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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복지 개혁 새로운 역사를 향한 의미있는 전진

현장에서 미래를  제13호
채만수


정 ․ 세 ․ 초 ․ 점


미국의 ‘복지 개혁’, 새로운 역사를 향한 의미있는 전진(?)


채 만 수 (부소장)


‘복지 개혁’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말 공화당 지배하의 미 의회와 클린턴 행정부는 1935년 이래 61년간 유지되어 온 미국의 사회복지제도를 ‘개혁’하는 데에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였다. 공화당의 입장에서는 군사비를 증대시키고 고소득자에게 감세(減稅) 혜택을 베풀면서도 사회보장 비용을 삭감하여 ‘균형예산’을 달성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획득한 것이고,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복지를 끝장내기로’(ending welfare as we know it) 한 지난 92년의 선거 공약을 마침내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7월 하순에 상・하 양원을 통과하고 클린턴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복지개혁법(Welfare Reform Act)은 빈곤 아동을 위한 연방정부의 현금 지원을 폐지하고 생활보호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연한(年限)의 제한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워싱톤에 자리한 두뇌집단인 도시연구소(Urban Institute)의 추산에 의하면, 이 법에 의하여 연방정부의 빈곤 대책 비용의 약 22%가 삭감되고, 미국의 5가족 가운데 1가족 이상, 즉 1천1백만 명 이상이 이로 인한 악영향을 받는다(People's Weekly World, 96. 8. 3.).
구체적으로는 부양 아동을 가진 가족에 대한 지원(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 AFDC)의 대폭적인 삭감으로, 여러 분석에 의하면, 1백만 명 내지 1백50만 명의 어린이와 수십만에 달하는 그들의 부모, 특히 어머니들이 추가로 극빈의 상태로 몰릴 것이다(Workers World, 96. 8. 8.). (현재 미국에서는 전체 아동의 8분의 1, 그리고 흑인 아동의 3분의 1이 복지제도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다 : Electronic Telegraph, 96. 8. 1.).
새로운 ‘개혁법’ 하에서는 누구도 평생에 걸쳐서 5년 이상 이 복지수당(AFDC)을 받을 수 없고, 2년 이상 계속하여 이 수당을 받을 수 없다. 또 복지와 관련한 정책 권한을 대폭 주(州, states)에 이양한 것도 이번 ‘개혁법’의 특징의 하나인데, 주는 판단에 따라서 5년의 수혜기간에 더욱더 제한을 가할 수 있고, 미혼의 10대 부모에 대해서는 수당의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다(Detroit Journal, 96. 7. 28.; WW, 96. 8. 1.).
“현재 복지수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출산율이 전국의 평균 출산율과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출산율을 낮추는 주들에는 보상금이 주어질 것이다. 인종주의적 우생학(優生學)의 새로운 변종으로서, 이번에는 기아(飢餓)에 의한 우생학인 것이다. 또한 어떤 형태의 것이든 복지수당을 받고 있는 여성이 낳는 어린애들에 대해서 주(州)는 추가적인 수당 지불을 거부할 수 있다”(WW. 96. 8. 8.).
엄격한 수혜 기준 때문에 30만 명의 빈곤한 장애 아동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고, 50세 이하의 미혼 성인이 평생에 걸쳐서 급식 지원을 받는 것도 3개월 이내로 제한되어 70만 명 이상이 급식(food stamps)에서 제외될 것이다. 20만 가족 이상(약 50만 명 이상)의 ‘합법적인’ 이민자들에 대한 생활 보조금 지원과 약 1백만 명의 합법적 이민자들에 대한 급식이 거부된다(DJ, 96. 7. 28.; WW, 96.8. 8.).
이 법률은 또한 학교의 점심 급식을 포함한 모든 복지 신청자들에 대해서 주 및 지방자치 정부가 그들의 시민권 상태를 확인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인종주의적이고 반이민적인 박해를 조장하는 경향도 있다(WW, 96. 8. 1.).

