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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사랑의 눈물을 투쟁의 무기로 돌리며

현장에서 미래를  제10호
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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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사랑의 눈물을 투쟁의 무기로 돌리며


김 선 정 (대성노조 쟁의부장)


80년대 노동운동의 메카, 구로동맹파업의 자랑스런 역사를 안고 있는 구로공단이 몇 년째 신설노조 하나없이 있는 노조마저 줄어가고 있었다. 노동자의 꿈과 희망, ‘노동조합’에 대한 기억과 그 숨가뿐 흥분들이 자꾸만 식어가고 있었다. 이 활화산의 기억을 안고 있는 공단이 휴화산도 아니고 사화산이 다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조바심을 한꺼번에 씻은 것이 우리 대성노조의 설립이다. 대성은 공단에서 노조건설이 불가능하리라는 몇 안되는 사업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휴화산을 활화산으로 돌리겠다는 첫 외침이 공단에서 가장 지독하다는 공장에서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이제 노조를 결성한 지 9개월.
모든 조합원의 얼굴에 짙은 투혼의 흔적과 조금은 지친 주름살을 새겨온 기간이다.
노조가 걸어온 짧다면 짧은 9개월의 무게가 참으로 무겁다. 아직도 지속되는 회사의 노조불인정 정책, 집요한 노조파괴 의지만큼 우리의 단결과 투혼도 강고해졌지만 우리 노동자가, 나 개인이 올곧은 꿈과 희망을 세우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알게된 세월이었다.
이제 봄기운이 돌고 있다. 공장 담벼락 위로 줄레줄레 고개를 내미는 봄꽃들의 화사함이 싱싱하다. 하지만 개나리 꽃색깔처럼 노랗게 뜨도록 싸워온 우리의 민주노조사수 투쟁이 진달래 선홍빛으로 피어나도 대성은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 겨울이다.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라는 옛말이 절실하다.

우리는 수요일마다 굳게 닫힌 그리고 그 위에 철조망까지 칭칭감고 노동자의 길을 가로막는 공장 정문 앞에 모인다. 이제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연대집회,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동참이 옹골지게 아름다운 그 집회에 오늘도 간다.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가볍게 하며.

나는 해고자.
저 닫힌 철문을 열 능력이 없다.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는 오기로도 저 철문은 열리지 않는다. 닫힌 철문만 보면 마음이 떨린다. 미칠듯한 분노가 세포 하나하나에 차오른다. 미칠듯한 분노가 싹을 틔울 수 없는 씨앗처럼 마구마구 초조하다. 노조를 끝내 세우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서 피를 토한다 할지라도 감내할 수 있건만 우리의 꿈과 희망 노조를 가로막는 현실은 만만치 않다.

우리는 매일 눈물을 흘린다.
감격과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통한과 설음의 눈물을 흘리고, 분노와 원한의 피눈물을 흘린다. 노조를 결성하던 날, 노조결성 보고대회에서 보여진 억눌린 노동자의 포효가 우리를 감격과 환희로 벅찬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폭력과 폭언, 회유와 설득, 조합탈퇴 강요와 각종 사측의 노조탄압을 지켜보고 맞서 싸우면서 우리와 같은 노동자 외에는 권력과 법, 그 어느 것도 노동자 편이 아님을 알았을 때 통한과 설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직장폐쇄, 공장이전, 해고에 맞서 싸워온 단식투쟁, 철야농성, 총파업, 항의방문 그리고 삭발투쟁의 과정에서 분노와 원한, 승리를 다짐하는 투혼의 피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이젠 속으로 눈물을 삭힌다. 눈물이 해결해 줄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며 눈물대신 투쟁으로 하나된 동지의 손을 잡고 더 큰 함성으로, 더 큰 파도로 노조말살 음모를 박살내기 위하여 눈물대신 투쟁의 주먹을 불끈 쥔다.

