이번 선거에서 ‘정서적 지역주의’뿐만 아니라 ‘거대여당 견제론’에 입각한 ‘전략적 지역주의’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완화되기보다는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계급’과 ‘지역적 이슈’가 결합되면서 투표행태가 고착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라는 수구반동적 정당이 영남에서 다수당이 되는 것은 단순히 ‘지역’에 대한 호소일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기득권층의 반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17대 총선에서 강남-서초로 이어지는 이른바 ‘강남벨트’를 독차지했다. 16대 총선에 이어 연속 두 번째 석권이다. ‘차떼기’와 탄핵 열풍으로 한나라당의 독식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었지만, 4개 지역구 모두 한나라당의 압승이다. 이것은 한나라당은 이미 수구 기득권층의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한 정당이라는 것이다. 부패의 문제도, 탄핵이라는 이슈도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 ‘지역적 이슈’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이슈’와 맞물려 진행되는 것이다. 


부연설명 2: 법제도적 효과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적용되는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이 3월 12일 통과하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정치관계법이 기존 선거문화와 관행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였다고 평가하였다. 변화의 방향은 미디어 선거, 돈의 흐름의 투명성과 저비용 선거, 정치신인에게 도움이 되는 선거, 지구당 폐지를 비롯한 선거공영제의 확대, 선거관리업무의 합리화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을 제3당으로 입당시킨 제도인 1인 2표제의 도입이다. 종전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별도의 투표없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 지역구 후보자가 얻은 득표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에 배분하던 것을 지역구선거 외에 별도로 지지정당에 직접투표하여 정당의 득표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기존 소선거구제에 기반 한 단순다수제도는 기존 정당의 승자독식이라는 문제를 낳았고, 그로 인해 대표성의 문제를 지적받아 왔다. 그러나 1인 2표제의 도입은 기존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일정정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뀐 선거법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있다거나, 비례국회의원 의석수가 상당히 저조한 것에 비하면 정당관계법의 개정은 더 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이번 비례국회의원 수는 50% 이상이 여성의원이어야 한다는 법에 의해 여성 국회의원들이 상당수 의회에 진입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1인 2표제의 도입으로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획득한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이 제도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누렸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선거를 법제도적으로 안착화시킨 것도 이번 정치관계법의 하나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청중동원, 운동장 유세에서 방송, 인터넷 등 미디어 중심의 선거운동으로 선거운동의 큰 틀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미디어’는 ‘진실’을 ‘왜곡’하는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실재와 달리 재구성된 미디어의 이미지는 그 자체의 본질적 의미는 사라지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현실과 미디어는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전혀 다른 구성물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하나의 문화적 현상의 적중이다. 현대사회에서 실재를 재현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관건인데, 이러한 미디어 문화를 통해 재현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가짜가 진실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이다. 시뮬레이션 혹은 모사가 이제 실재와는 그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순수한 환영(illusion)이며 가짜(simulacrum)라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제도하에서는 실재에 근거하지 않은 이미지만 끝없이 생산되는 것이다. 바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적극적인 선거운동은 ‘감성정치’였다. 울고 짜고 기고.... 감성적 호소에 기반한 지지운동은 실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존재했던 것이다.


부연설명 3: 제도권 내의 이념적 스펙트럼 구도

한국 의회정치 구도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이 시작된 것은 2002년 대선이라고 평가한다. 2002년 대선은 한나라당으로 상징되는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 ‘수구적 신자유주의’ 세력 대 노무현과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개혁적 보수’, ‘개혁적 자유주의’, ‘개혁적 신자유주의’ 세력 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세력이라는 ‘이념적 3정립 대결구도’의 모습을 띠었다고 평가한다(손호철 2003, 667). 2004년 총선 과정과 결과를 비추어 보았을 때도 이러한 ‘이념적 3정립 대결구도’로 편재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각 당은 나름의 구도를 설정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양당구도를 극복하고 ‘진보와 보수’의 보혁구도를 형성하기를 기대하였고,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를 ‘민주와 반민주 세력’의 구도로 설정하였고, 한나라당은 ‘여당 견제론’으로서 ‘여당과 야당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구도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각 당의 구도설정은 선거결과를 통해 각 당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있겠지만(?)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another0415’에 올라온 총선 평가에 관한 글 중에서 조문익씨의 글은 비제도권 영역까지 포함하여 정치지형을 양대구분, 네 개의 이념진영, 일곱개의 정파로 구분하고 있다. 가장 크게는 제도정치세력과 비제도정치세력의 구분이다. 두 번째, 이념적으로 구분하여 먼저 한나라당, 자민련, 민주당 등의 수구반공 진영의 수구적 신자유주의 노선, 열린우리당으로 표상되는 보수적 신자유주의 진영, 그리고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과 이를 지지하는 사회운동으로 구성된 진보정치 진영의 신자유주의 반대 진영이 있고,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사회와 대의민주주의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일부 사회운동단체들로 드러난 근본민주주의 진영의 존재로 구분한다. 그리고 “비제도정치 내 두 종류의 정파 중 한쪽인 시민사회운동을 열린우리당 친화적으로 보아서 비제도정파로 분류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비제도적인 시민주체 형성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비제도정치로 분류한다.”라고 보면서 총선연대와 물갈이연대를 비제도정파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구분은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개념적 도구들을 필요로 한다. 국가, 정치사회, 시민사회, 토대와 같은 개념들이다. 그람시의 개념이기도 한데, 국가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포함한 통합국가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 통합국가=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이다. 이미 시민사회 그 자체는 기존 제도와 구조 내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치사회 영역에 있다고 해서 제도권이고 시민사회 영역에 있다고 해서 비제도권이라는 구분에 근거한다면 현 시기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는 정치사회학적 의미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제도권이냐 비제도권이냐는 체제 개혁적이냐 체제변혁적이냐라는 80 ~90년대적 개념의 현대적 변형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권력을 민주화하고자 하는 시민운동, 시민주체 형성과 같은 것을 체제변혁적이라고 보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한국의 시민운동의 다수는 합리적 민주적 제도형성에 자기 역할을 두고 있다.


그리고 제도권이냐 비제도권이냐, 체제 개혁이냐 체제변혁이냐는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구도를 낡은 잘못된 구도라고 한다면, 그가 오히려 대중을 호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의 특정한 국면에서 다양한 투쟁은 경계를 넘나드는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디에 안착하고 어디를 살찌우냐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것은 제도권으로 새롭게 진입한 세력도 비제도권 영역에 대한 긴장을 갖지 않는다면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같은 운명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한/노/정/연


< 참고문헌 >

손호철. 2003. “2002년 대선과 노무현 정권의 의미,” 『현대 한국정치: 이론과 역사 1945~2003』, pp.665~690. 사회평론.

조문익. “17대 총선을 전후한 한국사회 정치지형 약식 보고서” www.another0415.com 에서

2004-04-27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