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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과 매카시즘에 걸린 세계화 통일론

현장에서 미래를  제16호
김명섭

오리엔탈리즘과 매카시즘에 걸린 세계화 통일론

김명섭(서울대학교 지역종합연구소 특별연구원)

1. 세계화 통일론의 대두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3년 초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한 데 이어서 1994년 8월 15일 경축사를 통해 자주­민주­통일 3원칙에 근거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3단계 통일방안’은 비록 연방이라는 표현 대신 국가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김대중 씨의 ‘3단계 통일론’과 대동소이한 것이었고,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역시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 발표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적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씨나 전임자들의 치하에서 발표되었던 통일론과 뚜렷이 구별되는 대북 정책 기조를 제시한 것은 1995년 1월 6일의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당시 표현된 대북 정책의 기조는 우선 세계화를 통한 접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주지하다시피 세계화라는 화두는, 2차례에 걸쳐 APEC 회담에 참석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문화적 충격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이것은 마치 재임 시절 동남아를 방문했던 전두환 대통령이 귀국 후 영어 교육의 강화를 지시했던 것과도 유사한 국정 결정 방식이다. 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은 “‘21세기 일류국가' 건설로 이끄는 지름길”이라고 정의된 세계화를 국정 목표로 확인하면서, “통일은 세계화의 목표이자 수단”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세계화라는 틀 안에서 남북한 관계를 풀어 갈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한 나라의 대외 정책은 흔히 호수 위의 백조에 비유된다. 한 마리의 우아한 백조를 뛰우기 위해, 수면 밑에서는 얼마나 많은 치열한 발동작이 필요한 것인가. 김영삼 대통령 시기를 특징짓는 대북 정책의 기조로서의 세계화 통일론이라는 발레적 수사학이 제시되었지만, 그 구체적인 실현 방식을 둘러싸고 각 집단의 이해를 반영한 럭비와 같은 몸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느낌이다.오리엔탈리즘과 매카시즘에 걸린 세계화 통일론




