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노동자, 2006년 무엇을 할 것인가? 특집I/ 2006년 정세전망IV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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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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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노동자, 2006년 무엇을 할 것인가?
김산 / 교육노동자
1. 들어가며
2006년 새해가 시작 되었다. 일반 사회에서는 1월 1일이 새해 첫
출발의 날이 되겠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전 학년도가 끝나고 새
학년도가 시작 되는 3월 2일이 사실상 새해 첫 날이라 할 수
있다. 전년도를 반성하고 새 학년도에는 좀 더 잘할 것을
다짐하면서, 그리고 아이들과의 첫 대면에서 올 한해도
힘들어지겠구나, 올해는 좀 괜찮은데, 하면서 1년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저 1년을 사고 없이 무사히 보내길 바라며
가족과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들은 사회문제에 대한 큰 관심도
없으며(물론 입으로는 실컷 불평, 불만을 늘어놓을 수는
있겠지만) 투쟁에 대해선 더욱 더 관심이 없다. 또한 자신의
노동자성도 좀처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에 대해서는 좀처럼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좁은
학교 내에도 온갖 암투가 펼쳐지지 않는가? 서로에 대한
칭찬보다는 험담을 더 좋아한다. 이것이 대체적인 교직 사회의
분위기가 아닐까.(좀 부정적으로 본 점에 대해 이해를 바란다.)
이와 같은 다소 소극적이고 침체된 학교 분위기속에서 우리의
교육운동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어떻게 하면 참여를
이끌고 강력한 투쟁 동력을 마련 할 수 있을지 다 같이 고민해야
될 문제라고 본다.
2. 2006년 교육운동의 쟁점
2006년에는 자본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자본의 공세는
교육운동에 대해 내, 외부적 공격을 가열 차게 해올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교원평가로, 내부적으로는 자유교원조합(혹은
교총)등 교육우파의 공격이 예상된다. 이 두 가지 핵심 공격
축을 바탕으로 기타 현황들과 함께 계속적인 공세를 취한다면
교육운동진영은 방어에만 급급하여 수세에 몰릴 수 있으며
제대로 된 투쟁은 생각도 못하게 될 것이다. 이에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1) 교원평가 교원평가 - 난 이 말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평가 할 경우에도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학생평가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가 평가하는 것은 학생이 이룬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의 국어능력에 대한
평가, 수학 능력에 대한 평가인 것이다. 인간 개인에 대한
인격적 평가가 아니다. 그러나 교원평가는 그 어의 자체가 이미
교사 개인의 전인격적인 평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교원평가라는 말 자체가 성립 할 수 없으며 교사의
수업지도능력평가, 생활지도능력평가 등으로 불려야 한다. 그게
그것 아니냐는 말을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교원평가라는
말을 씀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지 않거나 지배세력에
적대적인 교사인 경우에는 권력주체 측에서 교원평가라는 제도를
통해 축출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원평가라는 어휘자체의 사용부터 금해야 한다.
추진
교육계의 가장 큰 현안이다. 작년 전교조 위원장의 사퇴를 가져
왔으며 지금도 가장 큰 당면 과제이다. 2006년에는
시범학교운영이 예정 되어 있으며 정부는 강행을 하고 있고 운동
진영에서는 마땅한 대안을 찾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 노무현 정부는 왜 교원평가를 추진하려 있는 것인가?
알다시피 한국에서 고용안정은 깨진지 오래다. 비정규직 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도 아니다. 고용불안이 일상화 되다보니 이제는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의 불만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희망 없는 삶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비교적
고용안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그 곳이 어디인가?
공무원, 교사이다. 국민들은 그들을 철밥통이라 부르며 냉소와
비난을 하고 있다. 국민적 불만이 공무원, 교사에게 퍼부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뇌는 번뜩였다.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흔히 자본에 대한 불만이 극도에 다다를 때 이를 돌리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는 전쟁의 길을 택한다. 즉 전쟁을 통해서 자본의
이익을 보장 하며, 애국의 이름으로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다.
