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대하여
-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정당 -
민주노동당이 드디어 자본주의 의회 정치체제에 일약 3당으로서 진입하였다. 그리고 향후 그 비중은 노동계급이 이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더욱 증대하리라 여겨진다. 노동자계급의 일원이었으며, 노동운동 진영의 성원이었던 이들의 원내 진출 그리고 친노동자적 정치세력임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정당의 원내진출은 한국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진보운동의 합법적 공간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노동운동진영의 일원이며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자임하는 민주노동당이 의회공간에 진출한 것은, 노동계급에게 이 사회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한층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민주노동당의 진출은 해방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만연하였던 진보세력에 대한 레드콤플렉스가 완화되었다는 것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이런 흐름을 더욱더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합법적 공간에서 한국 계급적 노동운동의 활동력의 증대를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한국자본주의의 성숙의 표현이며, 체제내적 포섭력의 확대를 반영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자본주의 경제 및 정치체제가 노동계급의 기본적인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호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이 체제내로 노동계급을 포섭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지배 공간이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포섭의 흐름은 향후 더욱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급 진영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만일 노동계급이 체제내적으로 포섭된다면, 즉 투쟁적으로 자본을 압박하지 못하게 된다면 노동계급의 삶은 최소한 장기적으로는 더욱 후퇴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을 총자본을 압박하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주의 틀 내에서 타협과 협조에 의지한다면 노동계급의 삶은 오히려 후퇴할 것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이미 한국 노동조합운동에 뿌리박힌 타협주의적 세력들이 주도권을 잡은 시점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1). 그리하여 민주노동당의 합법적 공간으로의 진출이 오히려 한국 노동계급의 저항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자본의 실질적 독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문제를 심각하게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기회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는 점이다.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그리고 한국의 민주노동당은 모두?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2).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대표적으로 독일의 사회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등등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하면, 노동계급을 포함한 국민들의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친노동자 정당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1974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의해서 노동자를 포섭하는 친노동자적 정책이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당시 사회민주주의 당들은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완전고용, 조세를 통한 분배개선, 사회복지, 국유화 등 일련의 친노동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계급을 포함한 국민들을 체제내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들이 반노동자적 정당이라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았다. 1973년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전반화되자, 이들 정당은 다시금 자본가들의 정당에게 권력을 내주거나, 혹은 직접 신자유주의 혹은 제3의길이라는 말로 현혹하면서 다시 노동계급을 공격해왔다. 경제위기에 의한 높은 실업률, 민영화 등을 통한 정리해고, 자본가를 위한 법인세 인하와 소득세 인하, 복지제도의 후퇴, 그리고 사회적 소유형태인 국유화의 폐지 등이 이루어졌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하는 데, 첫째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내걸었던 국가 개입에 의한 점진적인 자본주의의 모순 해결이라는 정책이 파산했음 의미한다. 둘째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친노동자정당 혹은 노동자 계급정당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정책의 파탄과 반노동자적 성격이 그 이후 현재까지 30여년 지속되는 상황에 이르고, 최근 독일의 사회민주당과 영국의 노동당 등은 자본가 정당의 역할을 더욱더 노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지경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이런 현실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노골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임을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3). 한국 노동계급이 그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이런 반노동자적 정당인 사회민주주의당인 민주노동당에 맡겨야 할 것인가?
혹자는 그래도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한 것만큼이라도 민주노동당이 해주면 될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한다4). 그러나 이것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기본적으로 기회주의적 정당으로서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의 역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자본가를 압도해나가는 동안에만 일부 개량적인 정책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당시 친노동정책 및 국유화정책을 사용했던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극심한 혁명적 공세에 굴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차세계 대전으로 인한 수백만 노동계급의 죽음, 이를 포함한 자본주의 체제가 초래하는 실업의 고통과 빈부격차 등을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노동계급의 실천적 저항,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한 공포의 결과에 의한 것일 뿐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본질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동요한다는 측면에서 중간계급의 정당이며,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려한다는 측면에서 친본가적 정당이다.
그리고 이들의 개혁 혹은 개량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 노동계급의 저항을 무디게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저항이 무뎌지면, 다시금 자본을 위한 공세를 하는, 본질적으로 반노동자적 정당이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혹은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을 위한 개량적인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투쟁력과 저항의 증대에 따라 그리하여 중간계급의 당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압박하는 정도에 따라 쟁취될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개량이라도 원한다면, 사회민주주의 민주노동당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압박해야 한다. 그리하여 중간계급적인 사회민주주의당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에게 있어서 중간계급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주요타격대상인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과거와 현재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최근에 와서 변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기회주의적 중간계급의 정당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독일의 사회민주당으로부터 시작하는 데, 이들은 의회주의적 노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본주의의 극복을 주장해왔다. 1863년 5월 라쌀레에 의해 독일노동자 총연맹(ADAV)을 결성하고, 1875년 라쌀레주의자들은 기회주의적 고타강령 아래 맑스주의자들을 끌어들여 통합한 이후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특히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의 극복을 영원히 뒤로 미루는 점진주의라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수호를 이론화하고, 사회민주주의당을 의회주의적으로 한계지웠다. 한마디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그 기원부터 노동자계급의 정당임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의 모순 극복을 인류의 시간 밖으로 내보냈으며, 자본가의 저항을 굴복시키려는 물리적 수단을 배제해버렸다.