‘복지 개혁’의 논리와 미국의 재정 적자

미국에서의 ‘복지 개혁’은 그를 둘러싼 공화・민주 양당이 공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서, 양당간의 요란한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존의 복지제도를 전면적으로 공격하여 그것을 사실상 폐지하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기존의 복지제도를 공격하는 논리는 단순한데, 하나는 그 ‘비효용성’과 ‘불필요성’을 적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재정 적자의 누증에 의한 파산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지속적인 복지를 위한 긴축’을 주장하는 것이다.
“1930년대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 하에서 그 제도가 도입된 이래 발전되어 온 의존의 악순환을 깨뜨릴 주요한 입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ET, 96. 8. 1.)는 클린턴의 발언은 그 ‘비효용성’과 ‘불필요성’을 말하는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는 사회보장제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대신에 그 사회보장제도에 생계를 의존한다는 논리로서, 복지 대상자들에 대한 악질적인 모욕이고 가장 상투적인 공격이다. 이러한 발언의 전제는 사회적 생산방식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 복지제도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의 게으름’이 실업(失業)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번 ‘복지개혁법’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전제 위에 있는 것으로서 AFDC의 계속적인 수혜 기간을 2년 이내로 제한한 것이라든가 평생의 수혜 기간을 5년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물론 비유하자면, ‘병원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병이 나고, 따라서 병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것으로서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다른 것은 그만두더라도 부르조아지 자신들이 작성하는 실업 통계 기준과도 모순된다. 그들의 실업 통계 기준의 하나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았으나 취업하지 못한 자’이기 때문이다.
복지제도의 ‘비효용성’ 혹은 ‘불필요성’에 관한 주장의 다른 하나는 ‘복지제도가 빈곤을 근절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개혁’, 즉 해체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병원이 질병을 근절하지 못한다고 해서 병원을 없애야 하느냐?”는, 지금 언론 자본에 맞서 1년 이상 파업 중인 디트로이트 언론노동자들(Detroit Journal)의 항변이 가장 적절한 응수가 될 것이다.
‘복지 개혁’에 대한 가장 힘있는 논리는 계속 누적되어 가고 있는 미국의 재정 적자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 주장의 핵심은 ‘복지제도를 개혁, 즉 축소하지 않고는 누적되는 적자로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현재 약 $5조에 이르러 실제 ‘파산’ 상태에 있고, 따라서 그 ‘해결’이 주요한 과제로 등장해 있는지 오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로 되는 것은 우선 이러한 재정 적자의 원인이 과연 복지제도, 넓게는 사회보장제도의 비효율성 혹은 방만성에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음엔 복지 예산 혹은 사회보장 예산을 축소하여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이 타당한가이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뿌리가 깊은 것으로서 예를 들면 이미 1950년대 말부터 국제통화제도의 위기를 불러오고 70년대 초에 이르면 ‘금 1온스 = $35.-’라는 대외적인 달러 가치의 고정 금평가에 기초했던 국제통화제도로서의 IMF체제를 붕괴시키는 근본적 원인이었다. 이 당시는 ‘국제통화제도의 위기’, 혹은 ‘달러 위기’로서 나타나면서 문제가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바이 아메리칸’(By American) 등 ‘달러 방어정책’이 주요 대응책으로서 동원되었는데, 당시 미국의 무역수지는 기본적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었고, ‘국제수지 적자’의 원인은 주로 군사비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 재정 지출이었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과도한 ‘재정 지출’에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재정 적자’가 뿌리 깊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미국 재정의 위기’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재정 적자’가 본격적으로 ‘위기’로서 등장하는 것은 공화당 레이건 정권에 이르러서인데, 이는 레이건 정권에 의한 군사비의 대폭적 증액과 고소득 기업 및 개인에 대한 감세(減稅)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었다.
