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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달라

현장에서 미래를  제11호
황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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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달라


황 보 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정책연구실장)


우리는 새벽밥 먹고 사랑스런 아내와 자식들의 배웅을 받으며 웃는 모습으로 출근한 우리의 동료이며 조합원이 차가운 시신이 되어 영안실로 가거나, 중상을 입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실려 가거나, 경미상으로 병원에 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열악한 작업장에서 용접 가스, 페인트 냄새, 쇳가루를 마시면서 일을 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자각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인사할 때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했는데 조선소 노동자들은 “오늘 하루 무사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할 정도로 사망, 중상, 경미상, 직업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지난 4월 한달동안 4명의 노동자가 죽었고(2, 3, 12, 19일), 96년 들어 8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간 죽음의 조선소에서 울부짖는 가족을 쳐다보며 우리는 할 말을 잊을 때가 많다. 왜 우리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죽고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96년에도 어김없이 많은 사고로 죽거나 다치고, 직업병으로 망가진 몸둥아리만 쳐다봐야 하는가? 그런 우리들 처지에 착찹한 마음과 서글픔으로 소주 한잔으로 마음을 달랜다.
다치거나 죽은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산재를 당한 모든 사람들은 너무도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산재처리를 해준다. 말로는 ‘안전제일’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산재제일’의 나라, 정책과 자본가의 정책이 맞아 떨어져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오늘 우리는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달라고 외치고 있다.

산재사고, 왜 반복될까?

산업안전보건법의 취지 자체는 백번을 잘해도 단 한 번의 실수에 의해 사고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기계와는 달리 생각, 판단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때도 있는데 어떤 경우든 작업조건 자체가 열악하기 때문에 사고의 그림자는 졸졸 따라 다니고 있다. 산재 사고의 제일 큰 원인은 돈이 제일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는데에 있다.
사고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나눌수 있다.
첫째, 정부가 법으로 정해 놓으면 무엇하나? 회사가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걸, 아무리 좋은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 놓아도 회사는 “법을 다 지켜가며 일을 시키면 무슨 놈의 일이 되겠냐”는 식이다. 즉 자본과 한통속이 되어 정부가 행정지도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법도 공정하게 집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아직까지 인간 중심의 경영방식이 아니라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노동력 착취 강화를 목적으로 한 신경영전략 때문에 산업 재해가 끊임없이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안전제일’이 세계일등 조선소로 만들수 있는 지름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본의 이윤극대화라는 기업목표를 내세워 ‘생산제일’을 위해서는 주저없이 과감한 투자를 해왔지만, 조합원의 안전을 위한 시설투자에는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넷째, 산업재해의 심각함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회사의 안전관리 체계는 뚜렷한 변화없이 사고가 나면 본인 부주의로 몰아가는 노동자책임론만을 들먹거리는 회사측의 안전정책 때문이다.

산재사고 현황과 유형은 어떠한가?

1)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사고 발생 건수는 다음과 같다.
년도
사고 발생 건수
사망 건수
기 타
94년
468건
10건
하청 포함
95년
539건
14건(과로사 추정 포함)
“
96년
139건(4/30현재)
8건(5월 30일 현재)



2) 96년 현대중공업 사망사고 현황은 다음과 같다.

(1) 1월 22일 윤경한(조합원): 퇴근하다가 사업장 안에서 작업중이던 트래일러와 오트바이를 타고 가던 재해자가 충돌하여 사망
(2) 1월 28일 조권환(외주:진덕기업): 해양 2공장 정문에서 재해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바리케이트와 충돌하여 사망
(3) 2월 28일 최익권(대리): 현대자동차 파견 근무중 시운전중이던 드롭 리프트(DROP LIFT) 하단과 지면에 압착되어 사망
(4) 3월 25일 김진섭(대도건설): 8.9도크 공장건설 현장에서 추락하여 사망
(5) 4월 2일 이형우(외주:중앙방제): 엔진 주조공장에서 소방설비 스피커선을 설치하던 중 천정 크레인에 끼어서 압착되어 사망
(6) 4월 3일 이주락(항운노조 소속 조합원): 철판 하역작업 중 핫카(JIG)가 빠지면서 머리를 쳐 현장에서 사망
(7) 4월 12일 이수정(금리건설:현대건설 협력업체): 8.9도크 판넬 신축공장에서 챤넬(ㄷ字 형강) 설치 공사 중 18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
(8) 4월 19일 조성동(조합원): 특수선 P077호선 스웨지룸 빌지홀딩 탱크에서 폭발 사망

3) 사고유형

사망 사고의 대부분이 압착, 추락, 충돌, 폭발 등으로 지금까지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재해와 같은 유형이며 이러한 사고는 원시적인 재해로 아직까지 안전에 대한 근본대책이 없어 일어나는 사고인 것이다.