이 기회주의적 사회민주당이 득세하는 데는, 19세기 당시 독일 통일문제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인 배경과 사회주의자 탄압법으로 인해 계급적이고 실천적인 투쟁이 제약받은 바 크다5). 독일 자본주의의 발달과 독일 노동자들의 저항의 증대는 당시 독일 자본가 정권으로 하여금 사회보장의 확대, 노동시간의 단축, 실질임금의 상승이라는 노동포섭전략을 취하도록 하였다6). 즉, 개량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특허가 아니라 노동자의 저항을 포섭하는 자본주의의 전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사회보장이 노동계급의 삶을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결국 자본주의의 모순은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세계대전으로 폭발하는 데, 사회민주당은 자본의 식민지쟁탈전쟁을 지지하고 노동계급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반노동자적 작태를 보였다. 그리고 1918년 독일이 패전의 결과 구정부는 물러나고 항상 사회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떠들어대던 사회민주당이 실제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이 사회민주당은 독일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한편,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려던 로자 룩셈부르크 등 혁명적인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군대를 동원하여 살해하고 혁명을 파괴한다7). 그리고 혁명세력을 무마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및 포섭적 복지 정책을 사용하는 정부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등장한다.
1928년 5월에 총선거로 사회민주당은, 민족당, 국민당, 민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였는데, 1929년 자본주의의 주기적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실업자는 격증하고, 재정적자에 직면하자 뮐러 내각은 사회복지비의 삭감과 국민으로부터의 증세로 위기를 넘기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자 연정에서 탈퇴하였다. 사민당은 그 해 9월 선거 이후 브뤼닝 소수정권에 대하여 관용정책을 채택하였고, 이것은 브뤼닝정권이 강력하게 추구한 디플레이션정책(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긴축정책)을 묵인하였다. 실업이 급증하는 중에 실업보험을 포함한 각종 사회복지에 대한 삭감조치들에 방관하였던 것에 노동자들은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게 되었다’8). 즉 사회민주당은 자본의 위기의 상황에서 노동계급을 다시금 압박하는 정책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점진적 자본주의 극복은 결국 자본주의의 위기 시점에서 노동계급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불만을 회피하기 위하여 히틀러 파시즘 체제를 불러오도록 한다9).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대공황을 파시즘 전쟁체제로 넘기도록 만들고10), 다시금 1930년대 말의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2차대전으로 넘어서게 한다.
사민당 정권은 자본주의의 위기시마다 노동계급을 배반하고 노동계급을 위기로 몰아넣음으로써 자본주의를 사수하는 장본인이었다. 그리하여 제 2차대전으로 인한 노동계급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혁명적 저항은 1차대전 이후처럼 자본주의 체제로 하여금 체제 포섭의 양보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물론 전쟁이라는 파괴를 통한 과잉생산의 해소 및 이후의 경제재건 그리고 자본의 무역자유화와 초국적 자본의 세계적 확대 그리고 10여년 이상 진행된 베트남 전쟁에 의한 경제팽창이 그 조건이 되었다.
이처럼 노동계급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친노동정책으로 포장된 양보정책을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은 독일의 경우 복지 정책은 사회민주당이 아니라 당시의 자본가 정당인 기민당 아데나워 정권에 의해 시작되었음에도 확인할 수 있다11). 자본주의의 경제성장은 60년대 말을 지나 70년대 초로 접어들면서 다시금 필연적인 극심한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20여 년간의 개량화로 노동계급의 저항이 완화되고 자본주의 체제내에 포섭된 상황에서 사민당 정권들은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다시금 노동계급을 압박하는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을 사용하였으며, 그것이 현재에까지 이른 것이다. 독일 사민당이 정권을 잡은 것은 1966년으로서, 짧은 사회민주주의 개량정책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독일 자본주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이런 상황에서 1974년 유럽은 1차 오일쇼크와 맞물린 필연적인 경제위기를 겪게 되고, 이를 기점으로 해서 1970년대 중반부터 사민당은 자유민주당에 끌려가는 형식으로 신자유주의를 실시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1970년대 말 80년 초의 주기적 경제위기와 함께 정권을 이제 기민연-기사당에 넘겨줌으로써, 자본주의 모순의 극복이라는 망상은 완전히 파탄나고, 자본가 정당으로 하여금 본격적인 자본을 위한 노골적 반동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합법적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런 자본주의 내의 자본주의 모순 극복이라는 정책의 파산은 영국노동당에서도 나타났다. 즉 1974년을 기점으로 그간 베트남전쟁으로 연기되었던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위기가 폭발하였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노동당정부는 재정금융긴축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을 사용하여 위기를 심화시켜 노동계급 대중의 고통을 증대시켰다. 그리고 더 나아가 1975년 노동조합회의와 사회협약을 맺어 임금수준을 억압함으로써 불황을 극복하기로 결정하였다. 요컨대 사회민주주의의 자본주의의 극복은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엉터리 경제처방에다가 반노동자적 압박정책까지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사회민주주의 정책은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스웨덴에서도 파산선고를 맞이하고 신자유주의로 넘어가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래의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에 사민당 정부가 추진한 ‘제3의 길’ 정책은, 민간 기업들의 수익성 제고와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복지국가의 팽창 억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뚜렷한 노선이었다. 사민당 정부가 추진한 신용 및 외환규제 완화조치는 한편으로 스웨덴 자본의 해외이전을 현저하게 증대시킴으로써 자본의 교섭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투기자본을 유입케 함으로써 1980년대 후반에 경기를 과열시킴으로써 극심한 경제공황과 금융공황을 낳는다. 물론 이런 위기는 노동계급을 공격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이다. 이로 인해 일시 실각한 후 1994년 말에 재집권한 사민당 정부는, 재정적자와 대외부채의 해소를 최우선적 경제정책목표로 삼아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노동계급을 다시 압박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정책 관련 정부지출이 감소해왔고 노동조합의 지위가 약화되어 왔다. 스웨덴 모델을 구성하던 요소들의 중추적 부분들이 거의 해체된 오늘날 스웨덴 사회는 여타 유럽 선진자본주의 사회들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12)
사회민주주의 친자본가 정당으로서의 본질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독일의 쉬뢰더 정권에서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영국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블레어의 노동당은 노골적으로 반노동자적 친자본가적 정책을 구사하게 된다. 물론 노동당 내의 좌우파의 대립은 존재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국의 노동당은 이제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기존의 정책이 토대로 하고 있던 당헌 4조를 바꾸어 국유화, 혼합경제, 완전고용, 복지국가, 노동조합주의를 제거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민주적 사회주의당이다.”라고 선언한다.13). 영국에서 ‘일을 위한 복지’라는 명목으로 강제적 시장편입 정책을 사용하고, 빈부격차는 오히려 보수당 정부보다 심해졌으며, 그리고 GDP 대비 정부지출도 보수당 시절보다 낮아 졌으며, 보수당 정부시절 만들어진 8개의 반노조입법의 원상회복을 포기하여 유럽에서 노조활동의 법적 규제가 가장 엄정한 나라를 유지하고 있다14).
