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도 답사기 (1) |
현장에서 미래를 제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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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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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답사기 (1)
정 혁 기
자유기고가
월간 ‘현장에서 미래를(이하 월간 현장)’에 전라도, 호남
답사기를 게재하기로 한 것은 지난 10월 6일이다. 그날 마침
만나고 싶은 분이 있어 ‘월간 현장에서 미래를’을 발행하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 들렀는데 모임 후 뒷풀이를 함께
하게 되었고 술이 몇 순배 돌아가다 전라도 답사기 게재를
제의했다. 그런 제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수년간,
본격적으로는 지난해 10월부터 호남지역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답사를 해왔는데 작은 페이지라도 채워주면 반가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중요이슈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책에 어떤
주제를, 또 독자에게 송구스럽지 않을 정도의 내용과 재미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검증받지 못한 답사여행자, 글쓴이에게 쉽게
허락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하튼 당일 게재동의를 받았고 그들은 나의 거듭된 ‘1만원
원고료’를 거절했다. 지금까지 게재된 글에 원고료를 준 적이
없다는 것, 그 규율(?)을 깰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도 ‘월간 현장’ 편집부에 감사인사를 지면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다. “게재를 수락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 사이에는 전라남북도를 다시 돌았다.
이번 답사는 답사일정의 제1막을 마무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첫날은 전북 무주를 시작으로 진안, 임실, 정읍, 이튿날은
장흥과 순천, 마지막 날은 광주 무등산으로 짜여진 일정이었다.
무등산 답사로 종결된 제1막은 전라도 동부지역 답사가 주를
이루었다. 장수, 진안, 남원, 구례, 화순, 담양, 곡성, 구례,
보성, 순천, 광양 등지다. 제1막을 끝낸 지금 당분간 답사기를
정리할 계획이다. ‘월간 현장’에 실릴 답사기는 당분간 앞의
지역에 대한 얘기들이 될 것이다. 올해 말경엔 다시 호남
서쪽지역의 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활(弓)은 개성을 겨누고 - 뒤집어 본 훈요십조 -
지역적으로 전라남북도를 지칭하는 ‘전라도’는 현재
전라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전주(全州)와 전라남도의 중심지
역할을 했었던 나주(羅州)의 머릿글자를 따 지은 이름이다. 그
때가 고려시대 현종 9년. 이후 다시 전라도는 1896년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리되었다. 전라도를
남북도로 따로 부르기 시작한 지 100여년이 흐른 셈이다.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도는 오랫동안 전라도에 포함되어 왔는데
제주도가 도로 독립하면서 전라도의 강역범위는 현재의 한반도
남서부와 연안섬을 지칭하게 이르렀다.
전라도는 호남(湖南)이라고도 부른다. 호남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남아있다. 지금은 전라도가
전라남북도를 지칭하고 있지만 애초 호남의 북방경계가 어디를
나타내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경상도는
영남(嶺南)이라 부른다. 영(嶺, 고개)의 남쪽을 지칭하는
영남지방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경계짓는 죽령(竹嶺, 689m,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의 경계)과 조령(鳥嶺, 새재, 548m,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의 남쪽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음에
비해, 호수의 남쪽이라는 뜻인 호남의 ‘호(湖)’가 어디를
지칭하는 것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호수가 김제의
벽골제호라고도 하지만 지리적으로 너무 남쪽에 위치해 있는
등의 이유로 인해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호’는
금강(錦江)을 지칭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전라도라고 부르기 전, 고려 성종 때는 전주 등의 북쪽
군현을 ‘강남도’로, 나주 등 남쪽 군현을 ‘해양도’라고
불렀다. 대강의 위치로 본다면 전라남도가 해양도, 전라북도와
충청도의 일부가 강남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강남도의 ‘강’은 금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데, 여기에서
호남의 ‘호(湖)’가 금강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추해석하기도
한다. 금강은 전라북도의 장수군 신무산((896.8m)에서 발원해
충청도 내륙을 북방으로 휘돌아 군산과 장항 사이를 거쳐 서해로
빠져든다. 논란이 있지만 호남은 금강이남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큰금남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영취산으로 오른 길
무리가 없다는 데 나는 동의하고 있다. 호남의 동쪽은
백두대간이 경계를 이룬다. 태백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튼
백두대간이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나눈다.
동으로 백두대간, 북으론 금강. 서남방으로는 바다를 낀 호남은
전체적으로 동고서저의 지형을 이루면서 자연환경과 삶의 터전이
펼쳐진다. 덕유산, 백운산, 지리산 등의 연이은 봉우리를 동편의
울타리로 삼고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함께 어울려 금강,
섬진강, 만경강, 영산강이 젖줄을 이루며 들을 적시자
호남지역은 역대 지배권력에게는 욕심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지역이 된다.
