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에 대신하여: 투쟁의 준비 연재/ 노동조합 손자병법 제1회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6호
|
|
노자
|
연재/ 노동조합 손자병법 제1회
서문에 대신하여: 투쟁의 준비
노자(勞者)
노동조합 투쟁전술을 함께 공부해 보자. 노동조합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파업투쟁 전술, 집회, 농성, 점거, 가두투쟁, 각종
준법투쟁, 현장투쟁 등을 차례로 연구하기로 하자. 상투적이
아닌 창조적인 투쟁, 상대방의 의도대로 휘말려 패배하는 투쟁이
아닌, 승리하는 투쟁을 하려면 전술에 대한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쟁전술을 연구하는 데는 직접 경험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 어떤 공부도 실전경험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실전 경험에는
세월과 조건이 필요한 법. 다른 투쟁사례를 분석하는 것도
유력한 방법일 것이다. 사례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유수한
전술가들 경험도 끌어다 쓰면서 재미있게 연구해 보자. 말은
그럴 듯하지만 능력이 뒤따를까? 심히 걱정이다.
조조
조조는 우리가 흔히 알듯이 권모술수로 뭉쳐진 간교한 사람이
아니다. 제갈량에게 항상 놀림을 받고 “화용도에서 소인배처럼
껄껄 웃다가 관운장에게 혼쭐이 나는 그런 한심한” 장수는 더욱
아니다. 조조는 탁월한 전략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평생
손자병법을 비롯해 그때까지 전해진 모든 병서를 연구하였다.
『손자병법 주』를 비롯해 여러 종의 해설서나 속편을 지었다고
한다. 조조의 손자병법 해설은 간결하기로 정평이 높다. 그는
핵심을 찌르는 몇 마디로 손자의 의도를 충실히 말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핵심을 찌를 수 있는 능력이 안되니까 또 다른
해설서를 필요로 한다.
조조의 ‘손자병법 주’ 서문
<앞부분 생략>
내가 수많은 병서와 전략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이 가장 깊이가 있었다. 손자는 제나라 사람이고
이름은 무다. 그는 오나라 왕 합려를 위해서 병법 13편을
지었으며 실제로 궁궐의 여자들을 이끌고 시범을 보였다. 결국
오나라의 장수가 되어 서쪽으로 초나라를 쳐부수고 수도 영
땅까지 쳐들어갔다.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100년 뒤에 전략가 손빈이 나타났는데 바로 손무의
후예이다.
손무의 병법은 깊이 있게 살펴서 계획하고 매우 신중하게
움직이며 분명하게 전략을 세우고 깊은 전술적 의도를 깔고
있으니 함부로 업신여길 수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감히 깊고
오묘한 가르침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더구나 장황하게 여러
마디 글로 풀어서 세상이 퍼뜨린 뒤에는 본뜻을 아예 잃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간략한 풀이를 짓게 되었다.
-조조의 손자병법 주 가운데 인용. 유동환 저 ‘조조병법’
바다출판사 46쪽
조조가 간략한 풀이를 한 뒤에도 수많은 손자병법 해설서가
등장하였다. 지금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조합
투쟁에 이용하려는 자까지 나타났다. 조조가 이를 알게 된다면
“숭어가 뛰니까 망둥어도 따라서 뛴다.”고 한탄할 것이다.
투쟁의 준비
손자병법에서는 『계』計 또는 『시계』始計라고 부르는 편이다.
노동조합 투쟁에서는 투쟁방침이나 투쟁계획쯤으로 보면 되겠다.
조조는 이 계획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무엇보다 먼저 뛰어난 장수를 고른 다음, 적에 대한 정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전쟁터의 지리조건을 잘 헤아려 보고, 좋은
병사를 뽑아서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서 조정에서
군주와 신하가 비밀리에 머리를 맞대고 전쟁터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이동하는 행군로가 평탄한지 험한지 등
구체적인 조건을 헤아려 전략전술을 세우고 승산이 있는지를
미리 확인한다.”
손자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전쟁이란 나라의 가장 중대한 문제다. 백성을 모두 살리느냐
모두 죽이느냐를 판가름하는 마당이며, 나라가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를 결정짓는 갈림길이다. 모든 것은 전쟁과 이어져
있으니 언제나 적의 정보를 잘 살피고 자신의 전략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철도공사의 대 노동조합 전략
철도공사는 국내 유수의 노무법인에 용역을 주어 이른바 ‘철도
신노사문화’를 꾀하였다. 보고서를 보면 노동조합과 공사의
강점과 약점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파업투쟁에 대하여는
전략적인 단위인 KTX 열차와 수도권 전동차를 정상화시키는
방안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파업대체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하여 개선책을 말하고 있다. 노동조합보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선전이 특히 취약하다고 한탄하고 있으며 개선책을
말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로 바꾸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노동조합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그들이 닮고자
하는 KT, LG, 유한 킴벌리의 노사관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조직력은 물론 정신까지도 회사에 의해 지배당하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어용 노조로 떨어지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용역보고서가 백화점식 처방을 나열하고 있어
핵심적으로 집중해야 할 부분을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보면 민주노초이나 연맹단위의 정세분석 및 활동방침안을
보는 것 같다. 수십 쪽에 이르는 정세분석들,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활동방침안, 일년 내 허덕거리며 한 번씩 맛을 보다 끝날
계획들이다.
