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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중 어용노조 퇴진 민주노조 결성 추진위원회(1)
 연재: 노동자가 쓰는 노동운동사 6

현장에서 미래를  제116호
정병모

연재/ 노동자가 쓰는 노동운동사 6


현중 어용노조 타도
민주노조 결성 추진위원회 (1)


정병모 / 조선소 노동자


15. 조선사업부 선각식당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던 학원은 필요한 몇 명만 남아 내일에 있을 거사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모두 긴장한 탓인지 사방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난 골머리를 싸고 있었다. 어떻게 써야 할까? 뭐라고 얘기를 풀어가야 하나. 머릿속과 입에는 하고 싶은 말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고 있었지만, 무엇부터 써야 할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서툰 연애편지 몇 번 써본 솜씨로 홍보물을 만들려고 한, 내 짓이 무모했다. 노동조합을 준비하면서 뛰어다닌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늦장부리다가는 홍보물도 못 만들고, 홍보물이 없으면 내일 치를 거사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는 조급함이 나를 더 초조하게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동료들도 채근한다.
하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붓 펜을 들고 도화지에 급하게 써내려갔다.
아래 글은 그날 썼던 유인물 내용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유일하게 보관해오던 자료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낯 뜨겁다. 마음만 급한 탓으로 앞뒤 말도 잘 안 맞고 뭘 말하고자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내용이지만 전문을 인용할까 한다. 그 당시 표기법이라 맞춤법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둔다.

[어용노조 탄생을 규탄 한다]

21일 날 결성대회를 치르고 아직까지 보고대회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노조는 과연 누구를 위한 노조인가?
그간 저급한 근로환경과 저임금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 거부되어왔던 현중 24,000노동자들은 현재의 어용노조 결성에 직면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돌이켜보건대 우리의 현중 노동자들이 그간 악덕기업주의 폭압적인 힘에 눌려 할말 못하고 살아온 날이 얼마나 됐습니까. 또한 어용적인 노사협의회근로자대표들의 소극성과 기만성에 얼마나 많은 불만을 가져 왔습니까?
그러나 얼마 전 현대엔진에서 노조설립이 성공하고 현대미포조선에서의 노조결성 탄압 실패에서 놀란 우리 악덕기업주는 그 여파가 현중 24,000노동자에게 파급될 것을 염려하여 전날까지 자기들과 희희락락 거리던 몇몇 얼빠진 노사대표자들을 회유 꼬셔서 기만적인 노조 결성을 하고 또한 저들의 대표자로 자처하며 나선 흡00 권오성은 ‘하늘이 놀라고 땅도...’라는 해괴한 유인물로 우리 현중 노동자를 이중 기만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악덕기업주와 이미 허수아비로 판명된 어용노조를 믿을 수 없읍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기만적인 놀림에 우리 현중 근로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맡길 수는 없읍니다.
이제는 진정 24,000 현중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생활을 보호해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현중 24,000노동자들이여 지금까지의 자기 안일과 소극성에서 뛰쳐나와 진정한 우리의 노조를 결성하기 위한 대열에 적극 참여합시다.
그리고 저들이 또 다시 방해하거나 기만하려 할 때는 저들과 맞서 떳떳하게 투쟁해 나갑시다.
어용노조 결성에 직면한 현중 24,000 노동자의 입장
1. 악덕기업주와 그 허수아비 권오성은 자폭하라.
2. 한국노총과 노동부는 현중 어용노조 결성 경위에 대해 즉각 해명하라.
3. 현중 24,000 노동자는 일치단결하여 민주노조 결성하자.
4. 악덕기업주는 더 이상 현중노동자를 기만하지 말고 민주노조 결성에 즉각 협조하라.
5. 민주노조 만세 민주노동자 만세

위 사항이 관철 될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비타협적으로 싸울 것이다.

