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재의 가치와 관련한 몇 가지 쟁점에 대하여
예컨대 마이크로쏘프트(MS)사의 윈도우즈XP나 오피스 프로그램 등 같은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의 가치․가격 문제와 관련, 류동민․이진경 교수나 조원희․조복현 교수, 그리고 강남훈 교수 등의 기존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데1)에 대해서 강남훈 교수가 반론2)을 제기해 왔다.
그 행론(行論)의 이론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강 교수가 진지하게 반론을 제기하고 나온 것 자체를 나는 우선 높이 평가하고 싶다. 자신의 이론적 오류에 가해지는 비판에 대해서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침묵해버림으로써 자신의 오류가 세인(世人)의 주목이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고, 그를 통해서 그 오류를 은폐하려는 권위주의적 악습이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만연한 오늘날에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고 진지하게 옹호하고 나선 강 교수의 학문적 자세는 그 자체가 돋보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 정보재의 가치․가격에 대한 강 교수의 주장과 나의 비판의 요약
우리가 문제로 삼고 있는 ‘정보재’는, 누구나 이의 없이 인정하는 것처럼, 그 첫번째 제품을 만드는 데에는 막대한 노동시간을 요하더라도 이후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는 ‘사실상’ 어떤 노동시간도 요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오늘날 엄청나게 높은 가격으로 판매․유통되고 있고, 바로 이 때문에 그러한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의 가격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강남훈 교수는 기본적으로 “정보상품의 단위는 카피가 아니라 버전이다”라고 하는 데에서 찾고 있다. 즉, “정보상품의 가치는 한 카피가 아니라 한 버전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이며 “하나의 버전의 가치가 여러 카피로 나뉘어서 실현되는 것”3)이라는 것이다.
이는 일견, 즉 형식적으로는 정보상품의 가치․가격을 그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설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정보상품의 재생산에는 현실적으로 ‘사실상’ 아무런 비용도 노동도 요하지 않고, 따라서 그 가격은 사실은 ‘지적재산권’이라는 국가 폭력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극히 작위적인 독점가격이라는 것. 따라서 “정보상품의 단위는 카피가 아니라 버전”이며 “정보상품의 가치는 한 카피가 아니라 한 버전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은, “그의 주관적 의도와 상관없이 사실은 ‘독점가격’, 그것도 법률․경찰․사법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폭력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자의적인 독점가격으로서의 ‘정보재’의 가격을,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변호하는 것”이라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비판이었다.
그밖에 강 교수는 “정보상품의 가격에는” 특별잉여가치, 지대, 독점이윤 등 “세 가지 구성부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정보상품의 이윤의 구성부분으로는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4)고 말하고 있는 바,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의 가격을 순전한 독점가격, 즉 “일반적 생산가격에 의한 가격에도, 생산물의 가치에 의한 가격에도 의존하지 않고, 단지 구매자의 구매욕과 지불능력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가격”5)으로 규정하는 나의 관점에서는 이 역시 비판의 대상이었다.
2. 강 교수의 반론에 대하여
나의 비판에 대한 강 교수의 반론은 크게 ‘1) 상품으로서의 정보재의 단위와 그 가치 문제, 2) 정보재 가격 속의 특별잉여가치 문제, 그리고 3) 그 가격 속의 지대의 문제에 관한 것’인데, 여기에서는 편의상,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강 교수의 주장이 이론적 혼란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간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지대의 문제에서부터 역순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1) 정보재의 가격․이윤에는 지대가 포함되어 있다?
강 교수는 정보재의 가격에 지대가 포함되어 있음을 논증하기 위해서 지대 개념을 ‘확장’한다. 즉, ꡔ자본론ꡕ에서의 논의에 따라서 지대를 “토지소유의 경제적 실현”6)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 대해서 강 교수는 “지대 개념을 토지소유와 연관된 현상으로 한정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 개념을 확장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7)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대 개념을 굳이 “토지소유와 연관된 현상에 한정해서 사용하고 싶다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정보지대(inform
ation rent)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8)
강 교수의 논의․논증이 정당하다면, 우리는 물론 ꡔ자본론ꡕ에서의 지대 개념에 구속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것을 ‘확장’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경제학의 발전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강 교수의 논의․논증이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서의 얘기다. 따라서 그러한 가정이 정당하게 성립될 수 있는지, 지대와 관련한 강 교수의 논의를 검토해보자.
