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조선업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1)
 기획: 비정규직 노동조건과 건강실태4

현장에서 미래를  제116호
공유정옥


기획: 비정규직 노동조건과 건강실태4


조선업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1)*

*) 이 연구 보고서는 고상백(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은숙(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이 공동집필하였다.


공유정옥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



이 연구 조사는 2003년에 시작하여 2004년에 보고서를 냈다. 그 결과를 정리하여 ‘현미’에 실을 테니 글을 써보라는 말을 들은 것은 2005년이었고, 결국 2006년이 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2년 전에 나온 보고서를 이제 와서 다시 쓴다는 일이 겸연쩍었다.

그러던 중 여의도 집회에서 오랜만에 현중사내하청노조 동지를 만났다. ‘산재를 당한 하청노동자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좀 전에 들었다’며 사고 현장에 가보기는커녕 사고가 일어났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현실을 개탄하셨다. 나중에 홈페이지에 가보니, 지난 11월에 작업 중 추락하여 12월에 돌아가신 56세 하청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1월 3일자로 올라 있었다.

내친 김에 몇 가지 자료들을 더 찾아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서에 담았던 자료들이 구닥다리는 아닐까 했던 게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알았다. 조선산업 시장은 여전히 호황을 구가하고 있고, 한국의 거대 조선 자본은 여전히 세계 제일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저임금과 구조적 고용불안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현실도 여전했다.

이 글에서는 본래 보고서 내용 중 일부만을 정리하였다. 앞부분에서는 조선산업 전반을 이해하고 조선산업 고용구조와 비정규직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요약하였다. 뒷부분에서는 조선소 노동자들과의 심층 면접 결과를 상세히 소개하려 노력하였다.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들과의 심층 면접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면접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이름은 물론, 소속 업체나 부서조차 밝히기 힘들 만큼 조선소의 현장 통제는 삼엄한 것이었다.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몇 시간을 앉아 심층 면접에 임했던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면이 허락하는 한 많이 담고자 하였다.

Ⅰ. 조선산업 노동시장의 현황과 변화

1. 조선산업의 특징과 현황

조선산업에서는 선박을 건조, 수리, 해체하거나, 해상 구조물을 제작, 조선 기자재를 제조한다. 주문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관련 기자재들이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어 생산을 자동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적 특성을 지닌다. 또한 생산 장비와 시설을 갖추는데 많은 자금을 들여야 하는 만큼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 선박 시장은 별다른 진입장벽을 갖지 않는 단일 시장이고, 각국의 수입 규제도 적은 편이라서, 일단 세계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다른 제조업보다는 시장 확보에 유리하다. 다만 노동집약적인 특성과 함께 수주량에 의존하는 특성 때문에, 조선산업 자본은 수주량에 따라 투입 인원을 신축적으로 조절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지는 영국, 미국, 유럽,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옮겨왔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1993년 최초로 선박 수주량 세계 1위에 오른 뒤 1999년, 2000년에 이어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선박 수주량 1위를 지키고 있다. 2003년 현재 한국조선자본은 세계 선박 수주량 점유율 43.8%, 건조량 32.8%, 수주잔량 37.8%를 차지하였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개별자본의 규모에서도 단연 세계 제일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2001년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세계 5대 조선소 중 1위부터 4위까지를 한국의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삼호조선이 차지하고 있다.