독일 사회민주주의 당은 이제 정부의 재정 상황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출을 줄이고 복지예산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에 직접소득세를 대폭 삭감하여 최저율은 25.9%에서 15.0%로 하락하며, 최고율은 53.0%에서 42.0%로 하락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소득세의 인하는 기본적으로 역진적이기 때문에 그 감소분만큼 부유층에 이로운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기업들의 법인세를 깎아주어 법인세가 45%에서 25%로 하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세금 감면을 하는 한편 사회보장 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파산선고가 만천하에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 사민당 정권의 노동 정책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일반 임금 수준의 하락, 일괄 단체 협약의 폐지, 부문 내 또는 부문간 임금격차의 확대, 지역 간 임금 격차의 확대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15). 그리고 자본가를 위한 세금 감면으로 인해, 재정적자가 발생한 것은 당연한데, 이를 국채를 발행해서 메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폐자본가들의 투자처를 제공하고 사회복지를 줄이며, 다시금 서민들의 세금을 증대시킬 궁리를 하는 것이다16). 자본주의의 독일사민당과 영국노동당 그리고 스웨덴 사민당이 이런 반노동자적인 정책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이라는 혹은 사회민주당이라는 당명을 가지고 있으며 노동계급을 위한 정당인 양 선전하고 있다. 최근 선거에서 그들이 참패하자 오히려 자본가 집단이 쉬뢰더를 옹호하고 나선 점은 이 정당이 자본가 정당보다 더 자본가 정당임을 폭로한다.17)
요컨대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철저히 그 탄생에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한다는 입장에서 활동한 기회주의 정당이었으며, 전후 복지도 노동계급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저항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공격하는 그리고 노동계급의 계급적 운동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정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사민주의적 정책 및 강령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회주의 정당이지 친노동자 정당이 아님을 확인하였다. 자본주의 체제내로 포섭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민주의 정당은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해체하고, 항상 노동자계급을 포함하여 중간계급들의 국민정당으로 전환을 추구한다18). 즉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제내로 포섭하기 위한 조직 형식인 것이다19). 이런 점은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사회민주주의 일반적 정당의 특성이다20).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 내로의 포섭이라는 목표와 조직 구성은 그들의 강령에 표현되어 있다.
1)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유지하는 사회주의 강령?!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선전하고 있다. 이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선전이 실제로는 현재의 자본가 지배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즉 자본주의의 근본문제인 자본가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잉여노동 착취체제를 유지한 채로 온갖 사회주의적 미사여구를 남발한다.21)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를 은폐 외면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 개량주의적인 혹은 자본주의적인 처방을 내놓는다.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하고,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건설한다. 모든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삶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공공의 목적에 따라 생산되도록 한다. …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 사적소유라는 족쇄로부터 해방되어”
그러나 그들은 사적소유라는 족쇄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꿈꾼다는 사회주의적 언사를 남발하였지만, 동시에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이 말하는 ‘사적소유권이라는 족쇄로부터 해방’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의 철폐를 통해서 자본가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자본-임노동’관계의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윤을 목적으로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는 데서 머무르겠다는 것은 자본에 의한 노동자의 잉여노동 착취를 제한할 뿐이지 철폐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사적소유권의 제한이란 것은 결코 자본의 이윤획득 즉 잉여노동착취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경제강령을 통해 “토지나 건물 등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절대시하는 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자본에 의한 기업 경영을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사유재산권의 제한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적 소유권 제한은 자본주의적인 것이지 사회주의가 아니며 현재에도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직접적으로, “중소기업에게 사적․개인적 사업기회를 최대한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이윤추구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주장은 전혀 없이, 단지 지분에 비해 과도한 경영권을 남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민주적 기업’으로의 재편을 요구할 뿐이다. 그들의 사적소유권 제한은 바로 이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 내에서 필요하고 이미 한국 자본주의에서 수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인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22)
이런 점은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영국노동당의 주도에 의해 소집되었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1951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보자. 이들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폐지되어야 함을 주장하면서도 사적 이윤의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 정당들은 자본주의의 착취가 자본가계급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착취라는 사실을 은폐 외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사회주의에서는 노동계급은 영원히 착취당할 것이며, 자본의 운동법칙에 따라 빈곤과 과잉생산의 경제위기와 실업을 낳는 경제 토대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 착취 구조인 자본-임노동관계에 대한 언급 없이, 자본주의를 개선하려는 것은 바로 자본가적 혹은 중간계급적 사회주의이다.23) 물론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강령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내용을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되었다.