(1) 대상의 착각
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더 생각해 보면 정보재에 포함된 지대가 토지소유와 연관된 지대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농업에서의 지대는 물리적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인데, 정보재에 포함된 지대는 가상적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지대는 사람들의 발(사람들이 특정한 장소에 많이 모임)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정보재에서의 지대는 사람들의 눈(사람들이 특정한 사이트에 많이 접속함)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9)
여기에서 우선 재확인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이라는 이름 하에 논의하고 있는 대상은 이른바 ‘포탈 싸이트’니 ‘검색 싸이트’니 하는 온라인상의 ‘써비스’가 아니라10) 윈도우즈니 오피스니 하는 것과 같은 범용 쏘프트웨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 이들 정보재는 범주적으로 ‘가상적 공간의 소유’나 “사람들의 눈” 혹은 ‘사람들의 접속’과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강 교수식의 지대 개념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논의 대상인 정보재의 가격에는 ‘지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강 교수가 “정보재에 포함된 지대는 가상적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명백히 대상의 착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어느 날 진보네트 사무실에서 나와 나누었던 대담에서, 이러한 난점을 돌파하기 위해서 강 교수는 MS사의 ‘MSN 메신저‘ 문제를 언급했다. 즉, 이 문제를 둘러싸고 MS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다음(Daum)‘ 측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다른 사람이 MSN을 쓰니까 자기도 MSN을 쓰는 것이지, [다음의 메신저보다 MSN의: 인용자] 기능이 우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11)는 것이며, 따라서 “MSN이 일단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난 후에 다른 기업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지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12)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대담에서도 명확히 말했던 것처럼,13) 현상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많이 쓰니까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처음부터 MSN을 많이 썼거나 웹 브라우저로서 익스플로러를 많이 썼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MSN이나 익스플로러를 많이 쓰게 된 것은 윈도우즈라는 기본 운영체제(OS)를 독점하고 있는 MS사 측이 익스플로러 등을 OS에 최적화시킬 수 있었던 데다가 그것들을 OS에 끼워팔기를 한 덕분일 뿐이다. 웹 브라우저를 예로 들자면, 애초에는 익스플로러가 아니라 넷스케이프를 다수가 썼던 것처럼, 다수가 쓰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익스플로러를 쓰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강 교수식의 지대 개념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그 지대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덧붙여 말하자면, 여러 논자들이 ‘정보재’의 가격과 관련, 이렇게 “정보재에서의 지대는 사람들의 눈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거나 이른바 ‘주목(attention)’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정보재 가격 속의 ‘지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디지털화된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이 아니라 비디지털적인, 가장 전통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정보상품으로서의 신문이나 잡지, 방송 등을 생각해보자. 이들 매체에의 광고료는 대체로 그 구독률이나 시청률에 의해서 그 고저가 결정될 것이다. 즉, 그 매체나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 독자나 시청자의 ‘주목’을 받는냐에 따라서 동일한 크기, 동일한 시간의 광고료의 높낮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들 매체가 그토록 구독률과 시청률을 높이려고 혈안이 되는 이유도 바로 그 광고료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누가, 어느 신뢰할 만한 경제학자가 그 광고료의 고저를 ‘지대’로서 설명하는가? 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에 대해서 나는 들은 바가 없다.
만일 이러한 아날로그 매체의 광고료의 고저의 차이, ‘주목’의 과다(寡多)의 차이가 ‘지대’의 문제로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대상인 디지털 정보재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 ‘주목’ 혹은 “사람들의 눈”이라고 하는 면에서 양자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차이라도 있는 것일까?
(2) 정보지대?
‘정보지대’는, 강 교수에 의하면, “가상적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토지소유는 도대체 왜 지대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일정한 비옥도나 거래 중심지로부터의 일정한 거리라고 하는, 자본에 의해서 기본적으로 재생산 될 수 없는 한정된 것에 대한 소유여서 그 소유가 경쟁을 구조적으로 제한․배제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이른바 ‘가상공간’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고, 따라서 그 존재가 없기 때문에 ‘사적소유’의 여지도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이고, 그 네트워크이다. 게다가 ‘가상공간’의 실체인 하드디스크와 그 네트워크는 그 저장용량이 급속히 증대되고 그 가격이 싸지면서, 그리고 갈수록 많은 고성능의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에 의해서 기본적으로 재생산 될 수 없는 한정된 것에 대한 소유여서 그 소유가 경쟁을 구조적으로 제한․배제하기 때문’14)에 발생하는 지대 개념을 설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아무리 ‘정보지대’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결코 타당할 수 없을 것이다.
(3) 지대 자체에 대한 강 교수의 오해
그런데, “정보재의 가격에는 지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때, 강 교수는 사실은 지대 자체에 대한 이해에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쓰고 있다.
지대는 초과이윤의 일종이다. 그러나 그것은 독점이윤이 아니다. 독점이윤은 가치에 의해서 합리화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지대는 가치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독점이윤은 경쟁 기업이 존재하면 사라지지만, 지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현상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15)
“독점이윤은 가치에 의해서 합리화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지대는 가치에 포함되는 부분이다”? 독점이윤은 해당 상품의 가치의 일부가 아니라 다른 상품의 가치로부터 이전된 것임에 비해서 지대는 해당 토지 생산물의 가치의 일부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자.
