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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노사관계 구상의 성격과 민주노조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13호
신병현

자 료




신노사관계 구상의 성격과 민주노조운동


신 병 현 (연구위원, 홍익대 교수 경영학)



이 글은 사회개혁운동연합에서 발행하는 「참개혁」 96년 7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유혹으로부터 철저하게 거리를 두려는 노력이 필요한 전략적 결정의 식라는 필자의 주장은 노동법개정투쟁을 향한 투쟁 대오를 구축하는 현 시기에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하여 자료란에 싣는다.



‘신노사관계 구상'이라는 마지막 남은 두 개의 카드 중 하나가 공개되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래 금융실명제를 필두로 하나씩 펼쳐진 선정성 담론 정치가 이제 노동 분야에 밀어닥친 충격의 파도를 타고 통일이라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실상 김영삼 정부의 등장 이래로 무수한 ‘개혁' 정책 안들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발표되어 왔으나 별로 신통한 개혁을 가져오지 못하였음은 익히 경험하고 있는 바다. 이번 4월 24일 발표된 ‘신노사관계 구상'도 매스컴을 동원한 여론 형성과 몰아가기 식의 담론 정치의 면모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신노사관계 구상의 등장 배경과 성격을 노동조합 및 노동운동을 포위 공격하고자 하는 신보수주의적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신노사관계 구상의 기본 내용

신노사관계 구상 담화는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하여 각 분야의 의견을 수렴하여 21세기 세계 일류 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노사관계 제도를 형성하고자 한다는 통치자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제스처로 국민들에게 던저졌다. 구체적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고 모호하지만, 단지 그러한 의지를 비친 것 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섣부른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의견 수렴의 중심 통로로 설치된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는 그동안 불법 단체로 규정하여 탄압 일변도로 대해왔던 민주노총을 포괄함으로써 대외적으로 그럴듯한 구색 갖추기에 성공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단 신노사관계 구상의 호선(co-optation)전술은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신노사관계 개혁의 구상은 일간지의 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시피, 노사 관계 법규의 개폐뿐 아니라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걸맞도록, ‘기업문화와 의식개혁 국민운동'을 통한 ‘21세기형 새로운 노사관계 모형'을 구축하고, ‘협력적 노사문화'를 형성하자는 다분히 수사적이고 모호한 주장을 담고 있다. ‘구상'은 ‘분배와 생산의 효율을 동시에 달성하는 고효율 고복지로 향하는 공동선 극대화 원칙', ‘기업의 의사결정에 근로자 참여폭을 넓히는 열린 경영에의 참여와 협력의 원칙', ‘노사자치의 바탕 위에 자율과 책임의 원칙', ‘근로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인간존중과 교육중시의 원칙', ‘법과 제도를 국제관행에 부합하도록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바꾸는 제도와 의식의 세계화 원칙' 등을 통해 노사관계 개혁 추진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노․사․정 각각에게서 ‘합리적' 노동운동, ‘인간존중'의 ‘열린' 경영, ‘공정하고 효율적인'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함을 부연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 원칙과 부연 설명들에 비추어 볼 수 있는 노사관계상의 제도적 변화의 내용들은 이미 노동계 및 학계에서 거듭해서 주장되거나 국제적으로 수치스러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쟁점들을 추수하고 있을 뿐이고, 그럴듯한 수사적 표현을 통한 부연 설명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가 노사관계상의 주요 쟁점들을 망라하고, 기존의 노사 관계를 둘러싼 대립과 논쟁의 지형에 심각한 변화를 야기시킬 수 있는 상충돠는 주장들을 병열적으로 접속시켜, 동시에 포괄하는 듯 하기에 노동계의 초미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 신노사관계 구상의 등장 배경