2)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말하는 경제민주주의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경제민주주의를 통한 공정한 분배를 주장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착취관계를 그대로 두고 공정한 분배니 평등한 분배니 주장하는 것은 모두 허튼소리이며 노동계급을 현혹시키기 위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비판받은 고전적 사회민주주의자의 주장이다24).
민주노동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경제강령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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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경제강령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강령 |
추구방향 |
노동자와 민중중심의 민주적 경제체제.
사회적 소유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을 활용하는 경제체제로서, 경제의 효율적 안정을 추구함과 동시에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에 대한 평등한 분배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
경제적 민주주의.
사회주의 정책의 직접적인 경제적 목적은 완전고용, 생산의 증진, 생활수준의 향상, 사회보장 및 소득과 재산의 공평한 분배이다. |
경제민주주의의
목표 |
사회적 조절은 독점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소득의 재분배, 사적 자원배분 등을 실시해 사적 자본이 아닌,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다수 국민의 요구에 따라서 수행되는 것을 말한다. |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대신 공공이익이 사적이윤에 우선하는 제도로 대치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생산은 계획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은 계획화는 소수의 수중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상태와 양립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의 효과적인 민주적 관리가 필요하다. |
경제민주주의 =
자본간 공정한 경쟁 |
중소기업에게는 사적?개인적 사업의 기회를 최대한 보장한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 고유 영역의 설정, 금융지원의 확대 및 어음제도의 폐지 등 모든 정책을 강구한다. |
사회주의 계획은 생산수단 전체의 공유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농업, 수공업, 소매업, 중소기업 등에 존재하는 사적소유와 병존한다. 국가는 그들을 도울 수 있고 도와야 한다. |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소유형태의 변화 |
사회적 소유는 국가적 소유, 공공적 소유, 협동조합 소유, 민주적 참여기업 |
공공소유는 현존하는 사기업의 국유화, 새로운 공공사업, 지방공영기업, 생산자 협동조합 창설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조절 방식 |
이를 위해 국민경제를 기획하고 사회적으로 조절하는 경제정책위원회를 창설한다. 위원회는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대표를 중심으로 하고 정부와 기업의 경영자 대표가 참여하는 형태로 구성 |
노동조합과 생산자 및 소비자조직은 의회의 헌법상 권리를 빼앗지 않는 상태에서 전반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가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그 조직을 통하여 혹은 그 개인의 창의에 의하여 생산과정에 참가함 … 노동자는 그 산업의 경영에 민주적으로 참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
자료: 민노당 경제강령, 1951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그런데 경제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들이 말하는 경제민주주의의 정책은 두 측면이 있다. 한 측면은 자본주의 철폐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더욱 발달시키는 정책이다. 이들이 말하는 경제민주주의는 자본에 의한 착취의 철폐가 아니라 독점에 대한 반대어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거대 기업들의 독점을 사회가 견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경쟁체제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독점재벌을 해체하는 것, 그리고 중소자본에 대해 대자본이 부당한 경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자본주의를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노동당의 목표이다. 즉, 재벌해체가 자본-임노동관계를 그대로 두고 있는 한, 그것은 자본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야기할 뿐이지 결코 사회주의적이거나 공공적인 무엇은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장하던 사회민주당의 1959년 고데스베르그 강령을 보면 경제민주주의가 뜻하는 바가 이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25). 그런데 이런 경제민주주의는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단체에서 주장하는 바이고, 또한 해외 초국적 투기자본도 바라는 바이다. 이것을 사회주의 강령인양 포장하는 것은 바로 노동계급을 현혹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의 필연적인 집중화경향을 인식하지 못하는 시대에 뒤진 반동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경제를 장악하고 경제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재벌 체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총수 일족이 경영을 독점하는 기반인 소유의 문제를 바꾸는 것이다. … 이를 위해서 총수 일족의 지분을 공적 기금을 활용해 강제로 유상환수하여 재벌을 해체하고, 또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비롯해 다수 국민들이 소유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기업으로 전환한다.”
마치 혁명적인 언사로 보이는 재벌해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까지 한국 재벌은 상호출자를 통해서 그 지분에 비해 과도한 통제를 해왔으며, 이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이제 해체된 재벌은 경영을 독점하는 비민주적 기업이 아니라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탈바꿈하겠지만26), 그것은 여전히 자본주의적으로 작동하는 기업에 지나지 않으며, 이제 자신이 소유한 주식비율에 따라서 대주주가 통제하는 공정한 자본주의가 될 뿐이다. 물론 여기에 재벌 일족의 주식을 국민(소자본가, 중간계급)에게 판매함으로써 국민들을 소유에 참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국민으로 포장된 소자본가들의 투자처를 증대시키고, 건전한 경쟁을 하는 기업을 육성하여 자본주의를 발달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을 포함한 국민들에게는 공적자금의 부담을 물리려는 소자본가적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참, 공적자금을 조달하는 데 국채를 발행하면, 이자율을 상승시키고 화폐자본가의 투자처를 늘리는 데도 공헌 할 것이다. 요컨대 재벌해체와 민주적 기업에는 결코 공공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요소는 티끌만큼도 없다. 단지 주식소유만큼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민주주의이며, 중간계급의 상상력이다27). 그런데 자본주의 틀을 유지한 채로 이루어지는 재벌해체는 자본 구조조정을 수반할 것이며 따라서 노동계급의 해고가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이 재벌의 소유권이 국민에게 매각되는 과정에서 SK재벌을 흔들었던 소버린 같은 투기자본의 수중으로 소유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
3) 사회적 소유의 확대라는 흰소리
