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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혼란

현장에서 미래를  제104호
편집출판위원회

노무현 정권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혼란

편집출판위원회

한노정연




1. 진보진영․개혁에 대한 “한겨레”의 시각

지난 11월 15일 한겨레신문에는 ‘미국대선의 교훈’이라는 재미있는 글이 실렸다. 내용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이런 미국 선거의 교훈을 발빠르게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중도보수를 지향한다는 기독교와 법조인 운동단체들이 속속 결성되고 있고, 보수적 가치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조갑제씨 등은 인터넷 사상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맞서는 진보진영, 특히 현 집권층의 움직임은 지리멸렬하다. 반대세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떠밀어내고 있다. 그 결과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다. 그러나 이는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개혁의 과잉 탓이 아니라 개혁의 미흡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음이 곧 확인된다. 같은 조사에서 향후 바람직한 국정운영 방향을 묻는 질문에 “진보적으로 가야 한다”(51.8%)는 의견이 보수나 중도적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의 갑절이 넘고, 진보진영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이 “말만 앞서고 실천이 없다”(70.8%)는 점이란 사실이 그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이 의회의 과반수를 점한 뒤 반년이 넘었지만 눈에 띄는 개혁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4대 개혁법안도 소리만 요란했지 진전이 없고 국가보안법 문제에선 물러설 뜻까지 밝혔다. 민생과 관련된 문제는 또 어떤가? 새로 도입하려는 종합부동산세도 구멍이 숭숭하고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내놓은 게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다.

이래서는 현정부나 열린우리당에 미래가 없다. 자신들이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 정당이고 정부인지를 깨닫고 미국 대선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

참으로 “한겨레”스럽다. 이 글에 대한 평가가 목적이 아니므로 내용에 대해 비판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그에게 한국사회는 크게 두 가지의 정치적 경향이 있는데 그것의 하나가 “보수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이다. 그리고 후자에 “특히 현 집권층”을 넣는다. 그리고 “반대세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해”서 “지지율”이 “하락”하는데 그 까닭은 “개혁의 미흡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개혁을 강력하게 진행하라!) 그리고 “개혁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개탄한다. 물론 소위 국가보안법을 포함한 “4대 개혁법안”에 대한 동요와 “종합부동산세”와 “비정규직 보호법안”과 관련하여서는 친부르주아적 성격과 반노동자성에 대한 지적도 놓치지는 않는다. 현상하는 문제를 비판은 하지만 계급적 관점을 상실하여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대중들로 하여금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게 오도하는 것, 정말 소부르주아적이고 “한겨레”스러운 모습이다.

이러한 시각이 한겨레신문 관계자에 의해 그 지면에서 칼럼으로 다루어지면 재미라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운동진영에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면 그것은 안주거리에서 걱정거리로 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관점이 노동자계급운동진영에조차 깊게 침투해있고 널리 퍼져있으며 공공연하게 제기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2. 노무현 정권, 신자유주의적 정권인가? 개혁정권인가?

아직까지도 이 진부한 문제를 다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정권이라는 것은 누구나 확실히 알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나 한마디 한마디 입에서 내뱉는 말에서 우리는 이를 쉽게 확인한다. 물론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에게 가해지는 수없이 반복되는 물리적 공격을 통해 몸으로 확인하고 있어 이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 노무현은 당선 직후 당시 ‘촛불시위’를 자제해주기를 부탁했으며 집권 초부터 노동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으로 수많은 열사들이 생겨나게 했다. 한․칠레자유무역협정(FTA) 체결, NEIS 관련 투쟁, 이라크 파병, 부안 핵폐기장 투쟁, 새만금 관련투쟁, 크고 작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공권력 투입과 탄압(멀리 철도노동자로부터 최근의 공무원노조, 지속적인 이주노동자 탄압 등등)과, 집시법 개악, 테러방지법 등등. 노무현 정권 하에서 일어난 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노무현 정권이 조금도 노동자적이지 않고 민중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의 본질은 친독점자본적․친제국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온 몸으로 느껴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과정에서는 특히 정세가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인식은 혼란스러워 진다. 예컨대 얼마 전의 소위 “탄핵국면”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혼란을 극명하게 볼 수 있다. 당시 친노무현적인 소부르주아지들과 부르주아지들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 그리고 노동자․민중진영의 일부가 “탄핵반대-우리 대통령구하기” 투쟁의 최선봉에서 헌신적인 투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그렇게 나선 명분은 노무현 정권이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민주세력’ 혹은 ‘개혁세력’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보다 더 우선적으로 처단해야 할 반동세력이 있다는 것이다.1)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따라서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행동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한겨레’스러움과의 정치적 차이는 사라지게 된다.