또한, “독점이윤은 경쟁 기업이 존재하면 사라지지만, 지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서술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우선, 경쟁 기업이 존재하더라도 그 경쟁이 제한적인 것일 경우에는 독점이윤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더 일반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에니콜’ 상표의 휴대전화기를 만드는 삼성전자에는 ‘싸이온’ 상표의 휴대전화기를 만드는 LG전자나 기타 경쟁기업들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전화기의 가격에 독점이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음에, “[경쟁 기업이 존재한다고 해서: 인용자] 지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현상으로부터 [지대가 해당 토지 생산물의 가치의 일부라는 것을: 인용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타당한 논증이 아니다. 지대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토지소유 자체가 경쟁을 제한하기 때문이고, “지대는 가치에 포함되는 부분”이라는 것, 즉 그 지대가 해당 토지 생산물의 가치의 일부라는 것은 별도의 논증을 요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는 이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렇다고 지대는 특별잉여가치도 아니다. 특별잉여가치는 생산력의16) 원천이 자본(혹은 자본이 고용한 노동)의 우수한 생산력에 있지만, 지대는 자본(혹은 자본이 고용한 노동)의 생산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생산요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17)
‘특별잉여가치’에 대해서는 뒤에서 별도로 논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지대에 관해서만 보기로 하자.
먼저, 그가 “지대는 ... 생산요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은 이미 말한 대로다.18) 그런데 그는 그 생산요소가 “자본(혹은 자본이 고용한 노동)의 생산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도대체 ‘노동의 생산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생산요소’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토지 비옥도의 차이에 따른 차액지대를 예로 들자면, 바로 그 비옥도의 차이가 각 토지에서 수행되는 노동의 생산력의 차이를 규정하는데, 곡물의 사회적 가치는 가장 비옥도가 낮은, 따라서 가장 노동생산력이 낮은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비옥도가 높아 노동생산력이 높은 토지에서는 평균이윤율을 넘는 초과이윤이 발생하고, 그것이 바로 지대로 전화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강 교수는, 지대는 이렇게 노동의 생산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지대는 가치에 포함되는 부분”, 즉 해당 토지에서 생산된 가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논리상 ‘자연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결코 의도하지 않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19) 그러나 “자연도 가치를 생산한다”는 따위의 주장은, 앞에서 언급했던 대담에서도 지적했지만,20) “기계적 잉여가치” 따위를 ‘발견’하고 의기양양해 하는 이진경(박태호) 박사 같은 희대의 천재나 그의 추종자․찬미자들에게나 자랑스럽게 떠들라고 하면 충분하지21) 강 교수 같은 분이 주장할 일은 아니다.
(4) 소결
이상의 이유로 나는 “‘정보재’의 가격 속에는 지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은 ‘정보재’의 가치 자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지대에 대한 이해에서도 혼란과 착오에 기초한 주장이라고 결론짓고자 한다.
2) 정보재와 ‘특별잉여가치’
여기에서의 논의는 ‘정보재’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진행된다. 강 교수도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만약 정보재가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면 당연하게 [어떤: 인용자] 잉여가치도 가지지 않을 것”22)이고, 따라서 ‘특별잉여가치’ 등은 아예 논의할 여지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정보재의 가격 구성
강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정보재의 가치가 0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보재의 가격 전체가 가치에 의해서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정보재의 가격은 가치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과 가치를 초과하는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23)
강 교수가 여기에서 “가치에 의해서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이라거나 “가치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문맥상으로 판단할 때, 정보재의 생산가격이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그 가치를 가리키고, 가치를 초과하는 부분이란 독점가격의 설정에 의해 다른 부문으로부터 이전된 가치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논의를 전개하자. 그러면 그는 이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가치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 중에는 일반적 잉여가치, 특별잉여가치, 지대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가치를 초과하는 부분은 독점이윤에 해당된다.
강 교수가 얘기하고 있는 정보재의 가격 구성을 정식화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정보재 자신의 가치’ + 독점이윤 =
(‘소모된 불변자본 가치’ + ‘가변자본의 가격’ + ‘일반적 잉여가치’ + ‘특별잉여가치’ + ‘지대’) + 독점이윤 = 정보재의 가격
(2) 정보재 가격 구성의 일반적 요소로서의‘특별잉여가치’설정은 논리적 당착
강 교수가, 그리고 사실은 논외의 조원희․조복현 교수 등도, 정보재의 가격이 위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한, ‘특별잉여가치’는 정보재 가격의 일반적 구성요소 혹은 정보재 가격 구성의 일반적 요소가 된다.