그런데 경제민주주의에는 두 번째 측면이 존재한다. 이들은 경제민주주의를 위하여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공공의 소유를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즉 사적 소유권의 제한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의 제한을 위한, 소유의 사회화가 그것이다. 자본가의 소유에서 국민의 소유로 바뀌는 것을 선전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자본-임노동에 기반한 착취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첫째 문제는 이런 소유의 사회화를 얼마나 할 것이냐의 문제다. 만약 2차대전 이후 20여년 정도 진행되었던 사회민주주의 시기에서처럼 일정한 부문의 국유화 등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착취제도는 변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간접자본이라고 여겨지는 전체 부문에서는 국유화가 오히려 자본주의 발달을 촉진하며 착취체제를 더욱 강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은 “재벌 지배 대기업 가운데 공공성이 높은 부문인 통신, 운수, 병원, 학교 등등은 공공기관 공기업으로 전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를 발달시키기 위한 자본가 정당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이 민주노동당은 2차대전 이후 일반화되었던, 국유화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거부하고 있음을 강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자본주의 축적을 촉진하는 사회화를 제외하면, 이들의 사회적 소유 주장은 단순한 미사여구로서 노동계급을 기만하기위한 것이다28). 민주노동당이 노동자가 소유의 주체로서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지점이 그것이다. 이런 선언은 16대 대통령 선거와 17대 국회의원 선거 공약으로도 제시되었다. 즉, ‘노동자소유기금을 설치하고 노동자경영참가법을 제정하여, 재벌과 대기업을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노동자소유기금을 통한 사회의 통제는 이미 스웨덴에서 자본가들의 저항과 사회민주주의당 자체의 배신으로 실패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29). 따라서 이런 점을 알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사회적소유를 확대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이다. 이런 노동자소유기금으로 노동자의 요구에 따른 소유제도를 바꾸겠다는 강령은 단지 노동계급을 현혹시키기 위한 흰소리라는 것은 그들의 선거공약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서는 회계기구에서나 하는 경영투명성을 높인다는 주장들로 가득차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를 원활하게 운영할 것을 주장하는 이런 강령은 중간계급이나 자본가(부르주아지)의 강령이지 결코 노동계급을 위하거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강령이 아니다.
기타 사항들은 전혀 계급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 않다. 예컨대 “금융시장의 성급개방”을 비판하면서 투기적 자본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은 전혀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금융문제에서도 기회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한계를 보이는 데, 금융을 공공성이 큰 부문으로 그리하여 국유화나 공유화의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보증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중간계급적 개량정책 검토
이렇게 볼 때,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 및 친노동자적 미사여구로 자신들을 치장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은폐하며, 피상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부르주아 정당은 두 가지 의미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나는 노동계급의 저항이 거세지면 자본주의 체제유지를 위해서 포섭적인 개선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 소부르주아 정당은 비과학적이지만 감상적인 비판정신의 발로에서 자본주의 모순을 사방팔방 떠들고 다닌다는 점이다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부르주아는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를 무시하고, 문제를 파악하여 선전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체제내적으로 포섭한다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 해법에서도 임시방편적이거나, 비현실적인 특히 경제법칙은 고려하지 않는 법적인 대책을 내놓는 경향이 크다31). 그런데 소부르주아(중간계급) 정당의 말바꾸기는 익히 소부르주아 우파인 노무현 및 열린우리당에서 확인된 바 있으므로, 수많은 번지르르한 공약을 일일이 검토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단지 주요한 몇몇만 살펴보자.
1) 고용과 노동 선거 공약
민주노동당은 17대 총선 공약으로 ‘완전고용’을 제기하였다. 물론 국가가 개입하여 자본을 압박함에 따라 실업률이 축소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전후 자본주의의 호황기 동안에 국가 부문확대를 통한 ‘완전고용’ 시도는 이미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내에서 완전고용이 가능한 것처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철폐되지 않는 한, 완전고용은 불가능하고 구조적 실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은폐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를 은폐한다.
어쨌든 실업축소를 부르짖으며 노동시간단축을 제시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청년실업을 축소하기 위해 청년 의무고용제를 법제화한다는 발상은 청년실업이 자본주의 자체의 경제구조에 기인하고 전세계에 일반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법조항으로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은 청년실업이 장년실업과 연관되어 있으며, 장년실업을 줄여야 청년실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청년실업은 마치 구조적 실업이 아닌 것처럼 접근하면서, ‘수요와 공급불일치 혹은 숙련의 불일치’ 등을 원인으로 제시하기도 한다.32) 그리고 이들은 실업의 축소를 위해 오히려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그 수단으로 제시하기도 한다.33)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공약에서 임시직을 ‘1년 후에 자동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조항은 이들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보여준다. 왜 비정규직의 폐지가 아닌가? 아니면 왜 3개월 수습기간 이상으로 임시직의 정규직으로 전환을 요구하지는 않는가? 1년간은 자본가를 위해서 임시직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의 불철저성을 볼 수 있다.
2) 조세혁명
민주노동당이 부유세를 걷는 신설법을 만들겠다고 선정적인 공약을 내걸었는 데, 이는 선거전략 차원에서 그러한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착취와 투기 그리고 불로소득으로 벌어들인 자산에 대한 세금을 걷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 자산에 대한 추적과 평가 그리고 이중과세에 대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정작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세금체계이자, 자본가들에 부여하는 소득세나 기업이 착취한 이윤에 대한 법인세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다. 조세혁명을 한다고 하는 것의 골자가, 고작 OECD 평균수준으로의 최고세율 인상일 뿐이다. 신자유주의하에서 더욱 세율이 낮아져왔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서구의 자본주의 정당 혹은 신자유주의 정당에 그 수준을 멈추고 있다.