당시 그리고 현재에도 이들의 공통된 정세인식은 한국사회의 여러 정치문제 그리고 민생파탄을 포함한 제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현재는 이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개혁의 미흡”을 강제하는 첫 번째 원인인 “보수세력”의 제거와 이들의 눈치를 보는 “현 집권층”에 대한 비판이 최우선의 정치적 과제로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도된 현실인식이다. 노무현 정권의 개혁 그리고 그 전의 김영삼․김대중의 개혁이라는 것은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그들 개혁정책은 노동자․민중의 삶을 구원하는 방도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더욱 빨리 몰아세우며 민생파탄이 벌어지게 하는 원인이었으며 지금도 그 원인이다. 또한 이들의 ‘전가의 보도’ 즉 자신들은 수구반동과는 다르다는 내용의 ‘정치개혁’, 역시 노동자․민중을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정치개혁’을 둘러싼 소위 ‘개혁-보수’간의 이전투구는 정치자금을 둘러싼 투쟁이고 이후 ‘권력에의 접근 가능성’이라는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힘겨루기에 불과하다. 물론 한겨레의 글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소위 ‘개혁세력’인 ‘현 집권층’은 정치개혁에서마저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 보면 “반대세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들의 부르주아적 본성의 당연한 발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권력을 놓고는 목숨걸고 싸우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한통속으로, 동일한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것을 전제로 다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차라리 자신들의 알량한 정치적 소신을 버리면 버렸지, 상호전제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깨질 수 있는 어떠한 경우가 예상되면 어느 것이든 그들은 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으로 보면 현재의 개혁-보수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라는 것이 없다. 그들은 모두 노동자계급에 적대적이다.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는 동일하다.2)


3. 개혁(reform)이냐? 개량(reform)이냐?

노무현 정권의 개혁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며 이것은 노동자․민중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소부르주아지를 비롯하여 일부 노동자계급운동 진영의 지지를 이끌어 낸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대중을 비롯하여 그들을 지도하겠다는 세력에게도 ‘좋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듯 노무현 정권에 대한 혼란이 초래되는 것은 우선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한국사회는 근 40년간의 극악한 냉전․반공 파쇼의 지배아래에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전면적 위기가 재격화되어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부르주아지들의 반동적 공세가 벌어지지만 한국에는 신자유주의적 반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적 정치상황은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적 반동보다도 더욱 더 반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반파쇼 투쟁이 전개되었고, 노동자계급․민중의 정치적 진출은 파쇼체제에 균열을 내었다. 파쇼적 통치방식은 이제 유효한 방식이 아니게 되었다. 노동자계급․민중의 정치적 진출은 통치방식의 변화를 강제하였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은 괄목할 정도였지만 투쟁성과의 대부분은 변화한 상황에 재빨리 적응한 새로운 부르주아지에게 돌아갔다.

이들 새로운 부르주아지세력은 ‘개혁’의 기치아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강행하는데, 이것은 그들 방식으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이것은 노동자계급 및 민중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현재의 개혁은 노동자․민중을 공격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앞서 살펴본 이유로 초기에 그리고 현재에도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보’의 외피를 쓸 수 있는 것이고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과 자기기만이다.3)

여기에 덧붙여 몇몇 부르주아지들의 진정한(?) ‘개혁’노력 자체는 대중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몇몇 부르주아지들과 소부르주아지들은 진정으로 ‘개혁’을 원한다.

“부르주아지의 어떤 부분은 부르주아 사회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적 폐해를 제거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속한다 : 경제주의자,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노동 계급 처지 개선론자, 자선사업가, 동물 학대 철폐론자, 금주협회 헌금자 등의 잡다하기 그지없는 좀스러운 개혁가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완전한 체계로 완성되어 있다.