2. 조선산업의 비정규직 확대 요인

조선산업에서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요인은 세계 선박수요의 변동에 따른 제품시장 요인과, 현재 경향적이고 전반적인 공황 위기 속에 기업간 합리화 경쟁에 따른 경영전략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제품시장 요인이란 해운업 동향, 선주들의 태도, 각국 조선업계 동향 등 시장 전망을 말한다. 최근 조선업종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면서 국내 조선산업도 수출, 생산, 투자에서 모두 왕성한 성장을 유지해왔지만, 길게 내다보았을 때는 세계경제의 만성적 침체에 따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발주가 줄어들어 2000년 경 세계 조선시장은 수급불균형 상태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 와중에 중국이 선박시장에 진출하면서 수급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어, 국가간 또는 조선소간 수주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 조선자본들은 변화하는 시장 여건에 즉각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노동력 수급 조절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것이 제품시장 요인이다.
경영전략 요인이란 제품시장 요인을 바탕으로 하여 각 조선자본들로 하여금 생산과정을 재조직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을 뜻한다. 즉, 세계시장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국내 자본들은 광범위한 제휴를 모색하는 동시에 각 기업들이 인건비 감축과 생산성 향상을 놓고 한층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온 기업들이 폭넓은 아웃소싱과 글로벌소싱을 통하여 ‘규모의 경제+범위의 경제’로 생산과정을 재편해가는 것을 말한다.

조선산업에는 오래 전부터 사내하청기업이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어, 원청자본은 하청과의 계약 조정을 통해 이미 상시적인 인력구조조정을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국내 조선산업의 대대적인 산업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각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각 조선소에는 현장이 비좁을 만큼 자재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영 인원은 꾸준히 줄어들고 하청인원과 하청물량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이는 다운사이징과 아웃소싱, 즉 몸집줄이기와 외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뜻하며,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경영과 인력관리전략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 조선산업의 고용구조

조선산업의 고용구조는 대규모 사업장의 직영 인원과, 주변에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사내외 하청 인원으로 양분할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원청에 직접고용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내하청, 사외하청에 포진하고 있으며, 직영이 직접 고용하는 비정규직 형태로 용역, 연수생 등이 미미한 비율로 존재하고 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2002년 조선공업협회의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조선산업 총 종사자 가운데 8대 조선소에 속하는 직영 노동자는 약 39%에 불과하며, 60% 이상은 사내외 하청 혹은 기타 비정규직 노동자로 존재하고 있다. 둘째, 2001년 현재 이들 전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8만5,000여명 중 5만3,000여명(64%)은 사외하청 혹은 소규모 조선소나 회사 비소속 조선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셋째, 8대 조선소 총 인력의 45%가 현대중공업에 집중되어 있고, 75.7%가 상위 3사에 집중되어 있는 등, 대형조선소 의존도가 매우 높다. 넷째, 조선산업 고용구조의 양적 변화는 주로 사내외 하청노동자의 급속한 유입과 유출로 인한 것이다. 가령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가면서 조선산업 종사자 수는 제조업 고용의 3.6%를 차지하다가 3.0%로 줄어들었는데(이는 14만에서 12만여 명으로 일년 만에 약 2만 명이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여기에는 한라중공업의 2천여 명 감원, 한진중공업 3사(타코마, 한진울산, 한진영도) 통합, 대우조선의 감원, 대동조선의 부도 등 대대적인 산업구조조정이 조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규모 유출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4. 조선산업 비정규직의 규모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총인원은 1990년 54,090명에서 2002년 94,213명으로 10여년간 74.1%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에 직영인원의 증가율은 15.4%에 그쳤다(46,730명→53,925명). 직영인원은 1978년 40,522명에서 1996년 60,576명까지 늘어났으나, 조선산업 각사의 구조조정이 집중되던 1997년 이후 2002년까지 6,651명이 줄어들어 1996년 대비 11%의 감소율을 보였다.

반면 하도급인원은 1990년에 비해 2002년에는 무려 447.4%나 증가하였다(7,360명→40,288명). 또한 하도급인원 집계가 시작된 1990년 7,360명에서 지속적으로 늘어 1996년에는 20,777명을 기록했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 동안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다가 2000년부터 다시 급격히 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2002년에는 40,288명으로 1996년 대비 48.4%가 증가하면서 인원수 면에서 현장직 중 직영 인원 수(36,068명)를 넘어섰다.