2. 햇볕론 대 속내의론

세계화 통일론이라는 기조가 설정된 이후, 정부 및 국회에서 광범위하게 회자된 대북 정책론으로서 햇볕론이 대두하였다. 세계 자본주의의 따뜻한 햇볕을 쏘이게 하겠다는 햇볕론은 상응 개념으로서 바람론을 대치시키면서(실제로 바람론을 주장한 사람은 없다) 해와 바람이 길을 가는 행인의 외투 벗기기 시합을 했다는 이솝 우화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행인은 세찬 바람에는 옷깃을 여미었지만, 태양의 따뜻한 햇볕이 비치자 스스로 옷을 벗었다는 이야기다. 클린턴 행정부의 연착륙(soft landing) 이론과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햇볕론자들은 이 우화에 비유해 통일을 이루는 최선의 방안은 북한에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 즉 각종 경제 지원을 제공하고 남북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미국 민주당계 주류의 입장과도 상통하고 있는 햇볕론이란 정부 내 대북 강경 노선에 대한 공세적 수사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이것은 북한에게 채찍보다는 당근을 제공함으로써 남한 체제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의존성을 확대시킴으로써 일찍이 남한의 경제적 성공을 보장해 주었던 자본주의 체제로의 “적극적 편입(active incorporation)”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최소한 수동적(passive)으로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끌려 들어오게 한다는 내용의 장기적 흡수 통일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처럼 햇볕론과 바람론이라는 수사학을 통해 기능주의적 접근 방법을 통한 장기적 흡수 통일론을 주장하고 있는 일각의 입장과는 달리, 단기적 흡수 통일론에 내심 경도되어 있는 측의 입장은 이른바 “속내의론”이라는 것을 통해 잘 대변된다. 민자당 이념연구실장을 지낸 바 있는 “속내의론”의 논객은, “남북한간의 통일 문제는 북한의 외투를 벗기는 시합이 아니라 속내의, 즉 북한 주민과 지도층의 마음과 사상을 벗기는 시합인데 햇볕론자들은 외투를 벗기는 시합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유종렬, ꡔ흡수통일 금세기 중 가능한가ꡕ, pp.208~209). 이 논객은 “지나가는 행인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아무리 덥다고 해도 속팬티까지 벗겠는가, 우리가 북한에 약간의 경제 원조를 제공하고 교류를 증대한다고 해서 북한의 지도층이 과연 자기들의 사상을 던져 버리고 자기들의 정치 권력까지를 포기(벗어 버리는 행위)하겠는가” 하고 반문하면서, “여자의 속내의를 벗기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 여자와 결혼을 하여 규방으로 들어가 동침하는 경우와 산부인과 의사가 진료를 위해 팬티를 벗으라고 말하는 경우”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남한이 북한(여자와)을 통합(결혼)하여 한 국가로 통치할 테니(먹여살릴 테니) 공산 체제를 포기하라고 하든가, 아니면 북한의 경제 위기를(부인의 병을) 해결하도록 도와줄 터이니(고쳐줄 테니)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라고 하는 경우”라는 것이다(같은 책).
“속내의론”은 “북한이 체제 경쟁에서 지게 되고 남한에 흡수될 위험성이 존재하자 김일성은 남북 분단을 영구화시키는 방향으로 통일 정책을 몰아가고 있다”고 보면서, “남한에 흡수되어 정권을 빼앗기느니 2국 2체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북한 지도부의 “속셈”이라는 대북관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한민족공동체 통일론이나 3단계 통일론 또는 민족공동체 통일론 등 체제 연합식 통일 방안대로 통일을 하게 된다면 통일이 되는 날까지는 최소한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고(같은 책, pp.100~101), “북한을 빠른 시일 내에 흡수 통일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흡수 통일 정책을 북한에 효과적으로 홍보”해야 하고 “남한이 흡수 통일을 원한다는 사실은 공개적으로(즉, 전 세계적으로:필자) 천명돼야” 하며 “북한이 반발할 것이 두려워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과감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하면서(같은 책, pp.208~209)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민족에게 내려져 흡수통일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즉, 북한의 속내의가 하루빨리 벗겨지기를:필자) 간절히 기도 드리며 글을 마친다”고 쓰고 있다(같은 책, 251).