중간보고서이니까 결론을 어떻게 맺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회사측에서 하지 않던 경영진의 일일 현장체험이니,
현장과의 대화니 하던 짓을 왜 하는지는 알게 되었다.
지도부의 선출
강한 지도력과 상대적으로 약한 투쟁동력, 강력한 투쟁동력과
취약한 지도력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강력한 지도력에 한
표를 던지겠다. 강력한 투쟁동력과 취약한 지도력,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고 반문하겠지만 노동조합 운동에서 가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느 노동자들이 불만이
하늘을 찔러 불만 가져다 대어도 곧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
이른바 자연발생적인 투쟁, 투쟁의지는 하늘을 찌르고, 단결력도
최상, “우리가 이렇게 단결할 줄은 미처 몰랐다.”고 스스로가
놀라는 지경이다. 96-97 총파업 때 노동자 대중들의 상태라고
할까? 그런데 지도부가 이상한 노선에 휩쓸리거나(제도언론의
지지까지 얻고 싶어서 안달할 때), 겁을 집어 먹거나(회유와
탄압에 위축될 때) 하면 그 투쟁이 패배하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게 된다.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원산 총파업이 지도부가 바뀐 뒤
지리멸렬한 일, 96-97 총파업의 패배(이것을 승리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대자동차 노조의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들이 모두 이런 사례이다.
전통적으로 취약하다고 보았던 대오가 갑자기 강력한 조직력을
보이며 완강하게 투쟁하는 사례도 있다. 99년 서울 지하철 파업
때 역무 조합원들, 나는 이 조합원들이 이동시나 대열정돈 시
군대처럼 엄정한 규율을 보이는 것을 보고 그 조직력을
확인했다. 그런 조직력을 만든 역무쪽 지도부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했다.
항상 이런 지도부를 선출한다면 투쟁에서 패배하기가 오히려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아서 겉보기
번지르르 하고, 표를 모으는 능력이 강한 쪽이 지도부로
선출되는 일이 많다. 지금 같은 운동의 퇴조기의 대중조직은
더욱 그렇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
손자병법에서는 아예 간첩의 운용을 하나의 과목으로 정해
자세히 해설하고 있다. 유수한 전술가들은 모두 정보수집과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역정보를 흘려서 적을
기만하기도 하였다.
요즘은 회사가 이런 일을 더 체계적으로 한다. 간부, 대의원,
조합원들을 성향분석하고 일상적으로 관리한다. 노무관리팀은
방대한 정보수집체계를 갖춰놓고 항상 동향을 살피며 분석하기도
한다.
노동조합도 회사측의 공식 비공식적인 문서, 회사쪽 사이트,
담화문, 회사신문과 같은 것들을 수집하여 늘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가능한대로 관리자 사이에도 안테나를 세워 수시로
탐문하여 정보를 수집한다. 전임자들이나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간부들은 의외로 조합원 의 상태에 대하여 무지한 경우가 많다.
이긴다고 호언장담했던 선거에서 회사쪽 후보에 예상외로
대패한다던지, 끄떡없이 며칠은 갈 거라고 예상했던 파업대오가
우르르 무너져 망연자실하는 모습들은 상대방은 그만두고
조합원들 민심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경우이다.
“조합원들은 간부들을 볼 때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으므로
평조합원 사이에 안테나를 세워둬라.” 그 사람이 술을 잘
먹으면 더욱 좋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계획을
모택동 선집을 읽다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모택동이 쓴
운동방침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간결하다. “흠!”하고 감탄사를 토하게 하고 고개를
끄떡끄떡하게 만들어 준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모택동 선집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회사쪽이 더 간결하고 분명한 것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회사가 “회의는 짧게 하고 나가서 발로
뛰어라.”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한 시간 이상 회의 시간을
넘기지 마라.”는 회사도 많다. 차트처럼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을 구사한다.
노동조합은 어떨까? 한 두쪽이면 될 내용을 몇 배로 잡아 늘이고
어떤 방침들은 아예 소책자로 한권이 나올 지경이다. 어떤
문서들은 종이를 아낀답시고 종이 한 장을 두 페이지로 나누어
놓았다. 도대체 글씨인지 불개미가 꼬물거리는지 나이가 들어
시력이 점점 떨어지는 사람은 신경질만 더할 뿐이다. 그런
핑계로 나는 내일 회의 자료를 두 쪽으로 간결하게 정리하였다.