<표1>은 조선산업 각사의 하도급 인원 비율 변화를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조선건조물량이 크게 증가했던 1992~1994년과 2000~2002년에 특히 하도급 비율이 대폭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각 기업들이 하도급 인원을 증가시킴으로써 물량을 해소하였음을 뜻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1998년까지 하도급 비율 10%대를 유지하다가, 2000년에는 25.2%로 98년 대비 10%포인트 이상 늘렸다. 이런 추세는 해마다 더욱 심화되어 2002년 현재 38.8%까지 올라갔다. 한편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중공업에서는 1990년에 이미 하도급 비율이 총인원 대비 38.7%를 기록하였고, 2002년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48.9%에 이르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하도급 인원의 대부분이 현장직임을 감안하여 정규직 중 현장직을 뜻하는 기능직 인원의 추이와 비교해 보면,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확대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1990년에는 기능직 대비 하도급 비율이 21.2%에 불과하였으나, 2002년 들어 그 비율은 111.7%로 늘었다. 조선산업 현장에는 이제 정규직보다 더 많은 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게 된 것이다. 특히 IMF 시기를 경과하면서 추진된 구조조정이 비정규직 비율 증가를 가속시켜왔다.

<표1> 조선산업 각 사 총원 대비 하도급 인원 비율 추이
(단위: %. 1990~2002)

출처: 한국조선공업협회(www.koshipa.or.kr)자료 재구성
주: 1) 한라중공업은 1999년부터 삼호조선소로, 2001년부터는 현대삼호조선소로 사명 변경. 2) 코리아타코마는 2000년부터 한진중공업으로 통폐합. 3) 대동조선은 2002년부터 외자기업에 인수되어 사명을 STX로 변경. 1998년 대동조선의 직영인원은 1,256명, 하도급인원은 1,414명이었음.


Ⅱ.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1.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특징

1) 규모와 특징
조선산업 내의 하도급 거래에는 부품을 조달하는 조선 기자재 거래와 단순노동력 및 기술을 제공하는 외주하도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내하청이란 외주하도급 업체 중에서 원청회사의 일정한 생산 업무를 도급받아 이를 원청회사의 사업장에서, 원청회사의 생산시설을 이용하여 수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002년 간접고용 실태보고서.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소인 울산 현대중공업의 사측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월 현재 총 144개 업체에서 9,128명의 사내하청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으며, 이 업체들은 각 부서별로 원청업체에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었다. 이 중 조선사업부에 소속된 사내하청업체들의 규모와 분포를 살펴본 결과, 업체의 규모는 적게는 5명 내외부터 많게는 300명까지 다양하나, 대부분 100명 안팎의 규모였다. 또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모든 부서에 분포하고 있었으나, 부서마다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수의 비율은 큰 차이를 보였다. 하청 비율이 가장 높은 부서는 도장부로, 정규직보다 두 배 가량 더 많은 수로 나타났다.

이런 부서별 하청 비율 차이는 업무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청 비율이 매우 높거나 심지어 전적으로 하청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부서나 업무들은 노동강도 및 위험도가 크거나, 업무에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작업인 경우가 많다.

