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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구속 수배 해고노동자 하계 수련회를 다녀와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14호
양순덕

이달의 참관기


서러움과 눈물로 점철된 나날들, 그러나 거기서 희망을 조직하는 사람들!
―전국 구속․수배․해고노동자 하계 수련회를 다녀와서


양순덕 (전국 구속․수배․해고노동자 원상회복을 위한 지원대책위원회 상황실)



노동력 상품에서 해고자로, 그러나 다시 인간으로 거듭나다

모든 활동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이행하는 전환점을 포착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오랜 싸움일수록 투쟁의 고양기와 하강기의 완급조절이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련회는 상반기를 숨가쁘게 달려온 해고 노동자들에게 호흡조절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에게 재충전이란 무엇인가? 자본의 이윤추구는 세계 일류의 고지를 향해 무한질주를 갈구한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사용가치를 지닌 노동력 재생산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자가 생산라인에서, 사무실에서 풀려난 즉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포섭은 다른 공간에서도 작동한다. 이데올로기는 물화된 힘을 가지고 사회 곳곳에 촉수를 들이민다. 경쟁대열로 회귀할 것을 전제로 한 휴식만이 최소한의 법․제도적 장치로 보장받는 것이다.
여기에 변별점이 존재한다. 해고자는 자본으로부터 ‘노동력 상품’이기를 거부당한 사람들이다. 즉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에게 주어지는 기본권인 일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영원한 휴식’을 종용받는 사람들이다. 사측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반발이 조직적 저항으로 번지고, 자본의 압도적 힘의 우위 하에서 조직적 대량해고에 직면하게 된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민이길 거부당했지만, 이들의 싸움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가 호명한 ‘시민’의 경계 안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에 의해 그어진 해고자와 임금노동자의 경계를 허물고 ‘당신도 해고자가 될 수 있다’고 외친다. 자본의 질서가 횡행하는 이 사회에선 한줌의 지배세력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가 항상적인 해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선전하고, 연대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선다. 해고자와 현장 노동자의 경계선 허물기가 어려울수록 자본가․정권과의 경계선 긋기는 한층 가열차다.
저들에 의해 붙여진 해고자의 딱지가 무색할 정도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사람들! 운동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은 많으나 이를 뛰어넘으려는 치열함이 드문 시기에 자신의 삶으로 희망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이제, 그들이 있었던 2박 3일 수련회의 열기 속에서 그 희망의 공기를 나눠 마시고, 우리의 심신을 재충전하자.

네 살 박이 전해투의 특별한 여름나기

막바지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16일, 충북 단양의 상선암 계곡에는 이상기류가 번지고 있었다. 전국에서 과격하기로 소문난 집단이 며칠 동안 이곳에 준동(?)한다는 긴급연락을 받고 관할 경찰서가 바짝 긴장을 한 것이다. 수련회 기간 내내 역동적 집단의 전투적인 토론과 집단행동을 주시했던 그들은 알 것이다. 소문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93년 해고자의 인간선언을 하며 조직적 틀로 태동한 전해투(현재는 ‘민주노총 해고자 복직투쟁 특별위원회’)가 네 돌을 넘긴 지금, 수련회에서 새삼 느끼는 것은 전해투의 투쟁이 복직된 사람의 산술적 숫자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분기점이 된 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인 88년부터 현재까지 약 5,327명이 정식(?) 해고자로 집계되고 있다. 집계상 50인 이하의 영세 사업장은 미포괄되었으므로 비공식 해고자는 제외된 수치이다. 여기서 약 40%에 해당하는 2,100명 정도만이 복직자 명단에 올라 있다. 이들 중에서도 총 1,557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던 전교조에서 93년 ‘전교조 탈퇴서 작성’을 조건으로 복직된 1,400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업종별, 그룹별 각 해고발생 사업장으로 원직복직된 해고자의 수는 매우 저조하다.
복직율 몇 퍼센트 달성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것은 결사항전의 자세로 투쟁의 최선봉을 지켰던 전해투의 깃발이다. 노동운동의 소강국면에서 평행선을 깨며 투쟁을 감행했던 전해투 동지들의 선도성이다. 아마도 전해투 동지들을 쉼없이 투쟁하게 하는 것은 극한에 선 자들의 오기일 게다. 노동악법이 살아있는 이 땅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위협, 해고가 오히려 그들을 단련시킨다. 수련회에 참가했던 각 지역의 해고자는 물론, 복직자로 구성된 전해투 평생 동지회(일명 ‘전평회’), 구속․수배․해고노동자 원상회복 지원대책위와 청년학생 동지들이야말로 전해투 투쟁으로 단련된 조직적 성과가 아닐까?