전쟁을 하는 사이 국민들은 자본에 대한 비난을 멈추며 자본에
충성하는 길로 들어서게 되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현재 미국이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면 한국의 자본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들도 전쟁을 할
것인가? 물론 일부 수구세력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듯이
북한을 침공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주석궁에 태극기를
휘날리자고 전쟁을 선동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자본가는 그런
미친 짓을 생각 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현 상황에 최대한의
이윤을 얻는 것이 목적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의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즉, 마음대로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어떠한 제약
없이 싼 임금에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그것이 당연하며 정당하다는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
노동자는 그저 하루벌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며 자본가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찌게 해줄 충견이 필요한 것이며
그들의 기계를 돌려줄 자동인형이 필요한 것이다.
충견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이 자본가의 고민이다.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를 주면서 주인을 물 수 있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너와 같으니 다른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생존 하는
길임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공무원, 교사집단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
교사들도 자본의 영향 하에 있는 충견을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들고 나온 것이 교원평가이며,
공무원에게는 전면적인 성과급 확대 등을 통하여 개인근무평가
강화를 이용한 퇴출인 것이다. 즉, 공무원, 교사들에게도
고용안정은 보장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자본의 말을 잘 들을
때에만 생존이 가능 하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은 것이다. 혹자는
공무원은 고용주가 국가이므로 자본가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
할 수 도 있으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중립적
개념이 아닌 것이다. 교사의 경우에는 우리의 경우 사학이
많으므로 사학교사들은 일반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교육자본가에
고용된 피고용인인 것이다. 다만 그 신분 보장을 교육공무원과
비슷하게 하고 있으므로 사기업처럼 마음대로 할 수 가없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줄기차게 교원평가를 부르짖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가?
첫째, 비교 대상의 제거로 신자유주의 노동 정책의 지속.
나는 죽도록 일하면서 겨우 빵 하나를 얻어먹는데 옆집 사람은
나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먹으며 취미 생활까지 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며 옆집 놈이 죽도록
미울 것이며 더 이상 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본가에 대해서도 불평을 하게 될 것이고 지속적으로
자신도 옆집과 같은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자본가에게는 큰 위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자신과 같은 처지밖에 없다면 빵 하나를 위해서라도 죽도록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자본가는 바로 이점을 노리는 것이다. 모든
사기업의 노동자는 고용불안에 떨면서 자본가의 말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공무원, 교사 등은 사기업에 비해 비교적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있으므로 자본가는 국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무원, 교사들의 신분보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공무원, 교사들과 같은 신분보장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눈에 보이는 사례가 있으니 얼마든지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와 국가는 공무원, 교사 등의
신분도 일반 노동자와 같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 하고 있으며, 특히 교사의 경우에는 일부 함량미달 교사의
예를 들면서 능력 없는 교사의 퇴출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둘째, 교육자본가의 이익확보와 교육의 산업화 지속.
교원평가의 의도는 진정으로 교육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노동에 있어서도 유연성을 확보하여 교육자본가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술수이다. 우리나라의 학교현황을 보면 교육
자본가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학교의 23%,
고등학교의 45%, 대학의 85%가 사학이다. 사학 운영자는 학교를
경영하는 자본가이며 기업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서 그들이 편 논리는 사학은 사유재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인 기업에 불과하므로 그들은 인건비 절감 등을
하여야 사익을 보장 받을 수 있으며 말 잘 듣는 노동자가 필요
한 것이다.
사실, 지금도 교육현장에는 사기업 못지않게 비정규직이 많이
있다. 일선학교에서는 정규 교사를 채용하는 대신 많은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고 있으며 비교사인 경우에도 대부분 비정규직인
임시직으로 고용을 하고 있다. 교육 자본가는 비정규직을
채용함으로서 인건비를 줄이려 하고 있으며, 재계약이라는
미끼로 말 잘 들 듣는 충견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사실상 단위
학교의 경우 정규직은 전체 구성원의 50%도 안 되고 있다. 이미
학교도 비정규직화가 심화 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교사들도
정규 교사보다는 비정규직 교사가 더 많은 때가 오리라 본다.
그러나 아직은 정규직 교사에 대해서는 자본의 입맛대로 할 수
있는 장치가 많지 않은 관계로 그들은 교원평가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교원평가라는 카드는 교육에 있어서조차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
자본의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수단이며, 교육 관료와
교육자본가들에게는 가시 같은 전교조등을 비롯한 비판적 교육
세력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최상의 카드인 셈이다.