2) 고용 사업주(하청업체)와 사용 사업주(원청업체)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고용 사업주(원청업체)와 사용 사업주(하청업체)가 별개로 존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이다. 하청업체는 하청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맺는 고용 사업주로서 채용, 인사, 노무관리, 임금지급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외주하도급, 특히 단순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소규모 사내하청업체의 경우에는 원청과의 평등한 거래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동남발전연구소, ‘조선 및 관련산업의 하도급거래 형태 및 실태분석’, 「조선업분야에 있어서의 하도급거래 공정화 추진방향」, 2002.
원청사업주가 도급계약시 상정하였던 도급금액(기성)을 삭감하거나 도급계약 해지, 재계약 중단 등을 통하여 하청업체를 통제·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청업체는 수평적 계약관계라기 보다는 수직·종속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이 때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 임금, 노동조건 등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주체는 고용사업주(하청업체)가 아니라 사용사업주(원청업체)다. 가령 하청노동자의 임금 결정 구조에서 원청업체의 생산비용 절감 요구나 도급금액 삭감조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업체가 도급계약을 받으면서 받는 금액을 ‘기성’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성이 삭감되요. 기존 70에서 80퍼센트를 왔다갔다 하는 걸 하청은 진짜 45에서 50퍼센트를 왔다갔다… 100퍼센트 기성을 목표로 상정했던 거기 때문에 목표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이하를 주는 거예요. 그래서 업체도 임금 압박을 받는 거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사업주가 하청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통제에 보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등 조직적 단결을 시도하는 때이다. 실제로 2003년 하반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의 설립필증이 교부된 후 설립신고서에 기재되어있던 노동조합 임원진 및 조합원이 모두 소속 업체로부터 해고되고 해당 업체 상당수가 일제히 폐업을 공고했던 사건이 있었다. 금속산업연맹, ‘금속산업 비정규직 백서 1호 사내하청비정규직 차별과 노동탄압사례집’, 2004년.
소규모 하청업체 사업주들이 업체 폐업 등의 극단적인 조치를 자발적으로, 그리고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청의 의지라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실제로 업체 폐업까지 가고 이러는 거는 업체 사장도 하기 싫었을 거예요. 다시 폐업하고 예전처럼 이름 바꿔가지고 자기가 등재하는게 까탈스러워진게 맞는 거고. 실제로 자기 사업장이 없어지는건데, 이걸(폐업을) 자신의 의지로 했다고 보긴 어려운거고, 저 같은 경우도 ‘이미 (원청업체) 부서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범위를 넘어섰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 다른 데도 이런 동일한 일들이 많이 있었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 사업주가 하청노동자의 관리와 통제에 직접 개입하는 또다른 경우는 하청노동자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이다. 만일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어 보상을 신청하게 되면 원청사업주는 피재 노동자를 해고하도록 하청업체에 종용하거나, 이후의 재취업을 금지시킨다. 그래서 “하청이 한번 산재 처리하면 다시는 조선소 밥을 먹지 못한다”라는 말은 조선소 부근에 공공연히 떠돈다. 당사자를 넘어서 해당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재계약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를 아예 하청업체와의 계약서에 명시하자고 나서기도 한다.

올 5월달에 ○○팀에 지원나가는 업체들 중 하나가 넘어져서 골절상을 당했나봐요. 이 사람이 사장을 통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서 산재 요청을 하고, 승인이 돼서 산재 처리가 된걸 늦게 알았어요. 직영(원청업체)에서 늦게 알아서, 이 (직영) 부서에서 그 사실을 알자마자 그 팀에 들어와있던 그 (하청)업체 모든 지원인력을 철수시켜버렸어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회사에서 안전 관련해서 안을 내놓은 것이 업체에서 중대사고 3번이상이면 계약을 파기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하청업체)사장이 “손가락 다친 것 같은 왠만한 건 알아서 쉬다 와라” 그런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

이처럼 사용 사업주가 도급계약 및 기성금을 통하여 하청업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며, 하청노동자에 대해서도 채용과 노무관리 전반에 걸친 직·간접적 관리와 통제를 구사하므로, 원청업체는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사업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한다.

한편, 하청업체가 하청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형식적인 주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청업체는 사용 사업주와 하청노동자 사이에서 이윤을 얻는다.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합법적으로 중간착취하는 것이다. 이로써 두 사업주에 의한 이중의 통제와 착취 속에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는 합법적으로 고착된다.