2박 3일 수련회 전체 일정을 관통하는 것은 하반기 전해투의 투쟁기조에 대한 확정작업이었다. 결정과정은 대표자회의를 통해 확인된 쟁점이 전체 토론 자리에서 집중 논의되면서 투쟁기조가 다듬어 진다. 그 다음 이러한 투쟁기조에 입각한 구체 전술이 분반토론으로 풍부화되고, 다시 둘째날 ‘단결의 밤’에서 최종 총화되는 형식을 취한다. 토론시 쟁점으로 부각된 내용은 △ 이후 전해투의 투쟁이 하반기 노동법 개정 투쟁에 어떤 방식으로 복무해 들어갈 것인가 △ 해고자만으로 국한된 투쟁을 넘어 어떻게 대중을 투쟁의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 △ 노개위 활용전술을 비롯한 민주노총의 행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등으로 모아졌다. 특히 세번째 쟁점과 관련된 ‘울산지역 해고자협의회’ 동지들의 발언은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답변과 함께 민주노총의 변혁적 강화라는 관점에서 논의의 촉발을 가져왔다.
이상의 논의 결과 확정된 전해투의 하반기 투쟁기조는 ‘노동법 개정 투쟁에 적극 나서며, 정부를 압박하여 산적한 해고자 문제의 일괄적 처리방안을 쟁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총기치 아래, 세부기조로서 △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법 개정 투쟁에 적극 결합하고, 특히 정리해고제 문제에 능동적 대응을 조직한다 △ 정부 각 기관, 노개위, 정당, 국회 등을 방문하여 해고자 완전복직을 촉구한다 △ 대재벌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세가지 줄기를 잡았다. 이를 실물화시키기 위한 출발점으로 우선 9월 2일부터 열흘 간을 중앙집중 투쟁기간으로 상정하고, 명동 농성장을 거점으로 경총 항의방문, 노동부․노개위 면담 등을 실시한다는 행동방침까지가 이번 수련회에서 결정된 내용이다.

반면 장시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구체성의 담보는 미약한 수준에 그친 상태이다. 하반기 노동법 개정 투쟁에 전면 결합을 핵심기조로 설정했지만, 해고자 복직투쟁과 어떻게 융합시킬 것인가는 공백인 채로 남아 있다. 단지 ‘정리해고제 철회를 매개로 한다’는 앙상한 가닥만 잡은 상황이다.
지난 6월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이 극적 타결로 수그러들면서 ‘공공부문 투쟁을 적극 지지․엄호한다’는 전해투의 상반기 투쟁기조가 공중에 붕떠버린 상황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노총의 정치파업 불사 선언은 실천적 구속력을 염두해 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대정부 압박용 선전의 혐의가 짙다. 노동법 개정이라는 사안을 가지고 정부와 협상을 진전시킴에 있어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들어가겠다는 공산이 큰 것이다. 전해투가 민주노총의 행보에만 의존하고 있을 경우 하반기에도 이러한 위기 상황이 재현될 여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전해투는 민주노총의 노동법 개정 투쟁에 착실하게 복무해 들어가기에 앞서, 현재의 ‘협상’ 중심의 논의 지반을 바꾸어 내는 작업에 주력해야 한다. 민주노총을 ‘협상’의 공간에서 ‘대중투쟁’의 공간으로 끌어낼 때에만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동법 개정 투쟁에의 전면 결합’이라는 전해투의 투쟁기조가 그 정치적 효과를 거두리라 판단된다. 해고자의 원직복직 투쟁이 전체 운동진영을 고무시켰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전해투가 민주노조 운동의 강화를 항상적 과제로 받아안으면서 구체적 정세에 입각한 구체적 실천으로 자신의 공백을 채워 나간다면 노동법 개정 투쟁에 실리는 힘은 그 위력을 더할 것이다.

이 글에서 수련회 장의 역동성을 생생하게 현장중계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전해투 동지들의 논의과정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조직의 규모를 떠나서 개인의 문제제기가 사장되지 않는 열려진 논의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노개위에의 잔류이냐, 탈퇴이냐의 문제를 둘러싼 민주노총의 닫힌 논의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는 지금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소외와 배제’의 부르주아 정치에 반기를 들고, 조직내 생동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미래에 구현될 상태가 아니라 현재의 투쟁이다.
천막안에 늦게까지 밝혀진 전구가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기운에 제 빛을 잃을 때까지 계속된 ‘단결의 밤’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고자로 산다는 것은 동지애를 실천하며 산다는 것에 다름아님을 체감한다. 해고된 이후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익숙해 졌음인지, 시종일관 넉살과 우스개 소리로 서로의 가슴을 환하게 하는, 각각이면서도 하나인 우리의 동지들을 본다.