그 예로 우리는 프루동의 ꡔ빈곤의 철학ꡕ을 든다.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들은 [현대 사회의 생활 조건들을 원하되],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투쟁들과 위험들이 없는 현대 사회의 생활 조건들을 원한다. 그들은[현존 사회를 원하되], 그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고 그 사회를 와해시키는 요소들을 제거한 현존 사회를 원한다. 부르주아지는 물론 자기가 지배하는 세계를 최상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위안이 되는 이러한 관념을 반쪽이든 완결적이든 하나의 체계로 완성시킨다. 부르주아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체계를 실현하고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할 때에, 사실상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오늘날의 사회에 머물러 있되 그 사회에 대한 원한이 가득 찬 그들의 생각은 버릴 것을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의 덜 체계적이면서 한층 더 실천적인 또 하나의 형태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오직 물질적 생활 상태, 경제적 상태의 변화만이 이로움을 줄 수 있다고 증명함에 의해서 노동자 계급이 모든 혁명적 운동을 배척하도록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는 물질적 생활 상태의 변화를 오직 혁명적 방식으로만 가능한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들의 철폐로서 이해하지 않고, 이 생산 관계들의 토양 위에서 행해지는, 따라서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는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기껏해야 부르주아지의 지배 비용을 감소시키고 그들의 국가 운영을 간소화시킬 뿐인 행정적 개선으로 이해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그것이 단순한 웅변적 모습을 띨 때에만 비로소 그 가장 적합한 표현을 얻는다.

자유무역! [단]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보호 관세! [단]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독방 감옥! [단]노동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이것이 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유언이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유일한 말이다.

부르주아 사회주의의 본질은 바로, 부르주아는 부르주아라는-[단] 노동 계급의 이익을 위한-주장에 있다.”4)

“부르주아지의 어떤 부분은” “사회적 폐혜를 제거하”기 위해 열심이다. 그러나 그것의 목적은 “부르주아 사회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하여”서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사회가 존재하는 한 “사회적 폐혜”의 제거는 불가능하다. “부르주아지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이 사회구조상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폐혜를”, 저지르면 그들을 비판하며 나선다. 기간의 ‘구악일소’니 ‘부정부패 척결’이니, ‘정의사회 구현’이니, ‘숙정’, ‘사정’이니 하던 것이 모두 그것이다. 물론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커다란 “사회적 폐혜”인 ‘잉여가치의 착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것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소부르주아지는 ‘분배정의’를 외치며 내․외부에서 나름대로의 투쟁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소동은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하다. 이들은 언제나 기만당하고 이용당한다. 이들 역시 “기만과 자기기만의 어리석은 희생물이”5)다.

마지막으로 대중을 “기만과 자기기만”에 빠지게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선진활동가들의 전도된 현실인식이다. 이는 선진활동가들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불충분하게 해방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6) 현재에도 “개혁”을 둘러싸고 이런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부 부르주아지에게 있어서 개혁의 요구는 필연적이고 그들 존재의 근거이다. 그들은 한편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폐혜를 은폐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개혁이라는 구호를 활용한다. 이것이 그들이 그토록 개혁에 목매다는 이유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에게 그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열악한 상태를 개선 혹은 악화를 막기 위해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와중에 때때로 노동자계급의 힘에 밀린 부르주아지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혁명투쟁으로 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듯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 혹은 부르주아사회의 혁명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르주아지에게 강제됨과 동시에 부르주아지에게 이용되는 것으로서의 ‘부르주아 사회의 일정한 재편’, 이것을 우리는 오래전에 주로 “개량(reform)”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개혁(reform)”이라고 불린다. 둘은 아무 차이도 없으며,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에 대해 논할 때 “개혁의 이중성” 즉 같은 의미로 “개량의 이중성”을 잊지 말아야하며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7)