우선, 레이건 정권으로의 교체기(1978∼1980년)까지의 미국의 (공식) 군사비 지출은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의 5%를 넘지 않았고, 예산 지출에서의 군사비의 비중도 대략 22%대로서 연간 예산 적자는 $740억 미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레이건이 집권하여 군사케인즈주의를 강화하면서부터 GNP 가운데 군사비 비중은 급격히 증가하여 1981년도 5.16%을 시작으로 87년도에는 6.28%에 이르고, 예산 지출에서의 군사비 비중도 급격히 높아져 81년도의 23.2%를 시발로 1988년도에는 29.1%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연간 군사비도 1978년도의 $1,045억에서 1988년도에는 $2,976억로 증대되었고, 군사비의 이러한 증대와 나란히 재정 적자와 국채(國債)가 증대, 누적되어 갔다. 그리고 그러한 누적 운동의 결과, 오늘날 미국의 연간 재정 적자는 $2,000억~$3,000억을 기록하면서 누적 적자가 $5조에 이르러 연간 GNP의 70%를 넘게 되었다.
세입의 측면에서도 레이건 정권은 이른바 ‘공급자 경제학’을 내세워 고소득 기업과 고소득 개인에 대한 대대적인 감세를 단행하였고, 이에 따라 재정 적자 누증의 또 다른 구조가 고착되었다. 예컨대, 부양가족 없이 연간 $75,000.-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의 경우 1954년∼1963년간에는 $75,000.-를 넘는 부분의 78%를 세금으로 냈으나 오늘날에는 31%만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
이상의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미국 재정 적자의 원인은 군사비의 증대와 고소득 개인 및 법인에 대한 감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재정 적자의 해소책도 당연히 군사비의 삭감과 고소득 개인 및 기업에 대한 증세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의 원인이 엉뚱하게도 복지제도 탓으로 돌려지고, 그 예산의 삭감, 사실상의 해체를 통해서 ‘균형 예산’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공화・민주 양당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미국 지배계급의 의도이고, 공화당은 그 강경파이다.
‘재정 적자’ 및 ‘균형 예산’ 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공화당의 경우,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는커녕 계속적인 감세, 즉 ‘부자들을 위한 복지’(welfare for the rich)를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6월 12일에 미 하원은 공화당의 주도로 ‘적자 지출을 끝내고 많은 정부 프로그램의 확대를 통제하기 위한 청사진’이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결의안은 향후 6년간에 걸쳐서 $1,000억 이상의 세금을 감면하겠다는 계획도 포함하고 있다(INEWS, 96. 6. 14.).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소득의 크기에 관련 없이 단일 세율('flat tax,' 예컨대, 연간 소득의 17%)의 세금을 내자’(예, S. Forbes)는 주장도 유력하게 제출되고, 심지어는 소득세를 아예 폐지하고 (생산적 소비에 대해서는 면세하는) ‘소비세’만을 부과하자는 주장까지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군사비와 관련하여서도 ‘재정 적자’와 ‘균형 예산’ 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특히 공화당의 경우, 군사비를 삭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대폭적인 증액을 꾀하고 있다. 새로운 미사일 망을 구축하자는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지난 6월 12일에 미 하원이 통과시킨 1997년도 군사예산은 약 $2,450억로서, 클린턴 행정부가 요구한 금액보다 약 $110억, 1996년도 군사예산보다 약 $20억를 증액한 금액이고(INEWS, 96. 6. 14.). 지난 7월 18일에 상원을 통과한 군사예산은 $2,600.-억이다. 군사비의 이러한 증액이 ‘균형예산’을 강조하는 공화당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1981년에서 1992년까지의 군사비는 약 $3조7,000억).
말하자면, 레이건 정권 이래로 미국의 역대 정권은 군사 지출의 증대와 고소득 개인 및 기업에 대한 감세로 재정 적자를 확대해 오면서, 그 적자를 소수 금융자본가들로부터의 차입금으로 메워 오다가 그 적자의 누증으로 재정 위기가 심화되자 그 원인을 복지제도에 돌리면서 그에 공격, 해체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 개혁’의 귀결 : 하나의 가능한 장기적 전망