해고자 문제에 대한 몇가지 오해들
지난 4․24 신노사관계 구상 발표 이후, 김영삼 정권의 ‘노동운동 길들이기’는 비교적 쾌속 항해 중이다. 노개위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의 ‘명분’을 이끌어 내는 동시에, 근로자 파견법,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의 수면위 부상으로 ‘실리’마저 챙기고 있다. 하반기 노동법 개정 투쟁을 둘러싸고 벌어질 자본과 노동의 접전에서 ‘신노사관계호’가 암초에 부딪칠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신노사관계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 노동진영을 포섭하여 이윤창출의 극대화를 노리는 것이 ‘참여와 협력’이 지닌 함의일진대, 자본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고자 문제에서 견지되던 단호한 계급적 시각 역시 신노사관계 출연 이후 혼탁해지는 경향이 있다. 정부와 해고자 사이의 ‘전선 흐리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96년 임단투에서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이 정부의 선별복직 조치를 위시한 몇가지 협상안에 조인함으로써 타결되자 경총은 6․21 긴급회장단 회의를 소집하여 해고자 복직은 노사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정부의 무원칙한 복직 허용방침에 대해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마치 전선이 노자간이 아니라 정부와 재계사이에 설치된 듯한 곡해마저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해고자 복직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는 반면, 대재벌이 이를 거부하는 듯한 대립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 호기를 놓칠 리 없는 김영삼 정권! 노사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고심하는 중재자로서의 후광에 힘입어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법,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본 궤도에 올려 놓았다.
해고자 문제에 대한 일괄처리를 정부의 결단에 기대는 태도는 ‘과거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어제의 대통령이 오늘의 중범죄자가 되고, 권력형 비리척결 운운하며 재벌 총수들이 법정 앞에 세워졌다. 해고자 문제에 있어서도 올바른 ‘과거청산’ 차원에서 과거 폭압적 노사관계의 희생자인 해고자가 구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물론 해고자 문제의 절박함을 알리는 대국민 선전용 구호로서는 사용 가능하다. 그러나 원직복직 투쟁의 정당성을 이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94년 전지협 파업 당시 공공부문 노조탄압의 단골 메뉴인 직권중재를 들이밀며 대량의 해고자를 양산한 것이 바로 김영삼 정권이다. 95년 한통을 통신대란의 주범으로 매도한 것도 김영삼 정권이다. 올 해는 한술 더떠 제반의 악법 도입으로 자본의 탄력적인 노동력 사용을 위한 환경정비 작업에 발벗고 나선 것도 역시 김영삼 정권인 것이다.
과거청산의 연속선상에서, ‘노사화합’, ‘노사개혁’ 차원에서 해고자 원직복직 조치가 행해져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지금도 ‘포섭과 배제’의 정치는 노동운동을 체제내로 흡수하고자 하는 한편 변혁적 부분은 거세작업에 한창이다. 개인과 개인, 기업과 기업의 무한경쟁을 통해 인간에 대한 무한착취를 제도화하는 신경영 전략은 노동자들의 자발적 충성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에 불복종하는 세력에겐 노동계 지하조직의 일망타진을 공언하며 신공안정국을 조성한다.
선도투를 전개할 노동자를 현장에서 분리, 분할 지배하고자 획책하는 것이 신노사관계의 본질인 이상, 가장 선도적인 해고 노동자를 이러한 논리 안으로 가두는 것은 부당하다. 암암리에 노사화합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노자적대의 첨예한 모순을 무디게 하는 완충효과가 여기서 발생한다. 해고자 복직투쟁이 제반의 악법철폐 투쟁과 궤를 같이 하지 않는다면 복직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복직율을 높여, 해고가 더 이상 노동자에게 두려움의 대상일 수 없게 하기 위해선 ‘해고를 재생산하는 조건 자체의 철폐투쟁’과 맞물려야 한다. 따라서 해고자 복직은 청산해야 할 과거가 아니라 현존하는 노동악법에 맞선, 자본의 현재적 착취구조와 억압적 국가권력에 맞선 ‘현재진행형의 투쟁’이다. 한/노/정/연

1996-08-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