호남지역에 대해 지리인문적 평가로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고려태조 왕건이 신라와 후백제를 굴복시켜 고려를
창업하고 지침으로 내린 ‘훈요십조’다. 관련 내용은 8번째
항목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차현이남 공주강외인 지금의 금강이남, 대체로 전라도와
충남일부지역은 지리적 형세가 배역되어 그 방면의 인심도 역시
그러할 것인즉, 그 지방 사람이 혹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 국척과
혼인하고 국정을 맡게 되는 때에는 혹은 국가를 변란하고 혹은
전일 병합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으므로 설령 양민일지라도
벼슬자리에 용사케 말라“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幷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群人參與朝廷 與王侯國戚婚姻 得秉國政
則或變亂國家 或御統合之怨 犯蹕生亂 借其會屬宮寺奴婢
津驛雜尺 或役勢移免 或附王侯宮院 姦巧言語 弄權亂政
以致災變者 必有之矣 雖其良民 不宜使在位用事 (차현이남
공주강외 산형지세 병추배역 인심역연 피하주군인참여조정
여왕후국척혼인 득병국정 즉혹변란국가 혹어통헙지원 범필생란
차기회속궁사노비 진역잡척 혹역세이면 혹부왕후궁원 간교언어
농권난정 이치재변자 필유지의 수기양민 불의사재위용사)
최창조,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ꡔ서해문집ꡕ, p. 123.
위 훈요십조의 8훈의 내용은 왕건 일파가 고려 창업과정에서
겪은 신고를 풍수관을 빌어 호남에 대한 정치적 차별과 배제,
통치관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 내용의 맞고 틀림에 대한 논의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래도 한마디 부연하면 훈요십조의
호남차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호남, 예컨대 나주, 순천,
곡성 등 호남남부 호족들은 왕건의 창업에 공로를 세운자가
많았으며 공신반열에 끼어 세도와 권세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별을 받았던 곳은 호남북부였다는 것이 유력한 설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글의 주제는 훈요십조 8훈이 담은
금강 이남에 대한 차별문제가 아니다. 인용의 이유는 바로
훈요십조 8훈에 묘사되어 있는 호남 강역의 지세에 대한 설명이
음미해 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 연기군에서 바라본 금강
공주강(公州江), 즉 지금의 금강(錦江)은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흐름을 시작한다. 물이 시작되는 곳은 백두대간에서 시작된
금남호남정맥이 발을 떼며 일궈놓은 신무산 아래 ‘뜬봉샘’이며
장수군 수분치에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이 곳에서 시작된
금강은 북쪽으로 흘러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을 지나
청원, 연기, 공주, 청양, 부여, 익산- 서천, 장항-군산을 거쳐
서해로 흐른다. 흐름의 형세는 북쪽으로 부푼 반원 모양이다.
그래서 혹자는 금강이 흐르는 형세를 반궁수(反弓水)라 칭했다.
반궁(反弓), 즉 금강의 흐르는 형세가 활의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그 향하는 방향이 개성(수도권)을 겨눈 형세라는 뜻이다.
활이 개성을 향하고 있어 좋지 않다는 뜻이 내포돼 있는
표현이다. 금강과 함께 충청도 내륙을 통과하는 마이산, 운장산,
속리산,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산흐름도 역시 금강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훈요10조 8훈에서 왕건은 이와같은 호남의 산수경을 “산형지세
병추배역(山形地勢 幷趨背逆)” 즉 “산과 땅의 지리적 형세가
배역지세”를 이루고 있다고 평했고, “차현 이남 공주강외는 그
방면의 인심도 역시 그러할 것인즉... (중략).... 설령
양민일지라도 벼슬자리에 용사케 말라“고 훈요했다. 또한
훈요십조에 이어 호남지방을 흐르는 물흐름(水經)에 대한 해석도
뒷따랐다. 동쪽으로는 산이 높고 서남면이 바다에 연해있는
지형적 특성은 강들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자유롭게 흐른다.
금강이 북쪽으로 흐르며 지천들을 모아 서해로 들어가고,
만경강은 서해로, 영산강은 남서행하여 목포 앞바다로, 섬진강은
북으로 서로 남으로 유유히 흐르며 보성강을 합쳐 남해로
들어간다. 이 형세를 한 유학자는 ‘산발사하(散髮四下)’라
칭했다. 물길이 머리를 풀어헤친 듯 사방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금강과 산경이 서울을 향해 배역의 형세를 띠고 강은 모아지는
국면을 이루지 못하고 산발하듯 흘러가는 곳, 그곳이
호남지방이다.
