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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이후 전망 토론회를 다녀와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100호
정현진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이후 전망 토론회를 다녀와서


정 현 진
연구원






벌써 찌는 듯한 더위가 덮쳐온다. 올해 여름은 10년 만에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거라고 한다. 아직도 근로기준법의 최소한의 기준마저 지켜지지 않고, 찌는 여름에 선풍기 하나 제대로 없는 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을 노동자들을 떠 올린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더위쯤이야 우습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아주 작은 요구였다. 더위 때문에 쓰러지는 나의 동료들을 차마 그냥 두지 못하여 파업을 하고, 내 자식들 밥 한 끼 더 잘 먹이고 싶어서 파업을 하고, 정말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파업을 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그러했다. 자본가들이야 자기네들의 땀 한 방울이 100명의, 1,000명의 노동자들의 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느끼는 놈들이니 그 마음을 이해할리 만무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땅의 노동자들의 희망 중에 하나였던, 계급적 연대와 현장성의 상징이었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이하 전국회의)의 해소와 이후 전망에 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전국회의는 1996년 12월 7일 울산 울교협에서 ‘현장조직운동의 미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이후 96․97총파업을 경과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 속에서 출범하였다. 기간 전국회의는 현장의 전투적 세력의 집결지였고 현장에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던 현장 활동가 동지들의 자발적 시도였다. 전국회의는 연례행사로 전락해가는 노동자대회를 투쟁을 결의하는 장으로 바꾸어내기 위한 독자집회 개최, 투쟁 사업장 지지․지원의 활동들을 펼치면서 선진노동자들의 중심체로서 자기역할을 해나갔다. 그리고 정리해고와 파견법에 직권조인 하였던 지도부에 대한 부결선동을 조직하면서 전국회의는 노동대중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전국회의는 현장을 중심으로 전투성, 계급성, 현장성, 연대와 단결의 정신을 부활시키기 위한 운동의 중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전국회의가, 현장의 역동적 질서를 포괄하였던 전국회의가 ‘해소’를 논의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전국회의는 자기 역할을 상실했으며 운동적 영향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황이라고 비판하였다. 분석과 비판의 근거들이야 다양하겠지만 여전히 중요한 사실은 전국회의가 담당해왔던 ‘전국적 구심’의 역할이다. 그리고 중요한 지점은 바로 ‘전국적 구심’의 역할을 다시 누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국회의는 해소되지는 않았다. 전국회의의 결정은 전국회의라는 구심을 유지하면서 각 결합 조직들이 전국회의의 활동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면 탈퇴를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전국회의의 이러한 결정과 맞물려 토론회는 진행되었다.

