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노조 조합비 인상 반대투쟁의 경과와 전망 |
현장에서 미래를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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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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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이번 호 현장통신에는 2편의 글을 실었다.
‘철도노조 조합비 인상 반대투쟁의 경과와 전망’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을 전체 노동운동
진영에 소개한다는 취지에서
이철의 회장이 원고를 보내왔다. 서서히
그러나 힘있게 복원되어지고 있는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현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글이다.
‘한국통신 노동조합 96년 투쟁평가서’는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투쟁평가팀에서 작성한 평가서를 전문 게재하였다.
분량상의 문제, 단사 중심의 평가 기조, 평가체계의 평면성 등
많은 문제제기가 가능하겠지만
96년도 투쟁에 임했던 한국통신 노동조합 지도부의
‘공식적인 견해’라는 점을 고려하였다.
이 글이 놓치고 있거나 충분히 검토하고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해 정리되어진 견해를 가진 분은 ꡔ현장에서
미래를ꡕ로 투고해 주시기 바란다.
현 ◦ 장 ◦ 통 ◦ 신
철도노조 조합비 인상 반대투쟁의 경과와 전망
이 철 의 (철도 해고노동자회 회장)
기습적인 조합비 인상과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
지난 5월 23일 철도노조의 96년도 연차 대의원 대회가 수안보
관광호텔에서 열렸을 때 거기에 주목하는 조합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합원들은 그렇다치고 민주파 간부들조차 “그놈들 또
저희들끼리 모여서 먹고 마시다 오겠지…” 하는 정도로
철도노조의 대의원대회는 항상 그렇고 그런 식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회결과가 현장의 조합원들에게 알려지고 특히 조합비가
불법적으로 인상되었다는 사실이 철도노조 민주화
추진위원회(이하 노민추)의 기관지인 ‘새벽철길’을 통하여
폭로되자 현장은 금방 들끓어 올랐다. “그놈들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또 조합비를 올리느냐?”는 반응에서부터 “민주파
지부장들은 그런 것 하나 막지 못하고 뭐 했느냐?”는 질책에
이르기까지 조합원들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조합비가 33% 오른 것이 철도노조의 어용
기득권 세력과 민주파 지부들간의 전면적인 싸움으로 번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5월 하순에
시작된 싸움이 무려 석달이 다 되도록 장기간의 대치상태를
만들면서 철도노조의 어용 기득권 세력을 궁지에 몰아 넣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더욱 없었다.
도대체 철도노동자들은 왜 조합비의 인상을 반대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번 조합비 인상반대투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위축되어 있던 철도의 민주노조운동
94년 파업투쟁이 실패한 이후 철도의 민주노조운동은 철저히
위축되어 있었다. 88년 이래 민주노조운동을 이끌던 간부들의
주력은 해고와 전출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한 번 위축된
분위기는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였다. 해고된 동료를 돕기
위해 활동하였던 간부와 조합원들은 또다시 해고와 징계를
당하였으며 일상적인 노조활동조차 철도청의 집요한 간섭과
탄압으로 방해를 받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한때 철도청과
철도노조와 대치하며 강력한 대중투쟁을 자랑했던 전기협은 이미
파업후 복귀과정에서 전원이 탈퇴하여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이제 거칠 것이 없는 철도노조의 조병학 집행부는 노골적인
타락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조합원을 위해 싸울 의지도 힘도
없었지만 철도청과 유착하여 조합원을 탄압하는 데는 힘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88년 파업과는 달리 전기협의 주요
간부들은 모두 철도노조에 의해 고발당하였으며 파업직전의
경찰력 투입시 전원 구속되었다. 남아 있던 반대파들을 철도청의
징계와 함께 조직징계를 강행하여 모조리 싹쓸이하였으니
자신들의 의사에 반대할 세력이 더 없었던 것이다. 전기협에
소속되어 있던 민주파 지부들은 95년 선거에서 대부분이
파업투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지부장들을 선출하였으나 이들이
철도노조의 전횡에 맞서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것이다.
철도노조는 95년 대의원 대회를 경주 관광지의 호텔에서 치렀다.
명분은 “해고자들의 방해가 우려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전기협 시절 고생만 했던 대의원들을 위로해 주려는 뜻이 더
강하였다. 전기협 설립 이후 철도노조의 대의원 대회가 한 번도
정상적으로 치러진 일이 없을 만큼 대회가 난장판이 되곤 했던
것이다.
95년 경주대회는 위원장들에게는 그랜저 승용차를, 지방본부
위원장들에게는 소나타 승용차를 지급하는 결의를 이끌어
내었다. 당시 조병학 위원장이 94년의 위원장 선거에서 대의원
매수사건으로 검찰에 고발되어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처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노민추에서 승용차 지급결의를 폭로하였지만
조합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원래 그런 놈들이려니 했던
것이다.