‘신노사관계 구상'은 정권 말기로 가면서 김영삼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선거용 카드의 하나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이면에서 작용하는 신보수주의 및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적 실질 및 정치 과정, 그리고 자본합리화 운동과 관련된 비교적 일관된 흐름이 강조되어야 할 것 같다.
신노사관계 구상은 80년대 후반이래 일관된 노동통제 정책 기조와 자본합리화 공세속에서 대두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국가의 노동정책적 측면에서 볼 때, 구상의 내용들은 지난 92년 대선을 앞두고 제시되었던 신노동정책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인제 장관의 노동개혁 실패후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사안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93년 94년간의 노․경총 밀실합의로 상징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색조도 띠고 있다. 나아가 초우량 국가, 세계화, 정보화 등의 구호로 계속해서 변신해 온 국가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와 노동자 및 민중 배제적인 정치과정의 비교적 일관된 흐름들 속에 신노사관계 ‘개혁' 구상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합리화 공세의 측면에서 볼 때, 노사 관계를 둘러싼 정치, 이데올로기적 지형의 획기적 변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맥락을 조성하려는 노동정책적 기조가 ‘기업문화', ‘협력적 노사문화', ‘효율', ‘교육중시' 등의 표현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고용보험제도의 시행과 더불어 근로자파견제, 정리해고제, 변형 근로시간제 등을 통한 노동력 이용의 유연화가 가능한 법적, 제도적 조건의 형성 의도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신경영전략 공세의 효과들이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와 동원 역량에 따라 매우 불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는 시기에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현시기는 신경영전략의 전략적 핵심으로서 작업장 노사 관계 지형의 변화를 둘러싸고 노 자간의 힘겨루기로 돌입되고 있는 시기이다. 강력한 노조와 대립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들에서 인사제도의 개편과 노동자들의 자발적 동조와 강제적 참여를 위한 구체적 장치들(인사고과, 임금체계, 교육훈련제도 등의 유기적 통합,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제 등 유연한 노동력 이용방식의 실현을 위한 관리장치들)로의 개편이 노동조합과의 대립속에서 지지부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자본합리화 과정속에서 볼 때, 신경영전략의 과실을 보다 실질적으로 거둘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조성되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돠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것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동시에 그것의 시행을 통한 효과는 노동조합의 현장 영향력 약화이며, 관리층 및 감독직들의 영향력 강화이다. 그나마 어렵사리 이루어 낸 민주적 노동조합 운동의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내려 하는 것이다.
‘유연화'를 통한 기업 슬림화(군살빼기) 및 투자 수익율의 극대화와 '자발적인 참여 및 동기부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방법은 없을까? 바로 이런 생각이 신경영전략적 사고의 핵심이다. 힘있는 자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답은 아마도 저항의 봉쇄와 선별적인 참여의 조건을 조성해 내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 강력한 노동조합의 반대는 가장 큰 장애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경영전략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노동자들의 선별적 참여와 개별적 유인의 기제를 마련하고 기업문화 운동 등 각종 의식개혁운동을 통해 노동조합의 작업장 영향력을 와해시킴으로써 집단적 수준에서 동원과 합의의 헤게모니적 기반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작업장 노사관계를 ‘협력적으로' 규제하고자 한다. 그 귀결은 일본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여러 징후가 드러나고 있는 것 처럼, 기업의 투자 수익율 또는 주주들 부의 극대화(즉, 매우 특수한 의미의 ‘효율성')와 이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와 초과밀 노동으로 인한 산재 발생, 과로사, 노동자들의 건강장애 등일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심각한 고용불안의 문제일 것임이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곧 일반국민들의 일상적 생활 곳곳에 대한 대기업 및 정부의 간섭과 영향력이 더욱 강화됨을 의미한다. 세계화가 나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조만간 직장문제 및 생활상의 고통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신보수주의 / 신자유주의의 유혹