3) 주택문제와 상가 임대차 보호법
민주노동당이 상가임대차 보호법이라는 도시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을 원외에서 입법하도록 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중간계급적 성격을 상징한다.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서 민주노동당이 입법화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적용시기와 보호대상범위로 인해 오히려 영세상인이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이 자본주의의 자영업자들의 원활한 투자를 위해서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개정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유시민 등 열린우리당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 자체가 악영향을 가져왔다는 선전을 하는 것의 계급적 이유는 알만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애초에 통과된 법으로도 영세상인을 그나마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자본주의의 경제구조를 깊이 있게 사고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여 연 5%이상으로 주택임대료를 늘리지 않을 것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주택임대료를 연 5%이상으로 상승하는 것을 법으로 제한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법적 세부조항이 있어야 이번에는 세입자들이 고통을 받지 않을까? 그리고 제한할 수 있다면 왜 5%인가? 임대료와 주택가격을 낮게 하는 주택정책은 법으로 정하면 되는 것인가?
반면에 이들은 서울 지역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은 20%로 그것도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다가구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을 공약하였다34). 공공임대주택 보급률의 이 수준은 신자유주의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기타 선진국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린다면, 임대료가 5% 상승이 아니라 그 이하로 하락할 수 있으며 주택가격도 하락할 것이다. 왜 스웨덴이 이전에 했던 토지국유화에 기반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지 않는가? 그나마 강령에서 말했던 토지에 대한 사적소유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허구인가? 먼먼 미래의 일인가?
이들이 그렇게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서울지역 주택소유자들의 표를 의식한 기회주의적 공약이라고 판단된다. 이런 점은 현재 신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서 기회주의적인 주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당연히 서울 및 수도권 중심의 발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 더 나아가 천도라도 해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수도권의 주택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소부르주아적인 괴변을 늘어놓고 있다35).
요컨대 이미 앞서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를 포기했음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개량적 처방마저도 핵심을 놓치고 있으며, 오히려 핵심적인 개량적 처방을 여러 잡다한 처방 속에 파묻어 버리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목사님들의 ‘좋은 말씀’만큼이나 민노당의 개량주의 적인 공약은 ‘좋은 공약’이다.
글을 마치며
- 합법적 의회공간에서 활보하는 기회주의 정당을 방치하지 마라 -
이제까지 민주노동당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규정하였으며,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기회주의적 행태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강령의 사회주의적이고 친노동자적 미사여구가 흰소리이며, 실제로는 극히 자본주의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런 친노동계급적 미사여구를 통해 노동계급을 중간계급의 지도하에 두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강화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민주노동당의 미사여구에 현혹되어서도 안 되며, 민주노동당에 노동자와 노동운동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에도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의회정치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이 정당이 기회주의적 중간계급의 정당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최근 당내 선거에서 지도부는 민족주의 계열이 장악하고, 정책위 의장에는 공식적 사회민주주의자가 당선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이 중간계급의 정당이 친노동계급적 언사를 실천하도록 압박하고 타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노동계급은 민주노동당에 의해 의회주의적 틀로 중심이동을 하는 그들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현장에서 조직력을 확대하고 파업투쟁 등 실천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벌여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이 원내에서 세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이런 투쟁을 허용할 것이지만, 점차로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투쟁을 자신들의 의회주의적 교섭력 아래 통제시키려 들 것이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노동운동가들과 평당원들이 정말로 계급적 운동을 지지한다면, 당지도부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판을 함으로써 압박해야 할 것이며,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과감하게 탈당함으로써 압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회주의적 정당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비판은 독자적인 계급적 정치조직이 담당해할 몫이다. 따라서 계급적 정치조직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민주노동당의 기회주의적 본질과 반노동자적 실천에 대해서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공식적 정치공간인 의회를 선점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대중에 미칠 영향력을 어느 조직이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특히 의회라는 합법적 공간에서 기회주의 정당이 휘젓고 활보하는 것을 어떻게 제어하고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자본주의 대중매체를 통한 이들의 영향력의 일부분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을 것인가? 기회주의적 정당이 합법적 공간으로 진출하게 됨으로 인해, 이미 한국 노동운동 진영에서 계급적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더 왜소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현재 한국의 계급적 정치세력을 주장하는 조직들은 현장과 비합공간에서 영향력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지 의심스럽다. 아직 그들의 조직적 실천적 무기력으로 인해 합법공간의 활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이 활보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기회주의 정당을 비판하고 통제하는 것이 계급적 정치조직의 임무 중의 하나라고 할 때, 현 시기 현장 및 비합정치조직은 그 조직들의 무능함으로 불가피하게 이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 요컨대 계급대중이 기회주의 정당에 장악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도록 의회를 포함한 합법공간에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비합법 공간에서 든든한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계급적 운동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의 이론적 실천적 조직 강화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1) “민주노동당은 재벌과 보수언론의 압력에 벌써부터 굴종해 들어가고 있다 …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노동문제를 접근할 것이며 노사가 동등하게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또한 ‘당과 협의를 강화해 노동현장의 투쟁이 일정하게 국회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민주노동당의 굴종적인 태도에 맞장구를 쳤다”, 최성진, 「사노신 창간준비 4호」, 2004. 5.20.
2) “민주노동당은 행동 실천적으로는 이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틀림없다. … 민주노동당의 정책 가운데 사회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정책은 없다.”, 주대환(현 민주노동당 신임 정책위의장),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의 정당인가」, ꡔ세계화와 사회민주주의ꡕ, pp.254~255. “민주노동당이 강령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이념적 실체가 분명하지 않으며, ‘행동실천적으로는 이미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틀림없다’고 하는 발표자의 진단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정진상(경상대 교수, 민주노동당원),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인가? - 논평」ꡔ세계화와 사회민주주의ꡕ, p.273.