그런데 ‘특별잉여가치’가 어떤 상품 가격의 일반적 구성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주지하는 것처럼, 어떤 상품의 개별적 가치가 그 상품의 시장가치 혹은 사회적 가치보다 적음으로써 그 차이만큼 얻는 초과이윤이고, 따라서 그 개별적 가치가 그 시장가치 혹은 사회적 가치를 구성하거나 사회적 가치보다 큰 생산자는 취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ꡔ진보평론ꡕ 제20호에서의 조원희․조복현 교수의 논의에 대한 나의 비판을 다시 보자. 그들에 의하면, “정보재의 가격(P)는 다음과 같이 일반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24)
P = MV + Pm = PoP + TSV + Pm
단, MV = 시장가치(또는 사회적 가치)
PoP = 평균이윤율을 포함하는 생산가격
TSV = 일시적 초과이윤(즉, 특별잉여가치)
* 정의상 MV = PoP + TSV임
Pm = 독점이윤
두 교수의 이러한 정식화에 대해서 나는 감히 “‘정치경제학’에 대한 불철저한 이해는 ‘정보재의 가격’에 대한 두 분의 정식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25)고 썼다. 그리고 ‘특별잉여가치’와 관련해서만 말하자면, “시장가치 혹은 사회적 시장가치(MV)가 평균이윤을 포함한 생산가격(PoP)과 일시적 초과이윤 즉 특별잉여가치(TSV)의 합이라는 것은 ‘정의상’ 합당하지 않다”26)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비판은 충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보재’의 가격이 ‘독점가격’이라면, 그 구성과 관련하여 시장가치나 ‘평균이윤을 포함하는 생산가격’, ‘일시적 초과이윤’ 등은, 설혹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요소를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범주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며, “그런데도 두 분 교수는 그것들을 독점이윤과 나란히 ‘정보재’ 가격의 범주적 구성요소를 이루는 것처럼 정식화하고 있다”고 썼을 때, 그 오류는 명백하다. ‘특별잉여가치’란 결코 어떤 상품 가격의 일반적 구성요소일 수 없다는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재’ 가격의 실체가 ‘독점가격’, 그것도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만 보증되는 독점가격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한 나머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지만, 변명할 수 없는 오류임은 명백하다.
(3) 시장 지배적 상품에 ‘특별잉여가치’를 설정하는 것은 오류
‘특별잉여가치’가 상품 가격의 일반적 구성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품에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보재 가격의 구성요소로서의 ‘특별잉여가치’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어떤 특수한 이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를 보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오피스를 예로 들어서 일반잉여가치, 특별잉여가치와 독점이윤을 설명하여 보자. 오피스의 어떤 버전을 평균적인 경쟁 기업이 생산하는데 1만 시간이 필요하다면 오피스의 가치는 1만 시간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프로그램을 코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잉여노동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5천 시간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는 1만 시간 이상에, 예를 들어 3만 시간에 판매되고 있다. 경쟁하는 오피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2만 시간의 독점이윤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오피스를 개발하는 데에는 1만 시간이 아니라 8천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2천 시간의 특별잉여가치까지 획득하게 된다. 총 3만 시간에 해당하는 오피스의 가격 중에는 5천 시간의 일반잉여가치, 2천 시간의 특별잉여가치, 2만 시간의 독점이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총 3만 시간에 해당하는 [MS: 인용자]오피스의 가격 중에는 5천 시간의 일반잉여가치, 2천 시간의 특별잉여가치, 2만 시간의 독점이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는 강 교수의 결론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마이크로쏘프트와 경쟁하는 오피스 제품에는 ‘특별잉여가치’가 발생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특별잉여가치’를 정보재 가격의 일반적 구성요소로 들 수는 없다는 것을 우선 다시 확인하자.
그런데 위 인용문은 단 하나의 문단에 불과하지만 거기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형식상의 그리고 또 실질적인 논리적․이론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먼저 형식적인 전후 모순을 들자면, 강 교수는 한편에서는 “오피스의 어떤 버전을 평균적인 경쟁 기업이 생산하는데 1만 시간이 필요하다면 오피스의 가치는 1만 시간이 될 것”이라고 쓰고는 불과 몇 줄 뒤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는 ... 경쟁하는 오피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2만 시간의 독점이윤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말꼬리를 잡는 게 아니라 이는 명백히 전후 당착이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은, 오피스의 시장가치 혹은 사회적 가치가 1만 시간인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는 경쟁하는 오피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점이윤27)을 획득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논리상의 명백한 오류를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특별잉여가치’의 문제와 관련하여 중대한 실질적인 이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는 경쟁하는 오피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 운운할 만큼 그 독점 즉 절대적 시장 지배를 전제하고 있으면서 오피스의 (시장)가치는 마이크로쏘프트의 오피스의 가치인 8천 시간이 아니라 시장 점유율이 없다시피 한 ‘평균적인 경쟁기업’ 제품의 1만 시간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2천 시간의 ‘특별잉여가치’를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상품의 시장가치 혹은 그 사회적 가치에 대한, 따라서 특별잉여가치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고 있는 주장이다.
‘정보상품’이 가치를 가진다고 하는 강 교수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강 교수가 예해(例解)하고 있는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오피스의 가치, 즉 그 시장가치 혹은 사회적 가치는 1만 시간이 아니라 8천 시간이다. 따라서 마이크로쓰프트사가 취하는 가격 속의 잉여가치는 독점이윤일 뿐이며 눈곱만큼의 특별잉여가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4) 소결
강 교수에 따라서 ‘정보상품’ 혹은 ‘정보재’가 그 자체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논하더라도, ‘정보재’의 가격에는 ‘특별잉여가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은 이렇게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3) 정보재의 단위와 가치
이른바 정보상품 혹은 정보재의 가치․가격과 관련한 강남훈 교수의 논의의 최대의 특징은, 전에도 지적한 것처럼, “정보상품의 단위는 카피가 아니라 버전이다”라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정보상품의 가치는 한 카피가 아니라 한 버전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이며, “하나의 버전의 가치가 여러 카피에 나뉘어서 실현되는 것”28)이라는 것이다.