일반적으로 우리는 개량을 이렇게 ‘이중적’이라고 파악한다. 즉 개량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의해 부르주아지들이 어쩔 수 없이 내놓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진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혁명을 저지․약화․소멸시키기 위해 내놓는 양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순간도 개량의 중요성은 잊지 않는다.8) 이것이 개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개혁’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가? 여기서 우선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과 태도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객관적으로 전개되는 일들을 보고 그것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또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파악하여야 한다. ‘개혁’이라는 주장 하에 현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그것이 ‘한 단계 진전’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개량인지 아니면 개혁이라는 이름의 ‘인민에 대한 기만’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유물론적 태도이며 이론을 신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노동자계급 일부에서 주장되는 ‘개혁의 옹호’는 유물론적 태도를 상실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전적인 의미로서의 ‘개혁’이라는 말에 주관적․관념적으로 경도되어, 즉 ‘한 단계 진전’으로서의 개량이라는 개념에 현혹되어, 구체적 현실에 대한 올바른 판단능력을 상실한 주장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현재 진행되는 개혁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일보”도 아니고 “‘한 단계’의 진전이”아니며, “그러한 의미에서” “개량”이 아니다. 오히려 “보수적 방책”이고 때때로 “반동적 방책”이기까지 하다.

노동자계급의 선진활동가의 임무는 노동자계급대중을 올바로 지도하는 것이다.9) 선진활동가가 올바름을 견지하는 것, 이것은 그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소양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이러한 능력을 갖지 못하면 대중을 지도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자기 자신조차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10)

4. 노동자계급 운동의 독자성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명확한 태도, 즉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혹은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지에 대한 판단의 혼란은 결국 노동자계급 운동의 독자성을 훼손․부인하게 한다. 이는 결국 노동자계급 운동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혹은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의 운동에 종속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스스로에 의해서 전취되어야 한다.”11)고 한다. 노동자계급 운동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노동자계급 운동의 독자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조직적 독자성과 이데올로기적 독자성 그리고 전략․전술적 독자성 모두를 포함한다.12)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독자적 조직, 즉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된 노동자계급의 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당은 노동자계급 운동의 필요에 의해서 제기되며 동시에 해방의 전제가 된다.13)

당이란 무엇인가? 당은 한마디로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계급을 지도하기 위해 계급대중과 밀접히 연결된 계급의 전위가 결집한 정치조직이다. 그러면 왜 당인가?

대중들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 사회적 생산체제 내의 위치에 따른 분류에 관계없이 압도적 다수 일반과 사회적 생산체제 내의 특정한 지위를 갖고 있는 부류들을 대비시켜야만 대중과 계급들을 대비시킬 수 있다는 것, 보통 대부분의 경우, 적어도 현대 문명국들에서는 정당들이 계급들을 지도한다는 것, 정당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책임있는 자리에 선출되어 지도자라고 불리는 가장 권위있고 영향력 있으며 노련한 당원들로 이루어진 어느 정도 견실한 그룹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 등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14)

간명하다. 그리고 당일 수밖에 없다.15) 문제는 어떠한 당이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당인가 하는 것이다.

당이 진정으로 노동자의 당인가 아닌가는 당이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당을 지도하고 있는가, 당의 행동과 정치전술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오직 이것만이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정당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를 결정한다. 유일하게 올바른 이 입장에서 보면, 노동당은 철두철미하게 부르주아 정당이다. 왜냐하면 노동당은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당을 지도하는 것은 반동가-완전히 부르주아지의 정신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최악의 반동가-이기 때문이다.16)

이것은 1920년의 영국 노동당에 대한 레닌의 평가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당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당의 구성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누가 당을 지도하고 있는가”와 “당의 행동과 정치전술의 내용”에도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당의 행동과 정치전술의 내용이 ‘노동자계급의 당’임을 보장하는가?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당이며, 철의 규율을 유지할 수 있는 당이다.17)

그런 당을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장 시급한 임무다.

5. 사족

최근 얼마동안 우리 연구소에서는 지난 ‘탄핵국면’에서의 노동자계급의 대응과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이른바 “민중탄핵론 논쟁”이었다. 급박하게 벌어진 구체적 상황에서 전술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은[비록 여러 사정에 의해 논쟁은 “봉(封)”되었지만] 우리에게 부족했던 내부 이데올로기투쟁에 대한 새출발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지금 이 글의 주제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독자들의 검토를 강력히 권고한다.