이러한 ‘합법적 착취’ 이외에도 하청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노동의 대가를 업체가 중간에서 부당 갈취하는 일도 적지 않다. 가령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의 분신사망 사건 당시, 열사를 고용했던 하청업체는 상당수의 노동자에 대하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7년 이상 근무한 10명의 노동자들을 당사자 몰래 퇴직 처리하여 퇴직금을 착복하고, 용접사 자격증 수당, 가스 수당, 연월차수당 등을 중간에서 가로채기까지 하였다. 비정규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박일수 분신사망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2004년.


<그림1>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구조



2.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시장 유입-유출 과정

1)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의 최초 유입 과정
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교 졸업 직후 첫 직장으로 입사하였거나, 타 업종에서 일하다가 조선산업의 상대적인 고임금과 고용 안정 때문에 이직한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1990년대 후반 이후 입사한 하청노동자들은 대개 자영업자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지내다가 경제난·실직·구직난 등을 거친 끝에 조선소로 유입되는 특징을 보였다.

하청노동자 대부분은 원청업체의 정규직으로 취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각 조선소에서는 신규 인력 채용을 최소화하는 인력 운용 방침 대표적인 사례로 1999년 11월 대우중공업의 “조선부문 중장기 경영전략”에 밝힌 “생산성 향상을 통한 인력의 효율적 운용” 계획을 들 수 있다. 이 계획의 세부 내용은 ①물량변동에 다른 탄력적 인원관리를 위해 직영 신규인력 채용 억제, ②임금은 생산직의 경우 2002년까지 동종사 업계 수준을 감안하여 최대한 억제하여 기술·관리·지원직의 경우 2002년까지 동종업계 대비 90% 이내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을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청업체 정규직으로의 취업 기회는 거의 없었다.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취업이 긴급히 필요한 이들의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사내하청업체였다.

직영모집을 안하니까, 누구나 다 직영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지, 누가 힘들고 돈 안되고,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개인 사업 실패로 조선소에 오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그랬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조선소 하청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각박하죠. 돈이 급하거나 돈이 없으니까. 돈이 있으면 누가 오겠어요, 이 더러운 작업환경에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2) 조선산업 노동시장 내에서의 반복 실업 과정
조선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상태는 수개월에서 1년 가량의 짧은 주기로 취업-실업-취업-실업…이 순환되는 반복적 실업 과정을 특징으로 한다. 이 과정은 이동 주체의 특성과 이동 동기에 따라 각각 개인적인 이동과 집단적인 이동, 반(半)자발적·반(半)강제적 이동과 강제적 이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작년에 9월달에 와가지고, 6월달까지 일했거든요. 9개월 일했어요. 그러니까 02년 9월부터 03년 6월까지 한군데 있었고. 그리고 03년 6월부터 9월까지. 그다음에 지금까지. 일년 반 동안 (업체 옮긴 것이) 세번 되요, 세번 정도 되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표2>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 내에서의 반복적 실업 양상



1) 개인적인 이동 · 집단적인 이동
개인적인 이동은 대부분 인맥이나 인력 모집 광고를 통해 이루어지나, 집단적인 이동은 경력 및 숙련도가 높은 핵심 노동자가 이끄는 작업팀이 일감을 따라 함께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동 집단은 “야리끼리” “물량떼기” “때려먹기” “일당바리” 등으로 불리우는데,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일정한 작업량을 완수하는 조건으로 근무하는 비공식적 하청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선체 도장이라고 배 외곽 쪽에 이런데는 물량떼기가 일상시기에도 참 많습니다… 사고라든가 근골격계, 이런 건강 안좋은 작업조건 때문에… (삼호중공업 정규직 노동자)

진수가 다 되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거든요… 진수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그런 업체 같은 경우 흔히 이야기하는 ‘일당바리’라고 하지요. 비정규직 내에서도 또 몇 사람이 열명이면 열명 팀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와서 물량을 갖다가 톤당 얼마씩 받는 것으로 해서 그렇게 해서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

2) 반(半)자발적 · 반(半)강제적 내부 이동
반(半)강제적·반(半)자발적 이동이란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찾아 자발적으로 조선산업 노동시장 내부의 이동을 도모하되, 그 계기가 전적으로 본인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객관적인 조건에 의하여 반(半) 강제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동의 동기 및 목적에는 저임금 조건에서 일하면서 보다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한 이동, 노동강도가 조금이라도 낮은 일을 찾기 위한 이동,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임박한 실업에 대비하거나 혹은 실업 상태에서 재취업을 하기 위한 이동 등이 있다.