토론회에서 가장 크게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전국회의와 각 지역 현장조직, 그리고 지역의 투쟁단위들과의 연계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여기서 제기된 것이 지역별, 권역별 현장연대로 가자는 주장이다. 반면에 소수라고 할지라도 현장조직운동의 전통을 유지하며 현장조직운동의 독자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전국회의와 같은 ‘전국적 구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실 현장조직운동이 노동운동 내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이후 이제야 현장조직운동에 대한 진지한 모색들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이후의 방향을 고민할 동지들이 다시 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주장은 접점을 형성하여 첨예한 논쟁으로 진행되지는 못하였다. 여기에는 현장조직이라는 대중조직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의 판단과 전국회의의 역할에 대한 위상의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 전자의 주장은 전국회의와 현장조직운동에 대해 공동투쟁의 가능성과 위상을 더 높게 부여했고 후자의 주장은 현장조직운동의 독자적 발전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소수라고 할지라도 현장조직운동의 기풍과 전통을 다시 복원하는 것에 동의하는 동지들이 다시 결집하여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공동투쟁과 연대투쟁의 활성화는 전제 중에 전제이다.
이 외에 정치조직과 현장조직의 관계설정의 문제, 그리고 기간 전국회의의 활동에 대한 간략한 평가를 제기하는 동지들이 있었지만 논쟁으로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토론회 중에 나의 눈과 귀를 끌어들이는 주장은 오히려 다른 축에서 제기되었다. 전국회의의 이후의 조직체계의 문제를 넘어서 지금 현장조직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바로 지금 정세에서 필요한 실천투쟁은 무엇인가에 대한 제기였다.
한 현장 동지에 의해 제기된 이 주장은, 과거 전국회의의 구성과 실천의 토대가 되었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지금의 시기에 노․사 협조주의, ‘노․사․정 대타협’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파와 중앙파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사․정 대타협의 그림을 차근히 진행시키고 있는 노․사․정 지도자회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노․사․정 테이블의 구성이 기정사실화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저들은 상반기 중에 급하게 노․사․정 지도자회의라는 것까지 꾸리는지의 문제, 과연 노․사․정 지도자회의를 통해 노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노․사․정 지도자회의가 노리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동차 4사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사회공헌기금을 노․사․정 대타협의 제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재계도 ‘대공장이 임금을 동결한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으며, 민주노총의 이수호 위원장은 사회공헌기금의 설치에 재계가 동의한다면 ‘내가 나서서라도 대공장의 임금을 자제 시키겠다.’라고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상의 정황들을 돌아보았을 때 현재 노․사․정 지도자회의가 노리는 것은 노․사․정 테이블의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노․사․정 대타협의 경험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반기 국회를 통해 노사관계 로드맵, 파견확대법안을 준비 중인 노무현정권의 입장에서는 일부 전투적 노동운동 세력을 고립화하고 노동운동 상층부의 제도적 포섭을 위해 노․사․정 테이블의 정상적 가동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반기 중에 노동운동 상층부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는 대타협의 산물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노무현 정권과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타협의 산물로 사회공헌기금을 잡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의 이 흐름에 현장에서부터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대공장의 현장조직 동지들에서부터 사회공헌기금의 기만성을 폭로하지 못한다면 상반기, 하반기 투쟁을 넘어 노동운동 자체가 급속히 체제내화 되고 계급 타협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노․사․정 지도자회의와 이후의 노․사․정 대타협의 흐름에 대해 현장에서부터 실천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제기에 대해 적어도 현장권력을 고민한다면, 현장에서부터의 계급적 연대를 고민한다면 지금 시기 가장 절실한 투쟁의 과제임에 분명하다. 그것이 현장조직운동의 독자적 발전의 미래에 관한 것이든, 지역별․권역별 현장연대를 통한 공동투쟁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건, 전체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지금의 정세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답은 명확하다.
그리고 전국회의는 노․사․정 지도자회의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전국회의 차원에서 전국적 차원의 공동대응 토론회를 다시 조직한다는 결정을 끝으로 토론회를 마무리 지었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나의 동지들은 현장에서 죽음의 노동을 하고 있는데, 해방이라는 단어의 첫맛을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현장조직운동의 전국적 구심의 해소논의를 전해 들어서 일까. 아니다. 운동은 과거를 평가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것 일터, 그 과정에 해소와 집결의 과정은 무수히 반복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분명한 원칙이 지켜질 때만이 운동일 수 있다. 바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에 복무하는 것인가, 아니면 후퇴하는 것인가, 급박한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적들의 눈치만 보며 자기몸 하나 추스르고 있는가에 대해 이 땅의 노동자계급에게 당당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운동이 아니다. 계급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해소’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소수라고 할지라도 ‘해소’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답이 명확하다면, 그 방향이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발전적 ‘해소’가 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한 발자국을 전진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전국회의의 해소에 관한 논의가 과연 이러한 원칙에 부합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단 한 발자국의 전진이라도, 그것에 부합하고 있는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 시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제안과 그에 많은 동지들이 화답해주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힘이, 이 논의들이 우리의 답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전국회의가 다시 조직하기로 한,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적들의 도발에 대해 아래로부터, 현장조직에서부터 어떤 투쟁으로 화답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계획이다. 다시 한번 현장조직운동의, 현장의 계급적 투쟁과 연대의 과정을 복원해야 한다. 그것은 적들의 전면적 도발에 대한 구체적, 계급적 투쟁으로 화답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한/노/정/연

2004-06-2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7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