한/노/정/연


1)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 결의대회 참가자 일동’,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정치폭거 탄핵 만행, 민생파탄 수구보수 부패정치 청산하자」(2004. 3. 16)  (http://www.another0415

1)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 결의대회 참가자 일동’,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정치폭거 탄핵 만행, 민생파탄 수구보수 부패정치 청산하자」(2004. 3. 16)  (http://www.another0415

   .net/maybbs/view.php?db=another0415&code=dispute6&n=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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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영,「민중 운동은 왜 탄핵에 반대해야 하는가?」,ꡔ다함께 26호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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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노총이 탄핵 반대 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ꡔ다함께 27호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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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식,「민주노동당은 탄핵 반대 운동을 지지해야」,ꡔ다함께 27호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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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구현․이해영․최형익,“탄핵정국에 대한 올바른 정치적 접근과 ‘민중탄핵론’비판”

   남구현․이해영․최형익,“탄핵정국에 대한 올바른 정치적 접근과 ‘민중탄핵론’비판”

   (2004. 3. 23.),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98호, 2004년 5월, pp. 85-93.

   (2004. 3. 23.),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98호, 2004년 5월, pp. 85-93.

   (http://www.another0415.net/bbs/view.php?code=reformisnotrevol&id=26&page=2

   (http://www.another0415.net/bbs/view.php?code=reformisnotrevol&id=26&page=2

   http://www.another0415.net/bbs/view.php?code=reformisnotrevol&id=27&page=2)


2) “전세계에 걸친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운동과 노동자당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 두가지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폭력, 박해, 압제 그리고 억압이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중세의 봉건적 방식이다. 모든 곳에서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부르주아지의 분파나 그룹이 존재하며-선진국에서는 보다 적게 존재하는 반면 후진국에서는 보다 광범하게 존재한다-임금노예 제도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일정정도 큰 위기의 순간에 봉착하면 모든 부르주아지가 그런 방식을 채택하는 데 동의한다. 그러한 순간의 역사적 사례로서 영국의 차아티스트 운동이나 1849년과 1871년의 프랑스를 들 수 있다.

2) “전세계에 걸친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운동과 노동자당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 두가지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폭력, 박해, 압제 그리고 억압이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중세의 봉건적 방식이다. 모든 곳에서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부르주아지의 분파나 그룹이 존재하며-선진국에서는 보다 적게 존재하는 반면 후진국에서는 보다 광범하게 존재한다-임금노예 제도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일정정도 큰 위기의 순간에 봉착하면 모든 부르주아지가 그런 방식을 채택하는 데 동의한다. 그러한 순간의 역사적 사례로서 영국의 차아티스트 운동이나 1849년과 1871년의 프랑스를 들 수 있다.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운동에 대항하여 채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노동자를 분할하고 대오를 분쇄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개별 대표자나 일정 그룹을 설복하기 위해 매수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봉건적이지 않은 순수한 부르주아적인 것이며 자본주의의 발달되고  문명화된 관습과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 현대적 방식이다.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운동에 대항하여 채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노동자를 분할하고 대오를 분쇄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개별 대표자나 일정 그룹을 설복하기 위해 매수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봉건적이지 않은 순수한 부르주아적인 것이며 자본주의의 발달되고  문명화된 관습과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 현대적 방식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체제는 부르주아사회의 특색, 즉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부르주아적 특색이며, 거기에서는 가장 자유롭고 광범하며 명쾌한 계급투쟁이 최고의 교활함과 결합되어 있는, 즉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영향력을 임금노예 사이에 확산시켜 임금 노예제도를 거부하는 투쟁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려는 계략 및 구실과 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체제는 부르주아사회의 특색, 즉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부르주아적 특색이며, 거기에서는 가장 자유롭고 광범하며 명쾌한 계급투쟁이 최고의 교활함과 결합되어 있는, 즉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영향력을 임금노예 사이에 확산시켜 임금 노예제도를 거부하는 투쟁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려는 계략 및 구실과 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광범한 후진성에 조응하여, 이 나라에서는 봉건적 방식이 노동계급운동에 대항하는 전투에 매우 유력하게 사용된다. 그렇지만 1905년 이후 노동자를 기만하고 매수하는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이 채택될 정도로 괄목할만한 “진전”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레닌, 「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 인텔리의 투쟁방법」, ꡔ러시아 반종파투쟁ꡕ, 미래사, 1990, pp.239-240.)