도상연습
공사쪽 보고서를 보니 여러 군데에 걸쳐 도상연습을 말하였다.
파업에 대비할 때를 기억해 볼까? 노동조합측의 파업참여율,
파업 참여자 가운데 핵심인력, 이런 것들은 고정적인 수치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사쪽의 대비를 보면 대체인력의
준비정도, 대체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비인력(퇴직자등)
이런 것도 고정된 수치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파업
첫날부터 열차의 운행률이 정확하게 계산되어 나오고 이것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파업 일주일째면
가동률을 차근차근 높여서 대세를 형성하면 파업대열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것이 정부나 공사쪽의 이른바 비상수송계획이다.
고정된 운행률 외에는 어떻게 대처할까? 파업참여자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물자를 미리부터
비축하여 파업의 파괴력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정부부처와 의논하여 대체 교통수단을 마련하여 둘
것이다. 그런 방법들을 운행률을 중심으로 준비한 뒤 이른바
도상연습에 들어갈 것이다. 상수와 변수를 놓고 어떻게 유리하게
판을 짜 나갈 것인가? 결론인 즉 재미있다. “KTX와 수도권
전철을 최대한 운행시켜야 한다. 그래야 공사측의 교섭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여기에 국민 여론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외 홍보전략이라 하여
따로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파업의 파괴력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다.
이에 대한 노동조합측의 대응은 간단하다. 공사측 대비와
반대방향으로만 가면 되는 것이다. 보고서에 언급하지 않은
내용들을 추가하면서 도상연습을 하고 우리도 핵심적인 내용을
잡아 결론을 내면 되는 것이다.
“KTX와 수도권 전철에 대한 특단의 조직강화 대책을 우선해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전략물자 비축이나 대체교통수단에 대하여
공동파업 또는 연대파업으로 맞서야 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과연 그렇게 결론을 내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노동조합에서 투쟁의 파괴력보다 여론이나 투쟁의 명분에 더
걱정을 하는 것이 심히 걱정스럽다.
삼보일배보다 분명한 공장점거 파업을
투쟁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요즘은 현장투쟁하면 텐트농성이고
가두투쟁이라 하면 삼보일배를 자주 한다. 솔직히 나는 둘 다
싫어한다. 텐트농성은 텐트를 지키다가 골병드는 일이 많다.
텐트에 발이 묶이고 상대를 기습하기보다 기습을 당하기가
일쑤이다. 텐트를 지키며 언제나 저 놈들이 쳐들어올까,
전전긍긍하며 잠도 제대로 못자면 정말 신경질이 날 것 같다.
삼보일배는 더욱 더,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고 보는 사람들이 좀
감동을 받고, 되도록 언론도 타보자 하는 것인데 골병드는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일이다. 요즘 길거리 다니는 시민들이 그런
일 가지고 관심이나 갖는가? 잠시 구경거리로 쳐다볼 것이
뻔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골탕 먹이나, 잘 궁리해보면 그런
일보다는 유력한 투쟁방법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노동자의
투쟁은 뭐니뭐니 해도 파업투쟁, 그중에서도 사업장을 완전히
점거하는 파업을 최고로 친다. 생산은 물론 생산품의 반출입도
완전히 막아 버리고 대체인력 투입은 당연히 안 될 말이다.
그러고도 부족하다면 가두로 진출하여 점거,농성,기습으로
상대를 흔들 일이다. 파업 시기는 물건이 가장 달리는 시기,
재고가 잔뜩 쌓여있는 시기는 사절이다.
2002년 철도,발전,가스가 공동파업을 벌일 때 발전에서 6월 이후
파업을 그렇게 고집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옳았다. 전력
성수기에 38일을 파업했으면 승산이 훨씬 높았을 것을 하루 만에
복귀하는 가스, 이틀 만에 복귀하는 철도와 함께 하느라 발전만
고립되어 고생만 죽도록 했다. 전력대란은커녕 전등불 하나 끄지
못했으니 파업을 이기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 완강했던
파업투쟁의 정신을 폄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승산만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말이지.
“백성을 협박이 아닌 교육과 훈령에 따라 이끌어가는 정치를
길이라고 한다. 백성이 위험을 느끼는 이유는 의심 때문이다.
군주가 백성을 함께 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일이 생기면 두려워하며 나서지 않는다.”
-조조
위에 조공이 한 말이 어찌 우리가 간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이겠는가?
“노동자를 이익이 아닌 노동자 운동의 대의에 맞게 교육하고,
그것에 의해 이끌어가는 투쟁을 노동자의 길이라고 한다.
노동자가 위험을 느끼는 이유는 의심 때문이다. 지도부가
노동자와 함께 투쟁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일이 생기면 두려워하며 제 살길만 찾게
된다. 이 어찌 삼가 경계치 않겠는가?” -노자(계속)
|
|
2006-01-27 01:22: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