1987. 7.24.
현중 어용노조 타도 및 민주노조 결성 추진위


옆에서 기다리던 동료들에게 더 필요한 말이 있는지, 아니면 빠진 말이 있는지 돌려보고 몇 번을 고친 끝에 홍보물을 완성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노동상담소 실무자에게 인쇄를 부탁하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남아 있던 동료와 함께 내일 치를 거사에 대해 차근차근 점검을 해봤으나 아무런 문제점은 없었으나 내심 은근히 두려운 마음도 생기기 시작했다.
다들 쳐다보니 내 마음과 같은지 아닌지 속내를 알 수가 없었는데, 표정만은 진지해보였다. 난 솔직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두려움이 더 커졌다.
내가 맡은 역할에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역할도 역할이었지만 내가 포기하면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망친다는 중압감이 너무 크게 밀려왔다.
결정을 되 물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고 각오를 다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행동을 통일하기 위해 집에 가지 않고 학원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출근도 같이 하기로 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자려 했는데 오히려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잠결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왜 그리 큰지, 놀라서 쫓아나갔더니 홍보물을 인쇄하러 갔던 실무자다.
잠시 졸았나보다. 난 우리 일을 하면서도 잠을 잤는데 잠도 못자고 우리를 도우려고 애쓰는 실무자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처럼 화려한 인쇄기술이 없던 시절이라 마스터 방식으로 400장을 복사처럼 해 왔는데, 홍보물을 보니 내일 치를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각오도 새로워졌다.
홍보물을 나누어 잠바 속에 감추어 가기로 했기 때문에 사람 숫자만큼 나누어 가졌다. 전부를 가져 갈 수 없어 일부는 나중에 따로 건네받기로 했다.
실전처럼 홍보물을 잠바 속에 넣고서 걸음을 걸어보니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를 만큼 감쪽같다. 그런데 보는 사람은 눈치를 채지 못하는데 걷는 당사자들은 영 어색한 걸음걸이인 모양이다. 잘해야지. 실수 없이 잘해야 할 텐데. 걱정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인데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여느 때 보다 일찍 회사로 출근했다. 각자가 출근하는 곳이 달랐기 때문에 내리는 곳은 다르지만 같이 출근을 했다. 함께 출근하다보니 긴장감은 덜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이 은근히 잠바 속을 지켜보는 것 같아 신경을 쓰다보니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겨우 참았다.
동료들은 하나둘 내릴 곳이 다가오니 내릴 차비를 서두른다. 사람들이 많아서 자세한 말은 서로 하지도 못하고 끈적끈적한 눈길로 인사를 대신했다.
조선사업부 선각식당 앞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11시 30분까지 모이기로 약속했다.
몇 번을 다짐하며 확인한 내용을 서로 꼭 지킬 것이라 믿으며 각자가 속해있는 사업장으로 걸어갔다. 난 중전기문으로 출근을 했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노동상담소에서 펴낸 홍보물을 젊은 사람들이 나눠주고 있다.
홍보물을 읽어보니 오늘 저녁 6시에 울산성당에서 노동법해설을 쓴 장명국선생을 초청한 강의가 있고 또 간담회도 있을 예정이라고 쓰여 있다.
때맞추어 참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오늘 우리의 거사가 잘되거나 못 되더라도 저녁에는 성당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내내 늘 함께 있었던 노동상담소 실무자는 왜 이런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얘기를 안 했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무리 우리가 정신없고 바빴어도 노동조합에 관련한 일이면 열일을 제쳐두고 갈 사람들인데 우리에게 말 안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바보

솔직히 일은 뒷전이었다. 넓은 사막 한 가운데 휑하니 버려진 마음이 들어 화장실을 몇 번을 갔는지 모른다. 줄 담배를 얼마나 피었는지 목이 바짝바짝 타는 느낌이 들어도 담배에 자꾸 손이 갔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자꾸 뒤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거사를 어떻게 잘 치르지 하는 생각보다는 쓸데없는 걱정에 잡념이 많아졌다. 우리끼리 한 약속을 지키기로 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사람들이 안 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어제 우리 모임에 왔던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회사에게 정보를 흘리고 그것이 경찰에게 알려져서 오늘 거사가 저지당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확실하게 온다고 약속한 사람은 50명이 채 안 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지 못한 우리 조직원들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에 대한 반성이 앞섰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제 왔던 그 사람들이 현장에서 한사람에 두 명만 데리고 온데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백 명만 되면 세상을 다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았다. 사방에서 날 지켜보는 것 같아 한시도 편하지 않아 새마을금고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작업장을 빠져나왔다.

