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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생산입지 안정을 위한 연대 그 이후

현장에서 미래를  제11호
정병기

특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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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생산입지 안정을 위한 연대

(Bundnis fur Arbeit und Standortsicherung), 그 이후



정 병 기 (해외연구원, 베를린자유대 박사과정)



독일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할 말이 많다. 아이들은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학생들은 학교와 대학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장과 노조 사무실에서, 그리고 이제는 거리에서도 플랭카드와 시위를 통해 정부의 긴축정책에 대항하고 있다.

“고용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용안정에 반대하는 연대였다. 연방정부는 노동자와 실업자, 연금수령자들로부터 마지막 한 푼까지 빼앗고자 한다.” 4월 23일, 최종 회담이 결렬된 후 밝힌 독일 노총위원장 디터 슐테(Dieter Schulte)의 소감이다 (슈피겔지 5월 27일자, 93쪽). 그는 이어 5월 12일 총파업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뜨거운 여름’의 맛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정부에 경고했다.

금속노조위원장 클라우스 쯔비켈(Klaus Zwickel)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지난 1월 23일 목표설정에 합의한 바 있었던 노사정 간 ‘고용안정을 위한 연대’는 무산되었다. 당시만 해도 슐테와 쯔비켈은 장기 실업자들의 저임금 고용과 토요일 노동까지 수용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는 그 이상을 원했으며, 사실상 콜정부의 긴축정책은 노조의 연대와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임금인상 자제의 양보조건에 대해 콜정부는 5백억 마르크의 긴축정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4월 23일의 회담후 정부측 대표는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갈등을 거쳐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분명히 말했으며, 사용자 측은 “방향은 올바르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촌평했다. 노동운동의 두 지도자는 이제 조직원들에게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오히려 잃은 것만 남았으며, 이제는 있는 것만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투구해야만 한다. 이제 노총과 산별 노조들은 정부 및 사용자단체와의 합의 추구를 포기하고 다른 연대의 상대를 찾아 나섰다. 사민당과의 연대와 교회 및 사회복지단체와의 회담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정권교체의 희망을 분명히 하며 사민당에 대한 정치적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해 11월 5일, 금속노조 전국대회에서 쯔비켈 위원장이 한 처음 제안은 ‘고용안정을 위한 연대’(Bundnis fur Arbeit)였다. 즉 향후 3년간 기업이 정리해고를 중단하고 고용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정부가 사회보장 축소와 폐지를 중지하면, 노조는 97년 임금인상을 물가인상 수준에서 자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 1월 23일 회담 이후 그것은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같은 생산입지 안정을 위한 일련의 정책들을 포함한 ‘고용과 생산입지 안정을 위한 연대’(Bundnis fur Arbeit und Standortsicherung)로 바뀌었다. 이것은 내용 면에서 긴축재정과 사회보장 축소 및 노동자 부담의 강화를 의미함은 물론이다. 처음부터 노조는 이를 고용안정을 위한 연대로 보았고, 정부와 사용자는 생산입지 안정을 위한 연대를 노조 측이 수용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1월 28일 쯔비켈은 재차 동독 지역의 고용안정을 위한 연대협약의 체결까지 제안했으나, 결국 아무런 메아리도 없었다.