3) “인민들은 정치적으로 언제나 기만과 자기기만의 어리석은 희생물이었으며, 또한 그들이 모든 도덕적․종교적․정치적․사회적 문구, 선언, 약속 뒤에 있는 이런저런 계급의 이익을 발견해내는 것을 배울 때까지 언제나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레닌,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요소」, ꡔ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발전의 몇 가지 특징들 외ꡕ, 두레, 1989, p.49.)


4) 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ꡔ저작선집ꡕ제1권, 박종철 출판사, pp.427-8.


5) 소위 ‘개혁적 부르주아적 정당’을 지도하는 것은 소부르주아지가 아니다. 그들은 소위 ‘극우반동세력의 정당’과 타협하고 사실상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주려는 생각을 꿈에도 가져보지 못한 정치집단에 목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가장 “어리석은 희생물이”다.


6) “한편으로는 독일의 이런 유리한 상황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섬나라라는 특성과 프랑스 운동에 가해진 강력한 탄압정책 때문에 이제까지 독일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투쟁의 전위역할을 해왔다. 상황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들에게 이러한 명예로운 지위를 허락할는지 예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그 지위에 있는 동안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과 선동의 모든 영역에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지도자들은 모든 이론적 문제에 대해 한층 더 명확한 통찰력을 획득해야 하며, 낡은 세계관으로부터 계승된 인습적 문구가 끼치는 영향력에서 더 철저히 벗어나야 하며, 사회주의가 과학으로 된 이후 그것은 과학으로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사실, 즉 학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이렇게 획득한 한층 더 명확한 이해를 노동자들에게 한층 더 뜨거운 열의로 전파하는 것이며, 당과 노동조합의 조직을 더욱 강력히 결합시키는 것이다.”(엥겔스, 「제2판 서문 추기」,ꡔ독일농민전쟁ꡕ, 아침, 1988, pp.25-6.)

6) “한편으로는 독일의 이런 유리한 상황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섬나라라는 특성과 프랑스 운동에 가해진 강력한 탄압정책 때문에 이제까지 독일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투쟁의 전위역할을 해왔다. 상황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들에게 이러한 명예로운 지위를 허락할는지 예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그 지위에 있는 동안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과 선동의 모든 영역에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지도자들은 모든 이론적 문제에 대해 한층 더 명확한 통찰력을 획득해야 하며, 낡은 세계관으로부터 계승된 인습적 문구가 끼치는 영향력에서 더 철저히 벗어나야 하며, 사회주의가 과학으로 된 이후 그것은 과학으로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사실, 즉 학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이렇게 획득한 한층 더 명확한 이해를 노동자들에게 한층 더 뜨거운 열의로 전파하는 것이며, 당과 노동조합의 조직을 더욱 강력히 결합시키는 것이다.”(엥겔스, 「제2판 서문 추기」,ꡔ독일농민전쟁ꡕ, 아침, 1988, pp.25-6.)

   레닌은 ꡔ무엇을 할 것인가?ꡕ의 한 절인 “4. 이론투쟁의 중요성에 대한 엥겔스의 말”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였다.


7) “모든 개량은 그것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일보이고, ‘한 단계’의 진전이며, 그러한 의미에서만 개량이다(반동적인 방책도 아니며 보수적인 방책도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개량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개량은 혁명을 저지하고 약화시키거나 소멸시키기 위하여, 혁명적 세력의 힘과 정력을 세분시키고 그 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지배계급이 내놓는 양보이다.”(Lenin, CW, Vol.12, p.237. 오건호,「개량 문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개량의 ‘한계’ 및 ‘경계’와 개량주의」, ꡔ현실과 과학ꡕ제9권, 1991, p.15에서 재인용 )

7) “모든 개량은 그것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는 일보이고, ‘한 단계’의 진전이며, 그러한 의미에서만 개량이다(반동적인 방책도 아니며 보수적인 방책도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개량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개량은 혁명을 저지하고 약화시키거나 소멸시키기 위하여, 혁명적 세력의 힘과 정력을 세분시키고 그 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지배계급이 내놓는 양보이다.”(Lenin, CW, Vol.12, p.237. 오건호,「개량 문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개량의 ‘한계’ 및 ‘경계’와 개량주의」, ꡔ현실과 과학ꡕ제9권, 1991, p.15에서 재인용 )