그리하여, ‘복지 개혁’의 의도를 재정 적자의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순진한 것이다. “그들이 복지를 삭감하고자 하는 것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전반적으로 낮추기 위한 것이고, 그리하여 노동자들에게 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대부르조아지에게는 수십억 달러의 이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WW, 96. 8. 8.). 또 이 때문에 ‘복지 개혁’ 곧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과 그 해체는 고삐 풀린 자본의 지배력이 그 극에 달해 있는 이 시대의 하나의 경향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향은 동시에 현시기의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생산관계에 조응하지 않는 고도의 생산력과 그에 따른 자본간 경쟁의 세계적 규모에서의 격렬함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반영하고 있다. 즉, 대부르조아지의 대표자들에 의한 ‘복지 개혁’은 한편에서는 과잉생산에 시달리는 자본이 경쟁이라는 외적 강제에 밀려 상품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별 자본 혹은 국민적 자본의 이러한 몸부림은 모든 개별 자본 모든 국민적 자본이 필사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서, 특정 개별 자본 혹은 특정 국민적 자본의 경쟁에서의 패배와 몰락, 그리고 일시적 우세라는 개별성을 별개로 한다면, 그것은 경쟁의 전반적인 격화, 위기의 전반적인 심화라는 결과로 될 뿐이다.
미국의 ‘복지 개혁’을 포함하여,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경향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 그 해체도 이러한 위기 심화의 한 표현이자, 다시 그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되고 있다.
애초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제도 자체가 대량적 실업이라는 자본주의의 위기 증상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발단하여 노동자들의 요구의 일부를 부르조아 정부가 위기 대응책으로 수용함으로써 성립된 것이다. 미국의 예를 들자면, “노동자가 실업 중에 어떤 소득을 얻을 권리는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위대한 사고(思考)에서 나온 선물이 아니었다. 모든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투쟁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당시 전투적인 스트라이크, 공장 점거, 노조 조직, 거리 시위 등의 물결은 지배계급을 경악케 했다. 사람들은 경찰과 싸워 길거리에서 죽어 가면서 노동자로서의 그들의 권리를 요구했다”. 그리고 ‘중도 민주당원으로서 부유한 귀족이었던 프랭크린 루즈벨트’는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의 곤경에 대해서 대단히 염려하는 듯이 행동함’으로써, 즉 “사람들이 실업, 사회보장 및 복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도화함으로써 1935~36년에 미국의 자본주의를 구출하였다”(WW, 96. 8. 8.).
그러한 연유와 배경에서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복지제도’를 해체하는 것은 당연히 그 사회의 위기로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공화・민주 양당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부르조아지들은 ‘복지 개혁’, 즉 복지제도의 해체를 단행하고 있다. 물론 그 해체가 가져올 사회적 위기를 그들이 계량하지 않은 바 아닐 것이다. 돌(B. Dole)이나 깅리치(N. Gingrich), 그리고 뷰캐넌(Buchanan) 등으로 대표되는 강경 공화당과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간의 다툼이 바로 그들도 이 위기를 의식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즉, 이 다툼은 이 파국적 위기를 불러오지 않는 선이 어디인가에 대한 의견의 대립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도’의 문제, 양(量)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인데, 목전의 이해와 위기의 압력에 몰리고 있는 대부르조아지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시각의 유일한 입지점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정도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한 채 진행되고 있는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과 그 모순, 즉 과학기술혁명의 자본주의적 이용과 그에 따른 구조적 실업의 대량적 발생을 염두에 둘 때, 지금이야말로 복지제도의 해체가 아니라 그 강화가 요청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강화 없이는 과학기술혁명의 자본주의적 이용으로 발생하고 있는 대량의 실업자와 그 가족들이 생계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시점에 복지제도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 현시기 자본주의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1930년대적 처방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격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세계는 지금 사회적 생산관계의 질적인 전환이 없이는 그 모순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는 것이고, 자본주의의 패권국가의 대부르조아지를 대표하는 공화・민주 양당이 단행한 ‘복지 개혁’은 예수교에서 가롯 유다가 제 ‘할일’을 했듯이 그러한 전환을 향해 나아가는 도상에서 그들이 제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의 ‘복지 개혁’은 새로운 진정한 복지, 노동자 계급 스스로의 권력에 의한 복지를 향한 의미 있는 전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노동자 계급에게는 새롭게 강화되고 있는 인종주의적 및 파시즘적 경향과의 투쟁과 그 극복이라는 당면한 임무가 주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은 이미 그러한 작업과 투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혁명적인 노동자 정치조직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00만 명 이상의 취업 및 실업 상태의 조직노동자들을 대표하는 1,367명의 대의원들이 지난 6월 6일∼9일에 클리브랜드(Cleveland, OH)에 모여 출범시킨 노동당(Labor Party)은 그러한 작업과 투쟁을 본격화해 가고자 하는 미국 노동자 계급의 의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996-07-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2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