3. 오리엔탈리즘에 걸린 세계화 통일론

단기적 흡수 통일론이든 장기적 흡수 통일론이든, 양자는 모두 찰스 크로스애머나 프랜시스 후꾸야마 등에 의해 개진된 역사 종말론과 같은 맥락을 지닌 것이다. 헤겔 철학을 정독한(혹은 오독한) 이들은 플라톤 이후 인류 지성사의 격렬한 쟁점이었던 “최선의 통치 형태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마침내 구해졌다고 주장한다. 크로스애머는 “수천 년 동안 모든 정치 체제를 시도한 이후, 우리는 자유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찾던 것을 발견했다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20세기를 마감한다”고 쓰고 있다.(Charles Krauthammer, “Democracy Has Won,” Washington Post, 1989년 3월 24일자, p.23.) 요컨대 에게 해에서 출발한 문명의 야만에 대한 극복(civilization)의 역사는, 지난한 굴곡과 부침의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라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특히 후꾸야마는 더 이상 제3세계는 역사의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짧은 글에서 역사 종말론 일반에 대한 비판을 개진할 수는 없겠으나 다만 이들이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서 제3세계권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와 같은 역사 종말론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면서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을 지닌 장․단기적 흡수통일론이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통일론의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은 흔히 여성에 비유되곤 하는데, 위에서 서술한 “속내의론”이야말로 이러한 대북관에 내재되어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많은 북한 사람들은 “속내의론”을 아마도 강간 논리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세계화 통일론은 남한을 은연중에 세계, 더 정확히는 서구와 동일시하면서, 북한을 문명화(civilization)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논리를 유포시키고 있다. 단기적 흡수 통일론이 연상시키는 것은 코르테스와 피사로의 아메리카 정복 논리이고, 장기적 흡수 통일론은 한층 세련된 형태를 보여주었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분히 미국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남한의 세계화란, 다시 한 번 걸러서 보면 유럽 지향적인 미국 동부 기득권층(Eastern Establishment)과는 차마 견주지 못하면서, 미국 내 문화 중심에서 다분히 소외되어 있고 따라서 공화당의 민중주의가 강세를 보이는 중서부 지역(Midwestern)의 흐름에 자신을 편입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적용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말하자면 주변부적이고 호가호위(狐假虎威)적인 의미에서의 그것이다. 그것은 미국 민주당계 인사들을 떠받치고 있는 동부 기득권층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유럽의 오리엔탈리즘보다도 포용력이 낮고 자기 비판의 여지가 없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세계화 통일론이 미국 내 공화당계 강경론자들과 공유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주변부적 오리엔탈리즘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고정 관념들을 재생산하고 있다.
첫째, 촌스러운 북한(North Korea, rustic)이라는 고정 관념이다. 촌스러운 북한이란 관념은 일찍이 서구 문명을 먼저 받아들였던 일본의 탈아론자들이 중국에 대해 가졌던 관념과 유사한 것으로서, 비서구적인 것=비근대적인 것=덜떨어진 것이라는 이른바 초기 근대화론자들의 문명론적 인식을 계승한 것이다.
둘째, 광기 어린 북한(North Korea, fanatic)이다. 이것은 회교 근본주의자들을 보는 서구의 시각과 유사한 것으로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의 갈등에서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는 친화성에 의해 극명하게 표현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살해한 민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친화성이란 사실 성경적이라기보다는 미국적인 것이다.) 김일성이 예수이고 김정일이 베드로라면, 지금 북한은 단군이라는 구약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이나 천황을 숭배하는 일본, 그리고 미국 중서부의 복음주의자들은 덜 거칠지는 몰라도 더 깊은 열광주의를 가지고 있다.
셋째, 성불구의 북한(North Korea, impotent)이다. 아시아적 정체성 이론과도 흡사한 이 관념은, 북한에 대한 원조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주장과 북한이 자신의 체제를 부정하고(외디푸스적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세계화에 동참할 때만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낳고 있다. 이것은 1960년대 이후 70년대 초까지 한때나마 북한이 남한에 대해 경제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몰역사성이다. 최소한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정신으로 1962년 남한이 식량난에 허덕일 때 북한이 1만 톤의 구호 양곡을 제의했던 사실이나, 1964년 3월 북한이 시멘트, 재목, 기계류와 함께 30만 톤의 쌀과 건축용 철강 10만톤, 그리고 전력과 화학 섬유(서울공대 2대 학장을 지내고 월북했던 이승기 박사가 세계 최초로 발명한 비날론) 등을 매년 대한민국에 제공하며 아울러 남한의 실업자 2백 만 명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제안을 했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 보자.
넷째, 시대착오적인 북한(North Korea, anachronic)이다. 크리슈나의 수레처럼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미국 문명은 멧돌처럼 천천히 돌고 있는 유럽 문명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유럽의 시계와 미국의 시계가 다르듯이, 남한의 시계와 북한의 시계는 애초에 다른 것이다. 서로가 합의한 그리니치 기준시가 없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가고 있는 두 개의 시계일 뿐이다. 북한 내에도 두 개의 시계가 있는데, 그것은 개방파들의 시계와, 군부와 대남사업부 등에 포진하고 있는 강경파들의 시계이다.