김영삼 정부 등장 이래 지금까지 전개된 재벌정책이나 사회복지 그리고 교육개혁 정책들의 정책적 기조를 볼 때, 주요 재벌들의 부의 증대방안이 국가경쟁력 강화 및 세계화의 방안이 되고 전 국민경제 및 교육개혁 및 의식개혁이 나아갈 방향으로 설정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화'와 ‘국가경쟁력 강화' 구호는 신노사관계 구상에 담겨 있는 신보수주의 정치 및 신자유주의 경제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자본운동 영역의 개척과 동시에 기존 경계 내의 전반적인 재구조화의 흐름을 타고 넘자는 거대자본 중심의 의도를 핵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은 제한된 시장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거대 초국적 자본들 사이의 치열한 국제적 경쟁의 산물인 동시에 그에 의해 강력히 추동되는 국제적 자본관계의 구조적 재편과정이며, 유연한 노동력 시장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투쟁의 과정이다. 그것은 또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 및 조절양식의 위기로부터 야기되는 정치적 위기와 모순들을 권력블럭들 및 초국적 자본들의 연합과 국가들 사이의 개입과 조정을 통해서, 그리고 특정 국가 내에서는 국가 개입의 축소와 노동운동의 약화, 경쟁 및 시장기제의 강조와 개인의 경제적 이니셔티브에 대한 강조 등 다양한 전략적 접합을 통하여 일거에 해결하려는 신보수주의적 정치, 신자유주의 경제 이데올로기의 일반화, 현실화이기도 하다. 비록 다양한 편차를 두고 전개될지라도 이러한 신이데올로기들은 세계 주요 나라들의 국가주의적 프로젝트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한 프로젝트들은 대체로 개인주의적 혁신 및 창의성과 자조, 성취와 생산의 규범 등을 강조하는 기업주의적 문화(enterprise culture)를 이데올로기적 합리화 수단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규제에 대한 완화와 선별적 지원, 시장영역을 강조하는 공공부문의 민영화 및 재사유화의 추진, 나아가 사회 복지 수준을 최소 한도로 규제하는 동시에 노동조합을 교섭상대로 부터 배제하고 각종 법규를 통해 노동조합의 활동을 권위주의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자유방임적이고 시장경제적인 ‘효율성'을 보장하고자 하며, ‘유연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 핵심/주변, 생산자/기생자, 전문기술인력/비전문기술인력 등등의 두개의 국민으로의 이데올로기적 분할 효과를 창출하는 기업주의적 국가 프로젝트로 특징지어 진다. 즉,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개별기업의 ‘미시-경제적 경쟁력의 총합'으로서 국가경쟁력을 이해하는 가운데 ‘유연한' 시장기제의 작동을 보증하는 매개자로서의 기업주의적 국가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그 핵심으로 하고, 일국의 경제를 재구조화를 강제하고 나아가 사회질서 전반의 재구조화를 추동하고자 하는 보수 - 우익의 공통적인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신노사관계 구상 역시 그와 같은 신보수주의적 정치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다. 신정부의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 군부집권 시대의 노동배제적이며, 억압적인 노동통제 정책이 지속되어 오고 있는 동시에, 매스컴, 보수 정당들, 교육 및 시민단체 등 각종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동원한 문화정치적 공세가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전개되고 있다. 신노사관계 구상에서 보이는 수사적 표현, 현란한 언어 사용법(예컨대, 인간존중, 협력적, 합리적, 열린 경영, 효율적인 중재자 등)과 부연 설명들에서 강제적 합의 형성 시도를 위해 요구되는 정서적 맥락 형성을 노리는 담론 정치적 색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노사 관계 개혁위원회가 지닌 위상의 모호성이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최대공약수에 근거한 법안을 마련한다'는 노동부 관리의 발언 등을 종합해 보면, 신노사관계 구상이 지닌 동원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우리는 조만간 이러한 사회통합 기조에서 벗어나 있는 사회집단을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가차없이 탄압하고, 유연화 및 능력주의적 인력관리의 주요 희생자들인 여성․하청 노동자, 고령 노동자, 빈민․외국인 노동자 동을 배제시키는, 선별적 포섭과 배제가 기업내 인사 노무관리 뿐 아니라, 노사관계 및 노동정책, 나아가 사회운동 세력들에 대한 대응 기조 전반을 특징지울 것임을 쉽사리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노사관계 구상의 정치적 성격은 다음과 같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몇가지 점에서 민주노조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첫째, 대규모 공장 노조의 핵심 노동자층을 중심으로 정책적 판단을 할 경우에 자칫 조직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어 현장 기반의 강화와 새로운 조직화에 소홀히 함으로써 토대가 허약한 산업별 노조 건설로 나갈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동안 민주노조 운동에서는 특히 신경영전략의 노동현장 공세에 대한 방어적인 대응 속에서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절실히 경험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대안 모색의 필요성과 노동자간 연대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산업별 노조 운동에 힘을 모아 가고 있는 현재의 수세적 상태를 냉정하게 평가해야만 할 것이다. 주요 대기업들에서 이제는 작업장 수준에 보다 밀착된 방식으로, 즉, 팀학습 조직 기법과 경력개발 및 교육 훈련 제도의 연계 시도와 같이, 자발적 동조와 강제적 적응의 조건인 각종 관리장치들을 정비함으로써 가시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방향으로 신경영전략을 추진하고자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하부구조가 위태로운 시기라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 대중들과 노동조합들의 상태를 냉정히 평가하고 이에 걸맞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둘째로, 성급한 노동자 정치 세력화 논리가 지닌 위험이다. 즉 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데 있어 주요 관건이 되는 가장 시급한 사안이 산업별 노동조합 조직화이고,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고 보는 견해가 빠질 법한 유혹으로서 소위 ‘현실적' 정치 논리가 지닌 위험이다. 