3) “논평자가 보기에 민주노동당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신자유주의의 공세로 인해 퇴조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가 더 이상 대안으로 제시될 수 없는 사정인 것이다.” 정진상, 상동, p.274
4) “진중권은 그러한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수십 년이 걸려도 유럽사회민주당이 만들어 놓은 나라를 만들지 못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사회민주주의를 우습게 알던 분위기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주대환, 상동. pp.254~255.
5) 박호성.「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 연구」, 『역사비평』89년 봄호. pp.228~238.
6) 박호성, 상동, p.227
7) “독일 공산당을 건설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흐트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것은 사민당 출신의 당시 전쟁부 장관 구스타프노스케였다.” 김수행, 안삼환, 정병기, ꡔ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ꡕ, 2003. p.139.
8) 두산 세계대백과사전엔사이버, 안병직, 「바이마르시대의 노동계급과 노동운동」, ꡔ바이마르공화국ꡕ, 2002. p.232.
9) “실업문제에 대한 사민당의 소극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대공황기에 자유노조가 제시한 야심적인 고용창출계획을 사민당이 거부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안병직, 상동, p.232.
10)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의 어느 쪽도 나치의 정권장악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비참한 내전으로 이끌 수도 있는 전면파업에 대한 요구를 두려워했다. … 그 대신 히틀러가 총리에 취임하자 그들은 당원과 노동조합원들에게 조용히 명령에 따르라고 요구했다.” 김유 편역, ꡔ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사회민주주의 정당ꡕ, 2003. p.98.
11) “사회적 시장경제는 1949년 기민연의 아데나워 총리 시절에 채택되어 1960년대 초중반 에어하르트 총리 시절에 완성되었다. 이 이념은 자본주의 경제원칙 안에서 계층간 차별 없이 사회경제적 형평성을 기하는 ‘형평을 갖춘 중산층사회’의 건설이었다. 이 이념은 전통적인 사회보장 영역을 확대하여 종래의 특정집단별․계층별 사회정책을 포괄적 정책으로 전환과 사회국가원칙을 의미했다. … 그러나 사회적 시장경제는 ‘공정하며 최선의 분배를 실현하는 데, 유익하고 유일한 제도는 시장’이라는 시장원리”, 정병기, 상동, pp.135~136
12) 신정완, 「임노동기금 논쟁을 통해 본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딜레마」, ꡔ동향과 전망ꡕ 1999, 통권 제 41호, pp103~104,
13) 김수행 외, 상동, p.73
14) 고세훈, 세계화와 블레어의 사민주의, ꡔ세계화와 사회민주주의ꡕ, 2002.
15) 김수행 외, 상동, p.197.
16) 김수행 외, 상동, p.206.
17) 최병국, 연합 獨재계, 선거 참패한 슈뢰더 개혁안 지지, “로고브스키 회장은 ‘우리는 슈뢰더 총리 편’이라면서 산업계는 총리의 개혁안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부에 더 과감한 개혁을 주문했다.” 2004.6.16.
18) “요컨대,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타협과 협상에 의해 계급사회의 모순 극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대중정당의 형태로 범국민적 이익을 강조하며 점진적인 사회주의 개혁을 실시한다. … 민주노동당의 창당선언문에는 민주노동당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민정훈, 연세대학교 대학원,「민주노동당의 제도화 가능성에 관한 연구 : 스웨덴 사민주의 노동당(SAP)의 제도화 경험을 통한 분석」, 2003. pp.8~9
19) “일찍이 베른슈타인은 국민정당 (Volksparatei) 혹은 사회민주주의적 국민정당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보다 전국민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또 중간계층과 진보적 부르주아지와의 정치적 연대를 통해 개혁정치를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사회민주주의는 베른슈타인이 구상했던 것보다는 ‘계급적 성격’을 더 탈피하고 국민정당으로 더욱 나간 듯하다.” 윤도현,「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ꡔ세계화와 사회민주주의ꡕ, 2002. p.207.
20) “자기 정체성 면에서 창당선언문은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세우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계급을 어떻게 세워내는 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 ‘노동당’보다는 ‘민중당’이나 ‘인민당’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 듯하다”. 정병기,「민주노동 강령 정책비판」,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4.4. 제97호. p.81.
21) “보수적 혹은 부르주아 사회주의 : 부르주아지의 어떤 부분은 부르주아 사회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적 폐해를 제거하고자 한다. …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들은,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투쟁들과 위험들이 없는 현대사회의 생활 조건들을 원한다. 그들은, 그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고 그 사회를 와해시키는 요소들을 제거한 현존 사회를 원한다. … 이러한 사회주의의 덜 체계적이면서 한층 더 실천적인 또 하나의 형태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오직 물질적 생활상태, 경제적 상태의 변화만이 이로움을 줄 수 있다고 증명함에 의해서 노동자 계급이 모든 혁명적 운동을 배척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는 물질적 생활상태의 변화를 오직 혁명적 방식으로만 가능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들의 철폐로서 이해하지 않고, 이 생산관계들의 토양 위에서 행해지는 따라서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는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기껏해야 부르주아지의 지배 비용을 감소시키고 그들의 국가 운용을 간소화시킬 뿐인 행정적 개선으로 이해한다.” 맑스, 「공산당 선언」,ꡔ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ꡕ 1권, p.p.427~428.