노동조합의 대응

많은 조합원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갔는가에 대한 의미를 94년에 19일간의 기나긴 투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이지, 죽으려고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며 더 이상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95년은 조선노협 중심의 연대투쟁의 결과로 조선소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전국에 알림과 동시에 전국의 사업장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고 96년 들어선 현 집행부는 산재에 대한 정책을 ‘산재예방 차원의 사업’에 중심을 두고 있다.
1) 산재예방차원의 사업으로 ①서울 상경투쟁 ②금속연맹과 조선업종분과 차원의 연대투쟁 ③현장 안전점검 등을 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현장활동 중심으로 간단히 요점만 정리하고자 한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집행부 현장활동은 매주 1회 이상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남겼다. 조합원들의 지지와 격려 속에 불안전 요소, 관련법 위반사항을 중심으로 많은 지적과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교육, 홍보 : 불안전한 곳, 위법사례를 대자보, 홍보물, 현수막 등을 통해 홍보하고 산안교육(단협에 상․하반기 각각 2시간 명시됨)을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 대시민 선전 : 조합원 가족 중심 아파트와 시장 지역을 대상으로 대시민 선전전을 하고 있다.
* 고발조치 : 회사측에 경각심을 주고자 고발조치를 한다(노동부, 검찰).
* 작업중지 : 위험작업시 안전관리자가 작업중지를 시키도록 하고 작업중지를 하지 않을 경우 노동부의 사고위험센타를 활용한다.
* 사고위험쎈타 이용 : 사고위험이 큰 경우 곧바로 노동부의 사고위험쎈타에 전화하여 곧바로 조치한다.
* 현장조치 : JIG 및 공구가 변형된 것 등은 현장에서 바로 절단기로 잘라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와 같이 회사측이 ‘구호’로만 외치는 안전정책을 노동조합에서는 ‘실천’으로 안전제일의 작업장 건설투쟁에 앞장서서 나가고 있다.

2) 중대재해 발생시 :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근본대책을 마련하여 전 사업장에 재발되지 않도록 유사한 작업장의 작업을 중지하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지금까지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보상금 몇 푼으로 해결하거나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책만 발표하고 사태가 수습되어 조용해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의 행위만 일삼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조합에서는 중대재해 발생시 곧바로 투쟁하고 실천하는 조직으로 ‘중대재해 대책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집행부 업무를 최소화시키고 집행부의 조직을 교섭팀, 추모위원회, 실무위원회, 홍보위원회, 장례위원회등으로 재편성하여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운영하는 조직이다.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1) 대․소위원 안전점검 요원화 : 부서내의 불안전한 요소는 누구보다 대․소위원이 잘 알고 있으므로 노동조합 체계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동력인 대․소위원을 조합원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을 책임지는 상시 안전점검자로서 요원화시켜 조합원의 안전을 지켜나가고, 안전시설이 미비한 작업장은 작업을 중단시키고 안전 조치를 취한 후 작업을 시킬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어 나가도록 한다.
작업장의 안전을 대․소위원의 활동을 통해 확보하고 관료화된 회사측의 안전체계를 바꾸는데 역점을 두려고 한다.
2) 사진전, 가족 교육 : 조합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산재의 심각성을 알리고 남편이 얼마나 열악한 곳에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하여 실감나게 교육, 선전할 예정이다.
3) 연대투쟁 강화 : 업종별, 산업별 중심으로 연대활동 강화 및 공동투쟁, 공동대응을 활성화시키려고 한다.

정부는 스스로 제시한 2000년대 복지국가 건설 청사진이 장미빛 꿈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산재 없는 나라 건설을 위한 과감한 개혁의 의지가 필요하다. 세계 일등의 산재 없는 조선소를 먼저 건설할 때만이 회사는 세계 일등의 조선소를 건설할 수 있으며 정부 또한 산재없는 나라 건설이 세계 일등의 경쟁력을 가진 대한민국 건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것들이 결코 회사나 국가발전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도 살고 회사,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것인 만큼 정부는 산업재해, 직업병이 없는 작업장 건설에 대한 개혁의지 표명과 근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정부와 회사에 아무리 정당한 요구를 해도 지금까지 들어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론은 노동자들이 힘을 보여줄 때 비로소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산재문제를 풀어가는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우리는 산재투쟁하면 머리에 제일 먼저 원진레이온 투쟁이 떠오르고 나아가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알고 나면 말이 필요없고 오로지 내목숨, 내 몸뚱아리를 위해서는 나서서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머리속에 떠오른다.
지금까지는 나타난 문제에 대한 것들만 가지고 투쟁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는, 그리고 지금 당장 심각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오랜 기간 몸속에 누적되어 있다가 심하면 정년퇴직 후에 나타날 수 있는 직업병에 대한 연구와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또한 산재예방 차원의 활동은 단위노조 차원의 해결 노력보다는 업종별 연대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노협 차원의 활동을 참조하면 업종간의 연대투쟁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작업현장과 여건이 비슷하여 직업병 발생 또한 유사하게 나타나고, 단위노조에서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시키면서 효과를 최대화 시키기 위해서는 업종별 연대로만 가능하다.
현재 노조간부라도 이것이 결코 조합원들의 일이 아니라 현장에 복귀하면 바로 나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노조간부들의 산재예방에 대한 각성과 노력은 더욱 절실하다.
상반기에는 모든 노조에서 임금, 단협 등 조합원의 직접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임단협을 마무리한 후 하반기에 산재 관련 설문조사, 토론, 공청회, 교육 등을 배치하여 산재문제를 부각시키면서 하반기 사업을 활기차게 한다면 노조에 대한 신뢰도 그 만큼 높아질 것이다. 한/노/정/연

1996-05-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1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