제가 ○○업체 소속으로 □□부서에 있을 때는 시급을 조금 받았어요. 거기서 기계 지원하는 △△업체 사람하고 월급차이가 거의 백만원 차이가 나더라고. 그래서 저쪽 반에 반장이 자기도 똑같이 일 시키고 하는데 월급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업체를 다른 데로 가라고 충고를 해주더라구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여기는 아무리 숙련이 되도, 십년 이십년이 되도, 일 자체가 공정이 이러니까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에 와서는 일을 잘 안해봐서 모르다가, 3일, 3일 못견디고 다 가요, 나 못하겠다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죠. 원래 하청에서 하청으로 옮길 때 여긴 불안한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잖아요. 저 하청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청자체가 위태위태하니까. 몰라 위에 본청에서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 않을지 모르지만… (삼호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그러나 사내하청노동자가 경험하는 저임금, 고도의 노동강도, 고용불안 등은 개별 노동자의 주관적인 경험과 판단이 아니라 임금 억제, 생산성 향상, 생산량에 따른 인력의 탄력적 사용(노동력 유연화) 등 조선산업 구조조정 전략에 의해 형성된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의한 것이다. 조선산업 구조조정 전략이 사내하청 노동시장의 기본 구조를 규정하고, 이 구조 속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만성적 고용불안과 저임금 및 고도의 노동강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하청노동자 스스로 이직을 선택한다고 해도 이것은 시장 구조에 의해 반(半)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3) 강제적 내부 이동
강제적 이동은 갑자기 일감이 없어지거나 하청업체가 폐업하거나, 어떤 이유로 해고(계약 해지)되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경우 등 하청노동자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청노동자들의 고용 상태는 물량에 따라 매우 불안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물량의 중단에 대비하여 미리미리 다음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반(半)강제적·반(半)자발적 이동이 매우 흔하다. 그러나 물량이 떨어져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될 시기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잃는 일이 많아 사실상 강제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제 끝나는지는 모르겠는데, 물량이 좀 적어지죠. 만약에 한 50명 할 일이 30명 일밖에 없으니까. 스무 명은 회사에서 계속 돈을 안주잖아요. 그러니까, 일이 별로 없다. 그러면 알아서 가는 거지. 안그러면, 인제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쉽시다, 그러면 쉬어야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처럼 하청업체가 경영상의 이유로 감원이나 폐업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갑작스러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되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한다.

월급도 못받았어, 어떨 때는. 회사 망했으니까 사람 다 나눠가지고 다 털어서 다 분배하니까 그래도 돈이 좀 나오더라고. (그걸 다 나누어서) 그런 식이지. 안받는 것보다 받는 게 낫잖아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한편, 물량이 감소하거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청업체로부터 고의적인 작업 배제나 해고·계약해지를 당하거나, 아예 업체가 문을 닫아버려서 강제적으로 이동을 모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고의적인 작업 배제나 해고 및 폐업은 주로 산업재해 환자나 노동조합 활동가를 축출하기 위하여 이루어진다.