이미 한국노총의 경우에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 노조의 경우나 민주노총의 정책 경향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집단적 노사 관계 법규의 개정과 노동자 참여를 강조하는 가운데 패키지로서 생산성 및 유연성 논리를 ‘현실 정치적인 차선책으로' 수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리라 의심해 볼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운동계에 강한 유인 효과를 지닌 집단적 노사관계의 몇가지 사안들(예컨대, 복수노조금지, 제3자 개입금지, 노조의 정치 활동 금지, 성과급 및 제한적이고 사회적 합의 수준의 경영참여 등)과 자본합리화의 성공에 있어 실질적 관건이며, 노동조합의 현장 영향력을 무력화 시키는데 있어 관건이되는 개별적 노사관계에 관련된 주요 내용(예컨대,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제, 변형근로시간제 등) 사이의 교환식 거래가 현실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들이 이러한 우려를 갖게 한다. 과연 힘있는 자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들이 마련한 게임에 나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경제 이데올로기의 기조 하에서 집단적 노사 관계 제도는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 노사관계가 중심이 되어 집단적 노사관계를 대체해 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개별화, 경쟁, 종속화 등과 같이 개별 노동자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신경영전략의 주요 기제들에서도 이러한 점은 분명히 감지된다. 신인사제도들에서 말하는 능력에 따른 개별적 평가를 통해 임금수준을 결정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진행 과정속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노동조합 운동의 현장기반이 침식될 위험이다. 만에 하나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와 희망을 대변할 수 없는 노동조합 운동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관료화와 비민주적 운영으로 퇴행될 수밖에 없는 귀결을 갖게될 것이며, 설사 사회개혁이라는 민주화의 기치를 내걸지라도 노동자들이나 국민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이반 현상이 일반화될 것이다. 이 때의 노조는 본의아니게 일본의 경우 처럼 기업을 대신하여 핵심노동자들을 중심으로하여 노동자들을 관리 규제하는, 철저한 기업내 관리장치로 기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유연화 전략이 전면화되면서 내부, 외부 노동시장에서 핵심 노동인력과 여성, 고령자, 외국인 등 주변적 비정규적 노동인력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구별과 차별이 더욱 심화되고, 이들이 주요한 희생자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사로 치장되고 구체적 내용없는 형식적 틀을 양보받고, 개별 노동자 대중 및 열악한 고용조건 하에 있거나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나 빈민, 여성, 고령층의 고통,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의 현장기반 약화가 그 대가가 아닐까?
셋째로, 합법화를 통한 ‘합리적' 노사 관계로의 발전논리와 실리주의적 현실 인식에서 드러나는 유혹이다. 그것은 곧 법담론에 의해 호명되어 법적 시민권을 지닌 주체로서 ‘나'라는 자명성 이데올로기에 스스로 복종하는 종속적 주체화의 유혹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한편으로 산별노조건설을 위한 상층조직들의 연대투쟁들과 현장 노동조합들 및 노동자들의 신경영전략의 공세에 대한 어려운 방어 투쟁을 지원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합법적 활동 세력으로 인정받고자 많은 제스처를 취해왔던 점을 그간의 일부 활동들로부터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화의 상대자 중 하나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이 과연 민주노총에게 노력의 성과로서 얻어진 것인가? 이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과거와는 다르게 제도화된 노사관계 지형속에서 합법적 노동조합 조직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또 다른 활동의 장이 열린 호기로 보아,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타고 나가야 노동조합운동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성급하고 안이한 자기중심적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선거를 앞둔 시기여서 상황적으로 볼 때, 그동안 노동계에서 줄곳 주장되어 왔던 노사관계 관련 법규 개폐의 기회로서 그동안 운동의 성과를 제도적으로 확보해 낼 수 있는 있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시기로 보는 기회주의적이고 실리적인 상황논리도 있을 것 같다. 합법화되고 제도화된 틀 속에서의 노조 활동을 강조하는 것은 노조운동 및 노동운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기술발전의 가속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경계설정을 통해 외부를 창출해갈 것이고, 기존의 제도적, 법적 틀로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 집단과 노동자 내적 분열 및 타자들을 구성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합법화는 노동자 집단 내부에 경계 긋기를 스스로 자행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오히려 합법화보다는 그것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이 노동운동의 대의를 실현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주변부 노동자들의 보호가 더 시급하지 않을까?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이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과 지켜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인 것 같다. 수단으로서 조직적 틀을 양보받기보다는 현장 활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획득해 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민주적 노동운동에서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의 유혹으로 부터 보다 철저하게 거리를 두려는 노력이 필요한 중요한 전략적 결정의 시기인 것 같다. 한/노/정/연

1997-07-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2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