거듭 지적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일견, 형식적으로는 정보상품의 가치․가격을 그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설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정보상품의 재생산에는 현실적으로 ‘사실상’ 아무런 비용도 노동도 요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본의 아니게 사실은 ‘지적재산권’이라는 국가 폭력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극히 작위적인 독점가격을, 따라서 그 ‘지적재산권’이 사회에 대해서 주요한 지배권을 갖는 신자유주의를 변호하는 것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재생산’과 ‘카피’ 혹은 ‘복제’의 의미를 준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는 좀 심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언어의 노예’가 되는 것일 뿐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노동가치론에서의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의 ‘재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재화의 재생산은 그 재화의 속성 혹은 기술적 특성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카피한다’ 혹은 ‘복제한다’고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정보재라는 재화의 재생산의 특수성이고, 그 때문에 그 재생산에는 ‘사실상’ 어떤 노동도 필요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가치는 ‘사실상’ 0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현실에서는 ‘한편에서’ 극히 고가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을 특별히 주목하여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강 교수 또한 정보재 자체의 어떤 특성 혹은 그 (재)생산상의 특수성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명에 그토록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이고, 그 가치이론적 ‘해결’을 “정보상품의 단위를 카피가 아니라 버전”에서 찾고 있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강 교수의 주장은, ‘재생산’이냐 ‘카피 혹은 복제’냐 하는 공허한 어휘 논쟁을 내던져버리고 본다면, 시장에서 ‘상품’으로서 판매되는 정보재란 강 교수나 나나 지금 ‘카피’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라는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29)
(1) 정보재의 가격과 다리의 통행료는 전혀 다른 것
문제의 ‘반론’에서 강 교수는 “민간기업이 건설하여 통행료를 받는 다리”와 그 “다리의 통행료”로서 ‘정보상품의 단위는 버전이며 카피는 그 가치가 실현되는 방법 혹은 수단’이라는 것을 예증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때 다리를 버전으로 생각하고 통행권을 카피로 생각하면 정보재의 경우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정보재는 가치를 갖지 않는다거나 가치가 0이라고 주장하려면 카피의 가치가 0이라는 것을 입증할 것이 아니라 버전의 가치가 0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앞의 다리의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종이로 만들어진 통행권의 가치가 0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리의 가치가 0이라는 것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30)
여기에서도 역시 ‘정보재’의 버전과 ‘다리’는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윈도우즈XP의 ‘카피’는 정확히 그 원본 윈도우즈XP와 동일한 것, 그 복제품임에 비해서 다리의 통행권은 결코 다리의 복제품이 아니다.
혹시 “윈도우즈XP의 카피 역시 원도우즈XP의 쏘스코드와 동일한 것이거나 그 복제품이 아니다”고 반론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리의 경우 그 통행권을 구매하여 그 다리 자체를 건넘에 반해서, 즉 다리 그 자체의 기능, 사용가치를 향유함에 반해서, 윈도우즈XP의 경우는 그 ‘카피’를 구매하여 윈도우즈XP의 쏘스코드 자체의 기능, 사용가치를 이용하고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다리의 통행권을 사는 사람의 경우 누구나 그 다리를 이용하고 건널 수 있음에 비해서, 윈도우즈XP를 사는 사람들의 절대다수, 반복하지만, 그 절대다수는 설령 윈도우즈XP의 쏘스코드가 그들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할 필요도 없고, 기술적으로 이용할 수도 없다. 그것으로 하여금 윈도우즈XP 카피가 하는 기능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깊은 기술적 이해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가의 컴파일러를 구매하여 컴파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다리 통행권을 구매하는 사람과 다리의 관계와 윈도우즈XP 카피를 구매하는 사람과 그 쏘스코드의 관계는 전혀 다른 것이고, 따라서 통행권과 다리의 관계와 윈도우즈XP 카피와 그 쏘스코드의 관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예컨대 윈도우즈XP의 쏘스코드 자체가 상품으로 등장하는 경우의 그 가치․가격 문제는 당연히 지금 우리가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정보상품’ 혹은 ‘정보재’의 가치․가격 문제와는 명확히 다른 문제이고, 별도의 논의를 요하는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오픈소스(open source) 운동으로서의 리눅스(Linux) 진영을 공격하고 견제하기 위해서 사실상 마이크로쏘프트사를 재정적 후원인으로 하여 SCO사가 소송 공세를 벌이게 되는 전사(前史)가 되는 유닉스(UNIX) 관련 지적소유권의 매매․전매의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쏘스코드 자체가 상품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복제할 뿐이지 다시 쓰지는 않는다.