직영 원청에서 업체로 연락이 왔는데 ‘협력업체 내에 노조를 만들려는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 가담한 자다’ 이래가지고… 업체 측에서 ‘직영에서 일 커지기 전에 사표를 써라’… 출근하니까 작업 제외시키고, 경비대들이 사무실에 들어와서 싸우고. 싸운게 아니라 거의 끌려나왔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출입증 반납하라길래 웃기지 마라 이거는 운영지원부에서 나한테 발급해준건데 내가 왜 반납하냐 이래 가지고. 출근을 했어요. 근데 인제 저희 업체도 폐업이 공고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면접 조사 과정에서 산업재해를 겪거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가 스스로 하청업체를 떠나는 사례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조차 산업재해나 노동조합 가입 사실이 알려진 뒤 업체로부터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이직하는 것일 뿐, 결코 자발적 이직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당들 같은 경우는 한마디로 다치면 쪽팔리니까 아예 얘기도 안하고… 예전에는 그냥 일당들은 크게 다치면 보따리 싸는 게 관례였어요. 억울하고 뭐 이런 것들 호소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어차피 일당이니까 보따리 싼다, 이런 거지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8월달에 업체 투쟁한 이후로 폐업한다 폐업한다 이런 얘기들이 계속 돌고, 그 과정에서 주로 떠나는 사람들 보면 조합에서 이렇게 뛰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3)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영구 유출 과정
조선산업 하청 노동시장 내부에서의 반복 실업 과정은 이곳을 완전히 떠나는 영구 유출 과정으로 연결되곤 한다. 유출 과정도 그 동기에 따라 자발적 유출과 강제적 유출로 분류할 수 있다.

<표3>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유출 양상




(1) 자발적 유출
자발적 유출이란 고도의 노동강도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고 싶은 욕구를 바탕으로 한다. 면접 조사를 통해 만난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대부분 “당장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서” 계속 일하고 있지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로 옮기고 싶고 언젠가는 이 바닥을 떠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족을 못하죠. 이보다 나은 조건이 있으면 내일이라도 미련없이 떠나야죠. 일이 너무 힘들고 임금도 작고…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쉬는 시간에 얘기하다보면 전부 힘들어서 안하겠다 못하겠다 나가겠다 이런 소리죠 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임금도 적고 일 자체도 편한일이 아니니까… 계속 일할 생각은 (없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옮겨봐야 뻔하니까… 기량이 쌓이면 옮길 계획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그러나 취업이나 개인 창업의 전망이 밝지 않은 사회적 조건 하에서 이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수년간 기다린 끝에 간신히 조선산업을 떠나더라도 종종 재취업에 실패하거나 사업이 망하여 별 수 없이 다시 조선 하청 노동시장으로 재유입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 바닥을 떠난 사람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상당수의 조선산업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를 벗어나 다른 생계를 꾸리기 쉽지 않은 사회적 조건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먹고 살 만 하다면 결코 다시 조선산업 하청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들의 노동 조건은 고되다.

(2) 강제적 유출
강제적 유출이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조선산업 노동시장으로부터 강제로 퇴출당하는 것을 말한다. 산업재해나 노동조합 활동으로 강제적 내부 이동을 당한 노동자들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조선소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당하고, 조선 하청 노동시장으로 재유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대 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노동 능력을 크게 상실했을 때는 물론이고, 노동 능력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산재보상 청구를 했을 경우에는 원청사업주에게 찍혀서 두 번 다시 조선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고 한다. 조선소에는 원청사업주들이 산재신청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영구 추방하기 위한 “산재리스트”와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데 이런 강제적 유출은 정말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모든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에 출입하기 위하여 원청 사업주로부터 출입증을 발급받는데, 이 출입증 발급이 중단되면 그것이 바로 해고를 의미한다.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서 돌려받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짤리는거죠. 뭐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특히나 요새 물량이 뚝 끊기니까, 뭐 어디 좀 쉬었다 와라 이래도 뭐 군소리 못하고, 괜히 뭐 얘기했다가 또 일 못하니까, 또 못들어가니까. 안주면 못들어가는 거죠. 일단 공장 안에 못들어가니까 끝나는 거지. 뭐 (업체에) 전화하면, (그쪽에서) 전화 안받으면 끝이니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다음 호에 계속)

2006-01-27 01:50:43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