조합비 인상반대 투쟁, 회복되는 대중의 투쟁동력
그러나 96년의 상황은 달랐다. 그들은 당연한 듯이 수안보
온천지의 호텔에서 대회를 치루었으며 대의원들은 위원장이 사준
더덕주를 마시면서 호텔방에서 노름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상여금을 지급하는 달에 조합비를 1퍼센트 더 차인하자는
위원장의 제안을, 재적 97명의 대의원 중 9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하였다. 그것도 정식 안건으로 제출된 것도 아니고
예산안 심의때 위원장이 “전임 간부들의 활동비와 판공비가
물가 인상에 미치지 못하여 사기가 저하되고 조합원 수가 줄어서
재정이 악화되었으니 조합비를 추가 징수하여 예산을 증액
편성할 것”을 설명한 후 증액된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편법으로
가결하였던 것이다.
대회를 참관하였던 민주파 지부장들에 의해 이 사실이 전해지자
노민추는 즉각적인 폭로 작업에 나섰다. 철도노조의 1년
조합비가 33억원에 이른다는 것과 대부분의 조합비가 엉뚱한
데로 탕진되고 있다는 것, 감원을 저지하여 조합원의 감소를
막기는커녕 슬쩍 합의해 주며 줄어든 조합원의 수 대신 조합비의
인상으로 벌충하려 한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폭로했다. 또한
조합비의 인상 절차가 회의절차를 어겼을 뿐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전혀 홍보조차 하지 않은 채 위원장의 독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장 조합원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평소 3,000여 부가
발행되는 노민추 기관지가 모자라서 수천부씩 더 찍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반응은 기관지를 배포하는 데도 민주파 지부의
조합원들보다 역무, 보선, 전기 등 전통적으로 어용들의 기반이
되어온 지부의 조합원들이 더 좋아서 해고자를 중심으로 어렵게
배포해야 했던 노민추 기관지를 현장의 조합원들이 공공연하게
배포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전에는 철도청이나
철도노조의 악선전과 탄압이 워낙 심해서 노민추 기관지를
배포하는 일조차 징계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5월 하순경 민주파 지부들은 자연스럽게 조합비 인상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수도권의 지부들은 서로 교류를 하며
비교적 조직적으로 움직였지만 과거 전기협 소속의 기관차
사무소 지부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서명운동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서명이 진행되자 이제는 조직적으로
반대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수도권의
지부장들과 간부들 간에 자연발생적인 서명운동은 한계가 있으며
단순히 조합비의 인상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노조민주화 투쟁으로 전환될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이
이루어졌다.
이 때 정리된 내용을 보면, 투쟁의 목표로는 첫째, 94년 투쟁
이후 침체된 분위기를 바꿔내어 대중투쟁의 기반을 만들고 둘째,
직선제 규약개정을 비롯한 노조민주화 투쟁을 장기적으로 이끌어
나갈 공개적인 현장 지도부를 건설할 것 등으로 요약되었다.
특히 과거 법외단체였던 전기협이 불법단체로 매도된 이후
법외단체에 대한 철도청의 반응은 매우 민감하였다. 워낙 탄압과
방해가 심하여 민주파 지부들 간의 일상적인 활동들조차
비공개적으로 추진되어 대중적인 동력을 얻기가 힘든 상황에서
공개적인 현장 지도부의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조합비의 인상을 유보하고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할 것을
주요 요구사항으로 정하였으며 일단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한
다음 조합비 인상 철회와 직선제 규약개정을 요구하여 본격적인
노조민주화 투쟁으로 전화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6월 13일, 마침내 ‘조합비 인상 유보와 조합원 찬반투표를
요구하는 서울지역 범지부 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결성되었다. 이후 범대위는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조직하여
1만명 이상이 서명하였으며, 6월 27일 조합원들을 이끌고
철도노동조합에 대한 항의집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집회에는 약
4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하였는데 94년 파업 이후 첫번째
대중집회라는 데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도 조합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철도노조 회관
앞마당에서 철도노조의 비민주성과 어용성을 규탄하였으며
사무총국에 들어가 철도노조 간부들에게 격렬히 항의하였다.
어용들의 반응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아서 분노한 조합원들을
보고 “대의원 대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라 번복할 수 없다”거나
심지어 “까불면 혼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다가 조합원들에게
쫓겨 들어 가기도 하였다.
이날 집회에서 범대위 지부장들은 철도노조 잡행부에게 7월
10일을 최종 시한으로 통보하였으며 만약 그때까지 요구사항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본격적인 반대투쟁에 돌입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끝내 범대위의 요구를
묵살하였으며 위원장은 오히려 7월 11일 조합을 방문한 범대위
소속 지부장들에게 “자꾸만 그러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조직징계를 암시했다.