4. 북한의 군사적 모험 가능성과 남한의 매카시즘

여러 가지 정황과 자료에 비추어 북한이 남한에 대해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은 있다. 1970년대 이후 김정일의 당권 장악 과정은, 북한 내 빨치산 라인이 군사적 모험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최근 강명도가 증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김평일은 김정일보다 훨씬 호전적이었다.) 항일 무장 투쟁과 혁명 전통의 연장선에서 남조선을 무력으로 해방하겠다는 북한 내부 강경파들의 발상은 북한 내부에서도 합의를 도출할 수 없는 시간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정통성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체제에 대해 얼마나 자신을 동일시하는가를 포함하여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절대 다수의 “남조선 인민”들은 북한 강경파들이 “남조선 해방” 운운하는 것을 가소로운 내정 간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80년대 이후 남한에서 쟁취된 민주화는 남한 민중들 스스로의 투쟁에 근거한 것이었지, 북한이 말하는 “민주 기지”니 “지원 역량”이니 하는 것과는 대체로 무관한 것이었다(오히려 때로는 악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강경파가, 남한에 대해 그리고 북한 내의 개방파에 대해 무력 사용의 가능성을 계속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존립 기반을 지키고자 하는 처절한 생존 투쟁의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는, 햇볕론의 형태든 속내의론의 형태든 광범위하게 유포되어있는 흡수 통일론적 발언들이 이 위험천만한 북한 내 강경파들의 입장을 옹호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전술한 바와 같은 “속내의론”이 지속된다면, 북한의 강경파들은 “공격만이 속내의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라는 담론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강경파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고 있는 것은 남한 내에서 유사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매카시스트들이다. 최근 문제가 된 예비군 정신 교육용 비디오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한총련 관련 학생을 무죄 방면한 판사를 “좌익 동조자”로, “강만길 등이 저술한 ꡔ해방 전후사의 인식2ꡕ”를 좌경 의식화 도구로 묘사하였다. 이 사건은 안기부장의 사과 형식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이들은 현재의 경색 국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참석했던 예비군 훈련장의 한 강사는, “문민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군에 대한 처우가 나빠졌었는데, 무장 공비들 덕분에 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가끔 넘어왔으면 좋겠다”라는 언중유골의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세계화 통일론이 진정으로 세계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미국 중서부적 파퓰리즘의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이처럼 매카시즘의 망령이 준동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WASP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서, 아일랜드 계열의 카톨릭 신자였던 조 매카시는 미국 중부 위스콘신 선거구에서 상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진보적 인사들과 동성 연애자들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당시 매카시스트들이 사용한 담론들을 보면, “당신의 치마는 핑크색이다(리차드 닉슨, 상대편 여성 후보를 빨갱이로 모는 수사학)”, “공산주의자들을 침상에 불러들이고 있다(공산주의와 성적 야합을 하고 있다는 수사학)” 등으로서 다분히 성적 새디즘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미국사학계에서, 동성 연애자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는 데 앞장섰던 매카시 자신이 동성 연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결국 매카시즘의 핵심은, 대중의 성적 새디즘을 자극하여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사적 이해 관계를 공적 이해 관계로 치환시키는 것이었다.
안보 의식을 고취하여 군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실전에서 적기에 격추될 가능성이 높은 전투기를 로비의 대가로 사들이고(율곡 사업) 북한 강경파의 군사적 모험 가능성에 대응해야 할 국방장관이 무기상의 의도에 따라 조종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군의 사기 저하”를 운운하거나 “이양호는 그래도 청렴하고 양순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전임 공군참모총장들)을 지켜보면서, 또한 북한 핵 시설에 대한 폭격 위협마저도 서슴치 않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발언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민족의 안녕과 보전을 위해 설정되었다는 “이적 행위”라는 용어의 개념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북한의 강경파들은 무력을 통한 “흡수 통일”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그러한 논리를 이용해서 개방파를 제압하려 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남한 체제에 대한 “제1의 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마땅하다면, 북한 강경파들의 활개짓을 자극하고 그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며 그 결과로 생성된 긴장 국면에서 사복을 채우는 한국과 미국의 일부 집단들에게 들려 주어야 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한 구절이 있다:“맨 앞에 서서/저기 적이 있다고 소리치는 놈/그 놈이 바로 적이다.”