대성노조 9개월
해고자 생활 5개월
노조의 힘은 세월만큼 커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측의 집요한 탄압과 권력의 휘둘림으로 조합원은 줄고 남은 조합원도 자꾸 지쳐간다. 세월만큼 다져온 동지애와 투쟁의 힘도 옹골차지만 돈과 빽, 권력과 무자비함으로 무장한 대성전기 사용자들의 책동 앞에 점점 힘이 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길이 왜 이리 힘이 드는가? 사용자는 이미 노동자의 상식인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돈을 투자하고 몇 억의 뇌물을 써대면서 끝내 노동자에게는 한푼도 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의 상념이 머릿속을 채운다.
노동조합을 반대하는 대성 사용자의 전근대적인 모습도 문제지만 조금만 더 나아가면 모든 사용자들이 같은 모습일 것이다. 모든 사용자가 반대하는 노동조합을 노동자가 세워야 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자본의 세월을 이기고 노동의 미래를 준비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꿈과 희망을 세우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은 단판 승부가 아니다. 세우고 쓰러지고, 쓰러진 주검 위에서 더 큰 희망을 세워가는 오랜 과정이다. 갈수록 어렵기만 한 현실에서 먼저 든 생각은 노동자의 꿈과 희망은 한개 단위사업장이라는 좁은 우물에 갇혀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별 노조에서는 사용자가 끝내 반대하면 노조를 더욱 커가는 희망으로 만들 수 없다는 뼈아픈 각성이다. 지금 이 상태로는 우리가 제대로 노조를 세워도 그것은 단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꼴에 불과하다는 각성이다. 말로만 듣던 산별노조, 대성노조를 만들고 지키기에 바빠 뒷전에 밀어놓은 산업별 노조에 대한 강력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고래도 냇물에 갇히면 죽는다. 고래가 고래다운 것은 바다에 있을 때이다. 노동자란 고래가 고래답기 위해서는 산업별이라는 바다에 있어야 한다. 대성노조가 어려워 질수록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산업별 한계를 뛰어넘는 노동자가 될 것이다.

또 하나 절실한 것이 그 잘난 법과 제도라는 것이다.
우리는 안다. 사용자들의 하나 하나가 노조를 반대하고 노조를 무력화 시키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경찰도, 노동부도, 노동위원회, 언론, 지나가는 개도 아는 사실임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날아오는 통지서는 “부당노동 행위 아님. 이상없음”이라는 한결같은 대답 뿐이다. 지난번 A.M.K노조 지원 방문때 집단해고로 실직당한 전구사대 두목이었다는 관리자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구사대였을 때 노조가 노동악법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칠 때면 무슨 지나가는 개가 짖는 소리냐고 비웃었는데 막상 내가 당하니 참으로 개같은 법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법이 노동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장치임을 알게 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이 어려워지면 질수록 이 사회가 이대로 지속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된다.

어떤 노동자 언론의 요청으로 썼던 내용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그대로 실었다. 하지만 우리 대성노조의 분투가 가져온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많다. 우리가 노조를 설립한 이후 벌써 두개의 노조가 새로 생겼다. 대성노조건설이 준 효과임을 믿는다. 다시 한번 공단에 노조의 봄꽃이 만발하는 시대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는 자본의 노조파괴 책동이 분노스럽다.
처음부터 지역노조로 출발한 진화기계노조가 있다. “왜 지역노조냐, 기업별로 해라. 그렇지 안으면 인정할 수 없다. 노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차라리 공장 문을 닫겠다.”는 협박으로 시작하여 3명이 해고되고, 비조합원과 관리자가 중심이 되어 구사대를 결성하여 역파업을 하고, 인쇄된 내용으로 사인만 받은 노조 탈퇴서 강요, 특례노동자라는 특수성을 악용한 집요한 회유와 협박, 그리고 “노조가 있는데 게다가 비조합원이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파업까지 하고 나서니 더 이상 경영을 유지할 수 없다”고 무기휴업까지 해대는 모습은 그대로 대성노조가 눈물과 피끓는 분노로 건너온 세월이다. 공장은 달라도 자본가는 동일하다는 분명한 진실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장은 달라도 노동자 처지는 똑같다는 진리와 함께. 노동조합을 좋아하는 자본가가 있지는 않겠지만 노조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공장문을 닫아버리겠다는 한국자본가들의 깡패같이 천박한 인식은 공단 전체를 얼어붙게 한다. 공룡처럼 몸은 커지나 의식은 원시상태인 한국의 자본가들이야말로 가장 세계화가 덜 된 영역일 것이다.
구로공단에 커가는 건물이 있다. 대재벌 삼성그룹의 물류센타 건물이다. 그 건물의 크기는 쳐다만 봐도 기가 질린다. 그 건물을 지날 때마다 커가는 자본의 힘을 보는 것 같아 민주노조 하나 지키기에도 허덕이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서 우울해 진다.
하지만 우리에겐 꿈이 있지 않은가. 저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산별노조의 꿈이 있지 않은가. 한꺼번에 자본가만큼 아니 자본가보다 힘을 더 키우기 위한 튼튼한 대중적 계급적 토대 산별노조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정치적 힘의 결집까지.
그래 ! 단사노조를 지키는 것만큼 노동자의 마음속에 산별의 의지와 사회개조의 의지를 심는 것도 중요하다. 단위사업장 노조가 기업별 노조의 덫에 걸려 좌초해도 하나를 무너뜨리면 열의 노조를 만들겠다는 자랑스런 노동자 정신이 중요하다. 이제 더 깊은 투쟁으로 더 중요한 민주노조건설로 봄바람처럼 가자, 한꺼번에 온 대지가 어느 날 노조의 초록으로 물들 때까지. 한/노/정/연

1996-04-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