그러나 1월 23일의 공동 협정서조차 구체적 실행방안 없이 목표설정에만 동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실천 가능성을 담보하지는 못했었다.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 헨쉐(Detlef Hensche)도 이미 이를 지적하여 비판한 적이 있다. 따라서 4월 23일의 회담은 일면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한 논의가 기대되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노조의 임금자제에 대해 총 5백만 마르크의 예산 절약계획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현재 독일의 실업자 수는 서독 273만과 동독 118만을 합해, 작년보다 30만 명이 많아진 총 391만에 달한다. 이러한 대량실업의 문제는 노조 조직원의 감소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1991년 이후 노총 전체 조직원 중 약 2백5십만 명이 줄었으며, 금속노조에서만도 75만 5천 명, 건설노조에서는 약 25%인 72만 5천 명이 실업, 또는 조기연금생활로 들어갔다 (슈피겔 5월 27일자, p. 92). 한편 물가는 다소 그 증가율이 주춤하긴 했으나 1.5%가 상승했으며, 국내총생산의 성장세는 95년의 1.9%에 비해 약 절반 이하인 0.75%로 둔화되었다 (Reinhard Bispinck와 WSI-Tarifarchiv, AVom Lohnstreik zum ‘Bundnis fur Arbeit’: Tarifpolitik im Umbruch - Eine Bilanz des Jahres 1995”, in WSI-Mitteilungen, 3/1996, p. 141-165). 물가 상승률이 그 자체로 높지는 않으나, 최근 사회 보장제도의 축소 과정을 감안하면, 노조의 임금자제가 결코 작은 폭의 양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실업과 관련된 노조 세력의 위축은 더욱 큰 문제였다. 전통적으로 강력했던 금속노조 위원장으로부터 협조적인 연대의 제안이 나오고 이것이 노총에 의해 수용된 것이 두 노동운동 지도자의 인물적 변수의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는 95년 말 여론조사를 통해 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알렌스-바하 여론조사기구(Allensbach-Umfrage)의 조사를 보면, 전에 없이 실업문제가 심각한 상황 때문에 72%의 국민들과 83%의 노조원들이 이 연대 정책 제안의 필요성에 공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R. Bispinck/WSI-Tarifarchiv, p. 164).  뿐만 아니라 쯔비켈의 이 연대 제안 이후 다른 산별 노조들도 대부분 이 제안을 수용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문제는 1월 23일 이후 연대 협정의 내용이 계획과 달리 수정되어 나타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정부의 긴축정책 관철 시도에 있었다. 그에 따라 언론노조(IG Medien)와 사무직 노조(DAG), 무역-은행-보험 노조(HBV), 공무-운수-교통 노조(OTV) 등은 긴축정책에 반대하기 시작했고 연대협정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또한 베를린 대학 등에서는 이미 3월 중순 경부터 시위를 시작하여, 연휴가 끝난 직후인 5월 28일부터는 80년대 말 이후 최초의 파업과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총과 금속노조는 4월 23일 최종 결렬 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않아, 비록 병가 중 임금 계속지급 문제와 여성의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는 데는 강경하게 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 비판세력들과 다른 산별 노조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상 교원노조(GEW)의 제안으로 최종 협상 직전에 금년초 15개-건설노조(IG Bau-Steine-Erde)와 농림업노조(Gewerkschaft Gartenbau, Land- und Fortwirtschaft)가 건설-농업-환경 노조(IG Bauen-Agrar-Umwelt: 약칭 IG BAU)로 통합함으로써, 종래 16개 산별 노조가 15개 산별 노조로 바뀜- 산별 노조 지도자와 노총 중앙위원들 간의 사전회의가 열려 많은 부분 이미 이 연대 협정이 무산되었음을 확인하기도 했었다.

예상대로 노조의 회담 성사 기대는 무위로 끝났고, 정부는 노조의 동의를 구함이 없이 긴축재정과 사회보장 축소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콜정부는 자신이 집권하고 있는 의회에 무리 없이 이 계획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경제성장과 고용 촉진을 위한 프로그램(Programm fur mehr Wachstum und Beschaftigung)”으로 불리는 정부 계획은 21세기의 생산입지 독일을 준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4백만에 달하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 국가의 경제적 기초를 튼튼히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방 예산 2백5십억 마르크를 포함하여 총 5백억 마르크의 예산 절약을 핵심으로 하는 이 계획안의 내용은 노조 및 사회 각 부문과의 갈등을 예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약 80%에 달하는 기업의 해고요건을 완화

2. 연방노동부 예산 대폭 삭감으로 실업 수당과 사회부조 감축

3. 병가 중 임금 지급의 20% 삭감

4. 치료비보조액 중 임금의 10%에 해당하는 액수 삭감(결국 병가 중에는 임금의 70%만 받게 됨)

5. 그 외 의료보험료 및 치료비 개인 부담분 증가

6. 여성의 연금 수령 연령 상향 조정

7. 양육 보조비 증가 계획의 1년 연기

8. 기업 투자 유발을 위해, 각종 보험의 기업 분담률 하향 조정과 조세 감면

9. 기타 대학 및 교육 및 자치 기관에 대한 지원 감축과 지방정부 부담 증가


정부와 사용자의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독일의 임금부대비용이 지나치게 커서 생산입지로서의 위치가 위태롭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독일 2차 산업의 1988년과 1995년 임금과 임금비용

(정규직 임금총액에 대한 백분율)

임금명목

1988

1993

마르크

%

마르크

%

총 임금 비용

61 800

128.7

83 770

130.4

임금 총액

48 010

100.0

64 235

100.0

정액 급여

39 140

81.5

53 160

82.8

-연중 노동

34 270

71.4

46 510

72.4

-연중 휴가

4 870

10.1

6 650

10.4

특별 급여

5 370

11.2

6 794

10.6

-휴가비

1 670

3.5

2 283

3.6

-연중 특별 급여

3 200

6.7

3 953

6.2

-자산 증식에 따른 특별급여

   500

1.0

   558

0.9

-성과, 이윤에 따른 특별급여*

 

 

 

 

계속 급여

3 490

7.3

4 281

6.7

- 병가

1 670

3.5

2 372

3.7

- 법정 공휴일

1 820

3.8

1 909

3.0

- 단협, 기업 규정 공휴일**

 

 

 

 

임금 부대 비용

13 790

28.7

19 534

30.4

사회보장비 기업분담금

8 650

18.0

12 372

19.3

- 연금 보험#

5 230

10.9

 

 

- 실업 보험**

 

 

 

- 의료 보험#

2 670

5.6

 

 

- 산재 보험#

   750

1.6

 

 

기업 내 양로 복지

2 690

5.6

3 302

5.1

직업 교육, 해고 보상

2 450

5.1

3 860

6.0

출처: Die Quelle: Funktionarzeitschrift des DGB, 1996년, 5월호, 31쪽.