22) “그렇습니다. 오직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 사용은 제한하여야 한다고 민주노동당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강령을 여러분들이 문제 삼고자 한다면, 그 전에 우리의 헌법 제23조를 우선 문제 삼아야 할 것입니다. … ○ 예 : 의료기관, 학교, 공정거래법” 2002. 10.9. 정책국,「경실련 토론 예상 질의 및 답변」
23)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 고유의 폐해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유럽에서 발생하였다. 자본주의 때문에 가장 고통을 당하는 것은 임금노동자였으므로 사회주의는 맨 처음에 임금노동자의 운동으로서 발전하였다. 그 후 많은 국민들, 즉 자유직업자, 사무원, 농민, 어민, 수공인, 소매상, 예술가, 과학자 등은 사회주의가 그들의 장래를 열어줄 열쇠를 갖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대신 공공의 이익이 사적 이윤에 우선하는 제도로 대치하려 노력한다.” 김유 편역, 상동, 「프랑크푸르트선언」. pp.16~19.
24) 이미 이것은 고전적인 기회주의 노동운동세력인 라쌀레의 주장에 대해 맑스가 이미 비판한 내용이다. “‘.노동의 해방은 노동수단의 사회의 공동재산으로의 고양 그리고 노동수익의 공정한 분배를 수반한 총노동의 조합적 규제를 필요로 한다.’ … ‘공정한’ 분배란 무엇인가? 부르주아(자본가-인용자)들은 오늘날의 분배가 ‘공정하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오늘날의 생산방식의 기초위에서는 유일하게 ‘공정한’ 분배가 아닌가? … 하지만 ‘모든 사회 성원들이니’ ‘평등한 권리’니 하는 것은 분명히 흰소리일 뿐이다.” 맑스, 「고타강령 초안 비판」, ꡔ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ꡕ 4권, pp.373~375.
25)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자유로운 경쟁이 진실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자유시장체제를 지지한다. 하지만 시장이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곳에서는 경제분야에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능한 최대한의 경쟁과 필요한 만큼의 계획이 요구되는 것이다. … 대규모의 기업이 지배하는 분야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이 사라지게 된다. 힘이 모자라는 기업은 발전의 기회가 적어지게 되며, 어느 정도 예속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소비자의 위치는 경제에 있어 가장 취약하다. 카르텔과 기업합병으로 더 늘어난 힘은 대규모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정치와 국가에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권한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경제적인 힘은 정치적인 힘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발전은 자유와 정의,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사회적인 안정을 인간 사회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도전하는 것이 된다. …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는 사회정의 확립을 저해하지 않는 한 사회의 보호를 요구할 수 있다. 중소규모의 기업들은 대규모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강력해져야 한다. ⋯ 오늘날 소유형태보다는 경제력이 더 중요한 문제다. 경제력의 건전한 관계가 다른 방법으로 보장될 수 없을 경우에는 공공소유가 적절하면서 필요하게 된다.” 김유 편역, 상동, 「독일 사민당 고데스베르그 강령」, p.141
26)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재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를 민주적 참여기업으로 개선해야만 합니다. 그와 더불어 첫째, 30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 부활 둘째, 현행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의 상호출자 금지 셋째, 출자총액한도를 25%에서 20%로 강화, 적용의 예외를 제외하는 방안들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27) “○ 재벌의 문제는 규모가 큰 것이 아니라 재벌 총수일가가 4%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기업을 사실상 자신의 사유재산인 양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발생”
28) “‘노동수단의 공동재산으로의 고양’, 아마도 노동수단의 ‘공동재산으로의 전화’를 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다.” 맑스, 「고타강령 초안 비판」,상동, p.373.
29) “LO(블루칼라 노조총연맹-인용자)의 임금기금안은, 서구 사민주의 진영 전체를 통틀어 최초로 시도된, 본격적인 생산수단 소유의 사회화 기획이었다. … 그러나 기금논쟁은 LO의 철저한 패배로 귀결됨으로써, 사민주의운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의 경계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신정완, 상동, p.94
30) “이(소부르주아-인용자) 사회주의는 현대 생산관계들 속의 모순들을 날카롭게 해부하였다. 이 사회주의는 경제학자들의 위선적 변명들을 폭로하였다. 이 사회주의는 기계 및 분업의 파괴적 작용들, 자본과 토지 소유의 집적, 과잉생산, 공황, 소부르주아와 소농민의 몰락,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 생산에서의 무정부성, 부의 분배에서의 심한 불균형, 국가들 상호간의 산업상의 섬멸전 … 등을 반박할 여지없이 증명하였다. … 소부르아적 사회주의는 반동적이며 동시에 공상주의적이다.” 맑스,「공산당선언」, 상동 p.42.
31) “경제관계가 법 개념에 의해 규제되는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법 관계가 경제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맑스, 「고타강령초안 비판」, 상동, p.374.
32) 곽주원(상임정책위원), 「청년실업 현황과 원인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대응전략」
33) “일정 비율(300인 이상 기업은 3%, 100인 이상은 1%)의 청년실업자를 의무 고용케 하는 청년의무고용제 실시. 그 이행 여부에 따라 고용보험료율을 차등 적용”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역내 중소기업이 청년실업자를 채용할 경우 고용장려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펼치겠습니다.” 17대 총선공약.
34) “둘째 다가구․다세대 주택 매입 등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전체 주택의 20% 수준 이상으로 확충해 전월세가를 안정시키겠습니다.” 제 17대 민주노동당 총선 공약.
35) “◇ 민노당, “기능별 분산 필요”=두 당의 다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민주노동당은 ‘기본적으로 수도기능 이전은 찬성하지만, 현재의 정부안대로 기능이 분산되지 않고 특정 지역을 선정해 모두 한 곳으로 가는 천도는 반대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민노당은 특히 “남북 통일을 대비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기능별 분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회찬 의원은 ‘수도 이전은 일개 정당의 득표용으로 급조된 전략이며 통일의 비전이 전혀 담겨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고, 심상정 의원도 ‘국토의 분산 발전이라는 애초 취지에 부합하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허종식 김영배 황준범 기자, 한겨레, 200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