   “따라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는 혁명적 계급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개량을 활용하는 것을 결코 거절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도 중도반단의 부르주아적 슬로건을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는다…사회민주주의는 개량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계급투쟁의 부산물로서 파악하고 활용한다.” (레닌, 「결의문을 어떻게 써서는 안되는가(1907)」, 김상복, ꡔ고전으로 배우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략과 전술ꡕ 새길1991, p.126.에서 재인용)

   “따라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는 혁명적 계급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개량을 활용하는 것을 결코 거절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도 중도반단의 부르주아적 슬로건을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는다…사회민주주의는 개량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계급투쟁의 부산물로서 파악하고 활용한다.” (레닌, 「결의문을 어떻게 써서는 안되는가(1907)」, 김상복, ꡔ고전으로 배우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략과 전술ꡕ 새길1991, p.126.에서 재인용)

   두 인용문의 원 출처는 레닌의 「어떻게 결의안을 써서는 안되는가」인데, 다른 번역문에서는 “개량”을 “개혁”으로 번역했다. (「어떻게 결의안을 써서는 안되는가」,ꡔ레닌저작집 4-3ꡕ, 전진, pp.387-8.를 참조하라)


8) “무정부주의자들과는 달리, 맑스주의자들은 개량, 즉 지배계급의 권력을 파괴하지 않고 근로인민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동시에 맑스주의자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노동자계급의 목표와 활동을 개량의 쟁취에 제한하는 개량주의자들에 대하여 가장 결정적인 투쟁을 수행한다. 개량주의는 개인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지배가 있는 한 언제나 임금-노예로 남아있을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적 기만이다.”(레닌, “Marxism and Reformism”, CW. vol 19)

8) “무정부주의자들과는 달리, 맑스주의자들은 개량, 즉 지배계급의 권력을 파괴하지 않고 근로인민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동시에 맑스주의자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노동자계급의 목표와 활동을 개량의 쟁취에 제한하는 개량주의자들에 대하여 가장 결정적인 투쟁을 수행한다. 개량주의는 개인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지배가 있는 한 언제나 임금-노예로 남아있을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적 기만이다.”(레닌, “Marxism and Reformism”, CW. vol 19)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3/sep/12b.htm)


9) “개혁과 진보의 승리자는, 모든 낡은 제도가 비록 아무리 야만스럽고 부패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특정 지배계급의 힘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그 자신들이 낡은 질서의 옹호자에게 언제나 농락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계급의 저항을 분쇄하는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바로 그 사회에서 낡은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을 형성할 수 있는-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입장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할-세력들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세력들을 투쟁을 위해 계몽하고 조직하는 것이다.”(레닌, 「마르크스주의의 세가지 원천과 세가지 구성요소」, ꡔ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발전의 몇가지 특징들 외ꡕ, 두레, 1989, p.49.)


10) “먼저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난다. 곧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규율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그 규율은 어떻게 검증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강화되는가? 첫째,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의식성에 의해서, 그리고 혁명에 대한 그들의 헌신, 곧 전위의 끈기와 자기희생 및 영웅적 행동에 의해서이다. 둘째, 일차적으로는 가장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근로인민 대중들과, 뿐만 아니라 비프롤레타리아 근로인민 대중들과도 연결을 갖고 가장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며, 그리고 당신들이 원한다면 어느 정도는 융합할 수 있는 전위의 능력에 의해서이다. 셋째, 이 전위가 발휘하는 정치지도력의 올바름에 의해서, 곧 전위의 정치전략 및 전술의 올바름에 의해서인바, 이것은 가장 광범한 대중들이 자신들의 경험으로써 그 전략 및 전술의 올바름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조건들 없이는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여 사회 전체를 변혁시키고 말 선진계급의 당이 진정으로 될 수 있는 혁명적 당의 규율이란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러한 조건들 없이는 규율을 세우려는 시도들은 불가피하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장난과 광대짓으로 끝나버린다. 다른 한편, 이러한 조건들은 단번에 생겨날 수 없다. 그것들은 꾸준한 노력과 고난 속에서 얻어진 경험에 의해서만 창출된다. 이들 조건의 창출은 올바른 혁명이론에 의해 촉진되며, 역으로 이 혁명이론은 도그마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으로 대중적인, 진정으로 혁명적인 운동의 실천과 밀접히 연관될 때에만 완전히 나타나게 된다.”(레닌, ꡔ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ꡕ, 돌베개, 1989, pp. 18-9.)ꡕ