셋째, 민중불만의 해소와 지배계급의 방해세력 제거.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들의 불만은 점점 극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대로 간다면 혁명적 상황도 올 수 있는 그러한 조건에
있다. 이에 민중들의 불만을 해소 할 필요가 있다. 그 불만의
해소창구로 교육을 선택한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학창시절을 보내며 학부모가 된다. 따라서 교육만큼 모든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슈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관심이 있고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있는 분야를 선택함으로서
민중적 불만을 선회시키거나 잠재울 수 있으라는 생각에서
교원평가를 들고 나온 것이다. 즉 “당신의 자식이 무능력한
교사와 공부를 하고 있는 데 이를 두고 볼 것인가?” 하고 묻고
있다. 이 물음에 그 어느 학부모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런
교사는 당장 퇴출 시켜야 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에 반대한
전교조는 저주에 가까운 온갖 욕설과 비난을 국민들에게 받아야
했다. 엄청난 성공인 셈이다.
처음에 교원평가에 반대하던 교총이나, 한교조등 다른
교직단체들은 슬그머니 빠짐으로써, 교원평가는 아이들을 빨갛게
물들이려는 전교조만의 반대로 각인 됐으며 전교조는 온 국민과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보자. 그동안
교단에서 온갖 비리와 불법을 저지른 무능한 교사들이 전교조
교사였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전교조 교사하면
깨끗하고 아이들에게 열심인 참교사의 이미지가 있다. 그럼
현실적으로 누가 주로 퇴출 되겠는가? 물어보나 마나인 답이다.
그런데 왜 전교조 교사들이 앞장서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것인가?
그것은 자본의 속셈이 보이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이제 단위
학교 현장이나 단순한 교육의 문제를 벗어나 자본의 모순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에게는 큰 위해 세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수구언론인 조·중·동이 왜 그토록 전교조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지 생각해보라. 그동안 그들이 그토록
세뇌 시켜왔던 수구 반공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먹히지 않자 그
원인을 전교조에서 찾은 것이다. 그들은 박정희, 전두환
시절처럼 친미·반공이데올로기에만 충실한 교사들이 교육을
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그들의 이익이 극대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 문제에 경제 단체들이 들고 일어나고, 한나라당이
저토록 난리를 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신들의 아픈 곳을
너무나 잘 알고 공격하기에 두려운 것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교원 평가라는 그럴싸한 제도를 통해서 전교조등 비판적
교사들을 무력화시켜 그들의 방해세력을 제거 하려는 것이다.
강정구 교수 사건을 상기하라. 2월 8일 동국대 이사회는 강
교수를 직위해제하여 사실상 그를 교직에서 퇴출했다. 교수가
이러할 진대 일반 교사들이야 어떠하겠는가? 학교 현장에서 한
말이나 글 등에 대해 지배계급은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서 비판적
교사들을 무수히 퇴출시키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교육운동은 그 명맥조차 잇기 어려운 상황에 다다를 수 있다.
저들이 그토록 교원평가에 목을 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교원평가를 단순히 수업을 못하는 교사, 학생지도를
못하고 태만한 교사를 퇴출시키는 제도라고 이해하는 것은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민중들의 지지를 통해 정당성을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제도라고 생각 하겠는가?
2) 우파교사집단의 내부적 공세
2006년에는 우파들의 내부적 공세가 강화되리라 본다. 반
전교조의 기치 아래 자유교원조합(자유교조)과 뉴 라이트
전국연합(교사연합)이 창립되면서 기존의 교총과 한교조를
포함하면 전교조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들 4개의 우파
교사 집단이 전교조를 비롯하여 좌파 진영을 공격할 것이다.
그들은 수구 언론과 자본가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공세가 만만치
않으리라 본다.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공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가볍게 보고 준비를
하지 않을 경우 낭패를 볼 수 도 있는 문제다.
이미 교총 등에서는 전부터 적극적인 자세로 회원들에게
전교조에 대항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으며, 학교운영위원회에
적극적 참여, 신임교사의 전교조 가입차단 및 선배교사로서의
교육 등을 강조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교총소속 교사들의
소극성으로 그 실적은 미미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자유교조나
교사연합의 경우는 이야기가 틀려질 수 있다. 그들의 주
창립목적이 반 전교조이므로 두 단체 소속교사들은 단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리라 본다. 특히, 자유교조와
교사연합은 서로 자신들의 우파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에 이들에 대한 대책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3) 사립학교법의 재개정
2006년을 달굴 또 하나의 이슈는 사립학교법 재개정문제이다.