5. 문명론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현재 미국에서는 “냉전 이후의 세계는 문명권 간의 충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정책 결정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사무엘 헌팅턴은, 정치 변동 요소를 근대화론과 결합시켜 체계이론이 지니는 정태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이론가였던 동시에 존슨 행정부의 대(對)전복 행위 전문가로서 제3세계 반혁명 전략의 이론적 지주를 제공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한 권의 책으로 증보, 출간된 헌팅턴의 원래 논문 역시 하바드대학 존 올린 전략연구소(John M.Olin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가 주관하는 “변화하는 안보 환경과 미국의 국가 이익”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위해 제출된 것이었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향후 미국의 세계 정책 수립 과정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헌팅턴을 둘러싸고 있는 미국의 “대외관계평의회(CFR;Council of Foreign Relations)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헌팅턴의 논문이 발표된 ꡔ포린어페어즈ꡕ 지를 발행하고 있기도 한 대외관계평의회는 1919년 파리 강화 회담에 참석한 영국 식민청(British Colonial Office) 소속의 리오넬 커티스(Lionel Curtis)와 미국 대표단 소속의 루이스 비어(Louis Beer) 간의 교감이 계기가 되어 1921년 7월 29일 설립된 이후 현재까지, 미국 외교 정책의 향방을 주도하고 있는 일종의 포럼으로서, 케난의 봉쇄 정책을 비롯하여 미국의 냉전 정책을 주도했던 단체이다.
헨리 키신저를 비롯한 수많은 외교 정책 결정자들을 배출했던, 대외관계평의회의 역사와 성격을 고려할 때, 탈냉전 시대가 열리는 시점에서 ꡔ포린어페어즈ꡕ 지에 게재된 헌팅턴의 논문을 냉전 시대가 열리던 시기의 케난의 논문과 비교하는 것은 전연 무리가 아니다. 물론 헌팅턴의 논문이나 저서가 곧바로 탈냉전 시대 세계 전략의 이념적 지주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케난 시대의 비교적 단순했던 정책 결정 구조와는 달리 한층 복잡해진 현재의 미국 외교 정책 결정 과정을 고려할 때, 어느 한 사람의 이론이 곧바로 지배적인 이론적 토대로 채택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케난의 봉쇄 구상이 그랬던 것처럼 헌팅턴의 문명 전선론 또한 “조금씩 실무적 방식(a piecemeal and pragmatic manner)”으로 워싱턴의 정책 마인드를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헌팅턴의 문명 전선적 개념에 따른다면, 이제까지 민족 국가 단위로 경주되던 “상대적인 세력 관계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투쟁”은 동일 문명권 내의 주변 국가들(kinship countries)을 포괄하면서 전개될 것이다.
한편, 중국도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국제적 음모”가 있다고 공식 선언하는 등 중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정체성 강화 전략은 비단 대륙 중국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이른바 4개의 중국, 즉 대륙 중국과 홍콩, 대만, 그리고 해외 화교들을 포함하는 거대 중국의 형성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은 현재 고전적인 국경 개념을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쌍중국적을 인정하고, 해외 선거구를 인정하겠다는 정책 토론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기실 문명(화)론적 발상에 입각한 전략적 고려는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기보다는, 냉전 시대의 체제간 경쟁에 의해 유보 혹은 은폐되고 있던 흐름의 재분출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의 분단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을 거쳐 미국을 정복하고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대륙의 한 꼭지(한반도 남쪽)에 상륙한 서구 문명의 본류와 비단길을 통해 교호하던 동양과 서양, 그리고 러시아적 서구 변방 문명과 중국 문명이 결합․착종된 북쪽 간의 대결 구도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휴전선을 경계로 맞서고 있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간판 뒤에는, 서로의 뿔을 맞대고 한 치의 뒷걸음질도 허용치 않으려는 문명권의 힘들이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명권 안에서 남과 북은 공히 독자적인 민족 국가 건설(nation-building)과정을 이미 경과하였다. 해외 동포들까지를 포괄하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고려(Corea) 문명권의 건설을 통한 통일 방안을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노/정/연

1996-12-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2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