탈의실 옷장에 두었던 홍보물을 배에 감추고 선각식당으로 향했다.
동료에게 빌린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선각식당으로 가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모두 분주하게 일하느라 바쁘다. 표정을 살펴보니 무표정한 얼굴뿐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배가 고파 그런지 심드렁한 사람도 있다.
저 사람들은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엊그제 만들어진 노동조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오늘 점심때 벌어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늘 우리가 점심시간에 거사를 하면 저 사람은 어떤 태도로 우리를 맞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와 뜻을 같이 할 것인가, 아니면 못 본체 지나치고 말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던지기 전에 알 수 없는 주사위 숫자와 같은 앞일이었다.

선각식당 부근에 도착하니 나처럼 조급한 마음 탓으로 왔는지 멀리 조성훈씨가 보인다. 마치 무슨 큰 볼일이 있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피면서 분위기를 잡고 있다.
급한 일 때문에 바쁜 사람처럼 수첩을 들고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다니는 모양을 보니까 정말 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를 발견하더니 반가운 마음에 씩 웃는데, 표정은 어색하다. 나 또한 대 놓고 인사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에 엉거주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자세히 보니 사방에 몇 사람이 더 보인다. 공연히 오전 내내 쓸데없는 걱정만 한 내 꼴이 우스워졌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가 아무리 만난 시기는 짧았긴 했어도 세상을 뒤집자는 얘기를 하던 사람들인데, 안 올 리가 있는가?
시간이 갈수록 차츰차츰 많아지는 동료를 바라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첨보는 낯선 사람도 몇 사람이 식당 주변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영 찝찝해졌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나가는 사람 같고 자세히 보면 우리 편 같기도 했다.

12시 10분전이 되었다.
식당 앞에는 사람들이 벌써 밥을 먹으려 몰려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지 않은 탓에 식당문은 잠겨져 있는데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려들어 길게 줄이 늘어졌다. 고픈 배 탓도 있지만 잠시라도 휴식시간을 더 갖기 위해 식당을 향하는 노동자들은 거의 뛰다시피 왔다.
우리 계획대로 하려면 이때쯤에 우리가 계단 앞에 나서서 준비를 해야 했는데, 주춤주춤하는 사이에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계획이 벌써부터 빗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시작할 상황도 아니었다. 모이기로 약속한 인원이 많이 오기는 했지만 20명이 채 안되었고 시간도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더 기다렸다가 시작해야한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12시 5분전이 되었다. 식당주변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2층에 올라가는 계단입구는 가득 찼고, 그 주변마저도 몰려온 노동자들로 시장판처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최소한 12시 5분전에는 계단 맨 앞에 서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홍보물을 나누어줘야 한다고 사전에 점검을 했는데,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계단은 더 이상 비집고 올라갈 여지도 없어져 버렸다.