참고로 말하자면, 자본을 투자하여 다리를 건설하거나 그렇게 건설된 다리를 구매한 ‘민간기업’이 다리의 통행권을 발행하여 그 통행료를 받는 것은, 주택 등의 건물을 건설하거나 구매한 사람이 그 고정자본에 대한 이자를 받고 감가상각비를 보전하기 위해서 임대료를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정보재의 경우 복제가 바로 재생산이다
거듭 반복되는 얘기지만, 이른바 ‘정보재’의 특성상 그 재생산은 복제의 형태를 취한다. 즉 복제 즉 재생산인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서도 명백하다. 즉, 예를 들어서 마이크로쏘프트사가 천만 개31)의 윈도우즈XP를 판다고 할 때, 그들은 결코 그 쏘스코드를 천만 번 컴파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쏘스코드를 천만 번 다시 쓰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결정적 하자 없이 컴파일된 윈도우즈XP를 천만 번 복제하여 천만 개의 상품으로 팔 뿐이다.
그런데도 강 교수는 재생산이란 것을 임의로 “그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과 숙련”이니 “그 상품을 필요에 따라 개선하고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지식과 숙련”32)이니 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를 복제할 수 있지만 똑같은 성능을 가진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거나 재생산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복제는 (재)생산이 아니다”33)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정보재 혹은 정보상품의 특성 때문에 한편에서는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34)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재생산은 그 특성과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혹은, 쏘프트웨어의 쏘스코드가 우리가 말하는 ‘정보재’ 상품도 아니며, 심지어 어떤 쏘프트웨어의 쏘스크드도 복제가 아닌 방식으로는 재생산되고 있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훈 교수는 “정보상품의 단위는 버전”이어서 ‘카피’가 아니라 그 ‘버전’의 재생산을 재생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를 들면 마이크로쏘프트사의 윈도우즈98은 윈도우즈95와는 다른 상품인 것이지, 윈도우즈98의 생산과 출시가 윈도우즈95를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3) ‘흥미로운 사실’
아무튼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강남훈 교수는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먼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보재의 경우에는 디지털 형태로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복제하는 것과 (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반적인 재화의 경우에는 완전히 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상품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숙련을 상당한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35)
강 교수는 위 서술로써 정보재의 복제가 결코 그 재생산이 아님을 말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이 어쩔 수 없이 강 교수를 구속하고 있다. 그리하여 위 서술은, 두 문장을 연결하는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거슬리고 문장의 흐름상 적절하지 않지만, 강 교수의 의도와는 전적으로 반대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보자.
“정보재의 경우에는 디지털 형태로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복제하는 것과 (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는 문장은 어떻게 읽혀야 하겠는가? “정보재의 경우에는 디지털 형태로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완벽한 재생산’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에 이어서 “그러나,36) 복제하는 것과 (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예로서 ‘일반적인 재화’ 즉 ‘정보재’가 아닌 재화를 들면서 “일반적인 재화의 경우에는 완전히 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 즉 ‘그 재생산이 매우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다시 나아가서, “일반적인 재화의 경우에는 완전히 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그것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상품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숙련을 상당한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는 식으로 수줍게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가 지적하는 두번째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다. 즉,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정보재의 가치가 +인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정보재는 가치가 0일 수 있다. 정보재를 재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아무런 노동이 들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 가치는 0이 되어야 한다. 과학적 법칙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과학적 법칙은 발견하는 데에는 막대한 노동이 투하되지만 일단 발견되고 나면 더 이상 그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노동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복제가 완전한 (재)생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격의 정보재는 가치가 0이다.37) (강조는 인용자)
그렇다! 바로 그 과학적 법칙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쏘프트사의 윈도우즈XP나 오피스 같은 정보재도 일단 그 쏘스코드가 작성되어 컴파일되고 나면 더 이상 그것을 다시 쓰고 다시 컴파일하기 위하여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복제가 완전한 (재)생산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정보재의 가치는 0이고, 그 가격은 순전한 독점가격, 그것도 이른바 ‘지적재산권’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소유권을 앞세운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독점가격인 것이다!
3. 요괴는?
― 결론에 대신하여
이 외에 강 교수는 ‘정보재의 가치’를 0으로 보았을 경우의 현대 자본주의의 ‘기생성’에 관한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논의를 반복하지는 않겠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극히 부당한 독점가격으로서의 정보재의 가격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성격․모순․운명 등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ꡔ진보평론ꡕ에의 나의 마지막 글이 되어버린, 그 제20호의 “과학기술혁명과 상품의 가치․가격 ― 이른바 ‘정보재’ 가격 문제를 중심으로”를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결론에 대신하여 여기에서 간단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도대체 어떤 요괴(spectre)가 유수한 ‘맑스경제학자들’을 사로잡아 그들로 하여금 “정보재의 가격을 그 가치로서 설명”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요괴를 추적하기 위해서 우선, 정말 정당하게도 “현대자본주의에서도 여전히 노동가치론은 완전히 타당하고, 오히려 노동가치론에 의하지 않고는 현대자본주의의 여러 특징적 현상들이 전혀 설명될 수 없다”38)고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한 뛰어난 맑스경제학자의 놀라운 얘기부터 들어 보자.