11) 맑스, 「국제노동자 협회 임시 규약」,ꡔ저작선집ꡕ제3권, 박종철출판사, p. 14.


12)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주의자의 항상적이고, 변경할 수 없으며 절대적인 의무이다. 이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말로의) “사회주의적” 확신이 아무리 성실해도 사회주의자임을 사실상 그만두게 된다.”(레닌, 「사회주의 당과 비당적 혁명주의」,ꡔ레닌저작집 3-3ꡕ, 전진, p.344.)


13) “프롤레타리아트는 유산계급의 집단적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유산 계급에 의해 설립된 낡은 모든 당들과 대립되는 특별한 정당으로 자기 자신을 구성할 때에만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

13) “프롤레타리아트는 유산계급의 집단적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유산 계급에 의해 설립된 낡은 모든 당들과 대립되는 특별한 정당으로 자기 자신을 구성할 때에만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정당으로 구성하는 일은 사회 혁명 및 그것의 최종 목표인 계급 폐지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맑스․엥겔스,「1892년 9월 2일에서 7일까지의 헤이그 일반 대회의 결의안」,ꡔ저작선집ꡕ제4권, 박종철 출판사, p. 157.)


14) 레닌, ꡔ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ꡕ, 돌베개, 1989, p. 39.


15) “계급 구분에 기초한 사회에서 적대적인 계급들 사이의 투쟁은 투쟁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정치투쟁이 되게끔 되어 있다. 정치적 계급투쟁에 대한 가장 목적의식적이고 가장 포괄적이며 특별한 표현은 당들 사이의 투쟁이다.”(레닌, 「사회주의 당과 비당적 혁명주의」,ꡔ레닌저작집 3-3ꡕ, 전진, pp.342-3.)


16) 레닌, 「영국 노동당에 가입하는 것에 대한 연설」, 1920, ꡔ전집ꡕ제31권, pp.251-2. 김상복, ꡔ고전으로 배우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략과 전술ꡕ 새길1991, p.165.에서 재인용)

16) 레닌, 「영국 노동당에 가입하는 것에 대한 연설」, 1920, ꡔ전집ꡕ제31권, pp.251-2. 김상복, ꡔ고전으로 배우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략과 전술ꡕ 새길1991, p.165.에서 재인용)

   같은 시기에 레닌은 분열되어 있는 영국공산주의자들에게 하나의 공산당으로 통합하고 노동당과 선거협약을 제안하라고 권고한다.( 레닌, 「9. 영국의 “좌익”공산주의」, ꡔ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ꡕ, 돌베개, 1989, pp. 85-100.


17) 주 10)을 참조. 여기서 정치전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사회민주주의자의 전술은 그것의 기본적인 원칙을 정의하거나 원칙(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명제)의 어떤 것이 포함되었고 왜 포함되었는가를 밝히지 않아도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 즉 사회민주주의자의 전술은 당면시기에 당면한 투쟁의 목표(즉시 가능한 결과)나 그 시기 적용될 투쟁방법을 명확히 하지 않아도 항상 최대한의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다고 말하는 것, 우리의 전술이 대중역량을 강화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공개적인 투쟁과 미덥지 못한 통치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하는 활동에 대한 자명한 이치를 되풀이하는 것-이런 것의 모든 결점은 불을 보듯 명백하며 전반적인 논지를 불필요하고 무용한 자갈로 변화시킨다.” 레닌, 「어느 정치평론가의 노트」,ꡔ러시아 반종파투쟁-1908-14년의 좌우익 기회주의ꡕ, 미래사, 1990, pp.47-8.


2004-12-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