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몽상가 J씨의 하루 |
현장에서 미래를 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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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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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어느 몽상가 J씨의 하루
-메이데이 참관기-
주은선 / 출판노동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부의 원고청탁을 받았다. 유쾌한 긴장과
함께 작은 공명심이 생긴다. 책과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기에 이 공간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다. 지금부터 찍혀질
검은 활자 하나하나가 온기와 생기를 뿜어내어 가슴으로 읽히는
글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눈초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순수한 배설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면.
5월 1일은 회사 선배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대체 무슨
깡(?)으로 대학로 거리를 선택한 걸까. 진정 나를 필요로 하는
장소도 아니고 확실히 소속된 공동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강한 의무감과 사명감에 휩싸인
행동이었다. 민노당이 원내 진출을 한 후 첫 메이데이 집회인데
가서 축하해줘야지, 그 역사적인 볼거리를 놓치지 말아야지 등의
독백을 하면서 말이다. 두 가지 감정을 거스르면 큰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한편 지극히 사적인 감정 유희를 위한 선택이었다.
노동자의 비극적인 시대 현실에 깊이 동참한 경험도 없고
술자리에서 그것을 안주 삼아 떠들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차지도
않았다. 그냥 순간의 분위기만을 즐길 뿐이다. 집회에 나가면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린다.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을 때 찾아오는 개운함, 엄청난 카타르시스도 경험하게
된다. 가사를 잘 몰라 입 모양이 어색하고 주먹을 쥔 손 모양이
어설프다. 만인의 열정으로 들끓는 광장에서 고고한 밀실을
쳐놓고 X폼 잡는 꼴이란. 그래도 왔고, 그래서 왔다.
전체적인 집회 분위기가 작년과 많이 다르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홀로 무작정 대학로를 향한 발걸음과 선배 결혼식을 뒤로
하고 온 시간이 묘하게 교차된다. 작년에는 열사들의 영정 행진
순서를 비롯해 차분하게 진행되었는데 올해는 매우 고무적인
분위기다. 초여름 날씨에 구슬땀을 흘리는 거리의 사람들. 저
순수함과 치열함이 묻어나는 얼굴에 담긴 삶의 아픔은 어떤
빛깔일까. 그 빛깔들은 한 덩이로 모여 하나의 깃발아래 설 수
있는 것인가. 비온 뒤에 무지개처럼 오늘만 지나면 희미하게
사라질 목소리는 아닌가.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말풍선들이
주렁주렁 달린다. 무겁다. 팔을 들어 하나 둘 땅에 내려놓는다.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는다.
무대 중앙으로 그녀가 등장한다. 군중의 박수와 함성 소리에
묻혀 그녀의 흐느낌이 들리지 않는다. 눈에 물이 차오른다.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오늘따라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말이 한없이 초라하다. 불판과 전태일 평전을 든 열 명의
의원님들도 그녀의 공허함을 달래주지 못한다. 불과 전태일,
불과 전태일, 불과 전태일. 어머니의 축축한 절규. 솜이 물을
먹은 것처럼 무거운 몸. 와글거리는 저 무리들과 맞닿아 있는
순간. 싱글벙글 빵과 우유를 돌려 먹는 이름 모를 노동자.
꽃보단 빵이 먼저.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꽃다운 나이에 똥물
뒤집어쓰며 두들겨 맞던 여공들도 빵을 좋아했었지.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빵이 아니라 잠이었어. 잠, 잠, 잠.
예나 지금이나 사회는 잠잠한 척하는 걸 즐겨. 사회자가 온갖
미사여구로 무대에 선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 뒤에 선
사람이 투덜거린다. 어제 전야제부터 민주노총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하네. 그 옆 사람이
받아친다. 워낙 민주적이라서 그래.
두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그녀가 퇴장한다. 모두들 자리를
이동한다. 시청으로. 집회장의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를 본다. 오늘 집회는 누구를 위해 왜?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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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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