쏘프트웨어 생산회사가 판매하고 컴퓨터에 사용되는 쏘프트웨어는 그 자체 ‘쏘프트웨어라고 하는 정보’라고 불리지만, 이 쏘프트웨어는 어엿한 상품(れっきとした商品)이다. 그것은 자본 아래에서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일정한 가격으로 판매된다. 그것은 사용가치와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양자의 통일이다. 쏘프트웨어에는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자(씨스템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등)의 노동이 대상화되어 있고, 이 노동자는 가치를 생산한다. 이 노동자는 자본주의적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이기 때문에 단지 가치만이 아니라 잉여가치도 생산한다.
현실적으로, 예컨대 피씨(PC)나 워드프로세서로서 사용하는 쏘프트웨어가 10만 엔이라는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고, 또 오락기의 각종 게임쏘프트웨어가 시장에서 5000엔이라는 식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들 쏘프트웨어가 상품이 아니라 무엇일까? 쏘프트웨어를 공짜로 복제하는 것은 명백히 저작권법 위반이고, 도둑질과 같다 (최근의 IBM과 히타치, 후지츠의 쏘프트웨어 분쟁을 보라). 설령 쏘프트웨어를 공짜로 복제하기 쉽다고 하더라도 오리지날한 쏘프트웨어는 상품이고,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39) (강조는 인용자)
마츠이시 가츠히코(松石勝彦, 1934년생) 교수는 정말 오랜 관록의 노동가치론 전문가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살골을 넣고 있다고 속단하지는 마라. 다름 아니라, 그러한 관록의 노동가치론 전문가조차 도대체 ‘왜’, ‘어떤 요괴에 사로잡혀서’ 쏘프트웨어는 “사용가치와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양자의 통일”이며,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자는 ... 단지 가치만이 아니라 잉여가치도 생산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쏘프트웨어를 공짜로 복제하는 것은 명백히 저작권법 위반이고, 도둑질과 같다”고까지 말하고 있는가를 추적하기 위해서 그를 인용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쏘프트웨어가 가치와 사용가치의 통일이라는 마츠이시 교수의 논의 중에서 우선 주목할 부분은 그가 그 관록에 어울리게 쏘프트웨어가 “자본 아래에서... 생산되고”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자는 자본주의적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이기 때문에 단지 가치만이 아니라 잉여가치도 생산한다”고, 즉 그 노동자들이 잉여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가 그 노동자들이 자본 아래에서 잉여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하면서 그는 이론적으로 극히 중요한 두 가지 사항을 간과했다.
첫째는, 자본주의적 기업에 고용되어 잉여노동을 착취당한다고 해서 그들 노동자들이 모두 가치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예컨대 상업자본에 의해서 고용되어 있는 상품의 판매노동자나 부기노동자(簿記勞動者)들은 자본주의적 기업에 고용되어 자본 아래에서 노동하고 그 잉여노동을 착취당하지만, 그들이 가치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씨스템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등 쏘프트웨어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기업에 고용되어 잉여노동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쏘프트웨아가 ‘가치와 사용가치의 통일’이고, 따라서 이를 공짜로 복제하는 것은 도둑질과 같다고 말할 충분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물론 자본에 의해서 고용된 씨스템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등의 노동자는 가치를 창출하고 그리하여 잉여가치를 착취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쏘프트웨어의 가치․가격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문자 그대로 절대적으로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든가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다. 10만 엔이나 5000엔 이라는 식의 가격에 비하면 그 가치는 너무나 작아서 사실상 없는 거나 진배없다고 하는 것이 범용 쏘프트웨어와 같은 “정보재는 사실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진의(眞意)이다. ‘사실상’이라고 하는 부사를 구태여 동원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을 마츠이시 교수는, “정보재 역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쏘프트웨어를 공짜로 복제하는 것은 명백히 저작권법 위반이고, 도둑질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그토록 관록 있는 맑스경제학자조차 그렇게 말하도록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요괴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정말 역설적이게도 쏘프트웨어 혹은 정보재의 가치․가격을 문제삼도록 만든 애초의 문제의식 그 자체이다. 혹은 그 정보재가 “어엿한 상품(れっきとした商品)”, 그것도 고가의 상품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하면, 그 재생산에는 사실상 어떤 비용이나 노동도 들지 않는데, 그리고 그것이 누구나에 의해서 그것도 완벽하게 재생산(복제)될 수 있는데, 바로 그러한 재화가 “어엿한 상품”이며, “자본 아래에서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일정한 가격으로 판매된다”고 하는 그 사실 자체이다. 해명 대상이 너무나도 강력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독점자본의 그러한 위력 앞에서 해명하려던 문제의식 자체가 압도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정보상품의 ‘상품화’의 특수성, 그 상품화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 등에 대해서 말했고, 마츠이시 교수 역시 ‘저작권법’을 언급한 것처럼, 쏘프트웨어 등 정보재가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상품으로서 유통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본래적 기구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40) 맑스는 “어떤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그것이 독점될 수 있고 양도될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41)고 말하고 있다. 이는, 뒤집어서 얘기하면, 어떤 물건이 독점될 수 없다면 판매될 수 없다는 것, 즉 상품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의 고찰 대상인 이른바 ‘정보재’는, 강 교수 등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소위 그 ‘비배제성’ 때문에 본래 독점될 수 없고, 따라서 팔 수 있는 물건 즉 상품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률․경찰․사법 등의 국가적 폭력이 그 ‘독점’을 작위적으로 보장 혹은 강제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 바로, 강 교수 등의 논의가, 본인의 본의와 상관없이, 그러한 독점가격의 변호론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1) 채만수, “과학기술혁명과 상품의 가치 ― 이른바 ‘정보재’ 가격 문제를 중심으로”, ꡔ진보평론ꡕ 제20호(2004년 여름).