* 88년 이후 94년까지 1%내외로 지급되었음.

** 88년 이후 92년까지 지급 또는 분담했음.

# 92년까지 지급 또는 분담했음.

노총은 기관지인 Die Quelle 금년 5월호에서, 연방 노동부와 사용자 측의 계산이 두 가지 조작을 통해 철저히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며 나름대로 다시 계산함으로써 이를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금에서 자동으로 떼어져 나가는 각종 보험으로 이루어지는 임금부대비용은 1995년의 경우 실수령액인 임금총액 기준 30.4%에 해당한다. 이 비율은 88년의 28.7%에 비해 단지 1.7% 증가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노총의 주장에 따르면, 연방 노동청과 사용자 측은 임금총액 중 실제 노동한 날짜에 해당하는 부문만을 분리한다. 곧 각종 특별급여와 계속급여 및 연중 휴가비뿐만 아니라 연중 노동 중에서도 17%를 빼내어 ‘인건비부대비용’(Personalnebenkosten)으로 달리 규정하는 첫 번째 조작과, 나머지 55.4%만을 ‘실제 노동 임금’(Entgelt fur geleistete Arbeit)으로 보는 두 번째 조작을 통해, 80.5%에 달하는 임금부대비용을 산출해 낸다(30쪽). 이렇게 계산된 임금부대비용이 사용자 측의 입장에서는 안 주어도 되는 아까운 지출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또한 노조 내 비판적 입장에서는, 지멘스의 경우 94년도에 세금은 1억 마르크를 낸 데 비해 공공 지원은 1억 9천만 마르크를 받는 등 대기업에 대한 조세 징수가 편파적이거나 지나치게 규율 정책적(Ordnungspolitik: 구체적 개입이 아니라 큰 테두리의 행동 규율만 정해 놓는 탈규제적 정책)이기 때문에, 재정적자의 원인은 바로 콜 정부와 대기업 자체에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정부의 기업 지원이 다시 사회로 환원되지 않는 경우 기업 경쟁력 제고와 경제 발전이 복지 국가의 재건이나 실업 구제로 연결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다른 것들도 모두 그렇겠지만, 특히 병가 중 임금 지급은 휴가기간 연장 및 휴가비 증가와 함께, 40여년 전인 1956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이르는 16주 간의 파업을 통해 얻은 지켜내야 할 소중한 성과물이다. 게다가 정부의 목표와 명분에도 불구하고 노총의 계산에 따르면, 이러한 정부의 긴축정책이 실시되면 실업자는 오히려 38만 5천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비판과 함께, 반대 시위는 곧 이어졌다. 마침 단체협상 시작과 맞물린 공무․운수․교통 노조가 4월 25일 경고파업에 들어가자, 반긴축정책 시위는 본 궤도에 올랐다. 이는 또한 최근 영업시간 연장 계획과도 연결되어, 4월 28일 본에서 약 4만 명이 시위를 했으며, 5월 10일에는 북독일에서 재차 4만 명의 시위가 이어졌다.

노조 부문에서 공무․운수․교통 노조는 사무직 노조와 함께 현재 긴축정책에 대항하는 기관차라 할 수 있다. 공공부문의 사용자 대표가 내무부 장관이라는 면에서도 그렇지만, 현재 긴축재정과 가장 이해관계가 깊은 부문이 공공 부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가 긴축정책을 공무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이 바닥났다는 이유로 현재 칸터(Kanther)내무 장관은 노조의 4.5% 임금인상 요구에 대해 동결의 입장에서 협상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5월 22일 최종협상까지 결렬되고 노사간 조정과 동시에 공무․운수․교통 노조는 현재 약 3주간의 평화의무 기간에 묶여있다. 노조는 이 기간 동안 파업결정 투표를 할 것이다. 한편 이날 체신노조(DPG)도 경고파업에 들어가 당일 우편 배달이 일시 중지되었다.

쯔비켈 금속노조 위원장 또한 5월 14일에 이르러서는 ‘고용을 위한 연대’의 종언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5월 20일부터 시위는 이미 전국적 범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쯔비켈은 노총위원장 슐테와 달리, 정치적 파업의 위험성을 염두에 둔 채, “민주의회와 자유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반대하는 파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사실상 이번 경우 사용자와의 단체협상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의 성격이 짙으므로 정치적 파업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많으며, 실제 사용자 측은 그렇게 규정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정치적 파업이 금지된 독일 노조의 경우 이것이 그리 쉬운 문제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6월초에 모든 시위는 2단계로 돌입하여 가두와 광장시위로 발전하고, 6월 15일 본의 통합시위에서 그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본에는 약 20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할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시위와 저항이 무르익어 가면 갈수록 자발적 파업의 여지도 보여진다. 위로부터의 양보노선으로 시작된 동반자 관계의 시도가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파업에 의해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한/노/정/연

1996-05-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