2005년도의 사립학교법 개정은 나름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나 그
승리도 잠시뿐 교육자본가는 사립학교법을 원상 복구시키려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이미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두고 정치적 협상을 하였으며 한나라당과
사학의 공세에 열린 우리당은 어느 정도 후퇴하여 적당하게
타협을 보려고 할 것이다. 열린 우리당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열린 우리당은 분명히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며 그들의 목표는 신자유주의의 지속적인 추진이다.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싸움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싸움이며,
신·구 지배세력의 투쟁에 불과하다. 따라서 열린 우리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버리는 것이 좋다. 비록 개별적으로는 열린
우리당 내부에 친 민중적 인사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정당에 용해되어 있어 그들의 개성은 사라지고 집권당의 구성원
신분만 남는다. 따라서 열린 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결국 사학법은 사실상 원위치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힘을
얻은 사학은 그 횡포를 더해 갈 것 이다. 특히 사학 교사들은
이전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교육자본가가
가만히 있겠는가? 올 한 해 치열한 투쟁이 예상된다.
3. 2006년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2006년에 예상되는 교육운동의 쟁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크게 3가지만을 알아보았다. 이 밖에도 많은
쟁점들이 있다. 기타 현황들은 추후에 알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핵심쟁점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보겠다.
1) 교원평가저지투쟁 지속 및 교장 선출보직제 투쟁 강화
2006년에도 교원평가는 교육운동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솔직히 대항 논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의 논리에 대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모든 분야에서 경쟁을 하여야 하며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가 짓누르는
상황에서는 이를 뒤집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논리적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민중의 뇌리에 교원평가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박혔기에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의 절대적
다수가 교원평가를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투쟁
할 것인가?
교원평가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이미 그 시기를 놓쳤으며,
투쟁 시기를 놓쳤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다. 투쟁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 시기를 잘 선택하여야 조직의 역량을
키울 수 있으며 광범위한 민중적 지지를 획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년부터 시범학교를 실시하는 상황에서는 반대 논리가 취약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래도 무조건 반대 투쟁을 하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은 큰 패배를 가져 올 수 있다. 민중적,
국민적지지 없이는 투쟁에서 승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금년에는 우파교사 집단에서 교원평가의 적극적인 찬성을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전교조에 비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반대는 전교조의
고립화와 투쟁동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교원평가를 받아들이되 예상 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2중, 3중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
이념적, 사상적 공세에 의해 부적격 교사라는 결과가 나오는
데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사학의 경우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전교조 교사에 대해서는 학부모등과 함께
부적격 교사라는 낙인을 찍어 퇴출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학부모 2,3명만 있어도 학교를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현장교사들은 모두 알 것이다. 따라서 몇 명의 보수적 학부모와
연계한다면 단위 학교 내의 비판적 교사들은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학부모와의
연대가 중요하다.
이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교원평가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보 후퇴하기도, 진지를 포기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밑그림을 크게 그리자는 것이다. 저들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여
그에 대해 대비를 하면서 상황 발생 시에는 그것의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알려 교원평가 반대 투쟁이 정당하였음을 평가 받을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사전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으니 사후적
조치만큼은 확실하게 하자는 것이다. 교원평가라는 말 자체는
이미 돌이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교원평가 자체는 두되
그 내용에 대해서 치열한 투쟁을 하여야 한다. 교원평가가
국가와 자본가의 교사에 대한 지배수단이 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간단하게 교원평가를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반대투쟁은 계속하여야 하며
저들의 의도에 대한 선전 활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래도
민중적 동의를 얻는 것이 어려울 때는 받아들이되 우리 또한
그에 걸 맞는 요구 조건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교장
선출 보직제등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 등이 요구하는
교원평가제의 시범학교 운영을 받아들이되 우리 또한 교장
선출보직제의 시범학교 실시 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교장
선출 보직제는 얼마든지 민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성취 가능한 사업이다. 학교의 비민주성 등을 폭로하면서 교사,
학부모, 학생이 참여하는 교장 선출제를 쟁취 한다면
교원평가에서 올 수 있는 부작용 또한 차단 할 수 있으며 학내
민주화의 커다란 진전을 이룰 수 있다.