2) 강남훈, “정보상품의 가치와 잉여가치”, ꡔ진보평론ꡕ 제21호(2004년 가을).
3) 강남훈, ꡔ정보혁명의 정치경제학ꡕ, 문화과학사, 2002, p. 99.
4) 같은 책, pp. 111, 113.
5) MEW, Bd. 25 (ꡔ자본론ꡕ 제3권), S. 783.
6) “지대의 특수한 형태가 어떠하든, 그 모든 형태에 공통적인 것은, 지대의 취득은 토지소유가 실현되는 경제적 형태이고, 그리고 지대는 토지소유, 지구의 특정한 부분들에 대한 특정 개인들의 소유를 전제한다고 하는 것이다.”(MEW, Bd. 25, S. 647)
7) 강남훈, “정보상품의 가치와 잉여가치”, ꡔ진보평론ꡕ 제21호, p. 246.
8) 같은 글, p. 247.
9) 같은 글, pp. 247-48. 참고로, 인용문의 마지막 부분이 원문에서는 “정보재에서는 사람들이 눈”으로 되어 있으나, 명백한 오타일 것이므로 바로잡아 인용한다.
10) 이들 싸이트의 소유자들이 획득하는 ‘이윤’의 실체․본질은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정보재’의 판매자가 획득하는 ‘이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별도의 논의가 요구된다.
11) “소프트웨어, 가치는 존재하는 것인가?”, ꡔ네트워커ꡕ 제17호, 2004년 11월, 진보네트워크, p. 16.
12) 같은 글, p. 17.
13) 같은 글, p. 17 참조.
14) 강 교수는 이를 “... 생산요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강남훈, “정보상품의 가치와 잉여가치”, p. 246)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5) 강남훈, 같은 글, p. 246.
16) 여기의 “생산력의”는 오타여서 단순히 “그”로 바꿔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17) 같은 곳.
18) 주 14)를 볼 것.
19) 강 교수의 어떤 글에서도 ‘의식적으로는’ “자연도 가치를 생산한다”는 식으로는 주장하고 있지 않으며, 실제로 예의 대담에서도 “자연이 가치를 생산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ꡔ네트워커ꡕ 제17호, p. 17)라고 못박고 있다.
20) ꡔ네트워커ꡕ 제17호, 같은 곳 참조.
21) 손애리(상명대 사회학 강사), “ꡔ자본ꡕ의 외부, 외부의 자본”(이진경, ꡔ맑스를 넘어선 맑스ꡕ(그리비, 2004)의 서평), ꡔ진보평론ꡕ 제21호, pp. 324-27, 특히 pp. 326-27 참조.
22) 강남훈, 같은 글, p. 244.
23) 같은 글, p. 245. 이하에서 새로운 각주 이전까지의 강 교수로부터의 인용은 모두 같은 곳으로부터 취하는 것이다.
24) 조원희․조복현, “디지털네트워크 경제의 가격형성과 축적동향”, 한국사회경제학회 편, ꡔ정치경제학의 새로운 방법론 모색ꡕ(ꡔ사회경제평론ꡕ 제18호), 풀빛, 2002, p. 149.
25) 채만수, “과학기술혁명과 상품의 가치․가격 ― 이른바 ‘정보재’의 가격 문제를 중심으로”, p. 237.
26) 같은 글, p. 238.
27) 결코 “2만 시간의 독점이윤”이 아니라 “독점이윤”이다.
28) 강남훈, 같은 책, p. 99.
29) ‘카피하는 것’이 바로 재생산이며, 그 소산인 ‘카피’가 바로 상품으로서의 정보재라고 하는 것에 관한 다른 논의는, 그 논의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ꡔ진보평론ꡕ 제20호의 애초의 나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30) 강남훈, 같은 글, pp. 242-43.
31) 보다 격식 있고 정확하게는 천만 본(本)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마도 옳을 것이다.
32) 같은 글, p. 243.
33) 같은 곳.
34) 같은 곳의 각주 6).
35) 같은 각주.
36) 원문의 “...하지만, ...”는 구문상 명백히 역접(逆接)이다!
37) 같은 글, p. 244.
38) 마츠이시 가츠히코(松石勝彦), "現代資本主義と商品論", 八尾信光 外, ꡔ現代資本主義と「資本論」ꡕ, 新日本出版社, 1991, p. 39.
39) 마츠이시 가츠히코, 같은 글, p. 48.
40) 채만수, 같은 글, p. 250 각주 59).
41) MEW, Bd. 25, S. 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