시간은 휙휙 지나가는데 기다리고 있는 우리 모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밥 먹으러 온 노동자를 한번 쳐다보고,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조직원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보니 조바심으로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가슴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결단을 내려야할 내가, 도망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솔직한 심정 아니었을까?
사람이 몇 명밖에 안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방을 천천히 돌아봤다. 곳곳에서 내 손짓과 내 고함소리를, 배에 감싸 안고 있는 홍보물을 뿌리라는 신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눈빛이 간절했다. 내 입만 쳐다보는 눈길이 너무 뜨거웠다. 가슴이 졸여졌다.
눈으로 채근 질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술렁술렁 주변으로 몰려들며 나에게 결단을 재촉하고 있었다.
갑자기 뜨거운 눈길을 피하고 싶었다.
부담스러웠다. 원망스러웠다. 약속만 해놓고 오지 않은, 말만 번지르르 하던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세워 놓고 도망 가버린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해양사업부의 사람, 공무부 사람, 의장생산부, 연구소, 조선사업부, 플랜트사업부 사람 등 많은 조직원들이 오긴 왔으나, 그동안 책임지고 활동해 왔던 사람들만 열성으로 참여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렸다.
고함을 질러야 하는데, 홍보물을 뿌려야 하는데, 갑자기 용기가 없어져 버렸다. 태산이라도 허물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을 뒤집을 용기가 있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겁을 먹고 나니 다리가 풀려버렸다.
멀찍이서 내 신호만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쳤는지 조성훈씨가 내게 다가온다. 내게 너무 큰 중책을 맡겨놓고 기다리다 맥이 풀린 탓인지 주저하며 망설이며 오는데 그 순간 식당 문이 덜컥 열리면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간다.
12시전에는 식당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가?
아직 2~3분이 남았는데......
밀물 때 밀려드는 밀물처럼 순식간에, 공기 빠진 풍선 줄어들 듯 식당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오늘은 틀렸구나? 나 때문에 틀렸구나. 오늘은 틀린 것인가? 지금이라도 소리를 지르면, 홍보물 뿌리며 붙잡으면 안 될까?
아! 결국, 내가 일을 망치고 말았구나.
바보 같은 나 때문에 큰일을 망치고 말았구나 하는 자책이 든다.
조성훈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맥이 풀린 듯, 넋이 나간 듯 몇 마디 말을 내게 건네더니 자기가 해보겠단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자기가 한다고 나선다. 벼르고 별러온 큰일을 망쳐버린 마당에 조역을 내가 하기로 급히 방향을 바꿨지만 흐르는 대세를 바꾸기는 너무 늦어버렸다.
한번 터져버린 둑을 막기에는 우리의 힘은 너무 작았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하려고 했지만 결국 여의치 못해 접기로 했다.
날 믿고 기다려준 사람들 볼 면목이 없게 되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일도 제대로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완전히 망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는 생각에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속절없이 식당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넋 놓고 지켜보며 오도가도 못 하고 12시 20분까지 지켜보다가 식당주변에서 긴급회의를 했다.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참으로 면목 없는 일이었다. 일을 망친 장본인이라 나서서 말하기에는 좀 그랬지만 다음을 기약하자고, 어려운 결단내리고 참여해 준 조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를 드렸다.
오늘 일을 망친 사람은 나였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김빠진 얘기처럼 되었지만 어렵게 다른 얘기도 전달했다.
오늘 퇴근 후 울산성당에서 열리는 장명국선생의 노동법해설 강의를 들으러 조직원 전부가 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거기에 가면 우리처럼 속 터지는 중공업 노동자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거기에 가서 뭔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에 희망을 걸어봤으면 한다는 내 바람을 전했다. 뒤통수는 뜨거웠다.
16. 석탑 장명국 선생

난 솔직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죄책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바보 같은 놈. 나 하나 때문에 큰일을 망치다니…. 어떻게 준비해온 모임인데….
어렵게 꾸린 거사를 한 번에 망치다니.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 일이었지만 후회한다고 다시 잘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리석은 놈. 두고두고 미련 남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아직도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다시 생겼다. 그래 이제 겨우 시작하려 했을 뿐이야. 조금 늦어졌을 뿐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퇴근 후 강연회가 열린다는 울산성당으로 갔다.
오늘 낮, 거사 때 뿌리려던 홍보물을 성당에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뿌리기 위해 들고 갔는데 대 놓고 돌릴 자신이 없었다. 어정쩡하게 홍보물을 들고서 서있으니 강의를 듣기 위해 가던 사람이 달라고 손을 내민다. 나눠주니 홍보물을 반갑게 받아들고 가면서 나를 흘낏 한번 쳐다보며 간다. 나를 나무라는 눈빛 같았다. 홍보물을 갖고 왔으면 나눠 줄 일이지 들고 있는 꼴이 이상해서 한 번 더 보고 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홍보물을 돌릴 흥이 나지 않아 주변을 살펴보니 강당 들어가는 입구에 주최 측에서 조그만 책상을 갖다놓고 안내하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강연회를 소개하는 홍보물과 여러 가지 자료를 나눠주며 조그만 소책자와 여러 가지 책도 팔고 있었다.
그곳에 일하는 사람에게 얘기하고 가지고 간 우리의 홍보물을 그 틈바귀에 두고 강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강연회장은 발 딛을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앉을 자리는 없었고 벽 쪽에 빈틈이 있어 그곳에 가서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난 노동법 해설을 쓴 장명국선생이란 사람을 전혀 알지도 못한 시절이었다. 또 난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는데, 87년 그 당시의 장명국선생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고 그의 강연회라서 그런지 울산지역의 곳곳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왔다.
현대자동차. 현대엔진을 비롯한 현대그룹의 노동자와 태광산업, 동양나이론, 진양화학을 중심으로 남구지역의 화학 노동자들이 왔다고 소개되었고 또 몇몇은 직접 나와서 뭐라고 발표도 하였다.(계속)

2006-01-27 01:25:33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