훈요10조나 기타 호남지역에 대한 평가를 담고있는 자료들이
고의적인 의도를 담고있지만 호남의 자연지리적 형세와 특성을
이보다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다. 즉 북으로는 개성을 향해 활을
겨누듯 금강과 함께 산경이 감싸안은 한편, 동으로는 백두대간이
영남과 경계를 짓고, 남서로는 대간에서 분지한 산흐름과 강이
각자 여유롭게 들과 고을을 적신다. 이러한 산과 물의 형세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경상도나, 한강이 중심이 된 기호지방
등과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점이다. 대강을 중심으로 물길을
통해 성과 읍이 교통할 수 있는 반면에 호남은 생활,
문화권역별로 독자적인 수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의
이러한 지형세는 각지역마다 독특한 성격을 발전시키고 매우
다른 생활문화와 경험을 축적하게 되어 호남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다양성을 품고있는 지역적 독자성으로 드러난다.
여기에는 호남지역에는 가장 많은 섬들이 남서해에 산재해
있다는 점도 덧붙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함과 지역적 독자성은
앞에서 언급한 반궁수와 산발사하의 형세를 빌미로 “이
고장에는 재덕이 잘 나타나지 못하고 풍속이 거칠고 교활하다”
"차소이재덕요출", ꡔ人風獷狡(인풍광교)ꡕ
p.124.
라는 독선적인 평가까지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산형지세 병추배역(山形地勢 幷趨背逆)”
“반궁수(反弓水)”
“산발사하(散髮四下)”
호남에 대한 자연지리적 특성을 이보다 함축성 있게 표현한 글을
난 알지 못한다. 물론 이들 표현에는 호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하고 있다. 자연지리적 특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위에 현상을 왜곡한 논리를 편 셈이다. 그러나 한편 이들 표현이
부정적 이미지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배역’ ‘반궁’
‘산발’ 등으로 표현되는 호남강역의 지세는 개성과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권력세도를 이룬 지배세력에게는 달갑지 않은 형세와
위협이 되겠지만, 압제와 탐학을 당하는 민중의 입장에서는 이
지세는 오히려 현실을 극복하려는 진취성과 다양성, 미래를 향한
저항정신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은 한반도의 자연지리, 지형적으로 보면 남서부에 치우쳐
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에서 분지해 서남지역에 산과 들을
펼치고 수많은 도서들이 남서해에 산재해 있는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호남지역은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말도 많고
사연도 많다. 역사적으로는 한때 한강유역으로 진출하여 고구려,
신라와 쟁탈전을 벌였으나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공격에 나라를
잃은 비운의 역사를 안은 백제의 영역이며, 새 세상을 꿈꾸는
미륵신앙과 토착종교가 발흥을 반복했다. 또한 이 지역은
유배지로도 성가가 높은 땅이었으며, 부패한 중앙권력과
지방토호를 향한 도전이 빈발했다. 특히 전라북도 정읍 고부에서
시작되어 농민군이 삼남지방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른
동학혁명은 한때 전주성을 손에 넣고 혁명적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보국안민, 척왜양창의를 깃발로 한양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지만, 일본군과 관군의 반격을 받고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혁명을 이끈 지도자들이 참수 처형됨으로서
종결되고 만 통한의 땅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호남을
호남답게 했던 것은 산과 물이 이루어 놓은 들판일 것이다.
산악이 대부분인 한반도 지형에서 호남은 넓은 들을 기반으로
식량기지로 역할했고 이로 말미암아 지배세력의 탐학이 극심하게
펼쳐진다. 마치 이라크의 석유가 미국을 비롯한 외국침략세력의
목적물이 되는 것처럼.
갈재에서 바라본 정읍 입암면 정경
호남, 전라도로 가는 길. 이제 떠날 시간이다. 그러나 어느 길을
통해 들어갈 것인가. 서해를 연안에 낀, 갯내음이 물씬 나는
서해고속도로를 탈 것인가. 금강, 만경강을 건너고 들을
가로지르며 갈재를 넘는 1번국도를 탈 것인가. 아니면 지리산을
감돌면서 지리산 휴게소에서 상긋한 눈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88고속도로? 아니면 호남정맥이 자맥질하며 빠져드는 섬진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 2번국도로 타고 들어갈 것인가. 당신은 어느
길로 들어가고 싶은가. (다음호에 계속)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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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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