7월 15일에는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한 ‘조합민주주의의
실현과 불법적인 조합비 인상 철회를 위한 철도노동조합 전국
범지부 대책위원회(이하 전국범대위)’가 결성되었다. 전국
범대위는 서울전동차 사무소의 지부장인 유광배 동지를
상임의장으로 선출하였으며 철도노동조합의 160여개 지부 중
27개 지부를 망라했다. 이날 결성된 전국 범대위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전기협의 와해
이후 비로소 공개적인 현장지도부가 건설된 것이며, 지부 숫자는
적지만 철도노조 3만 조합원 중 7,000여 명의 조합원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대중투쟁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것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위축되어 있지만 전국적인 파업투쟁을
두 번이나 벌인 과거 전기협 지부들이 중심이 되어 있으니 깨진
조직을 어느 정도는 복구하였다고 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수도권의 경우는 기존의 전기협 지부 뿐만 아니라,
역무, 보선, 전기 등 타 직종 지부까지도 망라되어 있다).
전국 범대위는 7월 18일 철도노조 회관에서 2차 항의집회를
개최하였다.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 속에서도 약 5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이날 집회에 참여하였으며 반민주적인 어용 집행부
규탄과 노조민주화 투쟁의 결의를 다져,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범대위는 소속 전 지부에 프랑카드를 게출하여 철도노조
집행부의 조합비 인상을 항의하였으며 조합비 인상이 철회될
때까지 조합비 납부를 거부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조합비 일괄공제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는 서명운동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이를 철도청에 내용증명으로 발송하여 단체협약에
체결된 조합비의 일괄공제를 원천봉쇄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법원에 ‘조합비 인상결의 부(不)존재 확인 청구소송’과
‘조병학 위원장 선출결의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잇따라
제기하여 법적인 절차를 밟기도 하였다.
결코 꺽이지 않을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
이제 철도노조의 조합비 인상을 계기로 촉발된 조합비 인상
반대투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철도노조에서는 7월 27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범대위를 주도하는 지부장 및 간부들을
조직징계에 회부하기로 결의하였으며 중앙위원회를 열어 이를
확정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이제까지 노골적인 개입을
자제하던 철도청도 철도노조가 위기에 몰리자 철도노조 조병학
위원장 편들기에 나서고 있다. 철도청은 근무날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지부장 한사람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였으며
위원장에게 조합비 인상을 반대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조합원을 징계에 회부하였다. 또한 범대위의 유인물을 뿌린
이유로 조합원 한사람이 중징계에 회부되어 있으며 또 한사람의
조합원은 강원도 사북으로 전출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94년
파업투쟁 과정에서 대전에서 강원도 정선으로 전출을 당했었는데
이번에 또 더 오지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철도청의 탄압은 주력인 범대위 소속
조합원들보다 범대위 밖에서 호응하는 조합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는 철도청이 조합 내부의 일에 노골적인 개입을 하기가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두어 달 새 급격하게 투쟁력을 회복한
철도 민주노조 운동을 정면으로 치기에는 두려움을 느낀 까닭도
있다.
철도청은 최근 열기로 하였던 징계위원회를 이유없이 연기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철도노조 또한
말로만 징계를 한다고 위협하고 있으나 아직 강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은 조합원들의 여름 휴가와 겹쳐 약간 소강상태에서
서로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범대위는 8월 22일 용산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투쟁의
전기를 마련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런대로 투쟁을 잘 이끌어
민주노조 운동 진영의 간부와 조합원들이 자신감 및 투쟁력과
조직력을 회복하는 성과를 가져 왔다면, 이제 그것을 구체적인
성과로 마무리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투쟁이 단순히 조합비 인상 반대투쟁이 아니라는 것은
간부들은 물론 조합원까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어용
노동귀족들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조합비 인상을
철회하면 이번에는 직선제 하자고 할텐데 그렇게는 못한다”고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투쟁을 통하여 철도의 민주노조 운동은 조합원들의 신뢰를
상당히 회복하였다. 어찌 보면 몇푼 안되는 조합비의 인상과
같은 문제로 무려 석달 가까이를 끈질기게 싸워온 것이다.
압도적인 세력의 열세와 노골적으로 어용집행부 봐주기를 일삼는
철도청의 탄압을 딛고, 94년 파업 투쟁 이후의 무기력함과
패배감을 떨치고 일어선 것이다.
단순히 조합비 인상에 반대하는 정도였다면 그럴 수 없었다고
판단한다. 두번의 파업투쟁으로도 쟁취하지 못한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이 그런 싸움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철도노조와 철도청의 비열한 탄압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철도에서
3중 간선제로 유지되는 어용 집행부가 있는 한, 그리고 거기에
분노하는 조합원들이 있는 한 노조 민주화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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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7-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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