2) 우파 교사 집단의 공세 차단 및 논리적 대응
우스운 일이지만 반 전교조의 기치를 내건 우파 교사연합이
출범하였다. 그들이 수구언론과 수구정치권의 비호를 받기에
우리의 예상보다 강력하게 공세를 취 할 수 있다. 가볍게 볼 일
만은 아니라고 본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특히 사학의 경우 그 영향력이 크게 증대될 수 있다고 본다.
재단과 학교장의 후원 하에 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사학에서의
민주노동운동은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안으로서 상대하여야 하며
감정적인 대응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감정적 대응을
바라면서 문제를 일으키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논리적 대응을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단위 학교에서의 상황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므로 주변 학교와의 연대가 필수적이며
지부, 지회의 지원체제가 준비되어야 한다.
3) 사립학교법 재개정 반대투쟁 강화
수구세력과 교육자본가들은 필사적으로 사립학교법의 재개정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집권당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재개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야합에
의한 재개정이 시도될 것이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이에 우리는 그 부당함에 대해 적극적 선전 활동을 하여야
할 것이며 제 사회단체등과 함께 투쟁하여 그들의 음모를
분쇄해야 할 것이다. 만약 사립학교법이 재개정 된다면
수구세력과 교육 자본가들의 권력은 강화 될 것이며 그 힘을
바탕으로 전교조등에 대해서 파상공세를 취하려 할 것이다. 한번
밀리기 시작 하면 어디까지 밀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신념이 확고하다면 우리는 결코 밀려서는 안 된다. 오직 전진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4) 기타 제 문제
위에서 든 사안 말고도 많은 현안들이 있다. 교육개방의 문제,
고교평준화 문제, 무상교육 문제 등 여러 현안들이 산적 해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투쟁을 통해서 해결해 가다 보면
얼마든지 풀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러한 것 들을 할 수 있는
투쟁 동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투쟁동력은 어디서 오겠는가?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철저한 계급의식과 인간
해방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신념에서 오는 것이다. 2006년은 이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4. 맺는말- 연대 투쟁의 강화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중이 염불
외듯이 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하지 말자는 것인가.
하자는 것인가. 위기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나 식상해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언제는 위기가 아니었단 말인가?
부르주아들은 위기가 오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하면서
전보다 더욱 노력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위기 타령만
하고 있지 않은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잡을
일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처음 시작 할 때의
어려움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좋은 조건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교육노동자이기에 교육운동에 대해서만 말을 했으나
교육운동은 교육운동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교육운동은 교육운동가만의 운동이 아니다. 모두의 운동인
것이다. 이제는 시야를 더욱 넓혀 정치운동 차원으로 진입해야
한다. 경제투쟁에 그쳐서는 안 되며 적극적인 정치투쟁의 길에도
들어서야 한다. 정치투쟁을 통해서 정치의식이 고양되며 확고한
계급의식이 형성된다. 단지 조합주의에 머물러서는 미래를 보장
하지 못한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연대투쟁의 강화가 필요하다. 투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
독자적인 투쟁만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당되는 제
이슈마다 민주 노동진영과 함께 투쟁해 나갈 때 인간해방,
계급해방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좌파운동은 더욱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교육운동 내에서도 소수이지만 전체
노동운동 내에서도 소수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소수이기
때문에 운동이 위기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소수의
폭력이 승리를 거둔 결과로서 이루어진다거나 혹은 다수의
수적우월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사회주의로 이끄는 경제적 필연성에 대한 노동계급의
이해와 결과로서 이루어진다는 로자의 말을 기억하자.
거기에다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차이점조차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서서히 그들의 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민운동은 근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다. 즉, 자본주의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상적인 자본주의국가화 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정상적 자본주의국가화 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최근(2월
7일) 고려대 경영대학이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3년간
초빙교수로 임용한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고대 경영대학장은 장하성 교수다. 그는 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으로서 삼성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이것은 참여연대의 대재벌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것이며 시민운동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 본다. 점차적으로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민중운동이 운동의
중심을 잡아야 하며 그 힘을 모아 혁명운동화 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한 걸음 한걸음 전진해 나간다면 혁명이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혁명의 꿈을 잃지 않을 때 우리의 운동은
힘을 발휘할 것이며 어떤 어려움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운동의 주체들은 모든 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선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혁명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현실이이라는 신념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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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1 02: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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